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부주의하게 걷다 어떤 소리엔가 걸음을 멈춥니다. 바스락. 낙엽이네요. 지난주 대만에서 펼쳐진 동아시아 국제음악학회(IMSEA)를 마치고 닷새 만에 돌아온 서울은 어느새 노랑, 빨강, 주황 잎으로 거리가 환해졌습니다. 그렇지만 겨울 기운이 코끝에 전해질 시기, 여전히 25도 안팎을 기웃거리는 뜨듯한 날씨는 낯설기만 합니다. 최근에는 국내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도 기후위기에 관한 언급이 종종 들립니다. 턱없이 늦은 감은 있지만, 음악가들의 작은 움직임이 반가울 따름입니다.

한상명

인공지능 AI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음성인식기술이 적용된 스마트 스피커나 음성비서에서부터 목적지까지 자율주행하는 자동차, 언어 학습 보조와 의료 진단 및 치료도 AI를 기반으로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합니다. 이 논문은 작곡가 이돈응이 직접 개발한 드로봇(dRobot)과 로봇음악에 대한 연구의 결과물입니다. AI를 비롯한 첨단기술이 판치는 시대에 로봇이 연주하는 음악? 사실은 그렇게까지 새롭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이 논문의 필자는 작곡가 이돈응이 단지 첨단의 기술을 활용한 로봇 개발에만 매달린 게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1980년대부터 약 40년간 이돈응이 추구해 온 음악세계의 미학적 모토인 ‘인간적인 전자음악’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해석하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논문은 이돈응의 작품세계 전체를 아우르고, 18세기부터 현재까지 로봇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이후 드로봇의 제작 과정과 예술적 원리, 대표작을 상세히 짚어봅니다. 이 과정에서 대상의 가치를 사색하고 관조하는 전통적 미학을 넘어 대상을 다루는 ‘사용’과 ‘행위’를 중시하는 기술미학적 경험에 주목하고, 기술을 주체적으로 사용하는 작곡가 이돈응의 태도와 고도의 수공예적 테크네로 구현되는 완성도 있는 결과물로서 드로봇으로 구현되는 그의 음악작품의 의의에 대해 논의합니다. 로봇으로 연주되는 음악, 로봇을 통해 만들어내는 음악 작품의 세계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유튜브에서 이돈응의 dRobot을 검색한 다음 이 논문을 정독하면서 감상하시는 건 어떨까요?

💿 이돈응 - 목관5중주와 로봇 드러머를 위한 연습곡 3번 ‘잔치’

Lottie Anstee, Daniel Müllensiefen, Peter Harrison

💿 패닉 - 왼손잡이

♬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 하지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

‘왼손잡이가 똑똑하다’는 말 들어 보셨나요? 그냥 단순한 ‘썰’일 수도 있지만 좌뇌가 어떻고 우뇌는 또 어쩌니 하며 나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는 것을 보면 누군가에게는 간단히 넘길 수 없는 문제인가 봅니다. 예컨대 이를 신경과학적으로 밝히려는 연구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많은 신경과학 연구가 실험에 앞서 피험자가 주로 사용하는 손을 조사합니다. 연구 결과를 해석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왼손잡이가 정말 똑똑한가보다 더 궁금한 건 사실 왼손잡이가 더 ‘음악적’인가일 겁니다. 관련 연구도 제법 많아요. 이번에 새로 발표된 연구는 기존 연구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총 2,902명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실험의 결과를 요약하면 (1) 왼손잡이/오른손잡이와 음악성의 상관관계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2) 오른손잡이가 더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였다는 것. 이게 다 무슨 뜻인지 궁금한 독자는 논문에서 확인해 보세요.

Editorial

악보는 연주와 분석 간의 역동적인 교류의 장이 될 수도, 재료와 의미에 대한 대화의 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흔한 대화가 그렇듯 수수께끼나 의견 불일치는 때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생시키거나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내기도 하죠. 문제가 가능성으로 역전되는 순간입니다. 이 논문의 저자는 루시아 드루고제프스키(Lucia Dlugoszewski)의 악보를 탐구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평생 급진적인 소리 형태와 기보법을 모색했던 드루고제프스키의 작품 자체를 분석하기보다는, 저자는 오히려 그의 음악 레퍼토리를 연주하고 분석하는 데서 발생하는 대화에 주목하고요. 그의 혁신적인 악보를 해석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과 문제들, 잠재적 해결책, 새로운 연주, 그리고 평가, 또 질문들이 지속적으로 순환하면서 연주와 분석 간의 새로운 통합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실제 사례 연구를 통해 연주와 분석 간의 대화, 협업으로 새로운 의미와 가능성이 발생하는 지점을 짚어냅니다. 음악 연주와 분석에서 발생하는 문제, 고민, 선택, 그리고 실행은 서로에게 어떠한 정보를 제공할까요? 연주와 분석의 교차점에서 어떠한 가능성이 새롭게 열릴까요? 그 여정이 궁금하다면 이 글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루시아 드루고제프스키 © Daniel Kramer

• 발표자 | 김영선 교수, 김태희 작곡가
• 일시 | 2023년 11월 13일 (월) 오후 5시
• 장소 | 한양대학교 제2음악관 1층 합창실 (변동될 수 있음)
• 문의 | hymrc@hanyang.ac.kr
• 사전등록 (등록비 무료)
•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