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편지


안녕하세요.
브랜드 기획을 맡고 있는 직장인입니다. 다음 주에 닷새 일정으로 도쿄 출장을 갑니다. 새롭게 떠오르는 매장과 브랜드를 돌아보고, 우리 브랜드에 적용할 만한 트렌드를 찾아오는 것이 이번 출장의 목적입니다. 가 보고 싶은 곳이 많아 일정을 몇 번이나 고쳤습니다. 그런데 방문할 곳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무엇을 보고 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곳에서는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먹거리가 인기라고 하고, 다른 곳에서는 크고 화려하고 단맛이 강한 디저트가 잘 팔린다고 합니다. 새로운 경험을 앞세운 매장에 사람들이 몰리는가 하면, 수십 년째 같은 제품을 파는 오래된 가게 앞에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모두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인데,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사실 지난 출장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화제가 되던 매장들을 보고 와서 제품과 패키지, 공간에 관한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몇 가지는 실제로 반영됐고, 새로워졌다는 반응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이 우리 브랜드에 무엇을 남겼는지는 선뜻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다음 기획을 시작할 때는 다시 요즘 무엇이 유행하는지부터 찾게 됐고요.

유행하는 것을 하나씩 받아들이다 보면 우리 브랜드가 어떤 모습이 될지 걱정됩니다. 그렇다고 우리답지 않다는 이유로 익숙한 방식만 고집하는 것도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정체성을 지킨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요.


편집장님.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과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지켜야 할지 판단하려면, 먼저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이번 출장에서는 ‘요즘 도쿄에서 이런 것이 뜹니다’라는 말에서 조금 더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박 차장에게


전혀 몰랐지 뭔가. 긴자 한복판에 그런 빵집이 있을 줄은 말일세.

에르메스와 샤넬, 구찌 매장을 지나는데 빵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네. 세계적으로 땅값 비싸기로 이름난 거리에 빵집이라니. 이곳에서는 빵을 얼마나 팔아야 임대료를 낼 수 있을까. 브랜드를 보러 갔다면서 내가 처음 한 생각은 고작 그런 것이었네. 그런데 안을 들여다보고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네.


빵을 고르는 사람도 많았고, 계산을 기다리는 줄도 길었네. ‘기무라야’라는 오래된 빵집이었지. 알고 보니 15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곳이더군. 내가 그 빵집이 긴자에 있는 것을 의아해하는 동안, 그곳은 이미 오랫동안 긴자의 일부였던 셈이네.


박 차장.
닷새라는 짧은 출장 동안 새로 생긴 매장과 젊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만 돌아보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테지. 그런데 오래된 빵집부터 가 보라니, 내가 자네의 출장 목적을 잊은 것은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네. 하지만 자네의 편지를 읽고 나니 오히려 이 빵집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네.


혹시 들르게 되거든 빵 하나를 고르기 전에 매대 앞에 잠시 서 있어 보게. 어떤 빵이 있는지, 사람들은 그중 무엇을 고르는지 말일세. 빵 이름보다 사람의 손이 어디로 가는지를 보는 편이 더 재미있을 수도 있네. 내가 보았던 매대에는 서로 다른 취향의 빵들이 함께 놓여 있었네. 담백해 보이는 발효 빵이 있는가 하면, 보기만 해도 입안이 달아지는 빵도 있었지. 익숙한 모양의 팥빵 옆에는 치즈와 크랜베리, 슈거파우더를 넉넉히 올린 빵도 있었네.


사람들은 그 서로 다른 빵들을 저마다 골라 갔네. 익숙한 빵을 망설임 없이 집는 사람도 있었고, 매대를 몇 번이나 돌아보며 고민하는 사람도 있었지. 자네가 편지에 쓴 말이 꼭 그 풍경 같더군.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다고 했지. 나도 그 매대 앞에서 비슷한 생각을 했네.


건강이라고 하자니 달콤한 빵이 걸렸고, 새로움이라고 하자니 오래된 빵을 고르는 사람들이 걸렸네. 그렇다고 복고라고 부르기에는 매대의 다른 쪽이 너무 달랐지.

한 가지 말로 정리해 보고 싶었네. 그래야 무엇인가 알아낸 기분이 들 것 같았거든. 그런데 생각할수록 빵집을 이해하려는 것인지, 내가 알고 있는 말에 빵집을 맞추려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지더군. 물론 설명을 붙일 수는 있네.


오래된 빵을 찾는 것은 익숙한 맛에 대한 향수라고 할 수 있겠지. 달콤한 빵을 고르는 것은 지친 일상에 작은 보상을 주려는 소비라고 해도 될 것이네. 담백한 발효 빵을 찾는 것은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고. 그럴듯한 해석이네. 나 역시 보고서를 쓴다면 그런 말을 몇 줄쯤 보탰을 것이네. 다만 빵을 집는 손만 보고 그 마음까지 다 알 수는 없겠지. 그리고 그런 설명을 붙이고 나서도 질문 하나는 남더군. 그 마음들은 언제부터 있었던 것일까.


익숙한 맛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단것으로 잠시 기분을 달래려는 마음도, 몸에 좋은 것을 먹고 싶은 마음도 어제오늘 생긴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오래전부터 있던 욕구에 우리가 새 이름을 붙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 이름을 알아낸 것과 새로운 변화를 알아낸 것은 같은 일이 아닐 텐데 말일세.


그러니 트렌드를 이야기하려면 무엇이 인기 있는지를 보는 데서 한 걸음 더 가야 하네. 예전에도 있었던 것이 왜 지금 더 많이 선택되는지, 무엇이 달라져서 그 선택이 늘었는지까지 살펴야 하지.


매대 앞의 짧은 관찰만으로 거기까지 알 수는 없었네. 그래서 나는 그날 답보다 질문을 더 많이 가지고 나왔네. 그중 하나가 이것이었네. 이 오래된 빵집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며 오늘의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가.


박 차장.
자네도 잘 알겠지만, 새로운 것을 빨리 알아채는 브랜드가 있네. 유행하는 재료를 쓰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을 입히고, 요즘 익숙한 말투로 이야기하지. 그런 감각은 중요하네. 사람들이 달라졌는데 브랜드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낼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가끔은 그 모든 것을 잘하는데도 정작 어떤 브랜드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더군. 지난번에는 저 브랜드를 닮았고, 이번에는 다른 브랜드를 닮았네. 매번 지금의 취향에는 맞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브랜드만의 인상은 희미하지.

자네가 지난 출장에서 가져온 아이디어를 두고 무엇이 남았는지 모르겠다고 한 말도 그래서 마음에 걸렸네. 새로워졌다는 반응은 있었는데, 다음 기획에서는 다시 처음부터 유행을 찾아야 했다고 했지.


어쩌면 새로움을 발견하는 데 들인 만큼, 그것을 왜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는 충분히 묻지 못했을 수도 있네. 나 역시 그런 기획을 해 보았기에 하는 말일세.

그렇다고 오래된 빵집이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네. 오히려 오랫동안 장사를 이어 오려면 수없이 바꾸어야 했을 것이네. 손님의 입맛도, 재료도, 만드는 방식도, 빵을 알리는 방법도 달라졌겠지.


팥빵부터 생각해 보게. 서양에서 들어온 빵에 일본 사람들에게 익숙한 팥을 넣은 것이지. 오늘 우리가 오래된 입맛이라 부르는 것도, 처음에는 낯선 시도였던 셈이네. 누군가는 처음 보는 빵 앞에서 망설였을 테고, 누군가는 먹어 본 뒤 다음에도 그것을 찾았겠지.


새로웠던 것이 거듭 선택되면서 익숙해졌을 것이네. 그 익숙함이 오랜 시간 한 가게의 이름과 함께 쌓였을 테고. 물론 오래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정체성이 단단하다고 말할 수는 없네. 오래 버틴 모든 가게가 좋은 브랜드인 것도 아니고. 우리가 지금 보는 것은 살아남은 가게들이니, 그 시간 속에서 사라진 가게들을 잊어서도 안 되겠지.


다만 오래 사랑받는 브랜드 앞에서는 살펴볼 것이 있네. 무엇을 바꾸었고, 무엇을 계속 지켜 왔는가. 나는 정체성이 그 선택에 드러난다고 생각하네. 다양한 빵을 파는 것과 정체성이 흐릿한 것은 같은 말이 아니네. 한 종류의 빵만 오래 판다고 정체성이 저절로 선명해지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빵을 내놓더라도 왜 우리가 이것을 만드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네. 손님도 그것을 보며 이 가게라면 만들 법한 빵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그 선택들을 이어 주는 생각이 있어야 새로운 유행을 만났을 때도 판단할 수 있네.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인지, 잠깐 관심을 얻으려고 무리해서 받아들이는 것인지 말일세. 자네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정체성을 지킨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 그 질문은 놓지 않았으면 하네. 우리답다는 말이 새로운 시도를 막는 편리한 이유가 될 때도 있으니까.


지켜야 할 것이 지금의 제품인지, 아니면 그 제품으로 고객에게 주려 했던 가치인지부터 생각해 보게. 같은 가치를 전하기 위해 제품은 달라져야 할 수도 있네. 반대로 제품을 새롭게 바꾸고도 고객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고.


무엇을 유지했느냐만큼, 무엇을 위해 유지했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일세. 나는 일본에 갈 때마다 새로 생긴 곳 못지않게 오래된 가게들 앞에서도 걸음을 멈추게 되네. 기무라야 같은 빵집도 그렇고, 오랜 역사를 지닌 마쓰자키 센베이 같은 과자점도 그렇지.


일본의 긴 경제 침체를 우리는 흔히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부르네. 그 시절을 견딘 사람들의 어려움을 내가 가볍게 말할 수는 없겠지. 다만 브랜드를 보는 사람으로서는 그 시간 동안 무엇이 사라졌는지만큼 무엇이 쌓였는지도 궁금하네.


새로운 가게가 수없이 생기고 사라지는 동안에도, 그곳에서 사야 할 이유는 어떻게 이어졌을까. 어려운 시절에도 손님이 다시 찾아왔다면, 그들은 무엇을 믿고 돌아왔을까. 그 이유를 알아보는 일도 앞으로의 변화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네.


박 차장.
자네에게 트렌드를 보지 말라고 오래된 빵집을 권하는 것은 아니네. 그곳이야말로 한때의 새로움이 오랜 선택을 거쳐 정체성이 된 자리일지 모르니까. 거기서는 서로 다른 속도의 변화를 함께 볼 수 있을 것이네. 금세 달라지는 취향도 있고,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마음도 있지. 브랜드는 그 둘을 모두 상대하며 살아가야 하네.


그러니 이번 출장에서는 무엇이 유행하는지와 함께, 사람들이 왜 그것을 선택하는지도 살펴보게. 오래된 가게의 매대 앞에서는 사람의 손을 보게. 무엇을 집는지, 무엇 앞에서 망설이는지.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물어보게. 처음 온 것인지, 다시 왔다면 무엇을 사러 온 것인지. 추억 때문에 찾아왔더라도 오늘 다시 사고 싶은 것이 있는지 말일세.


새로 생긴 매장에서는 그 브랜드가 왜 그것을 선택했는지 살펴보게.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유행인데 유독 그곳에서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면, 그 이유를 생각해 보게. 새로운 재료 때문에 사람들이 왔다면, 그 재료가 더 이상 새롭지 않을 때에도 찾아올 이유가 있을까. 사진을 찍으러 들어온 손님이라면, 다음에는 무엇을 사러 돌아올까.


그 가운데 무엇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에게 익숙한 맛으로 남을지도 상상해 보게. 당장 답할 수는 없겠지만, 매장을 보는 눈은 조금 달라질 것이네. 그리고 돌아와서, 발견한 것을 우리 브랜드에 가져오기 전에 한 번 물어보게.


우리가 이것을 하면 고객에게 무엇이 더 좋아지는가.
지금까지 우리가 해 온 일과 어떻게 이어지는가.
유행이 지나간 뒤에도 계속할 만한 이유가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트렌드는 우리를 바꾸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네. 답하기 어렵다면 조금 더 살펴보아도 괜찮겠지. 트렌드를 아는 것은 선택지를 늘려 주네. 하지만 그중 무엇을 우리 것으로 만들지는 결국 우리가 어떤 브랜드인지에 달려 있지 않겠나. 자신에 대한 생각이 없으면 유행이 바뀔 때마다 결정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테니까.


박 차장.
자네는 무엇을 보고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물었는데, 내가 질문을 너무 많이 보탠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빵집 하나를 보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한 것일 수도 있네.

처음 긴자의 그 빵집을 보았을 때 나는 저 비싼 곳에서 어떻게 빵을 팔고 있을까 생각했네. 그런데 돌아설 때는 그 빵을 사러 긴자에 오는 사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네.

같은 가게인데, 내가 묻는 것이 달라지니 조금 다르게 보이더군. 자네도 그곳에서 나와는 다른 질문 하나를 발견하면 좋겠네. 돌아오거든 들려주게. 빵 이야기도 좋고, 그 앞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도 좋네.

그럼, 수고하게.


P.S.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나도 출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요즘 일본에서 뜨는 것들' 부터 이야기했던 것 같군. 새로 발견한 것을 말해야 다녀온 보람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네. 그러니 자네의 보고서에 오래된 빵집 이야기가 들어 있더라도 이번에는 왜 이런 곳에 갔느냐고 묻지 않겠네. 대신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겠네.

그리고 정작 나는 사람들이 고르는 모습을 보느라 어느 빵이 가장 맛있는지는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네. 그것도 자네가 좀 알려 주게. 오래된 브랜드를 이해하는 데에도 결국 한 입 먹어 보는 일이 필요하지 않겠나.

타스의 브랜드 편지는 시즌 1 [유니타스브랜드], 시즌 2 [엔텔러키 브랜드], [아내가 창업을 한다], [브랜드의 탄생], [거리에서 브랜드를 배운다]를 비롯해 지금까지 발행한 브랜드 관련 서적과 자료, 그리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작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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