다정한 안부를 부칩니다.
0. 감정에 지지 말기

오랜만에 본가에 간 날이었다. 두 달 만이었던가.

내가 한참 방황하고 소리 없는 우울에 빠져있던 때라 그랬는지 아빠와의 대화에서 생긴 작은 마찰이 금세 말다툼으로 번져있었다. 아직도 어느 지점은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내가 흥분했다는 사실은 변치 않을 테니까. 내 감정이 고조되던 순간 아빠의 한마디가 소용돌이 치던 내 속의 감정의 홍수를 그치게 만들었다. 홍수 같은 날들로 넘쳐흐르던 불필요한 감정의 홍수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한 말이었다.


아빠는 늘 그런 식이었다. 늘 그런 식으로 날 구했다. 아빠는 모르겠지만 나는 몇번을 그렇게 구조됐었다. 이유를 알 길 없는 묘연한 슬픔으로부터. 


"윤지야, 감정에 지지 마."

아빠가 말했다.  


갑자기 아주 작은 오존층 너머의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은 소행성 혹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운석 하나가 불가항력적인 모든 것을 뚫고 내게로 돌진해 버린 것이다. 마음을 추스를 새 없이 마음 깊숙이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얕게 일던 반항심도 잠시 빛이 반짝였다. 내 안에서 작은 씨앗이 움을 틔웠다. 아빠가 그  씨앗을 발아시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겨울잠을 자던. 어쩌면 평생 모습을 보일 수 없었을지 모를 씨앗이 아빠의 문장으로 인해 내 속에서 피어나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지지부진했던 며칠 몇 주간의 나를 단번에 건져올렸다. 그도 그럴 게 나는 그동안 깊은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은 정처 없이 외로움을 달래려고 한강진 역을 주변을 오래 걸었는데 외로움이 더 쌓였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 다정한 연인들. 모든 것들에서 아름다움과 외로움 한 줌을 얻었다. 아름다움은 금방 증발했고, 외로움은 누적되었다. 집에 돌아와 잠깐 멍하니 앉아있었는데 눈물이 흘렀다. 한번 물꼬를 튼 눈물샘이 멈출 새 없이 크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시간이 얼마가 지났는지 모르게 눈물이 흐르니 마음까지 아려지는 게 아닌가. 마음이 아리니 눈물이 더 흘렀다. 혼자가 아닌 방에서 숨죽여 울던 버릇이 혼자가 되어서도 숨죽여 울게 만들었다. 누구에게 들킬 일 없는 눈물인데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피부 위가 쓰라리도록 오래. 눈물이 흘러 가슴을 타고 긴 팔을 타고 흘러 손끝에 맺히도록. 그런 날들이었다. 


무심코 던진 말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일처럼.

어떤 말은 또 사람을 구원하기도 한다.


나는 실로 감정적인 사람이다. 아빠의 말로 나는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감정에 약한 사람인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싸워보기로 했다. 나를 약하게 만드는 감정들에게 지지 않기로 했다. 열 번 중에 다섯 번은 이겨보자고. 차츰차츰 이겨내 보자고. 매번 이길수도 없겠지만 매번 무너지지는 말자고 말이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작은 희망이 생겼다. 아빠로부터 움튼 삶의 희망. 인생이 오래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매번 그러길 바랐다. 그만두고 싶었을 때, 그만 아침을 보고 싶었을 때도. 잘 살고 싶은만큼 그만하고 싶었으니까. 아마도 이 생애에서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을 절망과 희망을 함께 가지고 가야할지도 모르겠다. 




님, 반가워요.
첫번째 편지를 먼저 띄웠습니다. 
반갑게 안녕을 전하고 뒤의 글이 무거워지면 산뜻하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기분일까 싶어서 말이에요. 오랜만이에요. 세번째 편지의 시작을 전하는 것이지만 늘 처음은 어색하고. 조금은 쑥스럽기도 합니다. 처음인 분들도 있으시겠지요. 사적인 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단한 사람은 아니고, 대단한 글들도 아니겠지만 그래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좋겠네요. 마음에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 

촉촉하고 습한 칠월입니다. 그래도 아직 깊은 밤의 바람이 꽤 선선합니다. 곧 장맛비가 세차게 내릴 테고 한바탕 힘든 더위가 지나가겠죠. 마음만큼은 무더위에도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게요.  

작은 과제가 있어요.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입니다. 
무엇이든 좋아요. 그대 마음에 움을 틔워 하고 싶게 만든 일들 무어든지 다 좋아요. 언젠가 혹은 상상만으로도 당신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면요. 
- '내년 봄엔 반드시 네잎 크로바를 찾아야지.'와 같은 것들도 좋아요. 구체적인 것도 좋고요. 적어도 많아도 상관 없어요. 대신 하나 이상은 있을 것이 조건입니다. 생각보다 어려울수도 있고 쉬울수도 있겠어요. 과제에 대한 답변은 메일링이 끝나는 날 다시한번 물을 예정입니다. 늘 염두에 두시고 메모장에 적어서 '이땐 이랬는데 요즘은 이러해요.'와 같은 말들도 환영이구요! 정해진 정답은 없습니다. 당신 속의 말이 정답이에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예외가 있는 정답. 그럼 잘 부탁해요. 다정히 오래 서로의 안부를 물어요. 

감사합니다. 
김윤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