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네트프릭스에서 혜미리예채파 보고 있는데 이건 수련이랑 보고시픈 쇼 가타여😭 티비 같이 보는거 너무 즐거웠엌ㅋㅋㅋ”

나와 6개월을 같이 지내다 지금은 한국의 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영국 친구 K가 어느 날 DM을 보내왔다. 대학원을 한국으로 올 정도로 한국말을 잘 했던 K와는 자막 없이도 한국 드라마나 예능을 자주 봤다.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시즌1 1화를 보며 언니들의 강렬한 춤싸움에 함께 꺄악 거리다가, 매주 다음 화를 기다리며 어떤 팀이 더 마음에 드는지 얘기하곤 했다. 몸으로 대화하는 춤이 주로 나오던 [스우파]는 K도 쉽게 이해해서 내가 부연 설명을 해줄 필요가 없었는데, [여고추리반]을 함께 볼 때는 추리 해석에 대한 대화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 버리니 잠깐 정지하고 설명 타임이 필요했다.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되고, 조잘조잘 수다를 떠는 시간이 참 좋았는데 K에게도 그 시간이 그리웠나 보다. 

어떤 콘텐츠는 혼자 보는 것보다, 옆 사람과 보면서 호응도 하고 떠들면서 봐야 훨씬 재미있을 때가 있다. 거실에 앉아서 각자 자기가 보던 콘텐츠를 볼 때도 있지만, 손님과 서로의 취향이 파악된 이후에는 같이 보면서 대화를 나눈다. [피지컬 100]이 한창 인기있을 때, 독일 친구 M과 이 프로그램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혼자서는 절대 안 볼 것 같지만 같이 본다면 보겠어!’라며 함께 보기를 시작했다.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몸을 뽐내는 것을 보며 서로가 싫어하는 타입에 대해서 (왜 좋아하는 타입은 아닌 것인가!!) 자연스럽게 떠들었다. 리얼리티 예능 속 패널이 된 느낌으로 한참 떠들다 보면 밤 12시가 훌쩍 넘어있을 때도 있었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취향이라든지 관심사가 비슷해서 금방 친해질 때가 종종 있다. ‘이 사람은 나랑 생각하는 게 비슷하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마음의 빗장이 확 열린다.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으면 당연히 공통 관심사를 알 수 없어 끝까지 친해지지 못 한 사람도 있지만, 내향의 성향을 가진 손님이더라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쉽게 친해진다. 지난달에 왔던 프랑스 손님 F는 내가 손목을 다쳐 깁스를 하고 있던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와서 배구를 하다가 십자인대를 다쳐 수술을 하러 프랑스에 돌아갔다고 했다. 수술 이야기로 동질감을 느낀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둘 다 미래에 대한 ’비관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빵 터졌다. F는 자신이 페미니즘을 점점 공부하게 되면서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도 없어지고, 결혼 생각도 없다고 했다. 아이를 좋아하지만, 내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다고 하길래 나도 결혼 생각이 없고, 점점 나빠지기만 하는 지구를 보며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렵다고 했더니 F도 같은 생각이라며 이런  우리는 어쩌면 비관주의자일지도 모른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날 우리는 한국의 미투 운동과 프랑스의 미투 운동 얘기를 하며, 또 비슷한 사람이 우리 집에 손님으로 왔다는 사실에 신기하면서도 안도했다.

F가 같이 식사를 하고 싶다기에, 가지 덮밥을 만들어서 대접했더니 나에게 비건이냐고 물었다. 나는 비건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요리할 때는 최대한 야채 위주로 요리하곤 한다. 한 끼 밥상을 보고 나에게 비건이냐고 물을 수 있었던 건, F 역시 비건은 아니지만 가능한 야채 위주의 식단을 먹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 하면 어!’ 해주는 사람이 손님으로 올 수 있는 건 우연일까, 비건인 친구들이 방문하고, 식물을 키우는 친구들이 방문하고, 페미니즘과 가부장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계속 방문한다는 건 우연만으로 설명하기엔 어려운 것 같다. 우리 집에 방문하는 손님들의 비슷한 취향에 대해 들은 친구가 이건 ‘취향의 필터링’이라고 했다.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뜬 우리 집의 사진, 그러니까 식물이 가득하고 함께 나눈 밥상 사진이 있고, 고양이가 있는 여성전용의 숙소 사진을 보고 여기를 선택하는 사람은 당연히 비슷한 취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들어가 본 에어비앤비에 올라온 서울 숙소 사진은 좋은 뷰, 하얗고 깨끗한 침구, 최신 트렌드의 소품이 가득한 숙소들 뿐이었고, 우리 집과 비슷한 느낌의 숙소는 많지 않았다. 방도 하나뿐이고, 손님도 한 명만 받을 수 있는 이곳으로 이끄는 건 숙소 사진 속 나의 취향과 분위기였던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마치 항상 천생연분의 손님만 방문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답니다. 다양한 손님들의 면면에서 통하는 지점들을 만나고, 그 지점들을 통해 친구가 되어가는 그 과정을 즐긴다고 해야 할까, 마음이 맞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지는 요즘, 한 사람이라도 대화가 통하는 사람과 짧은 생활을 같이 하는 길지 않은 그 시간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