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 연구자 임지원 선생님과의 대화

모두가 큰 문제인 줄 알면서도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말하지 않는 현상을 ‘방 안의 코끼리’라고 부릅니다. 저희는 이 시대의 ‘방 안의 코끼리’인 기후위기와 관련해, 먼저 나서서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이들을 식탁 앞으로 모시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우리가 마주한 나날의 희로애락을 함께 밥을 나눠먹는 것으로 얼마간 달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식탁 위의 코끼리’가 당신을 초대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엄살원’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되었습니다.


1화:
빛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 ➀

<오늘의 메뉴>

두유 크림 파스타와 두 가지 크로켓


오늘의 손님: 임지원

영문학 연구자. 문학을 경유해 환경 인문학과 대중문화 속 동물 윤리를 연구한다. 최근의 관심사는 생태 서사의 계보를 추적하는 작업. 강의와 소설 창작을 병행하고 있으며, 대표작은 <엔딩의 발견>*과 <올림픽공원 산책지침>*이다.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 서울에 대해 계속 쓰고 싶어 한다.


*<엔딩의 발견>, 짐리원, 과학동아 2024년 3월호, 143-149쪽.

*<올림픽공원 산책지침>, 짐리원, 제3회 문윤성 SF 문학상 중단편 수상작품집. 

호스트 소개


이레: @irae_lee
요리 담당이자 어린이 녹색소년단 소속이었던 환경운동가 꿈나무. 참고 기다리다가 이제는 용기내어 말하고 질문해요.

야독:
콘텐츠 제작 및 소시민 담당. 나 같은 사람도 기후위기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인 분들을 대변해드려요. 

영이: @seoyoungchl
섭외 및 홍보 담당이자 기후 채무자. 기후 위기는 늘 다른 사람들에게 빚진 느낌이다. 코끼리처럼 귀를 크게 열고 듣고 싶어요. 
프롤로그

눅눅하고 어둑한, 금방이라도 장맛비가 쏟아질 것 같은 7월의 어느 여름날. 이레, 야독, 영이가 주방에서 바쁘게 요리를 하고 있다. 이레는 두유크림파스타, 야독과 영이는 각각 단호박, 감자 크로켓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수상한 냄새가 난다. 강아지처럼 코를 치켜들고 킁킁거리던 셋이 동시에 멈춘 곳은 감자 찜기. 감자를 찔 때 물을 너무 적게 넣은 모양인지, 물이 졸아들어 냄비 밑바닥이 조금 타버린 것 같다. 탄내가 배기 전에 얼른 감자를 구출하고 전자레인지에 넣는다. 띵 -  기계에서 소리가 나자 이레가 나머지 요리를 봐주고, 야독과 영이는 손에 주걱을 하나씩 든 채 비장하게 찐 감자로 돌격한다. 쿡쿡! 퍽퍽! 사정없이 감자를 으깨는 둘. 점점 어깨가 아려오고, 목덜미에 땀방울이 송글하게 맺히는 찰나…


띵동!


이레, 야독, 영이: 안녕하세요, 선생님!


지원: 안녕하세요! 와 오늘 진짜 엄청 덥네요. 근데 저 이 동네 완전 좋아요! 저 어릴 때 이런 동네 살았는데, 제가 이렇게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좋아하거든요.


이레: 정말요? 근데 너무 더우시죠. 날이 습해서…저기 저 방에 가방 두시면 되어요. 


지원: 아, 네네. (가방을 내려놓는다)


영이: 선생님, 저희가 아직 요리를 하는 중이라 식탁에 잠시 앉아서 쉬고 계시면 곧 식사 준비해드릴게요. 


지원: 네, 그리고 저 디저트를 사온다고 사왔는데, 플라스틱도 잔뜩 같이 사왔어요. 죄송해요.


지원이 가방에서 떡을 꺼내 식탁에 올려놓는다. 윤기가 흐르는 알록달록 색색깔의 꿀떡, 호박떡, 약과가 먹음직스럽다.


야독: 아니에요. 너무 맛있겠다. 감사합니다.


지원은 식탁에 앉아 선풍기 바람을 쐰다. 마음이 급해진 셋은 요리를 마무리 짓기 위해 마지막 스퍼트를 낸다. 


그리고 15분 뒤…


이레, 야독, 영이: 다 됐습니다!


초록빛 매트가 깔린 식탁 위에 큼지막한 보울에 담긴 파스타와 동글동글한 두 가지 크로켓이 놓인다. 네 사람은 자리를 잡고 식탁에 둘러 앉는다.


이레: 선생님, 이건 두유와 두부를 넣어 만든 파스타구요, 그 옆에는 단호박 크로켓, 그리고 감자 크로켓을 준비했어요. 유제품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우유나 치즈를 넣지 않고도 비슷한 맛과 느낌을 낼 수 있는 두유와 두부로 파스타를 만들었고, 뭔가 손님 대접용으로 근사한 요리를 하고 싶어서 크로켓을 만들어 봤습니다. 맛있게 드셔주세요!


지원: 우와, 너무 맛있겠다! 제 초딩 입맛을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접시 위로 포크, 젓가락, 숟가락이 바삐 오간다. 네 사람은 웃고, 떠들고, 화내고, 감동하며 ‘코끼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우리 다 망했다?!": 종말론적 서사의 종말


이레: 저희 셋은 수업을 통해서, 또 강연을 통해서 선생님에 대해 조금 알고 있지만,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선생님께서 직접 자기소개를 한 번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지원: 네, 저는 영문학을 연구하고 강의와 창작을 병행하고 있는 임지원이라고 합니다. 지난 학기에 이레와 영이 두 분이 들었던 ‘제3세계 비교문학: 기후위기와 자연쓰기의 전통’ 수업을 강의했어요.


야독: 저도 두 사람에게 선생님 수업에 대해 조금 들었는데, 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관점이 너무 신선하고 특별해서 꼭 만나뵙고 싶었어요. 이렇게 저희의 첫 손님으로 와주셔서 너무 기뻐요! 우선 본격적으로 선생님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원래 선생님 전공이 낭만주의였다고 들었어요. 거기에서 어떻게 여기로 흘러들어오신거예요?


지원: 낭만주의는 그냥 제가 좋아했어요. 왜냐면 시가 되게 예쁘거든요. 그리고 자연, 자연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되게 많이 얘기해요. 또 사실, 한국 학계에서는 ‘정통적인’ 연구를 장려하는 측면이 있어서 한국에서는 그걸 공부했었죠. 근데 저는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박사를 했는데, 유학을 나가보니까 또 완전 유행이 다른 거예요. 거기는 아무도 시를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거기가 되게 자기 주제를 세게 잡아야지 살아남을 수 있는 학교였거든요. 갑자기 엄청 정통적인 학교에서 ‘너 마음대로 해봐!’ 하는 곳으로 떨어진 거예요. 그래서 ‘내 마음대로 해보라고 했을 때 난 뭘 하고 싶을까?’ 고민하다 보니까 동물이 생각났어요. 사실 지금도 저의 그 마음의 주제는 그건데, 시대가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저는 그냥 동물만 연구했을 것 같거든요. 근데 지금 난리가 나니까, ‘이 시대에 반응을 해야 된다’ 이런 느낌을 받아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야독: 그러면 구체적으로 동물의 어떤 부분을 연구하시는 거예요?


지원: 귀여움이요. 그러니까 동물을 귀엽게 그리는 소설들, <곰돌이 푸(Winnie The Pooh)>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동물을 귀엽게 상품화하는 것과 동물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산업화의 관계에 대해 썼어요. 귀여운 동물을 예뻐할 때, 우리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상품화된 동물을 소비하는 거기도 하잖아요. 그 사이 어딘가의 되게 애매한 행위라는 거죠. 저는 원래 귀여움에 되게 관심 많아요. 그게 취향이라서요.


이레: 그렇게 동물 윤리 연구를 하시다가 최근에는 환경 인문학을 하시고 계시잖아요. 특히 저희 수업의 주제이기도 했던 영문학의 생태 서사 연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여쭤보고 싶어요. 


지원: 제가 그 수업에서 주로 다뤘던 것은 자연과 환경 문제를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인간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하고 만들어져왔는지를 영문학 텍스트에서 발견하고, 또 우리가 앞으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생각해보는 일이었어요. 즉, 자연을 예찬하던 전통에서 인간과 지구의 종말을 경고하는 종말론적 서사, 그리고 그에 대한 피로로 이어지는 문학적 계보가 있다는 거죠. 


 먼저 자연 예찬 전통의 대표적인 텍스트로는 퍼시 비시 셸리*의 시처럼 ‘야생’의 자연이 주는 기쁨을 노래하는 낭만주의 작품들이 있고, 또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 있어요. 소로의 텍스트에서는 자연에 대한 애정 어린 관찰 속에서 지금 우리가 아는 환경 위기에 대한 인식, 그러니까 이렇게 소중한 자연이 소모될지도 모른다는 인식이 태어나는 과정을 볼 수 있어요. 


*퍼시 비시 셸리: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 다음으로는 오늘날 환경에 대한 레토릭 중 가장 지배적인 ‘생태 종말론적 레토릭’이 있어요. 생태 종말론적 레토릭이란, 지금 당장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지구는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자극해서 환경 의식을 일깨우려는 글쓰기 혹은 말하기의 방식이에요. 쉽게 말하면 “이대로 가면 우리 다 망한다!”라는 거죠. 요즘 우리가 미래를 그릴 때 흔히 상상하는 방식 또한 종말론적 레토릭에 기초하고 있어요. 인류 문명이 붕괴되고 황폐해진 지구를 인간이 홀로 떠도는, 그런 이야기 한 번쯤 들어봤잖아요. 모두가 익숙하게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종말론적 서사가 우리 문화적 상상력의 일부가 되었다는 뜻이겠죠. 이렇게 종말론적 서사가 인류 문명 이후를 상상하는 전형적인 형태로 우리 마음 속에 각인이 된 계기로는 1962년에 나온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원래부터 인류 문명의 종말이 생태 위기와 항상 연결되어서 상상되는 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침묵의 봄>이 처음 환경 종말론을 폭발적으로 대중화하면서 인간 문명이 우리 삶의 기반으로서의 지구를 파괴하고 있고, 이것이 생태적, 문명적 종말로 이어질 거라는 생각이 우리 모두의 인식에 자리잡게 된 거예요. 하지만 저는 이런 종류의 서사가 이제는 유효하지 않고, 새로운 대안적 서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영이: 선생님이 수업에서도 계속 강조를 하셨잖아요. 종말론적 서사가 얼마나 수명이 짧고 이제 유효기간이 다 되었는지.

지원: 세계가 망한다고 1960년대부터 말했으니까 다들 지친 거죠.  물론 <침묵의 봄>이 퍼뜨린 묵시록적 상상력은 자연이 영원할거라는 믿음을 깨는 충격적이고 성공적인 발명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전지구적인 위기 의식을 일깨우고 환경 운동을 대중화하는데 엄청난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지만, 충격 효과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이미 망해가는 거 아는데 어쩌라고' 식의 시니컬한 반응을 일으키니까요. 그래서 이젠 조금 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지킬 수 있는 걸 알려주는 레토릭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이 필요로 하기도 하고요.

야독: 근데 그 종말론적 서사가 되게 재밌거든요. 자극적이잖아요. 그래서 계속 반복되고 또 변주되고 하는데, 사실 그거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매력적인 서사가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이만큼 커진 것 같거든요. 선생님은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매력적인 서사를 찾고 계시는 것 같은데, 제가 본 강연에서는 그걸  ‘녹색 종말 서사’라고 말씀하셨어요. ‘녹색 종말 서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거기서 희망을 보신지 궁금해요.

지원: 아, 그거는 완전 직접적인 희망까지는 아니고, 종말론에 말려들지 않는 서사 중에 하나라는 거였어요. 그거 말고도 대안은 되게 많을 것 같긴 해요. 어쨌든 제가 말한 ‘녹색 종말 상상력’은 인간 멸망 이후의 지구를 비인간 생태계 번성의 공간으로 상상하는 류의 상상력인데요,  대표적으로 <인간 없는 세상>이라는 논픽션 작품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인간이 사라진다면 인간이 점유하고 있던 공간에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을 생생한 언어와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어요. 예컨대 뉴욕의 센트럴 파크의 호수가 늪이 되고, 나무가 돋아나 폐허가 된 빌딩 사이로 무한히 뻗어나가는 생태적 가능성을 상상하는 거죠. 그런데 이걸 절망의 언어가 아니라 일종의 ‘기쁨의 언어’로 이야기한다는 게 재미있는 점이에요. 그때 녹색 종말론에 주목했던 이유는 그게 생각보다 되게 강한 언어와 이미지고 정치적인 의미도 복잡한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지금 되게 메이저한 갈래의 멸망이 영화 '매드맥스'처럼 되는 거잖아요. 근데 저는 그게 어떤 자기실현적 예언의 효과도 있는 것 같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미래밖에 생각할 수 없어지는 것? 그래서 녹색 종말이 강제로라도 좀 다른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지 않나 생각 했어요. 사실 아예 종말이 아닌 게 제일 좋긴 한데. (웃음) 꼭 멸망에 대해 생각해야만 한다면, 그렇게 인간하고 자연하고 전부 다 가능성이 소진되는 그런 미래밖에 생각할 수 없고, 거기서 사는 것밖에 상상할 수 없는 것보다는 좀 다른 거를 해보는 게 낫지 않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제가 요즘에 찾는 건 오히려 조금 더 일상적인 즐거움에 관한 이야기들인 것 같아요. 일상의 즐거움 중에 얼마나 많은 부분이 사실 날씨나 물 같은, 환경에 대한 전제에 의존하고 있는지. 그래서 다들 이게 중요하다고 깨닫게 되면 좀 변하지 않을까? 이런 거 있잖아요. 결국 제가 환경에 대한 새로운 서사를 찾고 문학을 믿는 거, 그러니까 Fiction 말고 넓은 의미에서의 Literature에 대해 믿는 건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 된다는 믿음인 것 같고, 언어로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인 것 같아요.

야독: 비인간이라고 하셔서 생각났는데, 최근 철학계에서 핫한 이론 중에 사변적 실재론*이라고, 비인간의 관점에서 모두는 독립적이고 각자의 생태계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하면서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야 된다고 하는 게 있잖아요. 특히 티모시 모턴이라는 학자는 지구 온난화를 ‘하이퍼객체’라는 개념으로 정의하면서 낭만화되고 물화된 자연관을 극복하고 비인간의 관점에서 객체 그 자체를 사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사변적 실재론: 21세기 초 영국에서 현대 대륙철학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철학 운동으로, 이들이 상관주의(Correlationism)라고 일컫는 칸트 이후 철학의 주류 해석에 반대해 “인간 사유와 독립적인 세계의 실재가 존재한다”는 입장을 공유하는 것으로 느슨하게 정의된다.


지원: 제 꿈이 그 사람에게 제대로 반박하는 논문을 쓰는 거예요. 티모시 모턴이 어떤 얘기를 하냐면, 비인간적인 관점으로 보면 어차피 자연의 과정은 재난의 연속*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재난이 특별하다고 볼 필요가 없대요. 저는 이거는 너~무나 물타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저는 인간적인 측면에 오히려 주목해야지 이 위기의 특수성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다 똑같아~” 하면서 물타기 해버리면 그게 패배주의, 순응주의, 혹은 기후변화 부정론이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저는 그 사람에게 동의하지 않아요.


*"궁극적으로 재난 개념에 의존하지 않는 생태학을 생각하는 것은 자연 없는 생태학을 생각하는 것이며, 환경주의 없는 생태학을 생각하는 데까지 간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진화는 멸종 같은 것들을 포함한 긴 재난의 역사이다. 다시 말해, 재난은 모든 곳에 있고, 어떤 우주적 의미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지원 번역)

Morton, Timothy. (2012), “Romantic Disaster Ecology: Blake, Shelley, Wordsworth and Disaster.” Romanticism and Disaster, Romantic Circles, p.4. 


 또 비인간의 관점을 강조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어떤 의미에서 비판이 사라지잖아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인간이 뭔가를 파괴한 거에 대한 비판의 날이 사라지잖아요. 왜냐하면 다 똑같은 행위자가 한 일이니까. 저는 그렇게 읽었거든요. 그래서 그게 진짜 싫었던 것 같아요.

야독: 인간이 한 일은 인간의 눈으로 보고 다시 비판해야 한다?

지원: 인간의 눈으로 보고 인간적 책임을 져야 한다. 저는 좀 그쪽인 것 같아요. 당연히 지구가 망해도 암석은 다 살아 남겠죠. 근데 자연 보호의 목적이 그게 아니잖아요. 사람이 잘 살려고 하는 거잖아요. 인간이 익숙하고 좋아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잘 살기 위해 인간이 한 일에 대해서 인간적 책임을 져야 하는, 되게 인간적인 일인데 그거를 막 갑자기 “2억 6천만년 관점에서 보면 저희는 우주의 먼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면 이게 뭔 소리야! 뭔 소리야~~!!! 약간 이렇게 돼버리는… 저는 그게 이해가 잘 안돼요.(웃음) 저는 이게 되게 다급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신선놀음 같은 소리하면 저는 좀 화가 나는 게 있어가지고…

야독: 그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 건 이런 게 아닐까요? 우리가 우주의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겸손함을 갖춘 다음, 인간과 비인간은 똑같이 중요하니까 더불어서 잘 살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끌고 가려는 것 같은데...

지원: 너무 멀리 돌아가는 것 같아요. 저는 인간이 오히려 오만해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컸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요. 그러면 이걸 우리가 고칠 수도 있다, 여기까지 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야독: 결자해지 해라?)  네, 결자해지 해라. 결자해지. 완전 다른 식의 접근이긴 하지만 저는 우리가 관리자적 윤리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좋든 싫든 여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을 우리가 가지게 됐으니까 여길 좋게 만드는 게 뭔지를 정해야 된다. 저는 좀 이쪽인 것 같아요. 근데 제가 본 사람 중에 제일 그쪽을 대변을 잘했어요. 저랑 이걸로 싸우는 사람 되게 많거든요.

야독: 대변하려고 한 건 아닌데... (웃음) 요즘 이게 생태학이랑 맞물려서 환경 운동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논리인 것 같아서요.

지원: 저는 이게 운동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환경에 대한 담론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맞는데, 실제로 운동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또 저는 이런 걸 동물권 논의에서도 되게 많이 봤는데요, 이론가들은 동물을 인간처럼 대하는 것을 뭔가 우스꽝스럽다고 얘기하는데 실제로 동물을 구했던 사람들은 동물을 그냥 인간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인 거예요. 인간이니 동물이니 그런 거 생각하지 않고 정말 sympathy(동정심)를 가졌던 사람들인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런 인간 중심적이고 감정적인 게 나쁜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야독: 사실 우리가 인간의 관점을 벗어날 순 없잖아요. 죽었다 깨나도?

지원: 맞아요. 거기서 벗어난다는 게 약간 정신 승리에 불과한 것 같은 거예요.

야독: 아무리 돌멩이의 관점으로 묘사한다 해도 그건 인간이 쓴 돌멩이 관점이니까.

지원: 그러니까요! 뭔가 그런 헛소리를 할 때가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제가 탁상공론을 좀 싫어해요.


이레: 다시 수업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저는 선생님이 하신 수업을 들으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저는 원래 환경에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제가 눈치를 되게 많이 봐요. 그래서 내가 뭐에 관심이 있어, 내 얘기를 들어봐 하고 얘기를 하는 타입이 아니었거든요. 근데 제 주변에서 그런 얘기가 하나도 들리지 않으니까 뭔가 고립감 같은 걸 많이 느꼈고,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소를 할까 생각을 하다가 제 졸업 학기, 마지막 학기에 딱 이런 수업이 열린다는 얘기를 들은 거예요. 근데 예전에 학교에서 열린 환경 관련 수업은 ‘불을 잘 끄는 생활을 습관화하자’라든지 ‘에너지를 절약하자’ 이런 얘기들이었지 환경에 대한 얘기를 어떻게 하고 설득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 얘기를 하는 곳은 없었던 것 같아요.


지원: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 환경에 대해서 할 일이 있다는 거, 이 깨달음을 얻은 게 진짜 저한테도 되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진짜 그게 핵심인 것 같아요. 이 문제를 모두가 느끼고 있는데 아무도 말 안 하고 있어서 엄청나게 외로운 상태잖아요. 그거를 극복하는 게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어릴 때부터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약간 공포에 질려 있었어요. 근데 제가 이런 말 하잖아요? 그러면 저의 주변 사람 중 80%가 저를 되게 신기한 애 취급했어요. 대학원 처음 왔을 때 전 이런 얘기할 사람이 되게 많을 줄 알았거든요. 근데 다들 저를 괴짜 취급하는 거예요. 아직도 기억나는 게 되게 똑똑한 애들한테 ‘나중에 환경이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하지?’라고 얘기하니까, 그 친구들이 "에어컨 틀고 차 타고 다니면 되지" 이러는 거예요. 제가 그때 너무 충격을 받고,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얘기를 할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다른 건 다 되게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인데도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거죠. 


이레: 저도 비슷한 생각에서 이 팀을 꾸리게 되었어요. 환경 얘기를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 받는 분위기가 싫었거든요. 


야독: 저희 팀 이름이 ‘식탁 위의 코끼리’잖아요. 코끼리를 말하기.

지원: 너무 귀여워요… 너무 귀여워…


암튼 그래서 저는 수업할 때는 오히려 속이 시원해요. 왜냐면 이게 특별한 집단이기도 한 게, 강의계획서에 환경 수업이라고 적어두니까 거기 오는 사람들은 진짜 걱정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한 번은 진짜 재밌는 일이 있었는데, '문학과 철학의 대화' 수업에서 기후 변화 관련 자유 QnA를 했어요. 서로 질문을 많이 했는데 저한테 어떤 학생이 되게 진지하게 요즘은 중앙 냉방이 아니래요. 자기가 냉방을 조절할 수 있는데, 지구를 생각해서 에어컨을 켜지 않고 사니까 정말 죽을 것 같다는 거죠. 그래서 저한테 에어컨 켜도 되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웃음)


야독: 그분 되게 진지하게 고민하신 거잖아요.

지원: 그러니까요. 사실 진지한 질문이잖아요. 저는 올바른 대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에어컨을 틀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일단 살긴 살아야 되잖아요. 저는 자기를 희생해야만 할 수 있는 운동이 되는 건 너무 싫었어요. 자기를 희생한다는 느낌으로 하는 건 지속 불가능한 것 같아요. 그리고 환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그래도 에어컨 틀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어딘가에 갔을 때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걱정이든 질문이든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수업을 계속 해왔어요.

이레: 그래서 저는 이 수업이 너무너무 반가웠고 들으면서 매주 너무 재밌는 거예요. 다음에는 무슨 책을 읽고 무슨 얘기를 하게 될까? 그것도 너무 기다려지고. 책도 저 혼자 읽을 때는 그냥 옛날에 살았던 어떤 아저씨가 하는 잔소리처럼 들렸는데 다시 읽고 보니까 이 사람도 여기서 흔들리고 있었네? 아니면 여기서 이런 걸 포착하고 있었네? 그런 걸 새롭게 알게 돼서 되게 좋았어요.

지원: 맞아요. 그 아저씨들이 의외로 진심이었어가지고. 그리고 그것도 되게 도움 되지 않아요? 이것도 어떤 커뮤니티잖아요. 되게 옛날 사람들하고 갖는. 저는 1950-60년대에 진짜 환경 문제에 관심 가졌던, 우리랑 되게 비슷한 공포를 가졌던 사람들이 이미 있었고 그 사람들 말이 그나마 들렸었다, 이걸 아는 게 되게 중요했거든요. 그 사람들한테 공감 받는 느낌? 그리고 전 그 생각도 들어요.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21세기에 처음 나온 게 아니고 계속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근데 마치 지금 처음 하는 것처럼 하는 데서 오는 절망도 있어서, 역사를 알면 좀 그런 감정이 진정되는 것 같아요.


야독: 그럼 선생님은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영문학자로서 할 수 있는 건 어떤 거라고 생각 하세요?

지원: 저는 우선 환경 관련 책들을 읽게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다음에 역사를 알게 하는 거. 왜냐하면 이번 수업에서도 계속 말했지만 환경 문제는 영문학 산문 역사와 깊이 얽혀 있는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에. 영문학의 오래된 전통 안에서 최초의 환경 운동서들이 쓰여진 거잖아요. 그래서 그 레토릭을 연구함으로써 얻는 게 있지 않나,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반은 역사 연구고 반은 어떻게 말하는 게 효율적인지에 대한 굉장히 동시대적, 전략적인 연구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게 그래도 영문학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야독: 그게 수업을 꾸리실 때 목표, 혹은 학생들이 이것만은 알고 갔으면 좋겠다 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을까요?


이레: 저희 강의 계획서에는 이렇게 써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쉬운 패배주의의 서사에 휩쓸리지 않고, 학생들이 환경에 대해 글 쓰고 생각하고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수업의 목표다.”

지원: 주제적으로는 그거인 것 같아요. 저는 시니컬한 태도를 진짜 싫어하거든요.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잖아요. 그래서 제가 맡는 수업은 환경에 대해서 희망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방법을 토론하는 실험실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냉철한 현실주의자’라서 하는 환경 운동


이레: 선생님은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마음을 움직이는 최초의 경험이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지원: 한 14-15살 때였던 것 같아요. 그때 돌아다니던 청소년 문학 중에서 ‘이대로 환경이 오염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다룬 책을 읽고 ‘으악 큰일이다!!!’라고 생각한 뒤로 환경 문제가 한 번도 머리에서 떨어진 적이 없어요. (이레: 어떤 책이었어요?) 그건 기억이 안 나요. 엄마가 사다 준 과학도서나 여기저기서 얻은 정보에서 온 것 같은데, 저는 책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도 뉴스 기사들만 보면 진짜 자살하고 싶잖아요. 근데 제가 최근에 환경 책들을 좀 되게 많이 봤거든요. 미국에는 환경 관련 르포나 논픽션이 되게 많아요. 그 중에서 에너지 문제를 다룬 <The End of Oil(석유의 종말)>이라는 책을 봤는데, 되게 신기했던 게 저자가 뭐라 그랬냐면 자기는 비관주의와 절망감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지만, 문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예요. 


야독: 오히려 더 알면 알수록 가능성이 보이는 문제라고 보는 거죠?

지원: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막 자극적으로 “아마존의 삼림이 타고 있어요!” 아니면 “전대미문의 여름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은데, 시스템적으로 파고들고 진짜 깊이 생각해 본 사람들은 오히려 “아직 막을 수 있으니 막아보자”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그런 말을 듣는 게 되게 도움이 되더라구요.

야독: 뉴스 같은 데서는 겁만 주고 대안 제시를 안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알면 알수록 더 절망스러울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지원: 저도 미디어에서 환경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위기나 종말이라고 프레이밍 하는 게 아니라, 태스크라고 말해주는 게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누군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너무 화가 나거든요. ‘어쩌라고?’ 약간 이런 상태가 되는 거 있잖아요. 환경이 그런 얘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진짜로 효능감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지 못하더라도 뭔가 할 수 있는 때를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건 또 다른 일이잖아요. 사람이 중요한 결정을 하는 순간은 매일매일 있지만, 무언가 할 때는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거죠.


 아까도 말했지만, 정말 환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해요. 환경 문제를 통째로 잡아서 “세계 멸망!” 이러면서 밈으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이 부분은 여기까지 막을 수 있고, 저 부분은 저기까지 막을 수 있고’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저도 수업하는 김에 이것저것 읽었는데, 플라스틱 문제는 궁극적으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시스템적으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냥 돈 때문에 해결이 안 되고 있는 거고. 그리고 그게 있대요. 재활용이 잘 되는 업계들은, 예를 들어서 철강업계 이런 곳은 한 두 그룹에서 독점하고 있어서 그들이 결국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재활용도 되는데, 플라스틱 업계는 작은 회사가 엄청 많아서 문제래요. 서로 규격 같은 게 통일이 안 되는 거죠. 그런 거에서부터 시작해도 훨씬 나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또 조그만 숲을 여기저기 심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거를 통해서 해수면이 낮아지고 지하수가 고갈된 것도 복구하고 생태계도 어느 정도 복구할 수가 있대요. 이렇게 특정한 토픽으로 찾아들어가는 게 희망인 거 같아요.

이레: 구체적인 토픽.

지원: 딱 하나의 토픽. ‘세계가 멸망해가고 있다’ 이러면 그냥 죽고 싶은데,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한다면?’ 이러면 희망이 생기는 거죠. 그리고 플라스틱 관련 책에 나온 사람의 인터뷰 중에 진짜 인상 깊은 대목이 있었는데, 자기가 정말 현실적이고 경쟁적인 사람이라서 플라스틱 재활용 업계에 뛰어들었다는 거예요. 왜냐면 이건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그게 되게 인상 깊었어요. 그 사람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고 보는 것 같지만 어쨌든 되는 부분도 있다, 이런 느낌?

야독: 저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현실적이고 경쟁적이라서 환경운동에 투신했다.

지원: 너무 멋지지 않아요. 멋있어요. 그 이미지가 환경 운동과 반대잖아요. 저는 근데 진짜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현실주의자라면 이 문제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어요.


 또 <The End of Oil>에서 자동차에 대해서도 얘기했는데, 자동차 자체를 당장 없애라는  게 아니라 연비 규제만 강화해도 기름을 몇십 년 더 쓸 수가 있대요. 미국 같은 데서 규제가 한 번 완화되고 다시 강화가 안 된 게 문제인데, 그러니까 정말 연비 좋은 차를 타는 것부터가 환경을 위하는 제안이라는 거죠. 그런 극단적으로 말하는 방식 있잖아요. ‘숨도 쉬지 마!’ 이런 게 아니라, ‘연비 좋은 차를 탑시다’ 이런 식으로 현실적인 제안을 하는 데서 시작하는 게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영이: 확실히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다, 이런 느낌을 주는 거네요.

지원: 그리고 모든 선택에서 결백할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선택들을 내릴 때 이런 걸 고려하면 이만큼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겠지, 약간 이런 거 있잖아요.

야독: 그 전에 저희가 그런 얘기했었거든요. 이 문제가 너무 크고 시공간에 넓게 펼쳐져 있는 데다가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될지 모르는 문제 같다고. 그래서 더 무기력한 것 같다고 했는데 그렇게 잘게 잘게 쪼개서 이것부터 해봐, 라고 하면 안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지원: 그쵸. 그래서 학부 수업에서 레포트 쓸 때도 환경이라고 쓰지 말고 주제를 정해서 쓰라고 해요. 그러니까 숲이 없어지는 문제나 공기 오염이라든가 이러면 훨씬 절망의 레토릭에서 벗어날 수가 있거든요. 저는 주제 중심으로 가는 게 핵심인 것 같아요. ‘다른 건 모르겠지만 나무를 심자’ 이렇게요.


그리고 저는 환경운동가와 연결되어 있는 이미지들을 좀 떼놓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환경운동은 반드시 농부라든가 이런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진짜 여러 방향에서 효율성을 염두에 둔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다는 걸 알려주는 거죠.


야독: 그게 저희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딱 환경운동가라는 그런 클리셰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도 할 수 있어. 내가 사는 이 환경에서 할 수 있어.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지금 이 순간에 환경에 대해서 얘기하고 방법을 찾는 거.


지원: 이 안에서 내가 나를 죽이지 않고, 아니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게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금 다 같이 ‘자연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완전히 깨끗한 사람이 되려는 게 아니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모든 측면에서 무결할 수는 없고, ‘그런 사람만 환경 운동가다’라고 해버리면 대부분의 사람을 밀어버리는 거잖아요. ‘넌 어차피 (환경)오염하는 사람이야’하고. 이건 시니컬한 거잖아요. 근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면 기여하는 거죠.


야독: 또 그게 공격하는 논리로 자주 쓰이는 것 같아요. 넌 무결해? 이러면서. 니가 그렇게 착해??


지원: 맞아요. 그게 진짜 너무 별로인 게, 이만큼 하든 저만큼 하든 똑같다, 차를 타는 놈은 다 똑같다, 이래버리면 포기하는 거잖아요. 근데 연비가 좋은 차를 타자, 연비가 좋은 차를 탈수록 환경에 좋다, 이렇게 구별을 지어주면 다르게 느껴지죠. 죄와 벌 이런 논리를 벗어나서 효율과 현실주의 차원에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환경주의자가 도덕주의자라는 관념에서 좀 벗어나고 싶어요. 왜냐면 전 도덕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야독: 현실주의자라는 프레임은 괜찮은 것 같아요. 냉철한 현실주의자.


지원: 맞아요. 논리적이고 냉철한 현실주의자. 이게 사람들을 확 놀라게 하는 게 있죠. “현실주의자니까 환경을 생각해!” 이러면서. 되게 공격에 좋아요. 학생들 중에 잘 설득이 안 되는 애들이 있는데, 뚫고 들어갈 때 되게 좋아요. “나는 실용주의다, 너가 생각하는 게 과연 너한테 좋은가?” 물어보는 거죠. 환경 운동도 결국 자기 좋으려고 하는 건데. 결국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지구를 지키자/아껴주자’같은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진짜 현실적으로 차갑게 얘기해 보자, 이렇게요. 


 미국에 있을 때, 제가 동양인 여자고 동물 윤리 공부하고 그러니까 제가 되게 센티멘탈한 얘기를 할 거라고 기대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일부러 굉장히 다른 포지션을 잡았어요. “동물들이 이 시스템에 들어가 있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다. 그게 현실이다. 그 다음에 무슨 얘기를 하면 좋을까?” 이렇게 접근하니까 갑자기 애들이 오히려 되게 이상적인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때 이상주의자의 스테레오 타입을 부수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다고 느꼈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좀 듣기 시작하는 느낌? 다들 제가 어떤 동물이 죽을 때마다 엉엉 울고 그런 사람인 줄 아는 거예요.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그걸 굳이 보여줄 필요는 없죠. 전략적인 것 같아요.


야독: 전 센티멘탈한 게 일단 이 문제를 감각하는 데 되게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이 문제를 다른 사람한테 얘기할 땐 좀 배제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지원: 맞아요. 이게 진짜 말하는 전략이 진짜 중요해요. 그리고 말할 때 화자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야독: 보통 환경 문제 얘기하면 항상 갑분싸되고, 친구들이 딴짓하고, 듣기 싫어하고…그랬거든요.


지원: 그러니까 이게 재미있게, 현실적으로, 그다음에 절망적인 반복이 되지 않게 얘기하는 게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야독: 한국에 밈이 있는데, 그 펀쿨섹좌 아세요? 그 사람이 그랬잖아요. 환경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해야 된다고. 


지원: 전 동의해요! (웃음) 맞는 말인 거 같아요. 재밌게 얘기해야 듣지!


야독: 근데 재미있게 얘기 너무 힘든 주제니까 어려운거죠.


지원: 그리고 항상 망했다고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되게 큰 것 같아요. ‘그래, 우리 다 망했어!’ 이걸 반복하면 누가 듣고 싶겠어요? 당연히 아무도 안 듣고 싶죠. 그래서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얘기를 해야 되는 것 같아요. 그냥 우리 다 망했어,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 야 너 차 타고 다니지, 너 차 연비가 왜 그래! 라고 말하는 게 훨씬 낫고. 그러면 생산적인 대화가 될 수도 있잖아요. confrontation(대립)을 해도.


영이: 죄책감을 심어주는 방식은 확실히 아닌 것 같아요. 


지원: 맞아요. 우리 다 죄인이오, 하면 뭐가 더 나아져요? 그것도 아니잖아요. 도덕적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청교도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야독: 저는 선생님 일종의 커뮤니케이터의 정체성이 엄청 크신 것 같아요. 연구도 하시지만 이걸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굉장히 많이 관심이 있으신 느낌.


지원: 네. 연구도 사실 저는 뭔가 전달할 자격이 있으려면 연구 실적이 필요하니까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깔끔하게 잘 쓴 게 있으면 읽어보라고 하면 좋으니까. 결국엔 사람한테 닿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 '빛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 ➁'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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