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 오늘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입니다. 장애를 재정의하고 장애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열어주는 책,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책을 같이 찾고 읽고 싶어서 책타래 번외편을 준비했어요.

제가 소개하고 싶은 책은 시각장애인 당사자가 장애인 차별로 이어지는 ‘시각 중심주의’를 예리하고 호쾌하게 통찰하는 책 『거기 눈을 심어라』입니다. 저자 M. 리오나 고댕은 감각기관 중 눈을 가장 우선시하고 시각만을 지식 생산의 근거로 삼는 편향적인 시각 중심 문화를 흩트리고 깨트리는데요. 비시각장애인 독자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문화를 ‘문제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그것에 근원적인 문제 제기를 하게 하는, 힘 있고 매력적인 글쓰기를 선보여요.

마흔일곱 번째 책타래에서 이 책과 같이 읽으면 좋을 책들을 소개한 바 있는데요. 오늘은 이 책의 디자인 후기를 전합니다. 문학, 철학, 대중문화 콘텐츠가 시각장애(인)를 어떻게 재현해왔는지를 살피는 문화사이자 예술 비평이면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간 경험을 엮은 독특한 에세이……!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울 만큼 여러 결을 가진 이 책이 전하는 감각과 감성을 어떤 이미지와 제목으로 표현해야 할지 책을 만들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이런 과제를 디자이너는 어떻게 풀어냈을지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이 책을 만날 독자분들이 책의 요소 요소를 좀 더 자세히 살펴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면서요.
  

지난 어떤 세대보다도 눈을 혹사하는 세대에 속하면서 그중에서도 눈을 상당히 혹사하는 직군에 속하는 디자이너입니다.


예언자적 제목을 가진 ‘눈멂’에 대한 책이 가지고 갈 만한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역시 안과에서 많이 보여주는 풍경 중 하나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먼 곳에 놓여 있는 열기구나 빨간 지붕 집의 풍경은 안과에만 있는 노스텔지어적 파라다이스인 것 같습니다. 닿을 수 없고 뭔가 흐릿하고 가는 길도 좀 이상한……!

그런 이미지에다 글자들은 제목의 어조를 살려 가운데 정렬로 줄지어 두고, 무엇보다도 크기가 엄청 컸으면 했어요.(사실 지금 표지에서보다 더 컸는데 너무해 보여서 줄였습니다.) 이 ‘엄청 큰’ 특징은 본문에서도 이어집니다. 이 정도 본문 글자 크기는 어린이용 그림책 등에 주로 쓰이는데요, 성인을 대상으로 한 단행본에는 처음 써봤습니다. 물론 저시력자가 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에요. 기존 성인 단행본을 보는 데 불편을 느꼈을 독서 인구의 일부만이라도 배려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또 점자책을 펴내지는 못하지만, 표지에는 서지 정보를 한국어 점자로 표기했어요. 점자는 글자를 분해해 다시 펼쳐 쓰는 것이라 한국어는 번역하면 그 길이가 세 배쯤 늘어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한국어 사용자지만 한국어 점자를 전혀 몰라서 여러 경로로 거듭 확인하고 점역사분께 확인을 받아야 했다는 것, 어떤 후가공으로 접근해야 잘 읽힐지 생각보다 정보가 없다는 것 등 ‘눈이 잘 보이는’ 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작업이었습니다.

―이지선 with text(『거기 눈을 심어라』 디자이너)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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