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서 보내드린 레터에서 류진 작가님의 글이 편집에 오류가 있어 다시 보내드립니다. 죄송합니다.

💬 카카오톡에 [얼론앤어라운드] 오픈채팅방을 만들었습니다. 코드는 alone 입니다.

📄 1일 3매 |  최갑수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면 적어도

얼마 전 사무실에서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다. 내가 사용하는 사무실은 공유오피스다. 각자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한 공간을 나눠 사용한다. 그래서 일반 사무실과는 달리 주의해야 할 점이 조금 많다고 해야 할까? 지켜야 할 에티켓이 있다. ‘주의해야 할 점이 조금 많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어느 정도까지 용인되고 이해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라는 말이기도 하다.


아무튼 누군가와 다투게 됐는데, 우리 회사에서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라면 어떻게든 이야기를 이어나갔겠지만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서는 그만두었다. 잘잘못을 가리는 걸 떠나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백 퍼센트 전달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만, 전달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는 일어섰다. 이제 그만합시다. 일이나 하시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최대한 빨리 이 이곳에서 벗어나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직원을 뽑아야 하는데…… 나는 혼자 일하는 게 편한데…… 어쩌지? 어떡하지? 하고 생각하다가, 도대체 회사를 이끌고 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일을 하면 할수록,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세상은 온통 이상한 사람투성이고, 주변에는 예민한 사람들로 넘쳐난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희한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참견하고 훈수를 두고 평가하려 애쓴다. 평론을 한다. 나는 그냥 웃으며 듣는다. 네, 맞습니다.


어렸을 때 나는 사랑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고, 이 세계는 조금씩이라도, 하다못해 하루에 1cm씩이라도 나아간다고 믿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하고, 사랑이 이 세상을 분명 좋아지게 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세상에 그렇게 사랑할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물론 나 역시 그다지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다. 예전에 어느 글에도 썼듯이, 나 역시 누군가에게 개OO일 확률이 훨씬 높다.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거창한 사명감 같은 건 없다. 이제는 사랑 같은 데 모든 걸 걸자고 외치는 사람보다는, 자기 할 일을 요령껏 하고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됐다. 살아가면서 인생을 걸 만한 일이 글쎄, 어떤 게 있을까? 지금까지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해왔지만, 이 일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무실 주변을 산책하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자주 다짐을 하지만, 버드나무 그늘 아래 멈춰서서는 모든 것을 걸 필요는 없다고 가끔 나를 타이른다. 나는 이 일을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고 포기할 수 있다.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인간은 언제나 도망갈 수 있고 다르게 살 수 있다. 어제의 폭탄 해체 전문가가 오늘의 브루잉 마스터가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 하기보다는, 고집스럽고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방법인 것 같다.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본다면, 누군가에게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 멋지고 보람찬 인생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준 약간의 도움이 누군가에겐 엄청난 행운이 될 수도 있으며, 지금 내게 온 엄청난 행운은 사실 누군가가 보낸 약간의 도움에서 시작됐다는 걸 자주 깨닫는 요즘이다.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다. 아, 모르겠다.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면 적어도 삼류는 되지 않겠지. ✉️

최갑수는 시인이자 여행작가자 편집자다. 쓴 책으로 『어제보다 나은 사람』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등이 있다. 그의 인스타그램 @ssuchoi에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 Words | 좋은 일을 하면 운이 찾아온답니다
좋은 일을 하면 운이 쌓이고 나쁜 일을 하면 운이 낭비됩니다. 인생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상당히 복잡한 것 같지만, 멀리서 보면 몇 가지 커다란 원칙으로 움직인답니다. 인과응보, 권선징악 같은 것들 말입니다. 요즘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운이 좋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면 좋은 일을 합시다. 나중에 큰일을 할 때 운이 오기를 기대해 봅시다. 질 때는 흔쾌히 지고 꼭 이겨야 할 때는 최선을 다합시다. 운은 마지막에 못 이기는 척 찾아온답니다. - alone & around

🍵 혼자라는 즐거움 |  류진

함께 떠날 땐 잘 싸우는 친구랑 갑니다

여행 친구를 선별하는 나만의 기준 중 하나. 나랑 제대로, 잘 싸울 수 있나? 잘 싸운다는 건 하고 싶은 말 혹은 해야 할 말을 눈치 보거나, 회피하지 않고 서로에게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것. 그러다 기분이 좀 상하면 잠깐 떨어져서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관계. 누가 봐도 노골적으로, 격렬하게 충돌했지만 그날의 해가 지기 전에 뒤끝 없이 화해할 수 있는 사람. 이해와 선호가 달라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샐쭉 입 내밀고 마음을 꽁꽁 숨기다가 뒤통수치는 사람보단 제대로 싸우고 오해나 감정을 푼 후 화해하는 전자를 더 좋아한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친구와 별것도 아닌 일로 대판 싸웠고 우리는 한나절 정도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침 일찍부터 차를 끌고 집 밖으로 나간 그와 달리 나는 마우이의 아침을 아주 게으르게 즐기고 싶었다. 느지막이 침대에서 빠져나와 어제 장 봐 둔 요거트와 과일, 따뜻하게 우린 차를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가볍게 배를 채우고 선베드에 누워 야자 잎이 하늘하늘 나부끼는 장면을 넋 놓고 보고 있는데 반려견 두 마리와 산책하러 나갔다가 돌아온 민박집 주인 브리짓이 얼른 해변으로 나가보라고 귀띔한다. “거북이가 모래사장 위에 죽치고 있어.” 마우이까지 와서 이 섬의 마스코트를 한 번도 못 본 차였다. 카메라를 챙겨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키헤이 비치엔 이 동네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서너 가족만이 일요일 아침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바람이 제법 세서 가벼운 모래알이 뺨을 따끔하게 스쳤지만 아랑곳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입안과 콧구멍, 눈으로 침투하는 모래를 퉤퉤 뱉어내며 고개를 빼 들고 브리짓이 말한 거북이를 찾아 헤맸다.

저 멀리 우두커니 서서 수평선과 마주 선 이들 앞에,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거북이가 있었다. 젖은 모래에 바위처럼 파묻힌 채로. 꽤 긴 시간 동안 그 암석 같은 걸 지켜보는데 이상하게 미동조차 없다. 죽… 었나? 거북이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려던 나를 옆에 서 있던 소녀가 제지한다.

“쟤 살아 있는 거야?”

“그럼.”


정오 무렵의 따가운 해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뜨려는데 함께 그 생명체의 동태를 살피던 모녀가 거북이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백사장에 파묻힌 진주알을 꺼내듯, 거북이의 앞, 뒷발을 덮은 모래를 걷어내고 등껍질 뒤를 슬쩍 밀어준다. 미동 없던 거북이가 긴 단잠 후 기지개를 켜듯 육중한 몸을 천천히 일으킨다. 바닷속으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저 거대 생명체. 잠영 후 어푸, 수면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숨을 쉬고 또 물속으로 머리를 집어넣는 모습을 보며 물에 젖어 빛나는 저 민머리, 까만 조약돌 같은 눈, 잘 관리된 고가구처럼 맨질맨질 빛나는 등껍질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쟤는 저기에서 혼자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이런 일이 종종 있어?”

“응. 날씨 좋으면 자러 오거나 쉬러 올라오는 거야.”

“근데 왜 혼자 못 일어나? 여기에 오래 있었어? 아픈가?”

“그냥 움직이기 귀찮아서 그렇겠지 뭐.”

꿈에서 깬 듯, 그제야 주위를 둘러봤다. 신기해서 연신, 이미 멀리 가버린 거북이의 꽁무니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대는 나와 달리 아이들은 모래성 쌓기를, 소년들은 바디 보드 서핑을, 젊은 부부는 태닝을, 노인들은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키헤이 사람들에게 거북이는 지나가는 갈매기나 비둘기 같은 존재인가? 도시에선 마냥 신기한 경험을 평범한 주말 일상으로 누리는 삶은 어떤 기분일까?


다툼은 어느새 뇌리에서 잊히고, 두통으로 묵직했던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친구와 잘 싸운 덕에, 제대로 싸워서 잠깐 찢어진 덕에, 인생에서 두고두고 떠오를 것 같은 순간을 선물처럼 건졌다. 낯선 곳에선 토라지는 마음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생경함이 사사로운 감정을 거둬가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우리는 새삼스럽고 낯간지러운 말 한마디 없이 싸움을 물렀다. 각자의 손에 함께 먹을 점심과 호들갑 떨며 감상할 거북이의 골 때리는 찰나를 들은 채로. ✉️

류진은 패션 잡지와 여행 잡지에서 월급을 받으며 살다가 내 시간을 내 뜻대로 쓰고 싶어서 프리 워커가 됐다. 그게 절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엔 혼자 살고 혼자 일하는 삶을 잘 꾸리기 위해 더 많이 보고, 읽고, 겪고, 쓰고, 부딪히며 산다.  @nomad_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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