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월간 독립출판
'월간 독립출판' 스물아홉 번째 편지
독립서점 '새벽감성1집'과 객원 에디터 10인이 함께 만드는 이메일 뉴스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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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한해를 떠올리며 좋아하는 독립 출판 작가가 있나요?

기성 작가들이 여러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을 동안 독립 출판 작가들은 겨우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자신만의 세계를 가득 담은 책 한 권이라면 작가를 좋아하기에 충분합니다. 2025년의 마지막 달, 한 해 동안 읽었던 책들을 떠올려 보고 마음에 남았던 작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독립 출판에 관심을 두다 보면 다양한 경로로 독립 출판물들과 작가들을 알게 됩니다. 책방 SNS를 통해서 알게 되기도 하고, 동네 책방에서 마음에 드는 책으로 만나기도 합니다. 때로는 책을 매개로 하는 행사에서 만나기도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우연히 만나게 된 책과 작가, 그리고 좋아하게 된 이유를 소개합니다.

12월의 객원 에디터

나리 : 내 글을 읽어줄지 고민하기보다 꺼내 보이고 싶은 이야기가 내 마음에 항상 샘솟았으면 좋겠다. 그런 글들이 물방울이 되어 건조한 내 삶의 촉촉한 단비가 되어주길 바란다. <사서 걱정 말고, 사서 생각>과 <난 아직 그곳에 있어>를 만들었고, <여자, 사람, 자동차> 공동 집필했다.

이달의 독립출판을 소개합니다!

흑역사도 역사니까, 흑역사를 받아들이는 마음.

<맜있게 드세요_최지연>

사람은 자신만 보는 일기에도 꾸며 쓴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뜻이다. 누구에게나 흑역사는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한 식당에서 ‘맜있게 드세요.’라는 틀린 맞춤법의 벽보에 태연하게 ‘틀림’이라고 쓴 것을 본 작가는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일단 하고,

만약 그게 틀렸다면 인정하는 것까지가 삶이겠지.

흑역사도 역사니까 말이다.

 

아무것도 없는 일상에서도 우리가 웃을 수 있는 것은 이런 순간인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벽보도 어떤 한 사람에게는 용기가 되고 책을 완성하는 힘을 주니까 말이다.

 

이 책을 만난 곳은 여주의 건축/사진 책방에서였다. 화려한 책들 사이에 텅 비어 있는 표지에 눈길이 갔다. 책등에 새겨진 제목과 작가 이름을 제외하고는 어떤 장식도 없는 책. 가끔은 예쁜 표지보다 어떤 내공이 느껴지는 책이 좋게 느껴진다.

 

최지연 작가의 ‘맜 있게 드세요'는 2021년 ‘느린 일기’라는 메일링 서비스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은 2021년 여름부터 2022년 여름까지의 일기를 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씁쓸함을, 가끔은 '풋'하고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기분을 들게하는 글들이 있는 그대로의 꾸밈없이 표지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스럽게 결론짓지 않는 글,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담은 글, 하지만 너무 감정적이지 않은 글.

 

일기를 쓰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나, 생각이 많아 머리가 복잡한 사람에게 위로의 말은 없지만 위로가 되어주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느린 일기 메일링 서비스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니 구독해봐도 좋겠다.

나만의 모래섬을 찾아

<모래섬 D469_임희선>

임희선 작가님을 처음 만난 건 몇 해 전 열린 국제도서전에서였다. 국제도서전에는 소규모 출판사들이나 독립 출판물을 위한 '책마을'이라는 구역이 있다. 이 구역의 가장 큰 매력은 작가들이 상주해 있는 경우가 많아 직접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책 구매 시 직접 사인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책 행사를 즐기는 나만의 방법 중 하나는 사람들이 붐비는 부스보다 조용한 부스를 주로 방문하는 것이다. 그런 곳에는 늘 가슴 속에 자신의 이야기가 가득 준비된 작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임희선 작가의 '쿠쿠루쿠쿠(CUCURRUCUCU)'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한 권 한 권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책 한 권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제목은 '모래섬 D469'.

 

'모래섬 D469'의 D469는 작가가 앓고 있는 질병 분류 코드에서 가져온 것으로 개인의 마음속에 구축된 공간을 탐구한 기록을 담고 있는 책이다. 2017년 처음 병을 진단받고 우울한 시간을 보낸 작가에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건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학교 운동장이었다. 멀리 보이는 네모난 모래섬 안 사람들의 표정은 흐릿했지만, 그 모양만으로도 다양한 감정이 느껴졌으며, 그것을 통해 위로받았던 마음을 담아 이 책을 만드셨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내가 느낀 것은 슬프지만, 더 이상 슬프지 않은 그림 동화책을 본 기분이었다. 책의 왼편을 채우고 있는 정사각형의 모래섬 사진은 이야기가 있는 그림처럼 느껴졌고, 그 시기에 썼던 짧은 글과 병원에서 받은 각종 서류에서 찾아낸 단어들로 조합한 문장들은 새로운 이야기처럼 읽혔다.

 

모래섬은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지만, 자신에게만 보이는 가상의 공간과도 같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다른 모래섬이 존재한다. 그 단계도 다 다르다. 누군가는 이제 막 모래섬에 도착했을 수도, 누군가는 그 모래섬을 향해 바다를 건너는 중일 수도 있다. 이 책을 통해 각자의 모래섬의 존재를 깨닫고, 탐구해 보면 좋겠다.

 

*쿠쿠루쿠쿠는 '구구구' 우는 비둘기 울음소리로 임희선 작가님이 만든 출판사이다. 한 마리 새가 되어 느린 호흡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일상에서 포착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여행의 의미

<스쳐 간 사람, 그들에게서 찾은 여행의 기억_서은>

2022년 여름, 서은과 나는 사진 책 워크숍을 함께 했다. 그리고 이듬해 봄, 나는 워크숍에서 만든 샘플로 '나는 그곳에 있어'를 출간했고, 서은은 2025년이 되어서야 책을 완성했다.

위의 글은 '스쳐 간 사람'에 내가 쓴 추천사이다. 아마도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추천사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친구이자 같은 일을 하는 동료, 그리고 이제는 진심으로 응원하고 애정하는 작가가 된 서은을 인터뷰로 만나보자.

 

(친구 사이 이기에 편한 대화체로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1. 먼저 책 '스쳐 간 사람'은 어떤 책인지 소개 부탁해.

안녕. ‘스쳐 간 사람‘은 내가 이십 대의 마지막. 스물아홉 살에 유럽을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을 모아서 만든 사진 책이야.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네? 지금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만 그때가 사진을 가장 많이 찍었던 시기이기도 해. 나의 첫 유럽 여행이고 소중한 추억이지만, 여행 후에 같이 여행한 친구와 연락하지 않게 됐어. 그래서 같이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거든, 그 부분이 늘 아쉬웠는데 이 책에 있는’ 스쳐 간 사람’의 사진을 통해서 여행을 추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고, 책을 다 완성하고 나서야 10년이 훌쩍 지난 그 여행을 완성한 느낌이 들었어. 친구와는 헤어져 함께 추억할 수 없어 여행의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그때 스쳐 간 사람에게 기억의 조각을 찾아 기록하여 여행을 마무리한 책이라고 소개할 수 있겠어.

 

2. 책 속에 꼭 담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어떤 게 있어?

내 책에 나온 사람들은 나와 같은 여행자도 있지만, 대부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야. 나는 비록 여행자지만, 내가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곳에서 살고 있는, 그곳이 일상인 사람들은 어떤 모습인지 내 책 속에 담겨 있어. 그게 특별한 사건이나 결정적인 순간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서 그 공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책을 만들면서 언젠가 내 책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사진을 볼 때마다 그곳에 다시 가면 그 사람이 계속 그곳에 있을 것 같았거든. 어떻게 보면 그때 스쳐 간 사람들이 나와 운명이 된 것이지. 그때 사진을 찍은 사소한 행동이 내가 작가로의 첫걸음을 할 수 있게 했고 내 운명을 결정지었잖아. 언젠가 너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내가 찍은 사진 속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모두 다른 모습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래서 내가 사진마다 장소를 꼭 적어놨어. 꼭 만나보길 바라.

 

3. 책에 담긴 사진을 보면 멈춰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것, (책 제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람을 주로 찍었는데 이유가 있어? 그리고 어떤 생각이 들 때 사진을 찍어?

맞아. 사실 그건 나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사실인데, 22년 사진 책 워크숍에 참여했다가 알게 되었어. 처음부터 사람 사진으로 책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었어. 사진 책을 만들려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모아보니 사람 사진이 많았고, 그렇게 이야기를 구성하고 책을 만들게 됐어. 그래서 최근엔 그 사실을 인지하고 사람 사진을 찍는데, 그 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긴 해. ‘사진은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 내가 있는 공간을 내가 모르는 누군가와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기분도 들고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이나 소중한 순간을 기록하는 영광도 누리는 거지. 그리고 누군가는 스쳐 갈 수 있는 그 순간을 포착하고 발견하는 일인 만큼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을 때 희열이 있는 것 같아. 사진 속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내가 멀리서 바라보는 감정이 같을 수 없지만, 밖에서 봤을 때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우니 그 사람에게 그 순간의 행복을 느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 어떤 생각이 들 때 사진을 찍는다기보다는 사진을 찍고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돼. 아무도 모르게 지나갈 수 있는 찰나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거든.

 

4. 처음 책을 만들어보면서 기대했던 것들이 있어? 또는 네 책을 보고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에 놀랐던 적이 있어?

사실 처음에 기대했던 것은 크게 없었어. 예전부터 친구들에게도 사진을 잘 찍는 말을 듣기고 했었고, 내 스스로 느끼기에도 좋은 사진이 있었는데,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잖아? 내 친구이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해주는 칭찬쯤으로 여겼었거든. 그런데 사진 책 워크숍에서 수업을 진행했던 선생님이 했던 말이 나를 조금 더 용기 나게 해줬다고 할까? 나를 처음 보는 사람이 해줬던 내 사진에 대한 작은 칭찬이 나를 움직이게 했어. 누군가에게 내보일 수도 있겠다고 말이야. 그 설렘이 용기가 되어서 책이 나오게 되었지. 책을 만들면서 내 취향과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내 사진을 발견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오랜 기간에 걸쳐 어렵게 책을 출판한 후에 인스타그램에 출판을 알리는 글을 작성하다가 우연히 어떤 사람이 내 책을 포스팅한 글을 발견했어. 그때 처음으로 독자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감격스럽고, 기뻐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어. 사실 그 책은 정식으로 출판된 책이 아니었고, 23년 한 도서관에서 책 만들기 수업 후 만든 샘플 책이었어. 그 후에 도서관에 비치되었는데 그 사실조차 잊고 지냈지. 일 년이 훌쩍 지난 후에 누군가에게 읽히고 공감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너무 행복하더라고. 이런 기쁨과 환희를 앞으로도 오래도록 누리고 싶어.

 

5. 앞으로 새로운 책을 만들 계획이 있어? 있다면 어떤 책을 만들고 싶어?

작년 이맘때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녀왔어. 그곳에서 찍은 사진과 내 생각을 담아 책을 만들고 싶어.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중이야. 역시 나답게 천천히 아주 조금씩 앞으로 가는 중이지. 일주년을 맞이해서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짧은 글을 올리고 있어. 그리고 브런치에도 연재를 시작했어. 관심 있는 친구들은 팔로우하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봐 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다른 책도 하나 있긴 한데, 특정한 건물 사진을 찍은 책을 만들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게 파출소 건물이거든? 보통 파출소 건물은 2층 건물이잖아? 그리고 오래된 건물도 많고, 주변의 건물이 높아도 파출소는 항상 2층이야. 그리고 주변에 신축이 많아져도 파출소는 오래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그런 게 좀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내 직업 건축가라서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을 하지만 오래된 건물을 좋아하거든. 아이러니하기도 하지. 그래서 예전부터 파출소 사진을 모아서 책으로 내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런 책도 누가 사주려나? 첫 번째 책을 낼 때는 마냥 내가 좋아서 시작했는데, 책을 출판하고 보니 출판 후 누군가의 공감을 사서 책을 파는 일 또한 중요하더라고? 예전에는 내 책을 내 사진을 누가 사줄까? 하는 막연한 걱정이었는데, 지금은 직접 경험하고 있으니까, 더 크게 와닿는 부분이네. 그런데도 꼭 내고 싶은 책이야.

 

6. 마지막으로 예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진 책 좋아해? 이 인터뷰를 보고 내 책에 관심이 생긴 친구가 있을까? 잊힌 여행의 기억을 다시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을까? 사람과의 관계가 남긴 빈자리를 들여다보고 싶은 친구가 있을까? 나와 함께 선명한 순간을 찾고 싶은 친구가 있을까? 내 책에 관심이 생긴 이유가 무엇이든 고마워. 작은 내 책을 들여다 봐줘서 고마워. 내 취향과 그대의 취향이 만나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줬으면 좋겠어. 내가 좋아하는 사진작가가 있는데 말이야. 한영수 작가님이야. 돌아가시고 나서 따님이 아버지가 남긴 필름을 현상하여 회고되었어. 50~60년대 흑백 필름 사진인데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발견해 기록했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사진을 찍는 분이야. 그분도 사람 사진이 많거든. 친구들에게도 내 사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정말 고마워. 그럼 좋은 기회로 또 만나. 안녕.

난 아직 그곳에 있어

나리 여행 에세이

스쳐간 사람

서은 여행 에세이

2025년 '월간 독립출판'은 객원 에디터님들과 함께 이야기를 꾸려 나가려고 합니다. 새벽감성1집 독립서점에서 발행하지만, 새벽감성1집에 없는 책도 소개합니다. 이미 절판인 도서와 신간 도서를 섞어 소개할 예정입니다. 때로는 여러 독립서점 이야기도 전해드립니다. 에디터님들과 함께 만들어질 '월간 독립출판'을 기대해 주세요!
 
다음번엔 당신의 취향을 소개할 거예요!
월간 독립출판은 다음 달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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