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5ㅣ  구독  지난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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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규욱 기자
가자지구·시리아 등 분쟁지역서
처참히 무너져내린 인도주의
“의료보급로까지 공격하는 전쟁 현장”
제25회 세계지식포럼 인도주의 세션
구호 활동가들의 처참한 현장 증언
“분쟁지역 인도주의법 존중 절실”

새해에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벌써 3년이 돼가고 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간의 전쟁은 휴전의 기미를 보였으나 좀처럼 협상이 진전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아프리키와 중동 일부 국가의 내전 등 세계 곳곳에서 열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열전의 소용돌이 속에 죄 없는 민간인들의 희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사망한 무고한 민간인만 1만2000명에 달한다고 유엔(UN)이 최근 밝히기도 했습니다. 전쟁의 참혹함 속 인도주의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매일경제신문 주최로 열린 ‘제25회 세계지식포럼’엔 세계 주요 분쟁지역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는 전문가들이 모였습니다. 분쟁지역에서의 인도적지원의 어려움과 대응 방안을 살펴보기 위함입니다.

가자지구에서 사망한 생후 4주 신생아를 품에 안고 있는 아버지 모습 [사진 = 로이터 연합뉴스]

‘가자지구 그리고 분쟁지역에서 온 목소리’ 세션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임에도 지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매우 두렵다”고 호소했습니다.


엠마 캠벨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은 “분쟁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하는 걱정까지 든다”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의 참극이 극에 달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캠벨 사무총장은 “공존을 믿는 것은 결국 인간애에 기반을 둔 것이다. 국제 인도주의법을 존중하고, 면책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이것이야 말로 평화로운 공존의 출발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통상 국제인도법은 전쟁에도 규칙을 지켜야 하는 일종의 ‘룰’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것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게 분쟁 지역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입니다. 민간인과 민간 시설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이 자행되고 있고, 피해를 본 원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현장에 파견된 의료단·구조 인력까지 무참히 포격을 받는 게 지금의 분쟁 지역 현주소입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도시 라파에서 도로 위를 걷는 행인들을 정밀타격하는 영상. 당시 미국은 라파 지역에 밀집한 피난민 피해를 우려해 이스라엘군의 정밀타격 작전을 반대하고 한때 이스라엘로 보낼 포탄 선적까지 중단했지만 이스라엘군은 작전을 지속했고 100여명의 테러리스트를 제거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민간인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미지=이스라엘군 홈페이지 영상 캡처>

캠벨 사무총장은 “현재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여러 분쟁 지역에서 의료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다”면서 “가자에선 이미 약 40만명이 사망했고, 많은 이들이 전염병 확산과 소아마비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지만 제대로 된 의료 보건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7명의 직원도 최근 가자지구에서 사망했다”며 “(분쟁지역 내) 의료 시설에 대한 공격과 의약품 공급 부족으로 인해 의료진과 환자 모두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1971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국경없는의사회는 전 세계 분쟁 지역과 자연재해, 질병 발생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긴급 의료 지원을 제공하는 독립적인 국제 의료 구호 단체입니다. 199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단체는 현재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활동하며 약 5만 2000명의 자원봉사자와 직원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캠벨 사무총장은 “국경없는의사회는 정치적, 종교적, 군사적 이해관계로부터 독립된 단체”라며 “정부의 자금을 받지 않고, 대부분의 재정이 민간 기부에 의존하며, 의료 지원은 인종, 종교,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제공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는 “국경없는의사회는 단순히 의료 지원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분쟁 지역과 재난 현장에서 목격한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을 국제 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이를 통해 인도주의적 위반이나 불법적 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대응을 촉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례로 최근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아프리카 수단 내전은 소셜 미디어나 언론을 통해 크게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이 기간 1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을 잃었고 2400만여명의 주민이 인도적 지원을 절실히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쟁 지역 중에서도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진 이 곳은 UN을 비롯한 국제기구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캠벨 사무총장은 “콩고 등 의료 보급이 이뤄지지 않는 지역에 대한 국제 기구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임에도 의료 재앙을 지켜만 보고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등에 대한 책임이 크다”고 지적하며 “의료 보급로까지 공격하는 이들은 국제 인도주의법을 무참히 침해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되레 면죄부만 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엔 안보리와 (의사 결정권을 가진 정치인 등) 국제사회가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집단적인 책임 의식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유코 나카지마 국경없는의사회 일본 사무소 이사회 대표도 “현장에서 목격한 전쟁의 피해자 대부분은 이 전쟁과는 전혀 관련 없는 여자와 어린아이들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는 2010년 이래로 지금까지 시리아를 비롯해 예멘, 파키스탄, 이라크, 남수단, 나이지리아, 가자 지구 등 총 8번의 현장 파견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내 전쟁 발발 이후 파견된 첫 번째 응급구조팀의 일원이기도 했던 그는 해를 거듭할수록 참담해지고 있는 분쟁의 현장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제25회 세계지식포럼 가자지구 그리고 분쟁지역에서 온 목소리’ 세션[@wkforumkorea/YouTube]

유코 대표는 “가자 지구에 진입하는 것 조차 (현지 이해당사자들로부터) 승인을 받기까지 수주의 시간이 걸릴 만큼 쉽지 않았고, 마침내 비자 만료일 마지막 날 들어가게 된 현장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는 “생사를 오가는 많은 사람이 생존 가족이 없어진 아이들일 정도로 극심했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줬다”면서 “전쟁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희생됐다는 사실에 (여러 현장을 누빈) 나조차도 놀라울 정도였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의료진 조차도 예외 없이 가족을 잃거나 집이 없어져서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응급구조에 나서는 상황까지 치닫는 등 모두가 매일 매일 안전을 바라고 휴전을 희망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라에드 살레 화이트 헬멧 대표 역시 깊은 공감을 표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시리아에서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모든 재난 대응을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전적으로 주도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또한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자원과 인프라의 부족 속에서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 한계의 연속”이라고 말했습니다.


화이트 헬멧은 지난 2013년 시리아 내전 중 설립된 비정부, 비군사적 자원봉사 단체로 ‘시리아 민방위’로 칭해집니다. 이 단체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시리아 민간인을 구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그들의 상징적인 흰색 헬멧에서 이름이 유래됐습니다. 지난 10년간 화이트 헬멧이 구조한 인명은 12만명이 넘습니다.


라에드 살레 화이트 헬멧 대표는 “우리는 잔해 속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응급조치를 하며 재난 구호와 함께 조기경보 시스템을 통해 공습 예측과 전쟁 중 남아 있던 폭발물까지 제거해 관련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면서 “최근엔 난민 밀집 지역에 의료 센터를 짓고 교육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등 지역 사회 회복을 위한 해법도 동시에 모색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화이트 헬멧은 언젠가는 전쟁이 끝나고 이 땅의 잔해 속에서 어린아이들을 구하지 않아도 되는 날을 꿈꾼다”면서 “그때를 희망하며 우리는 시리아 재건을 위한 노력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공존은 우리를 진보하고 발전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라며 “분쟁 지역이야말로 이 공존의 정신이 필요한 곳으로, 우리는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전체 인류를 구하는 것이라는 믿음 아래, 공존의 가치가 이어질 수 있도록 재난 현장을 누빌 수밖에 없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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