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사 레터 44회 (2022.03.02)
▲ 이소호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

안녕하세요. 시 쓰고 산문을 쓰는 이소호라고 합니다. 집순이에 공상을 좋아합니다. 그래서일까 저는 늘 쓰는 것을 가지고 노는 생각을 합니다. 심심하면 디자인을 만지고, 틈틈이 써보고 싶은 것을 기획하여 목차로 만드는 것이 저의 유일한 취미입니다. 그래서였을까. 작년 한 해에 총 네 권의 책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시집 『캣콜링』뿐이었지만 이후로 시집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영문 시집 『Catcalling』이 나왔고, 산문집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총 네 권을 썼습니다. 앞으로도 쓰는 자의 즐거움을 찾으며, 그 자리를 지킬 예정입니다.

💕이소호 시인이 사랑한 첫번째 시💕


자살한 여배우─이상한 와신상담(臥薪嘗膽) (정한아, 『어른스런 입맞춤』)

 

난 처음부터 그녀가 싫었어 언젠가 자살할 것처럼 생긴 여자를 평일 밤 드라마에서 보는 건 괴로운 일이었지 잔인하게 처진 입꼬리 절대로 웃지 않는 눈 자기 안에 울타리를 구백아흔아홉 겹이나 쳐놓고 들어앉아 당신은 날 이해할 수 없을 거야, 라고 말하는 듯한 그늘진 얼굴

 

난 처음부터 그녀가 싫었어 특히 새된 목소리와 굽은 다리가 정말 싫었지 섹시한 데라고는 한 군데도 없었어 삐쩍 마른 것도 싫고 액체만 먹으며 연명할 것 같은, 육신의 소망은 안중에도 없는 듯 도도하고 납작한 이마가 정말 싫었지 홀쭉한 볼도 싫었어 이미 생명력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니까

 

저런 여자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 기척 없이 걸어다니는 저런 사람들은 어디에고 있었지 욕조에서 물이 까만 수챗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오랫동안 알아챌 수 없는 거야 그러다가 어느 순간 코로로로로로록! 커다란 소리를 내며 빨려들어가는 마지막 소용돌이 물살을 보면 사람들은 아는 거지 아, 이제 저기는 비었구나, 하고

 

오래전부터 준비되어온 충동인 거야 그녀는 별안간 다른 세계로 건너가버리고 우리는 소외감을 느끼는 거야 혼자 전부 따돌리는 거야 그럼 나처럼 삐뚤어진 인간은, 순간, 자존심이 상하는 거야 제 마개를 제가 뽑아버린 독한 것! 뭘 그리 잘났다고! 그러면서 아주 반대되는 소망을 품고 와신상담에 들어가는 거지

 

젠장, 아주 오오오오오래 살아남아서 이 생(生)에서 맛볼 수 있는 모든 쓴맛 단맛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쪽쪽 빨아먹고 가겠다고

나의, 나를 위한, 나에 의한, 가장 독재적이며 민주적인 마지막 위락(爲樂)을 포기하면서

오늘 제가 소개하고 싶은 첫 시는 정한아 시인의 『어른스런 입맞춤』 안에 있는 「자살한 여배우」입니다. 이 시는 부제목으로 “이상한 와신상담(臥薪嘗膽)”이 쓰여 있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와신상담의 뜻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고난을 견디고 뜻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였을까. 저는 시의 마지막 “나의, 나를 위한, 나에 의한, 가장 독재적이면서 민주적인 마지막 위락(爲樂)을 포기하면서”에서 아주 오래 머물렀습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이 시를 읽고 제 죽음의 뒤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유명인은 아니지만, 가끔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로 글로 두들겨맞습니다. 그래서 나보다 더 유명한 그리고 세상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연예인의 삶은 어떨까 자주 생각해보았습니다. 특히나 가끔 내가 사랑했던 유명인의 부고를 들었을 때, 그들은 사람들에게 분노의 대상에서 그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손바닥 뒤집듯이요. 그리고 안타깝지만, 그것은 일부입니다. 미움은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끔 이렇게 깨닫고는 합니다. 그러고는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의 죽음에 대해 한마디씩 덧붙이지요. ‘유명하기 때문에 욕을 먹어도 싼’ 그 여배우가 ‘유명하기 때문에’ 죽어서도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람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끔찍하지요. 어떤 사람은 죽어서도 위로와 안식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저는 이 시를 선택했습니다. 잊힐 권리도 없이 어느 때만 되면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그 슬픈 돌림노래를요.


💛3월엔 이런 시집이 태어났습니다💛


💛봄,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으슬으슬한 강추위가 끝나고 벌써 3월이 왔습니다. '3월'은 누군가에겐 새학기의 시작을, 누군가에게는 봄맞이의 스타트를 떠오르게하는 달인데요. 

💛'봄' 하면 떠오르는 것?!
구독자님은 '봄'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벚꽃? 얇은 봄옷? 신학기 전자제품 세일…? 🤣 <우시사> 마케터에게 '봄'은 조금 특별한 계절입니다. 봄에 태어난, 또 봄에 어울리는 문학동네시인선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새봄에 태어난 문학동네시인선과 함께 조금은 산뜻해진 마음으로 3월을 시작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소호 시인이 사랑한 두번째 시💕


살아난 백설공주의 미래에 대한 불안 (정한아, 『어른스런 입맞춤』)

 

고등학교 때 불어 선생은 처절하게 아름다웠다

조막만한 하얀 얼굴 커다란 눈 흑단 같은 머리 피처럼 붉은 입술 바비 인형의 몸매 아아, 그녀는 나의 백설공주!

그녀가 교과서를 읽을 때마다 울리던 동글동글한 음률은 또 얼마나 황홀했던가

졸업 후 모교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팬지처럼 푸른 멍이 활짝 피어 있었다

꼬멍 딸레 부? (결혼하셨다면서요?)

 

그리하여 백설공주의 마지막 장면은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했을 것이다;

 

아, 공주, 살아났구려 이렇게 꿈 같은 일이! 아름다운 당신을 나의 궁전으로 데려가겠소

……

부디, 안 그러셔도 돼요 삼 년쯤 지나고 나면

눈처럼 하얀 얼굴은 창백할 거예요

흑단처럼 검은 머리는 우울할 거예요

피처럼 붉은 입술로 일곱 난쟁이와 무슨 짓을 하며 세월을 보냈냐 캐물으실 테죠

사냥꾼에게 뭘 주고 목숨을 샀는지 궁금한가요?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도 가련 노파에게 세 번이나 문을 열어준 나의 동정심을,

유혹에 약한 천성이라 생각하겠지요

당신은 내가 죽어 있었기 때문에 날 사랑한 거예요

내가 울고 웃고 말하고 걸어 돌아다니면 당신은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 거예요

새엄마의 거울을 베개 밑에 넣어두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백설공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을까요?

내가 죽어서 가만히 유리관에 누워 있었더라면 좋았을 거라 후회할걸요?

눈처럼 하얀 얼굴, 흑단처럼 검은 머리, 피처럼 붉은 입술은 나에게 내려진 저주예요!

 

그녀는 뱉었던 사과를 주워 흙을 털어 집어삼키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일곱 난쟁이들은 땅을 치며 울다 왕자에게 덤벼들어 왕자의 눈을 뽑아버린다 사랑은 봉사다(무슨 뜻인지는 엄마에게 물어보세요)

두번째 시는 같은 시집 『어른스런 입맞춤』에 있는 시 「살아난 백설공주의 미래에 대한 불안」입니다. 저는 이 시를 읽고 한 여성의 생존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왕자님으로 포장된 이 남자는 꽃을 사오기는커녕 백설공주(왕자의 배우자)의 아름다운 얼굴에 팬지꽃을 피웁니다. 읽다보면, 폭력의 강도는 점점 심해집니다. 그리고 그는 늘 그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네가 너무 아름다워서’라고 말이죠. 왕자님은 결국 이 폭력의 원인도 ‘너’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백설공주에게는 “내가 죽어 있었기 때문에 날 사랑한” 것인 셈입니다. 공주가 이 아름다움을 “저주”로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녀는 왜 ‘내가 아름답기 때문에 이 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이와 관련된 사회적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 충격적인 기사 하나를 본 적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로 가정폭력이 급격하게 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코로나19의 수치가 올라갈수록 폭력의 수치도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였는데, 이것이 범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잔혹하게 느껴졌습니다. 인도에서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주부가 2만 명을 넘어섰는데, 만연한 가정폭력에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령이 더해져 사태가 더욱 심각해졌으며, 남아공은 봉쇄령이 내려진 지난 2021년 7월부터 9월까지 매일 평균 백여 건의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고, 3시간에 1명 꼴로 여성이 죽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이후 중저소득 13개국 여성의 45%가 폭력을 경험하였으며, 10명 중 7명이 배우자나 동거인에 의한 폭력이 더 흔해졌다고 대답했습니다. 이탈리아 역시 매일 발생하는 90건의 폭력 중 62%가 가정폭력이라고 하더군요. 학대는 비단 여성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것은 아동 폭력과 방치로 이어지며 결국 사회의 돌봄 문제로까지 확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제2의 팬데믹은 가정폭력이 아닐까,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도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제2의 팬데믹’이라고 말한 바 있지요. 그러니까 시인이 시의 뒷부분을 다시 썼듯, 저 역시 이 시를 읽으며 백설공주의 모든 해피 엔딩을 모조리 잊었습니다. 일곱 난쟁이와의 구원과 왕자님의 키스, 그리고 엄마의 지독한 질투까지도 사소하게 느껴지고 말았습니다. 오로지 생존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벗어날 수 없는 폭력에 지친 그녀는 세상에 더는 없고, 그녀를 살뜰히 지키던 일곱 난쟁이들이 왕자의 눈을 뽑아버리기까지 그녀가 살아온 그 생존의 분투기를. 한쪽이 ‘봉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여러분도 조금은 묵직한 마음으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봉사’가 된 왕자님의 뒷이야기는 엄마에게 물어보세요!)

📢 다음주 <우리는 시를 사랑해> 시믈리에
다음주 아름다운 시 두 편을 추천해줄 시믈리에💛는 완독챌린지 '독파' 의 김희숙 마케터입니다. 

문학동네가 자신 있게 선보이는 '독파'는 읽고 기록하고 공유하는, 슬기로운 독서생활을 위한 신개념 플랫폼인데요. 책덕후로 유명한 김희숙 마케터가 고른 시 두 편을 기대해주세요. 그럼 다음주 수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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