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1. 나에 대해 하는 말들

아침부터 비가 부산스럽게 내렸어. 아슬아슬하게 마른 옷을 입고 집을 나섰어. 버스가 오는지 내다보려 살짝 내민 머리에 물이 투툭하고 떨어졌어. 고데기로 겨우 체면을 살려 놓은 앞머리가 젖고, 버스는 전 역이라고 뜬 지 오분이 넘어가는데도 도착하지 않았어. 버스에 타서는 에어컨 바람으로 필사적으로 앞머리를 말렸어. 조금 뽀송해졌나 싶었는데 환승 정류장에서 다시 그대로 젖고 말았지.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보러 가는 길인데, 왜 이렇게 비가 성가시게 내리는지 조금 짜증이 났어.  


하지만 친구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오늘 비가 와서 참 좋다 생각했어. 창밖으로 보이는 모든 풍경이 운치 있어 보였고, 카페에서 마신 따듯한 차와도 비가 잘 어울렸어. 카페 입구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어. 흰색, 치즈색, 검은색이 모두 섞인, 덩치가 작은 고양이었어. 카페 카운터에 그 고양이를 그린 듯한 캐릭터 포스터가 있어서 사장님께 물어보니 그 고양이가 맞다고 하셨어. 사장님은 고양이가 가게로 들어오면 키우고 싶은데, 경계가 심해서 밥과 물을 챙겨주는 사장님에게도 아직 한 번도 다가온 적이 없다고 해. 벌써부터 포스터를 만들어 놓고 고양이가 마음을 열어주길 기다리고 있는 사장님이 조금 귀여웠어. 친구는 근처 편의점에 가서 고양이 간식을 사 왔어. '참치맛이 나는 겉바속촉' 과자라고 적힌 홍보 문구에 나도 모르게 맛있겠다고 생각했어.(웃음)


오늘은 친구의 이야기도 듣고, 내 이야기도 많이 했어. 우리의 벤다이어그램이 겹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수시로 넘나들며, 이야기를 나눴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순간 해방감이 들었던 때가 있었어. 친구가 운동하러 다니는 곳에 고등학생이 있는데, 그 아이가 자기는 어디 앉아서 일하는 건 상상할 수 없다고, 사무직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 말하는 걸 들으며 친구는 자신이 이상적인 직업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옅어졌다고 말했어. 그 이야기를 듣는데 나도 머리가 조금 개운해지는 기분이 들었어. 인지하지 못한 순간에 서서히 정상성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납작해져 있던 시야가 탁 트이는 기분이었어. 


삶의 다양성을, 사람의 입체성을 점점 간과하게 되는 것 같아. 다양성과 입체성을 인식하는 데에는 그것을 단일하고 납작하게 볼 때보다 더 큰 에너지가 드는데, 사는 건 바쁘고 에너지는 없으니 그것들을 아낄 수 있는 인지전략에 익숙해지는 거지. 편견도 그것의 한 종류라고 생각해.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 나쁘다 말할 수는 없지만, 편견이 혐오나 배제의 근거가 되기는 너무 쉽기에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해. 


꼭 그것이 아니라도, 단맛만 가득한 인공 감미료보다 시고, 달고, 짜고, 감칠맛 나는 과일들을 더 좋아하듯이. 세상과 사람의 얕은 면면만을 보는 것보다는 그 깊이를, 세부를 알고 풍부하게 느끼는 것이 좋기 때문에 이제껏 바빠서, 또는 불안해서 쌓아놓은 정상성을 추구하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싶어. 무엇보다 그런 마음은 나 스스로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판단하게 되기에, 나랑 친하게 지내기 위해서라도 버려야 할 것 같아. 며칠 전 읽은 소설에서도 이 이야기와 맞닿는 부분이 있었어.


"그 모든 평가와 판단을 모두 모은다고 해도 그것이 이모라는 사람의 진실에 가닿을 수는 없을 것이다." (최은영, <이모에게> 中)


내가 나를 향한 평가와 판단의 합이 아니듯, 타인도 그렇겠지. 이걸 늘 염두에 두고 살고 싶다고 오늘의 나는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한편, 타인이 나를 설명해 주는 말들은 내가 나를 알아가는 데에 힌트가 되어주기도 해서 재미있는 것 같아. 특히 내가 좋아하는 힌트는 내가 한 번도 그런 방식으로 나를 생각해 본 적 없는 관점의 이야기들이야. 가령, 나는 내가 굉장히 튀지 않고 전략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누군가 나를 인상 깊고 순수하다고 할 때 재미있다고 느끼고, 또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내 모습을 알아볼 기회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지.


결, 너는 어때? 너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말들 중 낯설게 다가오는 것이 있니?


*  


오늘은 동생이 오랜만에 집에 왔어. 직접 구워온 마들렌을 한가득 들고 왔더라고. 나도 친구가 선물해 준 베이글을 식탁에 올려두었고, 냉장고에도 케이크 시트가 하나 있어. 뭔가 집에 빵이 많으니 괜히 든든한 기분이야. 


비가 계속 오고 있어. 비가 그치면 본격적으로 가을일까? 궁금해하고 있어. 


그럼 결, 다음 주에 또 편지할게.  



2023.09.16. 민경

추신. 고양이가 있는 카페 풍경을 동봉할게:)
답장은 여기로 보내주면 돼,
보내준 답장은 우리 모두 볼 수 있다는 점 기억해줘.
모두들 너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있으니까.
#71-2. 지난주에 받은 답장을 나눌게, 도움을 잘 요청하는지 물었어.
"좋은 이웃을 곁에 두고 싶어"

안녕! 민경, 구월의 중턱을 지나가고 있구나! 여전히 덥고 더군다나 이번 주에는 내내 흐리고 비도 많이 내리는 변덕쟁이 가을을 만났어. 소위 말하는 대목이 다가오고 있어서 재래 시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고 덩달아 마음도 어수선한 것 같아.

오늘 나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복권 방에 들러서 ‘로또’라는 것을 사 보았어. 오늘 근무 중에 ‘로또’가 화제였었는데 늘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로또 파는 가게가 눈에 들어오길래 한번 들러 보았어. 생판 처음은 아니지만, 예전에 돼지 꿈을 꾸었을 때 한 번 사 본 기억이 있고 심부름으로 한 번 정도 더 발걸음을 한 적이 있지만 거의 처음이나 마찬가지여서 복권은 카드 결제가 안 된다는 사실을 오늘 알게 될 정도야. 민경, 너는 아마 나보다 더 이 영역엔 무지 할 것 같은데...그렇지? 다음 주 토요일에 당첨자 발표가 난다고 하는데 살짝 궁금하긴 하지만 당첨 될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으니까 간절한 마음은 없어. 나의 노력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그저 운에만 기대어야 하는 일에 우리는 간절한 마음을 실지는 않는 것 같아. 운에서 멀어지는 일일수록, 나의 노력에 대한 결과 치를 기다려야 했던 과거에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난다. 요즈음은 어떠 어떠하기를 바라는 소망보다는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맘이 더 많은 것 같아. 인생의 하행 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만큼 불안한 마음도 커졌어. 얕은 바람에도 정신 없이 흔들리는 풀보다는 거친 바람에도 끄덕 없는 바윗돌 같은 마음을 갖고 싶은데 어떻게 마음 수련을 하면 좋을까? 하루 이틀 바짝 벼락치기 한다고 얻어질 것 같지는 않은데 ...아주 가끔 깊이를 가늠 할 수 없는 눈매를 가진 사람을 만날 때면 어떠한 인생을 살아 왔을까 찬찬히 그 사람의 주변을 살펴본다. 내공을 차곡 차고 쌓고 다진 모습을 보노라면 덩달아 마음이 차분해진다. 좋은 이웃을 곁에 두고 싶어. 이리 저리 흔들리는 내 마음까지도 차분해 질 수 있도록...

지난 주 네 편지를 읽고 살짝 네가 부러워졌어. 너의 필요를 알아차리고 도움을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정말 럭키한 족속이 아니면 누릴 수 없은 영역 아냐? 더군다나 본인도 못 알아차린 도움까지? 유구무언! 하지만 나는 어쩌면 부러워할 자격도 없을지 몰라. 나는 극단적으로 남의 도움을 받기 부담스러워하는 족속이니까. 나의 부족이나 결함을 절대로 남이 못 알아차리도록 많이 신경을 쓰는 편이지. 조금 유전적인 것 같아. 나의 어머니도 그러하셔서 응급실에 기어가시면서도 지척에 있는 자식에게 전화 한 통이 없으셨거든. 사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세상에는 여러 유형의 사람이 있는 것 같아. 무조건 도움을 요청하거나 꼭 필요한 경우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감사하거나 혹은 당연 시 하거나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물론 나처럼 절대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자존심 꽤 강한 부류도 있는 것 같아. 예전에 모 수업 과정에서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는 방법’에 관한 실연을 한 적이 있는데 비슷한 맥락으로 나는 또 거절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하여 엄청 당황했던 기억이 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도움에 대한 거절하는 방법도 학습이 필요한 것 같아. 지금의 교육 과정에는 이러한 학습 과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학습 받지 못했기 때문에 나이 들었지만 어색한 것 같아. 필요한 줄 알면서도,

민경아, 네가 좋아하는 환절기를 맘껏 누리기를 바래. 또 만나!

추신 : 만 원이나 투자한 로또에 간절한 마음을 실어 보내면 본전이라도 건질 수 있을까?
*
맞아, 예상대로 나는 복권을 아직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초심자야!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말이 있지? 그 기운을 꽉 채워서 언젠가 한 번 사보려고 해.(웃음)

마음을 수련하는 방법으로는 명상과 운동이 가장 유명한 것 같아. 또 관점을 바꾸어 주는 책들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고. 하지만 내가 가장 추천하는 방식은 '나만 보는 일기'를 쓰는 거야. 나도 한동안 바빠서 잊고 있다가 얼마 전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는데, 폭풍 같은 외부 환경 속에서 중심을 잡는 것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 나는 종이 일기장은 왠지 불안하고, 인터넷 사이트도 영 끌리지 않아서 한글 파일에 암호를 걸어두고 일기를 쓰고 있어. 만약 비밀번호를 까먹거나 노트북이 고장 나면 어떤 방법으로도 찾을 수 없겠지만...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일기는 쓰는 순간 그 효능이 모두 발휘되니까. 너에게도 일기 쓰기를 추천하고 싶어.

간절한 마음이 통할까? 너의 복권 당첨 결과가 나도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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