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OUND Vol.94 〈사랑과 용기를 그대에게〉

우리 만남의 시작은

어라운드 95호 ‘편집장의 글’에는 시 한 조각이 적혀 있습니다. 1978년도에 출판된 조병화 시인의 《만나는 거와 떠나는 거와》라는 시집 속 작품〈벗〉인데요. 그 시에는 태양을 벗에게 비유한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해요. “어제를 이야기하며 오늘을 나눈다. 그리고 또 내일 뜬다.” 우리가 마주하는 만남의 시작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거창하지 않을 때가 많죠. 헤어짐을 말하는 끝도 마찬가지예요. 문득 떠올라서 빛을 발하던 해가 마침내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듯, 순리를 따를 뿐이죠. 때문에 작은 물꼬가 터지듯 시작된 만남에서 우리는 함께하는 오늘을 소중하게 여기고 싶어져요. 어제를 말하며 오늘을 힘껏 나눠야, 내일의 해가 뜨고 질 때 아쉽지 않을 테니까요. 님은 오늘 누구와 무엇을 나누고 싶은가요? 만남의 시작과 매듭이 반복되는 나날을 떠올리며, 《AROUND》 95호에서 유쾌하고 당찬 세 가족의 세상을 들려준 ‘이쁜꽃’ 양유미, 이창협 부부의 이야기를 꺼내둡니다.

유미와 창협은 첫눈에 반했다. 사려 깊은 술 한잔을 나누면서 가까워진 둘은 ‘사랑과 용기’라는 슬로건의 양조 브랜드 ‘이쁜꽃’을 열고 쌀알을 어루만지며 곡주를 만든다. 그들의 술이 특별한 이유는 한 병에 담긴 사랑이 두 사람 자리에서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정성을 담은 술을 나눠 마시는 이름 모를 누군가, 사랑과 용기를 품은 일상 속 영웅들 그리고 두 사람의 마음에 태양을 띄운 두 살 리사에게까지, 사랑은 용기 넘치는 자태로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이 과장의 퇴근주》에서 유미 씨는 창협 씨를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해요. 어떤 의미예요?

유미 창협 님은 언제나 좋아하는 게 있어요. 저는 좋음을 느끼는 역치가 높은 사람이라, 좋다고 말할 만한 게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은 무언가 좋아지면 그게 왜 좋은지 탐구하는 게 기본자세더라고요. 골똘히 고민한 걸 언어로 풀어내는 것도 좋아하고요. 저는 어떤 개념에 대해서 딱 맞는 표현이나 설명을 들었을 때 엄청난 쾌감을 느껴요. 속이 시원한 느낌 있잖아요. 제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개념도 잘 표현해 보고 싶어서 단어들을 이리저리 만져보는데, 창협 님은 그걸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인 거죠. 그래서 같이 대화하면 언제나 재밌고 짜릿했어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라는 뜻도 될까요?

유미 맞아요. 밖에서 다 들여다보이는 유리 집에 사는 사람 같아요. 다들 그러실진 모르겠지만, 관심 가는 사람이 생기면 SNS를 들여다보게 되잖아요. 저도 페이스북에서 창협 님을 열심히 검색해 봤는데, 아주 옛날부터 솔직하게 글을 써왔더라고요. 표현 하나도 뾰족하게 쓰려고 애쓰다 보니까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것 같아요. 속내가 다 보이는 대신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요.

창협 저를 그렇게 봐줘서 고마워요. 무언가에 쉽게 몰두하는 모습을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좋게 봐주는 사이네요.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해져요.

유미 음,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처음 봤을 때 향수도 안 뿌렸는데 좋은 냄새가 나더라고요. 저는 향을 믿거든요. 내가 의도할 수 없는 영역에서 향에 대한 호불호가 결정되는데, 그 냄새가 좋게 느껴진다면 유전자 단위에서 결혼하라고 명령하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웃음). 둘째는, 항상 구두가 깨끗했다는 거예요. 8년이나 신은 오래된 신발을 새것처럼 관리하는 모습에서 확신했죠. 말하다 보니 한 가지가 더 떠오르는데 학생 때는 국밥도 잘 먹고, 고급 다이닝에서도 즐길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어요. 제가 그런 사람이기도 하고, 살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다양할 테니까요. 창협 님이 딱 맞는 사람이었죠.

창협 우리가 결혼을 하게 만든 공통의 사건도 있었어요. 한번은 오키나와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슈리 성에 놀러 간 적 있는데, 앞에 세라교복을 입은 긴 머리 학생이 서 있더라고요. 그 근처를 지나가니까 학생이 뒤를 돌아보는데 수염이 난 중년 아저씨였죠. 순간… 저와 유미 님이 눈으로 대화를 나눴어요.

유미 ‘이 사람을 불쾌하게 하지 말자. 자연스럽게 행동하자.’ 이런 대화를 한 거죠. 우리 둘은 마음속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 긴급한 상황에서 문제를 대처하는 방식이 비슷하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저희는 우스갯소리로 그분을 결혼의 요정이라고 불러요.

 

오늘 대화에 다양한 요정이 등장하네요. 서로 꼭 마음에 들어서 결혼했는데, 같이 살아보니 어떤가요?

창협 자주 만나니까 이럴 바에는 같이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살면 서로 집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했던 것 같아요(웃음). 유미 님은 결혼 초반에 자꾸 자기가 집에 가야 될 것 같다고 하는 거예요.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것도 불편하다고 거실에 나가서 자고, 급기야 나중에는 본집에서 자고 와도 되겠냐고 물어보고요.

유미 내 것이었던 걸 자꾸 나누는 게 영 익숙해지지 않았던 거죠. 그리고 다양한 걸 좋아하고 좋아하는 걸 오래 고민하는 사람이라 끌렸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뾰족한 사람이라는 뜻도 되더라고요. 저는 무던한 편이라 창협 님이 예민함을 드러낼 때마다 꾹 참았어요.

창협 연애 때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살면서 맞춰야 할 부분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고요. 예를 들면 같이 술을 마시고 잠들기 전에 저는 꼭 설거지를 마치고 싶거든요. 근데 유미 님은 하지 말고 같이 쉬자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술 마실 때도 꼭 따라줘야 해요.

 

유미 씨에게 이유를 한번 물어볼까요?

유미 남이 따라줘야 맛있는 게 있잖아요(웃음).

창협 그래 놓고 나는 꼭 안 따라줘.

유미 결혼에 대해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래된 에세이에서 읽은 말을 꺼내두고 싶네요. “좋을 땐 아주 좋고, 나쁠 땐 아주 나쁘다.”

한 잔에 담은 마음

유쾌한 계기로 인연을 맺은 양유미, 이창협 부부는 인터뷰에서 “무엇이든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서 사람들이 섬처럼 변해가는 와중에 필요한 건 보편적인 가치”라고 말했습니다. 상투적으로 보일진 몰라도, 흩어진 존재들을 끌어당기기 위해 사랑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요. 두 사람은 사랑과 용기를 다름 아닌 한 잔의 술에서 발견했습니다. 서로 다른 각자의 세계는 같은 술을 나눠마심으로써 교집합을 찾아 나가게 됩니다. 술을 소재로 솔직한 일상을 적어 내려간 양유미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우리 사이의 교집합을 찾아볼까요?

일상의 찰랑임을 모아,

누루커스 연재 에세이 ‘양조사의 퇴근주’


한국 술과 라이프 스타일을 두루두루 다루는 콘텐츠 플랫폼 ‘누루커스Nurukers’에는 양유미의 에세이 ‘양조사의 퇴근주’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올라오는 글을 읽다 보면, 퇴근 직후 그녀의 여가 시간에 따라나선 듯한 기분이 드는데요. 이쁜꽃의 술맛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 날에는 “말수 적은 묵묵한 친구”라며 ‘2리터 메카 페트 카스’를 꺼내고, 어렵게 아기를 재운 밤에는 ‘아사히 쇼쿠사이 리츄얼’을 꺼내 부부가 나눠 마십니다. 급체를 한 후 비워진 배속에 약주 삼아 ‘캄파리 소다’를 채우기도 하죠. 단순히 맛있다 또는 맛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적절한 때를 놓치지 않고 섭취하는 한 사람의 일상이 담겨있어요. 글을 다 읽어갈 즈음엔 괜스레 목이 마르고 냉장고 속에 캔맥주라도 있는지 살펴 보게 된답니다. 그와 함께 찰랑이는 하루를 만들어 보고 싶거든요.

지난달 말, 코엑스에서 열린〈2024 서울국제도서전〉이 5일간의 분주한 걸음 끝에 매듭을 지었습니다. 매거진을 쓰고 만드는 네 명의 팀원이 부스에서 자리를 지키며 오는 분들을 맞이했어요. 우리가 만든 책을 끌어안고 낯선 동네로 향하는 것, 주어진 자리를 어라운드의 시선으로 채우는 것,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장을 넘기는 기쁨에 푹 빠진 이들을 마주하는 것까지, 매일이 설렘과 감사함으로 가득 찬 나날이었답니다.

레터 한편의 자리를 빌려, 책을 꾸준히 살펴온 구독자분들과 처음으로 반갑게 인사 나눠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어라운드와 닿은 인연이 녹슬지 않도록 부지런히 닦아 윤기 낼 테니, 지켜봐 주시길 바라요. 끝으로 도서전에 함께한 네 명의 팀원이 남긴 짤막한 후기를 덧붙여둡니다.

때를 만난 여름이 주저 없이 기지개를 켜는 요즈음입니다. 더운 숨을 돌릴 만한 휴가는 계획하셨나요?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일만을 기다리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별다른 휴가 계획이 없는 분이라도 손에 쥔 것을 잠시 내려 둘 시간은 마련해 보세요. 어느새 잠잠해진 마음의 모양이 남은 계절을 거뜬히 보낼 거예요.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지나간 어라운드의 이야기를 한아름 안고 찾아올게요. 그럼, 다다음주 목요일에 만나요!


Monday Point Day

wee × 서현 밀크글라스 | 07.08 ― 07.14


월요일마다 어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는 굿즈를 공개하는 ‘Monday Point Day’! 금주의 상품을 소개합니다. 어라운드의 가족 매거진 《wee》와 도서 《호라이》를 지은 서현 작가가 협업한 ‘밀크 글라스’인데요. 긴 수염을 가진 고양이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캐릭터 ‘호라이’가 그려져 있고, 무겁지 않아 누구나 일상에서 사용하기 편리하답니다.

1개월 이용권 쿠폰이나 구독을 통해 ‘AROUND Club’ 서비스를 신청한 분들은 홈페이지에서 [MY PAGE]를 확인해보세요. 현금처럼 쓸 수 있는 5,000포인트를 선물했으니 어라운드의 굿즈를 둘러 보고 안아가셔도 좋아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공개했던 파우치와 노트도 홈페이지에서 더욱 자세히 볼 수 있어요.

Life is orange》여름호 서평단 모집

NO. 54 Dopamine Detox


어라운드와 광고회사 이노션이 계절마다 함께 발행하는 《Life is orange》는 광고계 트렌드와 크리에이터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영감을 얻는 매거진입니다.

이번 54호에서는 도파민과 도파민 디톡스 사이에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브랜드 경험을 살펴보았어요. 범람하는 콘텐츠 속에서 어느 방향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고 계셨다면, ‘나만의 답’을 찾은 브랜드들의 이야기를 통해 힌트를 얻으실 수 있을 거예요. 

《Life is orange》여름호의 책장을 직접 넘기며 감상하고 싶은 분은 아래 버튼을 클릭해, 서평단에 신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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