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환노위안,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봄! (호외) 국회 환노위, "노란봉투법" 법안 통과 어떻게 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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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조원 여러분. 미안해. 너무 오랜만이지? 먹고 사는 게 바빠서 두 달이나 못냈네. 약속 못지켜서 미안해. 노동자로 사는 거 힘들다... 이제 진짜 주 1회, 일요일 발행, 지켜볼게... 노력은 해볼게. 좀 더 지켜봐줘ㅠ...
조원 여러분, 오늘 레터는 호외로 내봤어. 민주당이 국민의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에서 '노란봉투법' 이라고 불리는 노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거든. '노란봉투법'은 아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노동조합과 노동자 개인에 대한 파업 관련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법안이야. 자본과 보수언론, 정부여당이 노동조합의 불법파업을 권장한다고 극렬반대하던 법안이기도 하잖아? 사실 민주당도 말로는 지지한다 했지만 지난 연말 내내 소극적으로 움직였었고. 그런데 갑자기 환노위를 통과했다니까 얼떨떨한거지. 이거 뭔가 좋은 일인가 싶기도 하고 말야. 그래서 오늘 레터는 지금 상황이 객관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아직 기뻐할 단계는 전혀 아니고 오히려 민주당을 비판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다룰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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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통과된 내용이 너무 별로야. 애초에 노동조합과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요구하던 수준에 너무너무 못미쳐. (노동조합이 원래 어떤 내용을 요구했는지 궁금하면 관련 유튜브 동영상을 소개할게 : 링크) 노동조합에서는 원래 사용자의 손해배상 소송 남용 금지, 특수고용직노동자의 근로자성 인정, 노조 존립을 위협하는 수준의 손해배상청구 금지, 노동조합 단체가 아닌 노동자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금지, 합법성을 인정하는 파업 목적의 범위 확대, 손해배상 액수 계산 방식의 제한 등을 요구했어. 모두 노동조합과 노동자 개인이 사실상 노조 활동이나 파업을 못 하게 막고, 너무 큰 액수의 손해배상 청구로 조직과 개인의 삶이 파탄나는 걸 막자는 내용이었지.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에게 400억 손해배상 소송 거는 거 못하게 막자는 거였잖아. 그런데 지금 환노위에서 통과된 안은 어떤 내용이냐면, 사용자가 손해배상청구는 얼마든지 해도 되는데 다만 그 액수를 개인이 불법파업에 미친 영향력 정도별로 나눠서 청구하라는거야. 예컨대, 400억을 모든 '불법 파업' 참가자들에게 똑같이 청구하지 말고, 40억, 100억, 230억 이런 식으로 개인별로 따져서 청구하라는 거지. 이건 뭐 민주당의 "공정함"에 대한 진심인건가?;;; 물론, 저 내용도 지금보다는 낫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거야. 특히 또 한 가지 착시 현상이 일어날만한 부분은, 환노위에서 통과된 내용 중에 사용자 개념의 범위를 확대하라는 부분도 있다는 점이야. 지금은 하청노동자는 자기한테 일을 시키고 사실상 월급 주는 게 원청 사장인데도 원청을 대상으로 파업을 하면 불법이거든. 법률적으로는 하청 노동자와 원청 사장이 근로계약을 직접 맺은 게 아니라 남남이니까. 생판 남에게 파업하면 업무방해죄에 걸리거나 손해배상청구 대상이 되는 거지. 그런데 이번 법안 내용에 따르면,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게 "구체적,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으면 파업 대상이 되는 사용자로 볼 수 있게 돼. 그렇지만 이 내용이 있을 때조차도, 명백한 문제가 있어. 지금도 원청 사용자들은 여러 상황에서 자기는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구체적, 실질적 지배력이 없다"고 우기면서 각종 법적 책임에서 빠져나가고 있거든.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저 조항으로는 비정규직의 다른 커다란 부분인 특수고용직노동자들을 지킬 수 없어.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경우도 그렇고, "구체적, 실질적 지배력"을 따지기 전에 노동자 여부 자체가 문제가 되는 사람들이 요즘 많잖아. 원래 이 부분을 해결하려고 노조에서 요구한 게 특수고용직노동자들도 근로자로 인정하라는 거였는데, 민주당이 이걸 뺀거지. 심지어 민주당은 이러한 내용 누락을 사전에 비밀로 하기 위해, 평소 연락하던 노조법 개정운동본부 측과 환노위에서 논의할 법안의 내용을 공유하는 것도 거부했었다고 해. 사실상 처음부터 팥 없는 찐빵을 만들기로 의도했던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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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할 수 없는 이유2. 누더기가 넘어야 할 높고 험한 산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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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 누더기 법안이 아직 환노위 절차만 넘긴 것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돼. 본회의장까지 앞으로 넘어서야 할 산이 많고도 높아. 국회의 법안 발의 절차(링크)는, 먼저 국회의원들이 일정 숫자를 모아서 법안을 만들고, 그 다음에 이걸 법안과 연관된 소관 위원회로 넘겨.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법을 바꾸는 거니까 이번처럼 '환경노동위원회'로 가는 거야. 여기서 검토를 받고 통과를 하면, 그다음에 가는 곳이 법제사법위원회야. 이 위원회는 모든 소관 위원회를 거쳐 온 법안이 집결되는 곳인데, 법안의 체계와 자구에 문제가 있는지 등을 심사해. 근데 여기 위원장이 지금 김도읍이라고 국민의힘 국회의원이야. 순탄치 않겠지? 이걸 다 거쳐야 그 다음이 비로소 본회의야. 본회의에 올라가도 문제인 게, 의석 숫자 상으로는 민주당이 과반이니 단독처리를 할 수 있지.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소위 '중도보수여론'이 어떻게 이걸 볼까? 의회 독재다 뭐다 욕을 먹을 거고, 민주당은 또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어. 본회의를 통과해도, 그 다음은 대통령이 공포를 안하고 거부권을 행사해서 의회로 돌려보낼 수도 있어. 그러면, 의회는 다시 2/3 숫자 이상의 동의를 얻어서 통과시켜야 돼. 자, 이 모든 과정을 넘기고 정말 민주당이 지금의 안이나마 통과를 시킬 수 있을까? 민주당이 중도보수층은 물론 이 나라의 사장과 재계로부터 받을 모든 비판을 감수하려고 할까? 만일 법안이 최종 통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때는 지금의 내용이나마 그대로 유지가 될까? 아예 법안이 폐기되거나 무기한 보류될 가능성은? 그렇게 보면, 지금 환노위 통과 상황을 마치 본회의 통과처럼 착각하고 앞서서 흥분할 이유가 전혀 없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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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할 수 없는 이유3. 민주당의 의회 정치에서의 계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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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민주당이 정말로 노조법 2,3조의 최종 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볼 근거는 객관적으로 전혀 없어. 민주당의 "진심"을 믿어? 나는 민주당의 "이해관계"를 믿는 편이야. 그 정당은 노동조합이나 진보층으로부터 표를 얻고자 하고 부분적으로 적극적인 지지와 협력도 얻고 싶어해.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수권'을 위해서는 중도층의 지지도 상당 수준에서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더 나아가, 민주당은 '국정운영'을 위한 핵심 협력 대상은 바로 재벌과 부자들인 것도 잘 알고있지. 일찍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한 건 유명한 에피소드야.
그런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노조법 2,3조 개정은 본회의에 이르기 전까지 다른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는 카드야. 오히려 민주당이 가장 원하는 것은, 이런 누더기 법안이라도 환노위에서 통과시키는 행위(퍼포먼스)를 통해 진보 세력을 묶어두는 걸거야. '어쨌든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노동문제에서 나은 집단'이라고 여기게 만들고 싶은 거지. 특히나 지금 제도 정치 상황을 들여다보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 꽤 분명하게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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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할 수 없는 이유4. 민주당의 진보대중을 향한 러브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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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퍼포먼스'는 단지 정의당만을 향한 민주당의 러브콜은 아닐거야. 민주당은 요즘 곧 죽어도 이재명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깨시민"들('집토끼')외에, 항상 같은 편은 아니지만 결국 국민의힘이 싫어서 자기에게 협조하곤 하는 진보단체/시민들('동네토끼')의 지지가 점점 부족해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을 거거든.
요즘 민주당 지지율 상태 봤어?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져도 민주당의 지지율은 잘 오르지 않아. 문재인 정부 5년의 경험에서 오는 환멸감이 매우 크기 때문이겠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김건희 특검과 이재명에 대한 검찰 조사에 대해서 응답자 다수가 둘 다 필요하다고 답하고 있어. 민주당 편을 일관되게 드는 여론은 다수가 아닌거지. 또 이재명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필요한 수사'라고 보는 사람들이 '정치 탄압'이라고 보는 사람보다 10%쯤 많고, 마찬가지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보다 10% 정도 많아(링크). 민주당은 이 10%의 격차를 역전하기 위해, 집 나간 '동네토끼'들을 다시 불러모을 필요가 있는거지. 집토끼들한테만 먹히는 '민주주의'(라고 쓰고 '민주당'으로 읽는다) 수호 의제 말고, 진보 의제 소환해서 코스프레 한 번 할 때가 된거야. 지금부터 일단 '친노동' 이미지 슬슬 박아둬야, 정부가 내년 총선 전에 노동법 개악 같은 거 하려고 할 때 자기들이 윤석열 대항마로 진보층 지지를 가져갈 수 있지 않겠어? 뭐, 이번 노조법 개정건은 형후 적당한 수준에서 (특히 국민의힘이 세게 압박할 때 못이기는 척) 입법을 포기하거나 더 누더기로 만들면 나중에 중도층 산토끼들에게도 나름으로 체면을 세울 수 있을테고. 지금 상황은 다들 인식하다시피, 2016년 촛불 시위 때랑 너무 달라. 그 때는 진보좌파세력이 대중들과 함께 반정부시위를 주도하고, 민주당이 그 수혜를 입는 구조였지. 그렇지만 지금은 어때? 일반 시민수준에서 진보적인 사람들의 감정은, 중도층의 그것과 유사한 수준의 대안부재감처럼 보여. 최근 민주당 주변부 세력 일부와 한 두 개 사회단체(민중민주당, 노동자연대 등) 등이 몇 달 째 함께 주최하는 "이태원 참사 추모/김건희 특검/윤석열 퇴진" 촛불 집회의 양상만 봐도 이 점을 알 수 있어. 그 집회 규모가 일정 정도 이상 커지지 않고 있는데, 이건 진보적인 시민들 다수가 이 집회의 요구에 적극 동의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거지. 그들은 "윤석열 퇴진" 요구가 곧 현실적으로 "민주당 재집권"이라는 점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데, 그걸 원하지 않는 거거든. 문제는 진보진영의 시민사회단체나 활동가들이 진보적 시민들의 이런 대안부재감을 메워주는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거야. 이들도 민주당 정부에 대해서 비판적이지만, 많은 경우 말만 그렇고 행동은 그렇지가 못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드네 어쩌네 하면서도,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여전히 무슨 집회를 하거나 투쟁 계획을 세울 때면 곧잘 민주당(박주민 의원, 을지로위원회 등)을 찾아가서 상의하고 협조를 구하곤 하니까. 이건 소위 '상상력의 부재', 즉 합법성과 제도화에 길들여진 결과이기도 할텐데, 여하간 '입법'을 하려면 다수당이자 국민의힘보다 말이 통하는 민주당과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거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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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 : "한계 있는 성과" 같은 당연한 말은 그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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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과 정치를 바라볼 때,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결과에만 집착하다보면 그 결과보다 중요한 맥락을 놓치게 되기 쉽다고 생각해. 당장 이번 환노위안에 대해서도 그래. 이대로 그 안이 어찌어찌 국회를 통과되었다고 가정해보자구. 그렇다면, 사용자성 확대 같은 법조항은 현행법보다는 나은 부분이 있고, 그 조항 덕에 하청 노동자들 중 일부는 노조나 파업을 할 때 이익을 누릴 수도 있겠지? 그럼 소박하게 생각하면, 어찌됐든 100이 아니어도 0보다는 5가 많으니까, 5도 진보라고, '한계가 있는 성과'로 아쉽지만 계속 이렇게 조금씩 나아가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야. 그러나 식비에서 3만원을 아꼈어도, 난방비가 10만원 오른다면 이번 달 가계부가 적자를 면할 수 있는걸까? 우리가 민주당의 환노위안이 5는 되니까 그래도 어쨌든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민주당이 원하는대로 진보적 시민들이 진짜 진보정치세력이 아닌 민주당을 개혁의 주체로 여기게끔 용인하게 되는거지. 진보정치의 독립성과 존재감, 이런 것들이 운동의 발전과 사회의 구조적 변화라는 관점에서 따지면 환노위안으로 얻는 눈앞의 결과보다 사소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환노위 법안 통과 이후 노동운동과 진보좌파단체들이 해야할 일은 명확해. 환노위 안을 가차없이 비판하고, 민주당에게 노동자들의 현실을 당리당략을 위해 이용하는 짓을 중단하라고 요구해야 해. 우리는 시작부터 누더기인 이 법안을 거부한다고, 우리의 요구대로 다시 입법하길 원한다고 말해야지. 우리 입장이 대충 형식적으로 환노위안의 부족함을 지적하다가, 그래도 민주당에게 '이 안이라도 통과시키는지 지켜보겠다'는 식이 되어서는 절대 안 돼.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노동계가 앞장서서 민주당안을 지나치게 비판하면, 그게 윤석열 정부의 법안 거부권 행사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대. 세상에, 아직 본회의에 올라가지도 못했는데, 벌써부터 거부권 걱정을 하는거야? 이런 사고는 사실상 이 누더기안을 보고도 운동의 주도력과 상징성 모두를 민주당에게 넘기는 걸 허용하는 꼴일 뿐이야. 그리고 이건 결과와 과정 모두에서 활동가와 진보시민 모두의 사기를 떨어지게 만들거야.
여러 노동단체는 지금까지 노란봉투법이 시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해왔어(직장인 69% 지지, 링크). 아마 이 조사는 완전히 틀린 게 아닐거야. 민주당 같은 선거 표 계산이 빠른 정당이 일정 수준 이상의 '국민적 공감대'가 없는 법안이라면 대체 왜 지금같은 제스쳐를 취하겠어?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우리가 그런 노란봉투법에 공감하는 '국민'들에게, 민주당 대신 우리가 지금 여기 있다고, 우리와 함께 싸워나가자고 말해야 할 때가 아닐까? 진보좌파단체들이 민주당의 퍼포먼스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분명히 보여주면, 민주당은 정치적 이득이 없으니 중도층 에게 욕이라도 덜 먹으려고 더 빨리 이 법안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자기 본색을 드러낼거야. 그리고 그런 식으로 생겨난 정치적 공백이야말로 바로 진보세력이 다시 움직이고 조직을 강화할 터전이 되어 주겠지. 환노위까지 올라간 '그나마 이거라도 본회의로'의 '그나마'는 사라질지 몰라도, 노동운동의 존재감이 강화된다면 이건 좌절의 모먼트가 아니라 기회인거야. 그래, 기회는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거라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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