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라프 시몬스는 질 샌더(2005-2012), 디올(2012-2015), 캘빈 클라인(2016-2018), 프라다(2020-현재) 등의 빅 브랜드들에서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함께 일하며 커리어의 균형점을 맞추어 왔어요.

그래서 지금부터는 그가 지금껏 세상에 내놓았던, 주목할만한 몇 가지 컬렉션을 한 번 봐볼까 합니다. 라프시몬스는 자신의 고유한 패션 아이덴티티를 여러 브랜드를 거치면서 진화시켜 나갔죠. 그가 어떤 방식으로 디자인에 녹여냈는지 감을 잡아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라프시몬스는 2005년에 질샌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이 됩니다. 그리고 극도의 미니멀리즘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질샌더 특유의 미니멀리즘을 우아하면서도 캐주얼하게 재해석한 컬렉션을 선보이죠.

‘선’과 ‘형태’, ‘비율’에 대해 변화를 모색하고, 선명한 원색을 과감하게 조합, 액세서리를 절제한 것이 특징. 스트리트와 하이패션의 조화를 통해 ‘미니멀리즘의 현대화’를 추구했다고 평가받죠. 특히나 그가 마지막으로 디렉팅했던 2012FW컬렉션은 미니멀 로맨티시즘의 절정을 보여준 아름다운 쇼로 아직도 회자됩니다.

라프시몬스가 2012년, 유서 깊은 프랑스의 패션 하우스 디올의 ‘오트 쿠튀르’ 디자인을 맡게 되었을 때 그는 심적으로 매우 고통받았다고 하는데요. 그의 재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에 갔다는 외부의 비판과 로맨틱한 하우스 브랜드를 모던화해달라는 숙제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라프시몬스는 모더니티를 강조했던 크리스티앙 디올의 초기 작품(뉴룩 실루엣과 꽃)을 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우아한 여성성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데 성공합니다. 장미, 라일락, 참제비 고깔 꽃 등 생화로 쇼장을 가득 채우는 등 설치 미술을 활용하기도 하죠. 우아한 실루엣에 스포티함을 더하고, 다양한 색채와 그래픽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적용하는 그의 시도는 디올이 화려한 장식적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모던한 동시에 캐주얼한 감성의 쿠튀르’라는 새로운 감성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캘빈 클라인의 CCO(Chief Communication Officer; 최고 홍보 책임자)로 임명된 라프시몬스는 캘빈클라인의 여성복, 남성복, 언더웨어, 향수, 뿐만 아니라 마케팅과 홍보까지 경영 전반에 대한 업무를 떠맡게 됩니다. 유스 컬처나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동경, 아웃사이더적인 경향을 확장시켜 본래의 감성과 융합시킨 디자인을 선보이기 시작하죠. 미국 브랜드 특유의 실용주의 감성에 라프 시몬스만의 감각을 덧댄 젊은 디자인.

라프 시몬스로 인해서 점차 개성을 찾아가는 캘빈 클라인을 보고 패션 평론가들은 ‘Calvin Klein is renewed(캘빈클라인이 리뉴얼됐다)’고 평하기도 했지만, 왜일까요. 뜨거운 박수를 받았지만 ‘매출 부진’이라는 이유로 3년 만기 계약을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이에 대해 말을 아끼던 시몬스는 훗날 2019년 패션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하죠. “요즘엔 컬렉션이 아무리 별로여도 비즈니스가 잘 돌아가면 박수를 친다.”

지난 2021년, 라프시몬스와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가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프라다 첫 컬렉션을 선보였죠. 수많은 패션 평론가들이 ‘이전의 프라다보다 한결 더 젊고 더 현대적으로 느껴진다’고 평가했는데요.

프라다의 ‘우아’한 미와 라프시몬스의 ‘영(young)’하고 스포티한 무드가 공존하는 컬렉션이었습니다. 조금 더 강조된 실용성, 우아하게 과장된 로고, 그리고 컷 아웃 디테일 등. 라프시몬스와 꼭 닮은 오버핏 실루엣에 프라다의 고급스러운 로고가 더해지니 그야말로 ‘젊고 신선한 프라다’의 탄생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상반되는 두 디렉터의 감성이 융합된 모습이 앞으로 정말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