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와아아, 드디어 뵈어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조은(이하 은) 외주 편집과 번역을 하고 있는 조은입니다. 외주 편집은 2008년부터 하고 있는 듯한데요. 중간에 몇 년 쉬다가 2019년부터 유유 책을 만드는 데 손을 보태고 있어요.
수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저는 사실 편집자의 업무 중에서 교정 보는 일을 가장 좋아해요. 이 일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했고요, 그 편이... 마음이 좀 편하더라고요.
은 맞아요. (ㅎㅎ)
수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 것보다 이미 있는 것을 가지고 이리저리 만져 보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편집자의 성향에 따라 기획을 공격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하고, 그 업무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요. 근데 저는 전자고, 느긋하게 마음 놓고 교정을 볼 수 없는 상황이라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꼭 한번 뵙고 싶기도 했고요. 편집자님도 전자신가요?
은 네, 저는 교정 보는 일‘만’ 좋아해서 외주 편집자가 되었어요!
원래는 일반 회사에 다녔는데 재미도 없고 보람도 없고.. 정말 제 인생의 암흑기였어요. 그래서 새로운 살길을 찾아 기술을 배우려는데, 운 좋게 편집디자인이 눈에 띄어 뒤늦게 출판계에 들어왔어요.(책을 완전 좋아하는 사람인데도 ‘출판’이라는 직종은 이때 처음 알았어요) 그러다 교정교열이 더 재미나 보여서 스스로 편집자로 전향했고요. 제가 원체 책벌레고, 동화책을 읽다가도 논리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못 참는 경향이 있었고, 국어를 유난히 좋아하고 잘하기도 했고, 인문학을 전공했고..(창의력도 부족하고 덜렁이에 기계치인데 디자이너는 아무래도 컴퓨터나 프로그램 자체도 잘 알아야 하니까 늘 조마조마했어요) 그런데, 예상대로 교정교열은 적성에 맞고 재미났지만 나머지 편집 일은 아니더라고요. (ㅠㅠ) 보도자료, 카피, 표지글, 디자인/제작 의뢰 등등 완성된 원고를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일이요.
수 헉, 공감...
은 또 대부분 프리랜서분들처럼 저도 조직생활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교정교열만, 그것도 집에서 하는 ‘외주 편집’이라는 일이 있다는 걸 알고 외주자가 되어야겠다 마음먹었죠. 물론 통 편집을 하는 외주 편집자도 있지만 저는 그런 일은 마다하고 쭉 교정교열 일만 하고 있습니다.
수 작업 일정을 어떻게 관리하시는지 궁금해요. 보통 외주 편집 일을 하시는 분들은 한번에 여러 일을 병행하시던데 업무 루틴을 따로 정해 두셨나요? 때에 따라 무리를 하실 때도 있으시지요? 너무 잘 아시겠지만 작업 전에 이야기 나눈 대로 작업이 진행되지 않고 지연되거나 혹은 아주 서두르는 경우도 많을 것 같은데 이럴 땐 어찌 대처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은 저는 지금 번역과 편집을 병행하고 있는데요, 편집은 출판사에서 요구하는 대로 일정을 잡아요. 익숙한 일이기도 하고, 1교와 2교 사이의 텀도 있고, 책이 재미나면 그닥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고, 서두르는 경우보다는 지연되는 경우가 많아서 별 무리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각각 마감일에 맞춰 번역과 편집 일의 하루 분량을 정해요.
루틴은.. 어찌 보면 제가 루틴을 싫어해서 프리랜서가 된 거라 루틴이 없어요. 아기 키울 때는 빈 시간에 일해야 하니 루틴이고 뭐고 없었고요. 지금은 아이가 커서 손이 많이 안 가고 아이가 저랑 안 놀아줘서 시간이 확 많아졌는데, 아무튼 저는 아이와 고양이 밥 차려주는 것 이외의 루틴은 원치 않아요..
일은 아침이건 점심이건 밤이건 아무 때나 하면서 분량만 잘 채우는데요, 일하는 시간은 그날 날씨와 기분에 많이 좌우되어요. 일이 잘 풀릴 땐 다음 날 더 놀 수 있게 좀더 많이 하고, 평일보다 주말에 더 많이 해놔요. 주말에는 늦잠 자도 되고 밥도 남편이 차리니까 꼭 해야 하는 루틴이 사라져 마음이 편해서 일이 더 잘되더라고요.
저는 루틴은 싫어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들(편집, 번역, 자전거 타기, 걷기, 고양이 돌보기, 책 읽기..)로 느슨하게 채워진 단순한 일상을 무척 좋아해요. 대략 이렇게 지내면서 일이 바쁠 때는 편집/번역하는 시간이 늘고, 한가할 때는 다른 시간이 늘고.. 이 정도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교정이나 번역은 일 자체가 늘 새롭잖아요. 그래서 지루하지 않아요.
수 외주 작업을 하며 느끼시는 고충도 궁금합니다. 회사마다 다른 교정 규칙이랄지 혹은 편집자마다 요구하는 것들이 다를 것 같아요. 또 선호하는 혹은 꺼리는 작업 스타일이 있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은 외주 편집 일은 유유 외에 거래처가 딱히 없고요. 최근에 다른 곳 일이 하나 들어오긴 했는데 별다른 요구 없이 저에게 일임하시더라고요. 예전에 여러 곳하고 일할 때도 서로 다른 교정 규칙은 띄어쓰기나 꺽쇠 정도라 고충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고요. 선호하고 꺼리는 작업 스타일이 있다기보다는, 내용이 너무 좋지 않은 책을 만날 때 괴로워요. 그런 책을 여러 번 정독해야 하니까요.
일에서 오는 고충보다는 불안정성에서 오는 고충이 있는데, 이건 프리랜서의 숙명이니... 그렇지만 최저임금도, 물가도 계속 오르는데 교정이나 번역 단가는 대부분 업체에서 근 20년째 제자리인 건 너무하다 싶네요.
교정 일 자체는 더없이 만족스러워요. 책 편집 과정에서 교정교열만큼은, 새로운 걸 만들어내느라 저를 쥐어짜내고 소진시키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채워 주는 일 같아요. 회의나 미팅이나 이동이 필요 없는 일이라 딱 그 일 자체에만 에너지를 집중해서 쓸 수 있고요. 계속 새로운 책을 만나게 되고, 특히 독자로서는 접하지 않을 책을 만날 기회가 아주 많아지지요. 제가 아주 심한 내향인에, 시공간의 구속을 못 견디고, 똑같은 일 반복하는 걸 힘들어하는데 교정교열은 저한테는 딱 맞는 일 같아요.
수 저는 외주를 내보낼 때 가능한 선에서 수월하게 작업하시게끔 도움을 드리고 싶어 하는데, 뾰족한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물론 일이긴 하지만 너무 괴로운 작업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들어서요. 그래서 원고 관련해 이런저런 사족을 달게 되는 것 같아요. 편집자와의 협업에서 원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출판사(혹은 출판계 전반)에도 좋고 협업하는 편집자 개인에게도 좋습니다.
은 원고를 제대로 살펴보고 외주자에게 특징이나 문제점, 작업 지침을 분명히 알려주면 좋겠고요. 내부에서 원고 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외주를 내보내면 좋겠어요.
저는 책만 마음에 들면 내용이 어렵거나 거친 작업도 마다하지 않는데, 원고를 보다 말고 돌려보낸 적이 딱 두 번 있어요. 그곳에서 그전부터 문제적 원고 작업을 많이 해 오긴 했는데, 점점 심한 원고를 아무 설명도 없이 띡띡 던져 줄 뿐 아니라 분량까지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한 번 돌려보내고, 그다음에 또 한 번 돌려보냈더니 일이 끊기데요. 그리고 그 책 두 권은 지금껏 안 나왔어요. 아무도 감당 못 할 악성 원고를 무작정 외주자에게 떠넘기려 했던 거죠.
또 외주자 모집 공고를 보면, 작업비용을 외주자에게 묻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이상해요. 작업비는 의뢰하는 측에서 제시해야 그걸 보고 지원을 하든 말든 하지 않을까요? 또 일을 맡기면서 비용 문제나 지급일을 언급하지 않고 꼭 제가 물어보게 만드는 경우도 못마땅하고요.
수 교정 작업을 수락하는 원고의 기준이 따로 있으셔요? 이런 분야는 자신이 있다든지 혹은 이런 분야는 자신이 없으시다든지 아니면 선호하는 키워드가 있으신지도 궁금해요.
은 앞서 말한 지경의 원고, 저런 태도의 업체만 아니면 웬만하면 다 합니다. 분야는 철학/IT 쪽이 자신 없고 경제경영 쪽이 낯설긴 한데, 너무 전문적인 내용이 아니고 저 같은 평범한 수준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양서라면 분야는 가리지 않아요. 편집하면서 새로운 내용을 배우고 알아가는 걸 좋아하거든요.
하고 싶은 책은 대만/중국 책인데 거의 안 들어와서 아쉽고요. 동물 책도 좋아하는데 역시 못 해 봤어요. 아이 키우는 엄마이고 방송대에서 청소년교육학을 공부하고 나니 교육/심리 분야에도 흥미가 가고요.
또 유유에서 자기계발서 검토를 하면서 그쪽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독자로서는 전혀 안 읽던 분야인데(싫어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분야를 읽기에도 바빴기 때문에), 어리고 젊을 때 괜찮은 자기계발서를 읽었다면 좀더 긍정적이 되고, 현실 감각도 생기고, 사회생활도 조금은 더 잘했을 것 같더라고요.
수 교정 작업을 하실 때 원고를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이 궁금해요. 온도, 정도로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담당 편집자보다는 원고를 한 걸음 떨어져서 보게 되시는 건데, 그때마다 어느 정도까지 개입해야 할지 고민하시는지 궁금해요. 솔직히 ‘내가 굳이...?’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으신가요(ㅎㅎ)
은 음.. 저는 미적지근한 온도로 원고를 보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제 눈에 보이는 만큼,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개입하는 편이에요. 이 부분은 빼자, 보충하자, 구성을 바꾸자 등등... 다만 제 판단은 결정이 아니라 의견이니 선택은 담당 편집자에게 맡기는 거죠. 외주자여서 가장 부담 없는 점이 책임편집자가 따로 있다는 것!
저도 반대로 편집자는 외주자에게 어느 선까지 작업해 주기를 기대하시는지 궁금해요.
수 음,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용어 통일 같은 것으로 일단 원고를 잘 정돈해 주셨으면 해요. 그 정도가 요청할 만한 선 같지만... 사실 저는 원고를 읽은 소감이나 허심탄회한 의견을 듣고 싶을 때가 있어요. 어찌 읽으셨는지, 재미는 있었는지... 회사 밖 첫 번째 독자시니까요.
수 (유유와의 작업이 아니더라도) 너무 힘들었다든지, 아쉬움이 많이 남으신다든지 혹은 보람 있었다 싶었던 작업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소설 『길버트 그레이프』예요. 너무 편했던 작업이라서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소설을 새로 번역해서 복간했는데, 번역이 좋으면 편집이 이렇게 쉽구나를 느꼈고(문장은 손댈 필요가 없고, 정말 간단한 교정만 보고 역자님 실수 정도만 체크하면 되는?), 그냥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걸 넘어서 감탄이 나오는... 일이 아니라 행복한 독서를 하는 느낌이었달까요. 저도 번역을 한다면 이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제가 역자님께 어떻게 하면 번역을 이렇게 잘할 수 있느냐고 여쭤봤더니 ‘마감을 반드시 지킨다’는 소박하고 겸손한 대답만 해 주셨는데요. 단순히 마감 ‘날짜’만 지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고, 그때까지 모든 걸 갈아넣어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저도 늘 이렇게 일하려고 해요.
또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 쓴 책 『로드스쿨러』도 기억에 남고요. 저는 청소년 시절에 학교 수업시간을 감옥처럼 생각하면서도 아무것도 안 한 채 그냥 허송세월했는데, 용기 있고 똘똘한 아이들이 학교를 박차고 나와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감탄했지요.
유유 책들 가운데서는 『이야기하는 법』이 너무 재밌었고 『작은 태양』이라는 인생 책을 만나게 해 주어서 고마운 책이에요. 그리고 설흔 작가님의 책도 기억에 남아요. 정말 무관심하고 좋아하지도 않던 조선 시대 양반들 글에 관심과 호감을 갖게 해 주었지요. 또 수 편집자님과 함께한 『선물』도 참 좋았어요. 굉장히 묵직하고 어려워서 여느 작업보다 몇 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썼지만 그만큼 얻은 게 많았고, 또 제가 편하게 작업할 수 있게 많이 배려하는 편집자님의 마음, 고충을 나누려는 마음이 팍팍 느껴져서 기분 좋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수 번역 작업도 병행하고 계시고, 외서 소개도 꾸준히 하고 계셔요. 이 일이 외주 편집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은 번역할 때는 다른 편집자분들은 어떤 식으로 교정교열을 하는지, 어떤 태도로 역자를 대하는지 보게 되니 편집자로서 배우는 점, 본받게 되는 부분이 아주 많아요. 또 편집만 할 때는 몰랐던 번역자의 고충을 체감하게 되니 번역 원고를 볼 때도 좀 더 부드러운 마음이 드는 것 같고요.
반대로 다른 사람이 쓰거나 옮긴 글을 다듬는 일은 번역에 당연히 큰 도움이 되고요.
저는 처음부터 완성에 가까운 번역글을 쓰는 게 아니라, 일단 해석만 해놓고 나서 거친 원고를 교정보듯 다듬고 또 다듬어가는 스타일이거든요. 또 편집하면서 책 속의 책이나 참고 문헌을 통해, 또 관련 도서를 읽으면서 많은 책을 접하는데 그러다 궁금한 외서나 작가를 만나 번역 기획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기획한 책이 많진 않지만, 제가 편집 말고 번역 기획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1) 편집 일이 똑 끊겨서 2) 좋은 외서를 만났을 때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이 번역뿐이라서였어요.
수 맞아요, 선배님 1인출판 하셨었다고 들어서 놀랐어요.
은 오래 전인데요, 1인출판은 정말 막무가내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때 첫 책을 직접 번역했는데, 저는 편집 일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그때는 번역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번역비를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때 『사하라 이야기』 반응이 상당히 좋아서 번역 의뢰가 들어오기도 했는데, 여력도 없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실력도 부족해서 고사하고 편집만 했지요.
『책으로 비즈니스』를 번역하신 책덕 김민희님이 이 책을 보고 같은 방식으로 1인출판을 시작하셨다고 해요. 이 분은 출판을 통해 본인 영역을 확장하고 계신 모범적인 케이스인데, 저는 막상 1인출판을 하니까 또 교정교열 이외의 모든 일(디자인, 영업, 제작 관리, 세무 등등)이 너무나 피곤한 거예요. 무엇보다도 책을 팔아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상당했고요. 그래서 오히려 외주 편집만으로 영역을 축소했달까요? 성장이나 확장에는 관심 없고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익숙한 일만 하고 살자 주의? 저는 그랬어요.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일이 줄다가 똑 끊기고 말았다는... 그렇게 한 몇 년 방구석에서 놀면서 이제 출판 쪽 일은 접고 딴 일을 찾아야 하나 상심+고민하고 있을 때, 유유와 일하게 된 거랍니다. 다시 일을 하면서 감도 찾고 실력도 늘고, 그러다 보니 이제 번역도 자신 있게 하게 됐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