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열 번째 흄세레터
며칠 전 할머니를 만나 증조할머니의 안부를 물었어요. 할머니는 잠시 멈칫하더니  "우리 엄마 안부 묻는 건 너밖에 없다"라며, 신나서 증조할머니의 근황을 알려주셨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는 "묻기도 전에 다 얘기하면서..."라고 혼잣말했고요. 참 별것 아니지만, 제게는 만개한 벚꽃만큼이나 흐뭇한 장면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주 어떻게 보내셨나요? 꽃구경은 실컷 하셨는지, 어떤 이야기를 읽고, 어떤 대화가 기억에 남았는지 궁금합니다. 살짝(?) 일방적인 이메일이지만, 메일 하단에 있는 피드백 버튼을 이용해 여러분의 이야기도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어느덧 10번째 레터입니다. 흄세레터 10호에서는 《초대받지 못한 자》 미리보기와 함께 보면 좋을 콘텐츠를 준비했어요. 
《초대받지 못한 자》 미리보기 1

밤은 따뜻하고 향기로웠다. 높이 뜬 반달 아래 바다는 마법에 걸린 듯했다. 맥스와 나는 케리 부부와 함께 쌍갈랫길까지 걸어갔다가 헤더 들판을 가로질러 절벽가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면서 유럽 전역에 부는 복고풍과 그것이 예술과 문학에 미칠 영향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것 때문에 전체가 부분에 예속되고 있어.” 맥스가 신랄하게 말했다. “이젠 아무도 생명이나 자연을 찬양하지 않아. 조악하고 당파적인 신조나 찬양하지. 그 자체를 위해 뭔가 하는 건 곧 아이들이나 누리는 사치가 될 것 같아. 아니면 자네나 나처럼 별종이나 누리겠지.” 맥스는 미소를 지었다.

맥스는 너그러웠다. 그는 상당한 업적을 이룬 예술가였다. 나는 이름도 제대로 알리지 못한 기자였는데. 그는 내 생각을 읽었다.

“놀라지 않을 거야.” 맥스가 말했다. “이곳이 자네와 자네 작품을 바꿔준다면 말이지. 이곳이 자네에게 창의적인 작업을 하게 만들지도 모르잖아. 흥미롭군. 이런 변화를 맞이하다니. 기쁘지 않나?”

“굉장히 기쁘지.”

“저 둘이 엉망을 만들고 있는데, 그 밖에 다른 건 만들지 못할 것 같군.” 맥스가 진지하게 말했다.

“메이휴는 개새끼야.”

“그렇지.”

로렛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에게 같은 말이 떠올랐을 것이다.

나는 절벽 가장자리에 서서 돌 하나를 던졌다. 풍덩 소리가 들렸다. 내게서 로렛이 영영 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맥스가 죽은 나무 옆에 서 있었다. “이거 재미있군.”

“여러모로 재미있어.” 나는 그곳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해주었다. 맥스는 메러디스라는 이름을 어렴풋이 기억했다.

“기억날 거야. 불명예스러운 그림이 있었던 것 같아.”

“이곳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망나니였던 것 같고, 이상한 건 그 사람이 결혼한 여자는 성자 취급을 받고 있어.”

우리는 집으로 걸어갔다.

“결혼은 놀라운 일이 될 수도 있지.” 맥스가 말을 멈췄다. 그는 물고 있던 파이프를 손에 들더니 벽에 대고 털며 씩 웃었다.

“내 걱정을 했지, 로더릭? 그래서 말해주고 싶어. 주디스는 완벽해. 인생은 근사해질 수 있어.”(104∼105쪽) 

흄’s pick

주인공이 자신의 친구와 함께 신세를 한탄하는(더불어 전 애인의 현 남친에 대한 욕도) 장면입니다... 가끔은 이렇게 드러내놓고 이야기했을 때 뚜렷해지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인생은 근사해질 수 있어” 같은 막연하지만 꼭 필요한 낙관도 그렇고요.😀

《초대받지 못한 자》 미리보기 2 (스포주의⚠️)
⚠️해당 미리보기는 책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를 피하고 싶다면, 영화 포스터가 있는 곳까지 스크롤을 쭉쭉 내려주세요!
옷을 입는 동안 스텔라와 패멀라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번 믿을 수 없었다. 빗물에 씻겨 반짝이는 세상을 내다봤다. 바람에 흩어진 구름 사이로 햇볕이 내리쬐었다. 창문을 열었다. 히스 향기와 종달새 노랫소리가 섞인 공기가 들어왔다. 스텔라를 구한 나무가 가지를 흔들었다. 상냥한 나무였다. 이곳에서 즐거운 삶의 시작과 이전에 도사리고 있었던 검은 그림자, 너무 반짝여 아직은 제대로 볼 수 없는 새로운 희망에 대해 생각했다.

잠시 후 패멀라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몸은 좀 괜찮아, 오빠? 스텔라는 목욕했어. 오빠는? 내 방 침대에 제대로 눕혔어. 병원에 전화 좀 해줄래? 할아버지에게 갈 생각이 아니라면 스텔라는 종일 누워 있는 편이 낫겠어. 정말 많이 지친 것 같아.”

“스텔라가 어젯밤에 뭘 했는지 알아?”

“오빠를 찾아서 불꽃 사이를 한걸음에 뛰어넘었지! 아, 오빠 때문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나는 아기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했다. 패멀라는 내 옆에 서서 밖을 내다봤다.

“그럼 스텔라가 어머니를 보냈구나. 이젠 유령을 사랑할 필요가 없어서.” 패멀라가 중얼거렸다.

“그래, 스텔라는 이제 유령을 사랑할 필요가 없어.”

“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내가 물었다.

“그렇고말고. 몇 년 만에 이렇게 행복하긴 처음이야. 나도 목욕할래.”

전화하러 내려가면서 자연이 노인에게 잔인하게 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중령은 이 행복에 함께할 수 없었다. 그는 명예롭고 충직하고 헌신적인 삶을 살았는데, 그의 죽음을 오직 상실로만 여길 사람이 누가 있을까? 메리가 짜놓은 검은 거미줄이 결국 그를 희생자로 만들었다. 그가 불쌍했다. 하지만 자연과 생명은 이제 나와 스텔라의 편이었다. (467~469쪽)

s pick

기나긴 이야기를 지나 마침내 세 사람이 평온한 순간을 맞는데 덩달아 벅차올랐습니다. 게다가 "너무 반짝여 아직은 제대로 볼 수 없는 새로운 희망"이라니요. 올봄에는 우리 모두 "유령을 사랑할 필요가 없"기를 바랍니다.

👀 편집자 흄&세가 추천하는 함께 보면 더 좋을 콘텐츠 🙌

오늘은 소설 원작의 영화 두 편을 가져왔고요, 어두운 무드에서 벗어나게 도와줄 전시회도 하나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 그래도 오늘은 영화나 전시보다는 꽃구경이 우선인 거 아시죠? 🌸 

초대받지 못한 자The Uninvited (1944)
도러시 매카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예요. 우리나라에서는 1946년에 <유령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었다고 합니다. 《초대받지 못한 자》를 재밌게 읽은 분들 혹은 흑백 고전영화 특유의 감성을 맛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주의※ 로더릭 역을 맡은 배우의 외모가 책을 읽으며 상상한 것과 상당히 다를 수 있음)
레베카Rebecca(1940)
영국 여성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가 쓴 동명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주인공은 결혼 후 남편 소유의 저택인 '맨덜리'로 향합니다. 하지만 그곳엔 남편의 사별한 첫 아내 '레베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죠. 집사인 '댄버스 부인'은 그녀를 안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요. 《초대받지 못한 자》처럼 엄청난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최근에 리메이크되기도 했는데, 히치콕 감독 버전을 추천드려요.
테레사 프레이타스 사진전 📸
포르투갈의 여성 사진작가 '테레사 프레이타스'의 아름답고, 따뜻하고, 포근한 사진들을 모아두었어요. 관람보다는 인증샷을 찍기 위해 가는 전시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파스텔톤의 작품을 보다보니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테레사는 이런 말을 남겼대요.
"당신이 목소리를 찾았다고 생각한 후에도, 당신의 목소리를 찾는 것을 멈추지 마세요."
장소는 더현대서울 ALT.1이고, 전시 기간은 4월 24일까지입니다(얼마 안 남았어요!).
4개월마다 만나는
하나의 테마, 다섯 편의 클래식

001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 박아람 옮김

002색 여인

엘리자베스 개스켈 | 이리나 옮김

003 석류의 씨

이디스 워튼 | 송은주 옮김

004 사악한 목소리

버넌 리 | 김선형 옮김

005 초대받지 못한 자

도러시 매카들 | 이나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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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추첨을 통해 스타벅스 아메리카노(10명),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권(5명)을 드립니다.
흄세레터 10호 이벤트 당첨자는 4월 15일 발행되는 흄세레터 11호에서 발표합니다.

 지난 이벤트 당첨자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1명)
박*영(2767)
스타벅스 아메리카노(2명)
 이*아(9000), 황*연(4534)
선물은 레터가 발송되는 금요일에 문자와 택배로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흄세(휴머니스트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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