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9회 말 2아웃, 인생의 한국시리즈를 뛰고있는 우리에게

수습위원 정시은
  건빵레터 구독자 여러분, 붉고 노란 단풍이 일감호 주변을 낭만 있게 물들이는 11월입니다. 캠퍼스의 가을은 서정적이고 아름답기도 하지만 사실 대학생들에게는 일 년 중 가장 가혹하고 숨 가쁜 계절이기도 하죠. 2학기 시험, 팀플 과제들을 마무리하면 잠깐 미뤄뒀던 취업에 대한 중압감이 다시금 피어나게 되니까요. 이렇듯 여러 감정들이 섞여 마음에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이하게 됩니다.
모니터 구석, 조용히 켜진 초록색 사각형  
  그런데 이 가혹한 시험 기간, 도서관 열람실을 가만히 둘러보면 재밌고도 짠한 풍경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빽빽한 전공 서적과 노트북 화면 구석에 조용하게 켜져 있는 초록색 사각형 화면이 보입니다. 바로 프로야구 중계창이죠.
  이어폰을 낀 사람들은 한 손으로는 묵묵히 전공 서적의 텍스트에 형광펜을 칠하면서도 시선은 초조하게 중계창 하단의 스코어보드를 향해 있습니다. 9회 말 2아웃 상황에서 내가 응원하는 팀이 기적 같은 안타를 치거나 상대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는 순간, 도서관이라는 제약 때문에 차마 소리는 지르지 못합니다. 대신 입을 다문 채 주먹을 꽉 쥐며 내적 환호를 지르곤 하죠.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깊이 공감할 만한 익숙한 장면입니다.
피바다 티켓팅과 직관: 요즘 청년들의 과몰입 생존기
  요즘 대학생들에게 가을야구와 한국시리즈는 단순히 스포츠 한 경기를 관람하는 차원을 완전히 넘어섰습니다. 일종의 거대한 '문화적 현상'이자 일상의 지친 영혼을 달래는 '합법적 도파민 충전소'로 자리 잡았죠.
  한국시리즈 티켓팅 날이 되면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피바다 티켓팅 팁 공유합니다", "수강신청보다 10배는 어렵다"는 등의 글들이 게시판을 도배합니다. 몇 십만 명의 대기열을 뚫고 겨우 티켓 한 장을 거머쥐었을 때의 쾌감은 경쟁률 높은 인기 강의 수강신청을 성공했을 때보다 훨씬 더 짜릿하고 강렬합니다.
  시험이 끝난 주말 서둘러 가방을 메고 잠실이나 고척, 혹은 문학이나 수원, 대전, 광주, 대구, 부산, 창원의 야구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합니다. 당장 내일 제출해야 할 리포트나 취업 스펙 걱정은 잠시 가방 깊숙이 넣어두고 내가 응원하는 구단의 유니폼을 입고 응원타올을 챙깁니다. 그렇게 도착한 야구장은 현실의 중압감으로부터 잠시 탈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유쾌한 도피처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하필 야구를 좋아해서"
  하지만 야구팬의 삶이라는 게 언제나 핑크빛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야구는 기쁨보다는 아쉬움과 화병(?)을 더 많이 안겨주는 미운 오리 새끼 같기도 해요. 이길 줄 알았던 경기를 허무하게 역전패당하고 믿었던 에이스 투수가 난조를 보이며 결정적인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야수의 허망한 실책이 나올 때면 가슴이 답답해져 오죠.
  "내가 왜 내 돈 내고 시간 버려가며 이 스트레스를 사서 받고 있지?", "다시는 야구 안 본다"라며 절교 선언을 하듯 TV나 중계창을 끄고 돌아서지만 다음 날 저녁 6시 30분이 되면 어김없이 다시 스마트폰으로 경기 스코어를 확인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야구라는 스포츠에 과몰입하는 걸까요? 아마도 야구가 가진 그 특유의 '불확실성'과 '희망의 서사'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학업, 스펙, 취업 등 현실에서의 노력은 때로 정직한 결과를 보여주지 않아서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곤 합니다. 아무리 밤을 새워 공부해도 시험 문제가 비껴갈 수 있고 서류를 수십 군데 써내도 낙방의 고배를 마시기도 하죠.
  반면 야구는 9회 말 2아웃, 투 스트라이크 상황이라도 단 한 번의 스윙이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역전의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는 스포츠입니다. 공 하나에 향방이 갈리는 그 아슬아슬함 속에서 우리는 마운드와 타석에서 땀 흘리는 9명의 선수들에게 내 삶을 투영하고 대리 만족을 느끼게 되는 거죠.
우리의 인생이라는 9회 말 2아웃을 향해
  이제 곧 한국시리즈의 마지막 폭죽이 터지고 나면 길었던 프로야구의 한 시즌도 막을 내리게 됩니다. 내가 응원했던 팀이 가을의 최정상에 올라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도 있고 아쉽게 문턱에서 좌절하며 다음 해를 기약해야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결과가 어떠하든 간에 가을야구와 함께 태웠던 그 뜨거운 열정과 도파민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가슴속에 고스란히 남게 됩니다.
  경기장의 조명은 꺼지겠지만 이제 우리는 다시 각자의 마운드와 타석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2학기 남은 과제들, 다가오는 기말고사, 그리고 언젠가 마주해야 할 취업이라는 진짜 '인생의 한국시리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야구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듯 9회 말 2아웃 상황이라도 경기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삶의 스코어가 조금 뒤처져 있다고 해서 혹은 작은 실책으로 낙담하게 될지라도 포기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우리에게는 아직 판을 뒤집을 수 있는 타석의 기회에서 수많은 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으니까요.
  26시즌 프로야구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던 그 뜨거운 에너지와 꺾이지 않는 마음을 품고 학우 여러분의 남은 2학기라는 경기장으로 당당하게 걸어가 보시길 바랍니다. 건빵레터가 학우 여러분의 인생 9회 말 역전 만루홈런을 언제나 목놓아 응원하겠습니다!
  
건국대학교 「건대」교지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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