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아메온나의 계절이 돌아왔어. 나 여행 갈 때마다 비온다는 얘기 기억해? 지난 주말 여행을 갔는데 분명 출발하는 날 오전에 그친다는 예보가 무색하게 여행 내내 비와 찬바람이 몰아치더라고. 겨울 외투 세탁 할인 쿠폰이 들어왔지만 아직 코트를 보내줄 수가 없어. 언제쯤 봄 외투를 입을 수 있을까? 마음은 봄인데 현실은 겨울인 신기루같은 지금 계절에 속지말고 다들 감기 조심해! 그래도 이번 주부터 벚꽃 개화시기래. 따뜻한 남쪽나라 부산(3/22)과 포항, 제주 서귀포(3/24)는 벌써 지난 주에 폈다고 하고, 추운 북쪽나라 서울(4/3), 인천, 춘천(4/7)은 다음주라고 해. 안심해. 다음주엔 나 아메온나, 어디도 떠나지 않으니까. 의 즐거운 벚꽃 구경을 위해 집콕할게! 🌸벚꽃 개화시기🌸

#철수 이야기

최근 친구가 알려줬는데 연애 초반의 관계끼리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알고리즘을 공개한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아찔한 심정으로 확인해보니 다행히 내 알고리즘은 털복숭이 천지였어. 랜선 집사로 열심히 활동중이거든! 귀여운 동물 보는게 낙이라 오늘 소개할 상수탕 작가의 만화 [철수 이야기]는 발견하자마자 장바구니에 담았지만, 쉽사리 읽을 자신이 없었어. 보자마자 눈물 버튼이 눌릴 것 같은거야. 너무 애정하는 대상에 관한 이야기는 오히려 가장 멀리하게 될 때가 있지 않아? 반려동물의 죽음을 경험한 친구들은 모두 [철수 이야기]를 절대 읽을 자신이 없다고 하더라고. ‘해수’라는 소년이 동생이 태어나기 전 잠깐 시골집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맡겨져있는 동안 가족이자 친구가 되어준 래드라도 리트리버 ‘철수’와 보냈던 한 시기에 관한 이야기야. 펜화로 그려져 담백하면서도 세밀한 선만큼이나 섬세한 마음의 순간들을 포착한 아름답고 여운 짙은 만화야.

#흑백의 펜화로 엿보는 사계절

색이 배제된 그림은 요즘 시대에 개봉하는 흑백영화의 위치라는 생각을 해. 영화 마케팅할 때 흑백영화는 흥행 관점에서 바로 마이너스 요소이거든. 하지만 명암의 단순한 대비가 주는 깊이는 종종 총천연색의 영화와는 다른 분명한 힘이 있어. 호평을 받은 흑백영화를 지금 대충 떠올려봐도 <로마>, <동주>, <자산어보>, <아티스트>, <프란시스 하> 등 꽤 많아. 실사를 압도하는 화려한 애니메이션의 시대에 흑백영화의 길을 택한 [철수 이야기]가 철수와 해수의 우정만큼이나 사계의 풍경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고 하면 의외일거야. 충분히 파도처럼 울렁거리는 감정적 기승전결을 그릴 수 있는 소재였음에도 여백을 택한 이 만화는 생략함으로써 독자 안에서 풍성한 가상의 시공간을 확장해나가. 흑백밖에 없는 세계 안에서 계절은 철수와 해수가 놀러다니는 들판의 풍경, 계곡의 온도, 계절 과일의 종류 등 여러 모습으로 우리의 오감을 고루 자극하며 착실하게 흘러가. 계절의 변화가 유달리 마음에 남는 이유는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는 시간은 순리라는 점에서 작가의 자연을 향한 시선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야.

#어른에겐 각자의 빙봉이 있다

[철수 이야기]는 시간순으로 사실관계가 나열되는 연대기가 아니라 철수와의 추억을 한 조각씩 꺼내보는 사진첩 같은 만화야. 화자인 해수가 떠올리는 기억의 조각들은 철수를 비롯 자연과 생명 모두를 향한 애정으로 연결되고 있어. 그 애정은 모든 생명이 지닌 운명, 시간의 유한함에 기반하지 않았을까. 때문에 살아있고, 관계를 맺었던 찰나의 소중함을 더욱 여리게 어루만지는 눈빛이 따뜻해서 사랑이 가득 묻어나는데도 어쩐지 슬퍼지곤 해.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엔 끝이 있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니까. “철수야. 나는 어른 돼도 여기서 살건데 너는?”이라고 묻는 어린시절의 해수는 시골을 떠나 본가로 돌아가면서 철수보다 중요한 것들이 금세 생겨버려. 어느새 기억에서 사라졌던 철수가 불현듯 떠오른 어른 해수는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을 마주친 것처럼 보이기도 해. ‘우리의 어린 시절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 버려서 가장 행복했던 그 시간을 붙들어 둘 수 없었다’라는 구절처럼,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하는 일을 오래 생각하는 어른이 되면 영원할 거라 믿었던 시기는 빠르게 지나가고, 영원히 기억할 거라 믿었던 내 마음도 흐려질 수 밖에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수 이야기]는 그러한 현재조차 따뜻하게 감싸안아. 그것은 자연의 계절처럼 인간의 계절이 흘러가는 이치이지 않을까. 겨울 다음엔 봄이, 인연 다음엔 헤어짐이, 생의 다음엔 죽음이 있어. 모든 생의 순간을 담담하고 초연하게 옮겨놓은 [철수 이야기]는 한번씩 꺼내보고픈 다정한 편지같아.

#다정함은 존재를 향한 연민

해수는 철수가 있어서 또래가 많지 않은 낯선 시골의 온 동네를 누비고 다닐 수 있었어. 둘이라면 무섭지도 외롭지도 않았으니까. 해수에게 철수는 말 그대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둘째 동생보다 더 동생같은 존재였지만, 해수 외의 어른들, 어떤 인간들에게 동물은 인간과는 절대 같지 않은 존재이기도 했어. 산 속에 먹이가 없어 마을로 내려온 멧돼지들을 토벌했던 일, 개의 언어를 몰랐던 해수가 의도치 않게 자극한 어느 개와의 불의의 사건 등은 인간의 잣대로 해석되는 동물의 존재를 다른 시점으로 바라보게 해. 다정함은 존재를 향한 연민이라고 생각해. 연민은 대상의 멋진 면보다 약하고 못난 면을 받아들여주는 마음이니까. 작가는 미대를 졸업하고 한동안 사회생활을 하다가 이 작품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네이버 도전웹툰에서 연재한 모양이야. 한 인터뷰에서 “처음 만화를 그리기 시작할 때는 ‘왜 내가 이런 짓을 해야 하나’ 회의감을 느낄 때가 많았지만 댓글이나 메일을 통해 위로나 위안을 얻었다는 반응이 오기 시작했고, 그런 글을 읽으면서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고 밝혔어. 어른 해수가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과 이 작품을 그린 작가의 과정, 그리고 그리운 시기가 있는 누구나의 과거는 닮아있어. 자연스럽게 비슷한 시기의 사람들을 응원해주고 싶은 기분이 드는 이유도 그 때문일까. 숨이 차는 어느 시기에 잠시 멈춰서 이 이야기를 읽어보면 좋겠어.

#관람포인트

단행본이 나온 당시 작가가 홍보차 올린 이벤트 공지용 만화조차 특유의 감도가 좋아서 공유해. 괜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보자면 작가가 언급한 카메라 리코 GR2를 나도 쓰고 있거든. 혼자 반가웠어.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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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점메추

오컬트 좋아하는 쫄보라 레카소의 뉴스레터로 대리 만족합니다.... [아카이브 81]도 갑툭튀 공포는 아니라지만 아직 혼자 도전하기엔 넘 무서운것 ㄷㄷ.....


📝레이지 카우의 답장

저도 구.쫄보였던 사람인데요..! 많이 보면 나아집니다. 구독자 강하게 키우고 싶은 레이지 카우😂 이제 웬만하면 혼자 공포 잘 보는 편이지만 [주온 : 저주의 집]은 너무 무서워서 친구랑 각자의 집에서 동시에 메신저 하며 봤던 기억이 있어요. 언젠가 쫄보들을 위한 공포영화 랜선 파티를 열어볼까요?

🖌️답장을 기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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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지 카우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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