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재단이 세 번째 뉴스레터를 발행합니다.

이번 달에는 리영희 클럽 2022 ‘리영희와 현장’ 강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은 많고 듣는 사람은 적은 세태에, 어떤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새로운 관점의 문제를 제기해 주는 최영묵, 차지호, 정욱식, 조효제 선생님 모두와 활발한 질문을 하는 수강생들이 함께 열띤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8월부터 재단 유투브 채널에 공개되기 전, 간단한 강의 소개와 수강생 후기를 실었습니다.

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이병남 이사 편입니다. 일본에 계신 이철 양심수동우회 회장이 귀한 글을 보내오셨고 한겨레에서 논설주간, 부사장을 지낸 성한표 선생이 25년 간직한 리영희 편지와 함께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리영희식 연대-격려 저널리즘의 자료 정리를 시작할 수 있게 돼서 고맙습니다. 리영희의 편지, 팩스 등을 갖고 계신 분은 재단에 소식 알려주기 부탁드립니다.

 

뉴스레터 1호, 리영희 아카이브에 실린 인터뷰와 후기 작성자인 야마구치 선생이 그 과정을 소개한 <주간 금요일>을 보내왔는데 해당 글을 본 한승동 선생이 다음과 같은 글을 주셔서 여기에 싣습니다.

“새로운 중세적 세계구조의 공공연한 형성을 간과하지 마라”

 

지난 4월 리영희 재단 뉴스레터 제1호 ‘리영희 아카이브’에 “그러니까 일본이 좋은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는 제목으로, 2005년에 일본 작가가 리영희 선생 댁을 찾아가 인터뷰한 내용이 번역돼 실렸다. 원문은 일본 월간지 <세카이> 2006년 12월호에 실린 것인데, 그로부터 16년이 지나 그 인터뷰가 재단의 뉴스레터에 실려 한국 독자들을 만나게 됐다. 그 야마구치 이즈미 작가가 그와 관련해 느낀 감개를 자신이 연재 중인 일본 주간지 <주간 금요일>(2022년 5월 27일, 1378호)에 실은 글(제37신)에 넣어 썼는데, 서두의 문장은 그 글의 제목이다.


야마구치 작가는 30여년 전 동서 냉전이 무너졌을 때 ‘자본주의의 승리가 선전되는 시대’를 ‘인권과 평등 개념이 내팽개쳐지는 대반동의 새로운 중세’의 시작으로 받아들였다.(<세카이> 1992년 4월~12월호) 그러면서 “미국에겐 전쟁과 무력분쟁이 없는 세계는 불안한 세계다”고 한 리영희 선생 말을 떠올렸는데, 뉴스레터 제1호 아카이브의 인터뷰 게재 관련 ‘후기’를 쓰면서 그는, 리영희 선생이라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세계를 어떻게 보실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고 썼다. 이번 <주간 금요일> 연재글에도 리영희 선생 ‘어록’ 몇 개를 인용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이것이다. “냉전은 유럽에서 생겨나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유럽에서의 ‘평화’는 주변 제국, 특히 한국과 베트남에서처럼 (…) 대리전쟁이 일어난 아시아 제국의 희생을 대가로 유지된 것이다.” 야마구치 작가는 그러면서 이제 그 ‘주변 제국’에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지금의 동유럽이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30년 전 ‘새로운 중세의 시작’을 알린 자신의 예언(?)이 지금 실현되고 있다고 했다. 그 연재글의 마지막 문장도 인상적이었다. “본래 남북 분단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나라에 귀속된 나 자신의 입장을 곱씹으면서.”

 

1993년에 창간된 <주간 금요일>은 원래 일본의 <한겨레>(1988년 5월 창간)를 지향해, “스폰서나 광고주에 아부하지 않고 시민 입장에서 주장할 수 있는 저널리즘, 권력을 감시하고 항의하는 저널리즘”을 표방했고, 창간자금도 <한겨레>처럼 독자들로부터 모금했다. 기성 미디어들에 환멸을 느낀 일본의 진보적 언론인들이 만든 이 전투적인 잡지는 당초 일간지를 계획했으나 그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다. 하지만 창간 취지대로 지금도 권력과 금력에 아부하지 않고 성역없는 비판을 줄기차게 쏟아내는, 일본에서 보기드문 정론지다.

 

재단소식
2022 리영희 클럽 —리영희와 현장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와 함께 하는 2022 리영희 클럽 강좌가 시작됐습니다. 올해는 ‘리영희와 현장’을 주제로 8회 강의 및 현장 기행이 진행 중입니다.


1강은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의 <리영희의 삶과 사상>

리영희의 조교시절, 선생이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수업을 맡게 된 최영묵 교수가 어떻게 수업을 해야되겠냐고 묻자 리영희는 “수업내용은 알아서 하고 반드시 넥타이를 매고 가라”. 이 말을 의외로 형식을 중시한 것 아니냐고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이 경우 리선생에게 형식은 예를 갖추는 것을 통해 상대에게 정성을 다하는 방식이고, 이는 정병호 선생의 증언에서도 드러난다. 2003년 ‘강제연행 강제노동 희생자를 생각하는 홋까이도오 포럼’이 여는 희생자 추도회에 정병호 선생과 함께 참여한 리영희는 이후 오오사까를 방문했다. 호텔 로비에서 조선학교로 출발하기 직전 총련 쪽 인사로부터 학생들을 위한 격려사를 부탁받은 리영희는 급하게 다시 방으로 올라간다. 콤비 스타일에 중절모까지 쓴 차림이었는데도 굳이 다시 올라가 넥타이를 메고 내려온 리영희는 그 까닭을 “억눌린 사람을 만날 땐 예의를 갖춰야 하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진실에 복무하다>권태선 p399-400). 자세히 보기


2강 차지호 카이스트 교수의 <글로벌 불평등과 넥스트 팬데믹>

백신의 불안전성에 대한 질문에 강사의 답변, “백신은 연대입니다”, 또 다른 질문, 글로벌 불평등과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는 뭘 해야 할까요?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머릿속에서 국경선을 지워버리세요”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도 참혹하지만 아프리카 등지에서 알려지지 않은, 그에 버금가는 죽음과 질병이 내전으로, 전쟁으로 심각합니다. 그런 곳에도 관심을 가져주기 바랍니다.” 자세히 보기


3강은 평화네트워크 소장 정욱식 선생의 <한반도 평화와 군비증강의 현실>

우리는 한 번도 제대로 된 ‘밥과 총’에 대한 논쟁을 해본 적이 없다. 북한은 자력갱생과 자주국방으로 협상의 문을 닫은듯하다. 그 문을 여는 길은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 말고는 없다. 각국의 탄소배출량에 군사활동은 통계에서 제외된다, 미군의 탄소배출량은 전세계 하위140개 국가 보다 위에 있다. B52 폭격기가 1 시간 비행하면서 배출하는 탄소량은 차 한 대가 7년 운행하는 양과 맞먹는다, 이제 기후위기의 관점에서 군비경쟁 문제를 다뤄야 한다. 자세히 보기


4강은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의 <기후, 생태위기와 인권>

장애인의 투쟁으로 오이도역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는 노약자가 많아 아용하는 편의시설이 된 사례를 들면서 강사는, 이들의 차별받는 감각과 투쟁이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므로 차별받는 사람들은 ‘억압권력 탐지 전문가’ 로 존중되고 우대받아야 함을 역설하였다. 한편 수많은 입증 데이터로 인류가 기후위기 사태에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가 충분히 설득력이 있음에도 강사는 이것은 결국 가치관의 문제라는 말로 입증과 객관적 예측에 대한 의문을 부끄럽게 만드는 깊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자세히 보기

재단과 함께 하는 사람들

이병남 이사, 전 LG 인화원 사장
 “남들이 내어놓은 길만 따라가면 오히려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 자기 영혼과 대면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숲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인생의 어떤 특별한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안녕하십니까> p77”
재단 친구 회원의 글

영희 교수가 한겨울에 구멍 난 양말을 손에 낀 까닭

이철 재일한국양심수동우회 회장 
내가 리 교수님을 서대문구치소에서 처음 뵙게 된 것은 45년 전인 1977년 겨울 무렵으로 기억한다. 공안기관이 교수님의 역저인 <8억인과의 대화>, <우성과 이성>의 내용을 트집 잡아서 구속한 직후였다. 당시 나와 가까운 방에 수감돼 있던 교수님은 추운 날 운동장에 나갈 때면 두 손에 양말을 끼고 계셨다. 자세히 보니 그 양말에는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양말에 구멍이 나 있는데요.”라고 하니, 교수님은 “책을 읽을 때 엄지손가락이 나와 있어야 책장을 넘길 거 아니야.”라고 하셨다. 훨씬 나중에 안 일이지만 교수님은 그 무렵 노모가 돌아가셨는데도 장례식에 참석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암울하고 비통한 상황에서도 교수님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리영희 아카이브
리영희식 연대- 격려 저널리즘
당시 나는 논설위원실을 주관하는 논설주간을 맡고 있었는데 내용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8일자 사설을 극찬하는 리영희 선생의 친필 서신이었기 때문이다. 선생의 글은 지면 1면에 <‘대 정치회담’을 제의한다> 는 제목으로 실린 대선 관련 사설을 평가한 편지였다. 


발행인: 김효순(리영희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