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바꾼 세 마리 토끼들
2023년 흑토끼의 해가 밝았습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가 '영감한스푼' 뉴스레터를 2021년 12월 31일에 시작했는데, 그것도 벌써 1년이 되었네요.
마침 레터를 쓰고 있는 지금 저는 새로운 부서로 발령받아, 문화부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현장 취재를 통해 '영감한스푼' 코너가 더욱 다양해질 것 같습니다.
변화하는 동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의견 부탁드릴게요:)
오늘은 신년 분위기에 맞춰 조금은 경쾌하게, 예술을 바꾼 토끼들의 이야기를 가져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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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토끼를 따라가시오'(follow the white rabbit)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를 진실의 세계로 이끈 이 대사를 기억하시나요?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도 앨리스는 시계를 든 토끼를 따라 토끼굴로 들어가면서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를 마주하게 됩니다.
서양에서는 이렇게 토끼가 영리한 듯 멍청하고, 온순한 듯 사나운 알쏭달쏭한 캐릭터이자,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가이드를 상징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술 속에서는 어땠을까요?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토끼를 꼽으라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다음 세 작품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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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토끼: 끈기와 인내가 만들어낸 사실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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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00년 전 독일에서 그려진 이 작품은 '북구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알브레히트 뒤러의 수채화 '야생 토끼'입니다.
미술을 쉽게 풀어낸 곰브리치의 책 '서양 미술사'에서도 이 작품이 언급 되는데요. 곰브리치는 "눈에 보이는 세상을 끈기와 인내로 충실하게 표현해내고자 한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이야 카메라로 모든 순간을 쉽게 기록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적으로 그려낸 그림의 감동이 500년 전보다는 덜합니다. 그럼에도 이 그림을 가까이서 보면 하나하나 살아있는 토끼의 털, 흰 배경에 극적으로 드리워진 그림자, 입을 금방이라도 오물거릴 것 같은 생동감이 돋보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부분은 바로 토끼의 눈입니다. 한 번 확대해서 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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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의 작은 눈동자에 비친 흰 두 줄이 보이시나요?
이 수채화에는 배경이 없이 토끼만 덩그러니 놓여있죠. 그런데 토끼의 눈에는 무언가가 비치고 있습니다. 미술사학자들은 이것이 뒤러의 작업실에 있었던 창문의 잔상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면서 이 잔상이 미지의 공간에 있는 것만 같았던 토끼를 현실 속으로 데려오는 신비로운 통로라고 의미부여를 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첫 번째 토끼가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 인간의 손으로 도달할 수 있는 사실성의 극치까지 이르려는 '장인 정신'을 보여준다는 점이지요. 그리고 500년 뒤 이 토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상징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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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토끼: 오래된 체제의 한계를 드러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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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보이스, 죽은 토끼에게 그림을 설명하는 법, 196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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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남자는 역시 독일의 예술가 요셉 보이스입니다. 뒤러가 '북구 르네상스의 다빈치'였다면, 요셉 보이스는 예술을 삶의 영역으로 확장시키고 다양한 후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며 '20세기의 다빈치'로 불렸습니다.
그런 그의 품에 토끼가 안겨있죠? 1965년 보이스가 선보인 '죽은 토끼에게 그림을 설명하는 법'은 바로 퍼포먼스 작품입니다.
보이스는 자신의 머리를 꿀과 금박으로 덮은 다음 죽은 토끼를 끌어안고 갤러리를 돌아 다니며 그림을 설명했습니다. 토끼의 귀에 대고 알 수 없는 말을 속삭이는 그의 모습을 관객들은 문이 잠긴 갤러리 밖에서 창문으로 구경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3시간 동안 퍼포먼스를 한 다음 보이스는 토끼를 안은 채 의자에 앉아 관객을 맞이했습니다. 이 퍼포먼스는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요?
"나에게 토끼는 부활의 상징입니다. '부활'이란 건 그런데 인간의 상상에서만 가능한 일이죠. 또 내 머리의 꿀은 인간의 사고를 말합니다. 벌이 꿀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인간은 사고하고 개념을 만들어낼 수 있죠. 이러한 인간의 능력이 죽은 것을 살게 만들지만, 또 살아있는 것을 죽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저는 보이스의 이 말을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이어진 냉전의 맥락에서 이해합니다. 즉 이데올로기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만들고 사회와 시스템 발전시켰지만, 그것이 도그마가 되면서 토끼와 자연처럼 살아있는 것들을 죽게 만들수도 있다는 것이죠. (보이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영감한스푼 클래식'에서 더 해보겠습니다.)
여기서 토끼는 '오래된 체제의 한계'와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작'을 상징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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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토끼: 매끄럽고 반짝이는 현대인의 욕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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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의 흠도 없이 매끄럽고, 반짝이며, 아주 비싼 것...!
냉전 체제가 무너진 이후 자본주의는 세계의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지며 무한히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시대가 낳은 예술 속 토끼의 모습은 '사실적인 토끼'도, '현명한 토끼'도 아닌 '어마어마하게 비싼 토끼'입니다. 바로 제프 쿤스의 조각 작품이죠.
이 작품은 2019년 소더비 경매에서 1000억 원 넘는 가격에 낙찰되며 잠시나마 '(경매로 팔린 작품 중)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로써 세 번째 토끼는 예술가의 붓터치, 예술가의 사상 따위는 필요 없는, '비싸기로 유명한'것이 가장 주목받는 시대의 상징이 되었죠.
물론 이 시대의 모든 사람이 값비싼 것을 찬양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지만, 흥미로운 구석도 많습니다. 우선은 끈기와 집념으로 그림을 그린 뒤러와 달리 쿤스는 자신의 조각 작품을 전문 생산 공장에 맡기기로 유명합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쓰이는 오스카 트로피를 제작하는 업체에 의뢰한다고 하죠.
또 사회와 시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사유한 보이스와 달리 쿤스는 지금 돈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영민하게 캐치해냅니다. 그가 미술관 연간 회원권의 영업 직원으로 엄청난 실적을 낸 뒤 스스로 작품을 만들며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됐다는 것, 알고 계시죠?
쿤스의 비싼 토끼를 보며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있나' 약간은 절망적인 고민에 빠져들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 역시 지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면 소셜 미디어의 반짝이는 환상들에 매료된다는 것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겠네요.😅
독자 여러분은 예술 속 어떤 토끼가 가장 매력적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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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모처럼 '의견이 분분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난주 레터에서 소개한 다다 예술 작품 중 가장 매력적인 작품은 게오르게 그로스의 회화 '메트로폴리스'(37.5%)였습니다. 하지만 뒤샹의 '샘'(25%), 만 레이의 '선물'(25%), 오토 딕스의 판화(12.5%)도 골고루 표를 얻었습니다.
😁: 지난 뉴스레터를 보고 보내주신 의견을 소개합니다.
🔸게오르게 그로스의 작품은 디스토피아를 보여준 프리츠 랑 감독의 영화 메트로폴리스를 떠올리게 하네요. 문명 안에서 스스로 파괴되고 방황하는 느낌이 강렬해요. 오늘도 정말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항상 묘한 긴장감으로 몰입되는 소설을 읽는 기분이예요 ^^ 100여년 전 다다가 우리 문명에 대한 절망에서 파괴를 통한 새로운 방향으로의 걸음을 촉발시켰다면, 지금이 두 번째의 다다가 시작되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되요. 그때는 인간의 세계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성찰이었다면, 이제는 인간과 지구, 다른 모든 생명체와의 관계에 관한 완전한 각성과 재설정에 관해서요. 그동안 인간 중심으로, 인간이 가장 우월한 존재이자 모든 권한을 가진 존재로서 지구와 생명들을 다루고 사용해 온 결과, 현대 문명이 초래할 무서운 미래가 임박했으니까요.(felix)
👉felix님 반갑고 흥미로운 의견 감사드립니다! 두 번째 다다는 이미 1960년대 '네오다다'가 있었고, 또 동시대 예술가들은 다다의 시각 언어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답니다. 추후에 기회가 되면 이것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요즘 프렉탈구조에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삶의다양성,우주속에서의 인간의 의미 등을 생각하게되었습니다 다다이즘도 이에 연장선이라생각합니다 언제나 멋진 인사이트를 제공해주시는 기자님 내년에도 좋은기사 기대하겠습니다 새해복많이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러한 다다이즘은 현재는 어떤 미술 조류로 계승되고 있는 가요? 없어졌다면 왜 그럴까요?
👉이제는 특정한 조류라기 보다는 주변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시각 언어가 되었습니다. 아마 한국의 예술대학 졸업전에만 가셔도 다다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쉽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다다예술은 결국 무의미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예술의 본연의 기능인 느낌으로서 만족을 얻어 웃게하는데 귀착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Afterglow 이호연)
😊: 다양한 의견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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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감 한 스푼'이 전해드릴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더 가까운 소통을 원하신다면 저의 인스타그램(@mini.kimi)으로도 찾아오셔서 편히 이야기 나누어주세요.
김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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