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 와이드 셧 #킬링 디어 #로스트 인 더스트 다정한 구독자 님께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오징어 게임이 연일 화제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요즘 오징어 게임 없이는 대화가 어려운 것 같아요. 스포일러를 당하지 않으려면 하루라도 빨리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벌써 이런저런 패러디와 복선 찾기, 다음 시즌 예상하기 같은 관련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까요. 저는 오징어 게임이 "어디서 한 번은 본 듯 하지만 막상 찾으려면 똑같은 건 없는" 클리셰를 영리하게 활용한 드라마로 느껴졌어요. 이번 금요알람에서는 오징어 게임 없는 오징어 게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배틀로얄'이나 '신이 말하는 대로'처럼 오징어 게임을 이야기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회자되는 서바이벌 물을 제외하고 드라마를 보면서 느꼈던 기묘한 기시감의 근원을 찾아 보았어요. 아이즈 와이드 셧 (1999) 하나, 가면 속에 신분을 숨긴다. 오징어 게임에서 게임 진행 요원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기억하기 쉽게 단순한 디자인이 드라마가 끝나고 난 뒤에도 제법 길게 잔상으로 남더라고요. 그들은 똑같이 붉은 점프 수트를 입고 똑같은 모양의 가면을 씁니다. 자신의 역할에 따라 얼굴에 그려진 도형의 모양이 동그라미, 세모, 네모로 다를 뿐이지요. 개인을 구별할 수 있는 특징 모두를 깨끗이 지워 개성을 거세한 대신 익명성이라는 자유를 입고 그들은 오징어 게임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운영하지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에도 가면이 등장합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가면은 좀 더 기괴하고 화려한데요, 그도 그럴 것이 가면을 쓰는 사람들이 굉장한 부자입니다. 하지만 가면으로 신분을 숨기고 비밀스러운 장소에 모이는 건 같아요. 주인공 빌 하퍼드(톰 크루즈 분)가 친구로부터 부자들만의 비밀 섹스 파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몰래 찾아간 곳에서 수많은 가면과 맞닥뜨리게 되지요. 큐브릭 감독은 가면 뒤에 숨어 끝없이 욕망하는 인간 군상을 몽환적으로 그려냈습니다.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인 점과 제작 당시 영화에서 부부로 출연하는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이 실제 부부인 점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감독 : 스탠리 큐브릭 러닝타임 : 2시간 39분 Stream on Watcha 킬링 디어 (2017) 둘,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서바이벌 게임의 비극은 남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데서 시작합니다. 지금 바로 내 옆에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 어느 순간 내 목숨을 위협하고, 내가 죽을 것인지 남을 죽일 것인지 게임이 끝날 때까지 선택을 멈출 수 없지요. 그가 피에 젖은 시체로 변해도 눈 하나 깜빡해서는 안됩니다. 자칫하면 그것이 나의 미래가 될 수 있으니까요. 요로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그리스 신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죽음과 선택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두 시간 내내 요리합니다. 영화의 원제가 '신성한 사슴 죽이기(The Killing of a Sacred Deer)'인데요, 이는 아가멤논에 얽힌 그리스 신화에서 따왔습니다. 신화의 내용을 알고 영화를 보면 더욱 입체적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어요. 신화의 배경은 트로이 전쟁입니다. 아가멤논이 트로이로 전쟁을 하러 가려는데 거친 바람 때문에 배를 띄울 수 없자 예언자 칼가스는 아가멤논이 여신 아르테미스의 '신성한 사슴'을 사냥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하지요. 그 사슴은 아르테미스에게 자식과도 같았거든요. 이에 아가멤논은 자신의 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치고 마침내 배를 타고 트로이로 출정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감독 : 요로고스 란티모스 러닝타임 : 2시간 1분 Stream on Netflix 로스트 인 더스트 (2016) 셋, 빚이 목숨을 위협한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건 게임에 참가하는 인물들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탓도 있습니다.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중년 남자, 금융 투자 실패로 범죄자가 된 엘리트, 조직의 돈으로 자기 배를 불리다 수세에 몰린 중간 보스. 캐릭터 각각이 어딘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번쯤 보았을 법 하지요. 그리고 그들 모두 지독한 빚에 몰려 목숨을 걸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합니다. 빚더미에 앉은 두 형제가 그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은행 강도를 벌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겠지요. 데이빗 맥킨지 감독은 무척이나 건조한 시선으로 토비(크리스 파인 분)와 태너(벤 포스터) 형제의 범죄 행각과 그들을 좇는 경찰 마커스(제프 브리지스 분)와 알베르토(길 버밍햄 분)를 따라갑니다. 너무 바싹 말라있어 화면을 뚫고 텍사스의 사막에서부터 모래바람이 불어와 버석거리는 모래가 입안에서 씹히는 기분입니다. '지옥 또는 높은 파도(Hell or High Water)'라는 원제 대신 국내에서 사용한 '로스트 인 더스트'라는 제목도 퍽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독 : 데이빗 맥킨지 러닝타임 : 1시간 43분 Stream on Watcha & Netflix 덧붙이는 이야기 오징어 게임 Original Sound Track - 정재일 음악감독 첫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하며 오징어 게임 규칙을 설명할 때와 엔딩 크레디트가 끝나갈 때 귀에 익숙한 리듬 위로 리코더 소리가 들립니다. 어린 아이들의 놀이와 어릴 때 연습하던 리코더 소리가 절묘하게 향수를 일으키면서도 약간씩 어긋나는 리듬이 서바이벌 게임의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하죠. 정재일 음악감독의 인스타그램에 오징어 게임 포스터가 올라왔을 때, 저는 드라마 내용보다 그가 만든 음악이 더 궁금했습니다. 그전에도 OST 작업이 여럿 있었지만 대중에게 그의 이름이 알려진 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닐까 싶습니다. 믿음의 벨트, 기억하시나요? 인터뷰를 찾아보니 영화 옥자는 넷플릭스 투자로 따로 OST 앨범을 발매하지 못했다며 정재일 음악감독이 아쉬워하더라고요. 오징어 게임은 이렇게 OST가 발매되어 무척 기쁩니다. 앨범의 전체 길이는 70분이고요, 리코더가 쓰인 음악의 제목은 'Way back then'으로 앨범의 첫 번째 트랙입니다. '클리셰 범벅이다', '주연 배우가 안 어울린다' 같은 혹평도 있지만 다 같이 드라마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오랜만이라 저는 그저 즐겁습니다. 요즘은 스트리밍이 플랫폼으로 각자 좋아하는 걸 보는 분위기라 특정 콘텐츠에 대해 함께 공감하고 화제가 되는 일이 예전처럼 흔하지 않은 것 같거든요. 모처럼 온 이 행운을 느긋하게 즐겨보려고요.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당신의 큐레이터Q 📬 금요알람 구독하기 || 친구에게 소개하기 https://url.kr/4aycxm 금요알람은 언제나 당신의 이야기를 환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