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S. 엘리엇의 ‘황무지’는 1922년 발표된 시로 전편이 무려 434행으로 구성된 장편 시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정신적 황폐, 죽음과 삶의 의미, 가치관의 혼란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동시에 엘리엇 본인의 무의미한 삶에 대한 개인적 회의도 동시에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시는 영어 외에 독어, 불어, 라틴어, 그리스어, 이탈리아어, 산스크리트어 등의 언어가 사용되고, 여러 신화와 종교, 단테의 ‘신곡’, 셰익스피어, 호메로스 등 많은 작가의 작품들이 시 곳곳에 인용되고 있어 엘리엇이 직접 달아놓은 주석 없이는 해석하기 어려운 난해한 시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계절, 봄이 시작되는 4월이 왜 잔인하다는 걸까요?
작가가 시를 썼던 시대적 상황, 정서와 무관하지 않은데요,
위에서 얘기했듯 작가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화된 문명과 기존의 가치가 무너진 상황 속에서 삶의 방향과 의지를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을 ‘황무지’의 상태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또 작가 본인이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쓴 작품이어서 본인의 모습을 더 많이 투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려는 대지 아래는 생명 탄생의 희망과 욕망이 들끓고 있습니다.
반면 아픔과 고통의 시간으로부터 버티고 인내한 지난 시간을 다시 반복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눈으로 모든 걸 덮고 잠들어 있는 겨울의 평화를 깨트리고 싶지 않은 욕망도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런데 봄이 왔으니 다시 깨어나라고 온 대지를 뒤흔드니 소란스럽고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어있는 대지에 생명의 의지를 일깨우는 것 자체가 고통인 것이죠. 그래서 4월이 잔인하다고 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