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려니 해. 참는 게 이기는 거야.”
여름철 베란다 창문으로 올라오는 담배 냄새. 아파트 단지를 들어오는 3분 남짓의 시간에도 저만치 가는 누군가의 ‘길빵(걸어가며 담배를 피우는 것)’이 오만상을 짓게 한다.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여름엔 두세 차례씩 길빵을 당하고 나면 얼마 남아 있지 않던 인류애마저 바닥나려 한다. 시민의식과 기본적인 상식선을 운운하며 날뛰는 내게 주위에서는 말한다. “괜히 말 붙였다가 싸움 난다. 네가 참아.”
과연 이긴 것일까. 문제는 내 일상에 존재하면서 불특정 다수의 얼굴을 하고 나를 괴롭힌다. 일개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넘겼는데, 정작 문제는 매일 나를 찾아오고 나는 반항도 없이 매일 지는 기분이었다. 생각하니 길방 뿐만 아니다. 버스정류장에서 실종된 한 줄 서기, 잔반이 담긴 채 그대로 버려진 회사 캔틴의 도시락통, 배려 없는 혐오 발언들…. 특정한 누구를 탓하기엔 보편적이고 광범위한데, 당장 해결해야 한다기에는 어딘가 소소한 듯한 문제들이 도처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번 여름 참여한 와글의 ‘세상을 바꾸는 캠페이너’ 4주 완성 과정은 더 이상 참지 않는 한 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줬다. 7단계 전략을 통해 내가 불편을 느꼈던 이슈를 문제로 정의하고 목표를 정해 던질 메시지까지 고민할 수 있었다. 특히 ‘지형분석’이 도움이 됐다. 당사자와 잠재적 협력자, 반대자 등으로 문제 주위의 이해관계를 벼려보니 누구와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되는지 도출할 수 있었다. 나의 ‘의’에 가려 평가절하하기 쉬운 반대자의 논리와 메시지를 들여다보는 방식도 좋았다. 단계가 많지만, 잘 정리된 워크시트 덕에 어렵지 않았다.
참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 이유도 실감했다. 플라스틱 재활용 문제로 캠페인 기획을 실습할 때, 조원인 지역 자원봉사센터 선생님은 지역 단체들과 구청의 관련과 이름을 바로 짚어주셨다. 아이쿱생협 선생님은 주변에서 보고 들으신 사례가 풍부했다. 저마다의 역량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자연스레 나 또한 콘텐츠를 쓰며 찾아놓은 사례 중 공유할 것은 없나 열심히 뒤져보게 되었다. 흔히 시민을 그저 많은 사람의 집합이라 여길 때가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역량과 자원을 가진 이들이 함께 움직인다면, 강력하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처럼 분개한 사람들, 일상 속 의제를 바꾸려고 모인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심심한 위로도 받았다. 그런 느낌이 좋아 점심도 먹지 않고 달려가 앉아있기도 했다. 과정 중 장마를 겪으며 기후 위기에 대해 걱정할 때, 생활 의제에 대해 각자의 사례를 들어가며 공감할 때도 기뻤다. 회사에서 사회혁신 툴킷을 제작하며 수강을 했는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몰입했고, 앞으로도 7가지 단계를 여러 의제에 적용해보고 삶의 자리에서 실행에 옮겨보려 한다. 단점 하나 없는 능숙한 진행과 알짜배기 강의로 맞아주신 와글 분들 모두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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