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난 백설공주의 미래에 대한 불안 (정한아, 『어른스런 입맞춤』)
고등학교 때 불어 선생은 처절하게 아름다웠다
조막만한 하얀 얼굴 커다란 눈 흑단 같은 머리 피처럼 붉은 입술 바비 인형의 몸매 아아, 그녀는 나의 백설공주!
그녀가 교과서를 읽을 때마다 울리던 동글동글한 음률은 또 얼마나 황홀했던가
졸업 후 모교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팬지처럼 푸른 멍이 활짝 피어 있었다
꼬멍 딸레 부? (결혼하셨다면서요?)
그리하여 백설공주의 마지막 장면은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했을 것이다;
아, 공주, 살아났구려 이렇게 꿈 같은 일이! 아름다운 당신을 나의 궁전으로 데려가겠소
……
부디, 안 그러셔도 돼요 삼 년쯤 지나고 나면
눈처럼 하얀 얼굴은 창백할 거예요
흑단처럼 검은 머리는 우울할 거예요
피처럼 붉은 입술로 일곱 난쟁이와 무슨 짓을 하며 세월을 보냈냐 캐물으실 테죠
사냥꾼에게 뭘 주고 목숨을 샀는지 궁금한가요?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도 가련 노파에게 세 번이나 문을 열어준 나의 동정심을,
유혹에 약한 천성이라 생각하겠지요
당신은 내가 죽어 있었기 때문에 날 사랑한 거예요
내가 울고 웃고 말하고 걸어 돌아다니면 당신은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 거예요
새엄마의 거울을 베개 밑에 넣어두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백설공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을까요?
내가 죽어서 가만히 유리관에 누워 있었더라면 좋았을 거라 후회할걸요?
눈처럼 하얀 얼굴, 흑단처럼 검은 머리, 피처럼 붉은 입술은 나에게 내려진 저주예요!
그녀는 뱉었던 사과를 주워 흙을 털어 집어삼키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일곱 난쟁이들은 땅을 치며 울다 왕자에게 덤벼들어 왕자의 눈을 뽑아버린다 사랑은 봉사다(무슨 뜻인지는 엄마에게 물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