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이후, 이의 진압과 새로운 공화국을 열망해 온 6개월이 곧 정치적인 매듭 하나를 앞두고 있습니다. 뉴스레터 38호를 발행합니다.

지난 호에 이어 이삼성 교수의 <트럼프의 미국과 세계, 그리고 한국의 선택> 강연 자료 후반부를 싣습니다. 필자는 한국 외교가 한반도 평화 진전의 동력을 만들다 멈춰서는 곳이 어디였는지를 설명하면서 한국에 진보적 정권이 다시 들어선다 해도 문재인 정부가 빠졌던 비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과거의 전철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이번 호부터  3회에 걸쳐 김학민 선생님의 <리영희의 슬기로운 감방생활>을 싣습니다. 리영희의 반공법과 감방하고의 인연은 1964년 처음 시작됬습니다. 35살, 외무부를 출입하던 조선일보 정치부기자 시절입니다. 김학민 선생님은 그해 박정희정권의 언론윤리위원회법 추진에 맞서 싸우면서 결성된 한국기자협회의 날근날근해진 기자협회보에 실린  리영희의 옥중기를 찾아 실어주었습니다.

재단은 이번 달 27일 소소한 이야기마당을 하나 엽니다. 서로의 존재는 알았지만 남녀 사동으로 분리된 감옥에서 각자 기막힌 수형생활을 한 유영수 김영희 두 분에게 서로가 그리고 역사가 어떻게 스며들고 직조되갔는지를 김효순 이시장님의 진행으로 들어보려합니다. 많은 신청 바랍니다.

재단은 처음으로 이사와 운영팀이 제주도로 엠티를 다녀왔습니다. 취지에 맞게 잘 먹고마시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한 이사님은 초원에서 뛰기놀이 사진을 찍자는 말에 “리영희재단이 이런것도 하나요” 해서 서로 웃었습니다. 따듯한 환대를 베풀어주신 제주삼달다방 오케이와 무심 님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음은 너무 취지에 맞게 노느라 다는 다루지 못한 재단 비젼 관련 발제의 일부입니다.
“리영희 정신이라 할 게 있다면 그것은 세상은 바꿀수 있고 다른 세상이 있을수 있다는 꿈을 꾸는가 아닌가에서 전자를 택하는 데서 시작할 것이다. 리영희는 다른 세상을 위한 어떤 움직임에도 가슴 뛰면서 주시하고 그 실험 때로는 혼란을 주의깊게 바라봐 왔다. 이것은 책상물림의 이론, 이론의 완결성 정교함 보다는 차라리 태도 의 문제였다.”
재단소식

유영수 김영희 부부의 토크쇼에 초대합니다.

-분단의 비극을 불멸의 사랑으로 승화시킨 연인들의 이야기

 
리영희재단 사무국
리영희 선생은 2007년 새해를 앞두고 오사카에 거주하는 어느 부부에게 이런 엽서를 보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두 사람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의 결과라고 생각해... 건강관리에 각별히 조심할 것.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으니까. 요 조심!”
정이 뚝뚝 배어나오는 이 글의 수취인은 유영수 김영희 부부입니다. 도대체 무슨 인연이 있는 걸까요? 리 선생이 1970년대 후반 이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일반 사회가 아니라 광주교도소였습니다. 두 사람은 당시 남한 에서 천형이나 다름없는 ‘간첩’ 혐의를 뒤집어쓰고 수감 중이었습니다.
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


트럼프의 미국과 세계, 그리고 한국의 선택

2.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가 정답이다

 
이삼성 / 한림대 명예교수

강경파들이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장악한 사이에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9.19 군사합의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문 정부는 트럼프 외교의 방향을 다시 되돌려 한반도 평화체제를 진전시킬 수 있을 대담한 외교적 노력은 더 이상 보여주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9.19 합의 후 가진 귀경 기자회견에서 “평화협정은 북한 비핵화 완성 후의 일”이라고 공개적으로 못박았다. 종전선언만을 거론했다. 이미 핵무장을 완성한 북한의 관점에서는 비핵화 진전에 불가결한 전제조건은 조약 수준의 평화협정이지 종전선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을 평화협정을 뒤로 미루는 명분으로 활용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남북관계는 한계에 도달했고, 한국외교는 더 이상 북미관계 진전의 동력도 될 수 없었다.

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

리영희 선생의 슬기로운 감옥 생활 1

 
 김학민 / 경기아트센터 이사장

그는 죽었으리라 생각된다. 그 소년수가 신음하면서 나간 영천 형무소의 높은 정문에 마 침 12월 7일 유엔 인권선언을 기념하는, <인권을 옹호하자> 하는 화려한 플래카드가 걸린 것을 몇 번이고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의 해결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몰라 초조하게 검찰실에 앉아 있는데, 찾아온 기자협 회 회장단, 사무국장 그리고 협회 간부들을 봤을 때의 기쁨은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밖에서 움직여주고 있다’는 기분은 확실히 나를 흐뭇하게 해주었다. 바로 음력 11월 2일 나의 생일인 데다가 가져온 성의를 생각해서 먹은 박카스, 능금, 카스테라 때문 에 이틀 동안 설사를 하다 나오기는 했지만…. 압력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뭣인가 기자 사 회의 뭉친 힘이 현실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본다는 것은 그런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더욱 누구에게나 고마운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되었다.


발행인: 김효순(리영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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