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남북정상선언> 16주년 기념행사를 마치며
가을 쉼표 하나

문득 떠오른 그해 가을 당신의 그 말, “수크령, 그건 베지 말지요”


조팝나무꽃이 봉하들녘을 하얗게 물들였다고, 저마다 그곳 봄소식을 전해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가을입니다.

 

며칠 전 봉하마을에 사는 지인과 오랜만에 긴긴 전화 대화를 했습니다. 올해 친환경 쌀 작황이 어떻네, 단감 농사는 저떻네, 자원봉사 다니던 누구네 딸이 11월에 결혼 날짜를 잡았네 하면서 한참 안부를 주고받았지요. 그렇게 시작된 봉하 자원봉사 이야기가 어느덧 ‘노무현 대통령과 수크령’으로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었습니다.

2008년 봄날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봉하마을 뱀산 아래 제방 길을 지나던 노 대통령이 조팝나무와 수크령이 군데군데 자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방 비탈에 잡목과 잡초들을 제거하고 조팝나무로 쭉 이어지게 하면 좋겠네요.”

 

당시는 대통령 귀향과 함께 봉하마을에 즐거운 변화의 바람이 한창 불 때였습니다.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친환경 생태농업을 준비하느라 바빴고, 전국에서 모인 자원봉사자들은 마을 주변 청소와 숲 가꾸기, 생태 연못 조성 등으로 땀이 마를 날이 없었죠. 하지만 조금씩 아름답게 변해가는 봉하마을을 바라보는 건 정말 가슴 뛰는 일이었습니다.

이날 노 대통령의 한마디는 봉하 일꾼들의 마음을 더욱 들뜨게 했습니다. 참모진과 자원봉사자들은 바로 의기투합해 아예 조팝나무 산책로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주말마다 ‘노삼모’(노무현 대통령과 삼겹살 파티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들녘에 모여 조팝나무를 심었습니다. 이듬해 제방 일대를 하얗게 물들여줄 조팝나무꽃을 생각하니 힘이 샘솟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심은 나무와 나무가 군락이 되고, 군락이 이어져 어느새 조팝나무 산책로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꽃과 나무를 가꾸다 보면 생명력이 너무 억세서 주변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하거나 경관을 해치는 잡초, 잡목들은 바로바로 제거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잡초라는 게 관리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랍니다. “베고 나서 돌아서면 다시 한 뼘씩 자라 있는 게 잡초”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거든요.

 

그날도 자원봉사자들이 조팝나무 주변 들녘에서 열심히 제초작업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노 대통령이 깜짝 놀란 듯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크령, 그건 베지 마세요.”

참모진이나 자원봉사자들이나 대부분 논일, 밭일이 처음이거나 겨우 손에 익혀가는 정도였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수크령이 뭐지?’ 하는 눈치였습니다.

 

“제게는 추억이 많은 풀이예요. 개구쟁이 어릴 때는 수크령 줄기를 묶어 친구들 발을 걸어 넘어뜨리곤 깔깔대며 놀기도 했는데...하여간 복스럽고 보기 좋으니 수크령은 베지 말지요.”

 

사실 수크령은 그리 보기 드문 식물은 아닙니다. 전국적으로 두루 분포하는데, 주로 산 가장자리나 논, 밭둑, 길가의 양지바른 곳에서 자랍니다. 모양새는 강아지풀을 많이 닮았어요. 벼가 여물 때를 알려준다고 해서 ‘가을의 전령사’라고도 부른답니다. 단순한 들풀이 아니라 관상용, 약재용, 공예품 재료 등 쓰임새가 제법 많은 식물입니다.

모르면 몰라도 이날 노 대통령과 수크령에 얽힌 일화를 듣게 된 자원봉사자들은 이후에도 제초작업을 할 때면 실수로라도 수크령을 베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했어요.

 

요즘은 관리 체계가 잘 잡혀서 전처럼 자원봉사자들이 주말마다 풀을 베거나, 나무를 보살필 일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에 모일 일도 상대적으로 적어지다 보니 예전만큼 살가운 만남도 많이 줄었지요. 작은 일화일 뿐이지만 참 살가웠던 ‘수크령 이야기’를 아는 사람도 이제는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봉하마을에는 계절마다 참 많은 꽃들이 핍니다. 산수유, 매화, 벚꽃, 진달래를 필두로 앵두, 자두, 살구, 사과 등 과실수들이 뒤를 잇고 죽단화, 찔레꽃, 이팝나무, 배롱나무 등 셀 수도 없이 수목의 종류가 다양합니다.

 

이 중에서 조팝나무는 계절이 지나면 앙상해진 줄기가 이리저리 얽혀 따로 관리하지 않으면 지저분해지고, 수크령은 애초에 관심을 받는 대상도 아니라서 꽃이 피고 지거나 가을에 노랗게 물드는 모습을 눈여겨보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예쁜 꽃은 예쁜 대로, 투박하고 수더분한 것은 또 그런대로 봉하의 아름다움을 채워가는 소중한 생명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노 대통령님도 그런 마음을 이야기하신 것 같고요.

어쩌다 보니 말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끝으로 요맘때 화포천과 봉하들녘 주변의 수크령 사진을 올려봅니다. 나름대로 운치 있고 가을 풍경에 잘 어울리지요? 봄에는 조팝나무, 가을에는 수크령. 여러분도 계절마다 ‘내 마음의 꽃’ 하나쯤은 키워보는 것은 어떠실까요?

💬

“따뜻하고 진솔하고 깨어있게 하는 소식에

늘 감사드립니다.

나를 돌아보고, 한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에

힘을 보태는 시민이 될게요.”


💬

“김대중, 노무현 두 분 대통령님을

다시금 배워가고 있습니다.

두 분은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오늘을 사는 또 다른 김대중, 노무현이 많이 계십니다.

뉴스레터를 통해 그분들의 생각과 삶을

다뤄보면 어떨까 생각해보았습니다.”

 

💬

“노무현 대통령님 재직 당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소중하고도 사소한 일상이나 업무 등을

짧게나마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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