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안녕하세요.

복 있는 사람 편집자 K입니다.

요즘 저는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시간』이 많은 분에게 가닿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러 곳에서 이 책으로 누리는 유익에 대해 전해 듣고 있습니다. 그중 한 독자님의 소감을 공유해 드립니다.

저자는 말의 뿌리를 찾아 히브리어가 사용되던 고대 이스라엘로의 먼 여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영어, 독어, 라틴어, 한자, 한글 등 다양한 언어에서 어떤 단어의 용례를 살피고,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살펴서 자신만의 번역을 제공해 준다. 그것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무지를 넘어서게 한다.

_이삭 독자님

이 책을 독자님께 소개하면서 제게도 여러 변화가 있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성경을 읽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설교도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때로 말씀과 나 사이에 높은 벽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높다랗게 느껴지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3장, ‘언어 표현에 나타난 히브리적 사고’의 한 대목을 소개해 드립니다. 독자님 역시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또한 제가 경험한 세계, 히브리인들의 생동감 넘치는 세계를 경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새해가 되면 너도나도 서로에게 복(福)을 빌어 줍니다. 복을 많이 받으라는 말은 흔하게 쓰이는 덕담이지요. 축복의 말이 덕담처럼 쓰이는 것은 우리가 복을 ‘향유’하고 ‘누리는’ 어떤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은 신앙인에게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성경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구약성경 원문에 등장하는 ‘복’의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복이 되라고 말씀하신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 성경이 말하는 복의 진정한 의미를 찬찬히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창세기 12:2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가족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명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복이 되어라[흐예 베라카(הְיֵה בְּרָָכָה)].

이 문장은 명령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너는 복이 되어라” 하고 명령하십니다. ‘복’을 주거나 받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렇게 되어야 하는 존재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이 되다’라는 표현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표현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의 삶을 주목해서 들여다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 고향을 떠나온 아브라함은 풍족한 재물로 부귀를 누리며 가나안 땅에서 평안하게 살았을까요?

성경은 그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고 증언합니다.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마주한 것은 기근이었습니다(창 12:10). 복이 되라고 명한 사람에게 오히려 고난이 닥친 상황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거짓말을 하신 것일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역시 복을 ‘받거나 주는’ 무언가가 아닌 ‘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길 때 생기는 간극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입니다.

’복’에 대한 여러 언어의 이해

그리스어에서 ‘복’을 일컫는 단어는 ‘εὐλογία’(유로기아)입니다. ‘εὐ’(좋은)과 ‘λογία’(말하다)의 합성어로 ‘상대에게 좋은 말을 하다’라는 뜻이지요. 현대 영어의 ‘eulogy’(고인에 대한 추모사)가 바로 이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복’에 해당하는 라틴어 ‘benedicere’(베네디케레) 역시 ‘bene’(좋은)와 ‘dicere’(말하다)의 합성어로 그 뜻은 그리스어와 동일합니다. 예배의 ‘축도’를 뜻하는 ‘benediction’은 바로 이 단어에서 온 것입니다.

이와 달리 ‘복’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bless’는 피(blood)와 연관된 단어입니다. 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복이란 사람 혹은 사물에 동물의 피를 뿌려 재앙이나 악귀를 막는 것으로 여겨졌는데, 이는 고대 게르만족의 풍습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한자 ‘복 복’(福)은 제사를 잘 드려 하늘의 복을 받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서경(書經)의 홍범편에 나오는 복의 내용 중에는 오래 살고 부귀를 누리는 것,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것, 너그럽고 후덕한 심성과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편안한 임종을 맞는 것이 포함됩니다.

이에 따라 복에 대한 고대인들의 개념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덕담같이 좋은 말을 해주거나 듣는 것, 재앙 등 나쁜 것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 그리고 장수와 부귀, 건강을 누리는 것.

바라크(ברך)의 의미

그렇다면 복을 뜻하는 히브리어 ‘바라크’(ברך)는 이 중에 어떤 뜻과 가장 가까울까요? 정답부터 말씀드리면 바라크는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바라크의 기본적인 뜻은 ‘무릎을 꿇다’입니다. 시편 95:6의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에서 “무릎을 꿇자”에 해당하는 말이 바로 바라크입니다.

히브리어의 ‘복’은 ‘무릎을 꿇다’라는 바라크의 기본적인 뜻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복을 주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적 표현은 ‘상대방을 무릎 꿇은 상태로 만들다’라는 뜻입니다. 복을 받기 위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장면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히브리어의 복이 다른 언어문화의 복과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축복을 하는 사람의 행위(‘좋은 말을 하다’ 혹은 ‘피를 뿌리다’)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복을 받는 사람의 자세를 묘사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흥미롭게도 그 복을 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우리의 자세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실까 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자세로’ 있는가가 관건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히브리어의 바라크를 한자로 옮기자면, ‘복 복’(福)보다는 ‘엎드릴 복’(伏)에 더 가깝습니다.

둘째, 히브리어에서 정의하는 ‘복’에는 우리가 복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복의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덕담이나 재물, 잘 먹고 잘 사는 것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이러한 ‘복’의 의미는 세상에서 말하는 복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엎드린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겸손히 그분 앞에 엎드리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 자체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한없는 복인 것입니다.

“복이 되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가나안으로 간 아브라함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기근으로 먹고 살기 힘들어져 남의 나라에 가서 난민으로 얹혀살아야만 했습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도 여러 번 처했고, 가족 내의 갈등으로 난감한 처지에 놓인 적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어렵게 낳은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도 당하게 됩니다. 그 모든 과정은 아브라함에게는 무릎을 꿇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이 시간들은 그가 ‘복이 되는’,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믿음의 선조로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복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