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노동을 빛으로 위로하다. 북방의 천사와 삼탄아트마인
예술
2026.2.10
북방의 천사
The Angel of the North
강모열 |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The Angel of the North, by Antony Gormley
작품 소개

영국 잉글랜드 북동부, 게이츠헤드(Gateshead)의 A1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언덕 위에 우뚝 솟은 거대한 붉은 형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마치 비행기의 날개 같기도 하고, 누군가를 안으려는 듯 양팔을 벌린 사람의 모습 같기도 한 이 조각상은 영국의 현대 공공미술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1998년 작 〈북방의 천사(The Angel of the North)〉입니다. 높이 20미터, 날개 너비 54미터에 달하는 이 조각상은 보잉 757기보다 넓은 날개폭을 자랑하며, 무게만 208톤에 이릅니다.


이 조각상은 내후성 강판(Corten steel)으로 만들어져 특유의 붉은 녹슨 색을 띠고 있는데, 이 금속은 대기에 노출되면 표면에 산화 피막(녹)을 형성하여 내부의 부식을 방지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는 이 붉은색은 이 지역의 토양 색깔과 조화를 이루며, 동시에 과거 이 지역을 지탱했던 제철소와 조선소, 그리고 탄광의 낡은 기계들을 연상시키는 산업적 질감을 드러냅니다. 


처음 이 작품이 계획되었을 때는 "녹슨 고철 덩어리"라거나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해 교통사고를 유발할 것이라는 거센 비난과 반대가 있었지만, 오늘날 이 작품은 매년 3,300만 명 이상이 관람하는 영국 북동부의 상징이자, 지역 재생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어둠 속의 노동을 빛으로 위로하다

직업보건의 관점에서, 이 작품이 서 있는 ‘위치’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천사가 발을 딛고 있는 언덕은 17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석탄을 채굴했던 ‘팀 탄광(Team Colliery)’의 부지였기 때문입니다. 작품 설치를 위해 지하에 남아있던 옛 갱도에 100톤의 그라우트를 주입해 지반을 안정시켜야 했을 정도로, 이곳은 수 세기 동안 수많은 광부가 어둠 속에서 땀 흘린 치열한 노동 현장이었습니다.


진폐증과 산업재해의 현장


잘 아시다시피, 과거 탄광은 직업병의 온상이었습니다. 좁고 환기가 되지 않는 갱도에서 석탄 분진을 마시며 일한 광부들은 진폐증이나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과 같은 치명적인 호흡기 질환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또한, 붕괴나 가스 폭발 같은 산업재해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곰리는 이러한 역사를 작품에 투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땅 아래에서 이루어졌던 채탄의 시간을 떠올리면, 묘한 시적 공명이 느껴진다. 한때 남자들이 어둠에 잠긴 지하에서 일했다. 그리고 이제, 그 어둠 위의 자리에서 빛 속에 서서 우리는 그 산업과 노동의 시간을 기리는 하나의 축제를 열고 있다."


〈북방의 천사〉는 산업재해와 직업병의 위협 속에서 지하 세계를 지탱했던 노동자들에 대한 거대한 기념비이자, 그들의 노고를 ‘빛’으로 끌어올려 위로하는 치유의 상징입니다.


산업 쇠퇴와 공동체의 정신건강


1980~90년대 영국의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게이츠헤드를 비롯한 북동부 지역의 탄광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습니다. 이는 경제적 손실을 넘어, 수 세대 동안 '광부'로 살아온 지역 남성들의 정체성 상실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박탈감은 우울증, 알코올 의존 등 지역 사회 전반의 정신건강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안토니 곰리는 <북방의 천사>가 "산업 시대와 정보화 시대 사이의 간극(gap)에 방치된 사람들에게 희망의 초점"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실제로 초기의 비판을 딛고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이 작품은, 쇠락해가던 공업 도시에 새로운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고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되찾아주는 “예술을 통한 재생(Art-led Regeneration)”의 성공적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3.5도 앞으로 살짝 기울어진 날개는 다가오는 미래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감싸 안는 듯한 '포용(embrace)'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술이 어떻게 쇠락한 산업 도시의 상처를 보듬고, 주민들의 정신적 건강과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매개체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작가 소개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1950~)는 영국의 조각가로, 인간의 신체와 공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유명합니다. 〈북방의 천사〉 역시 작가 자신의 몸을 본떠 만든 주물을 바탕으로 확대하여 제작되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천사를 본 적이 없으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천사를 상상해야 한다"라며, 이 작품이 사람들의 희망과 두려움을 투영하는 매개체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예술이 갤러리나 박물관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생활하는 공공의 장소에서 소통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한국의 사례: 정선 삼탄아트마인

우리나라에도 폐광 노동자들의 삶과 애환을 예술로 승화시킨 공간이 있습니다. 강원도 정선군의 ‘삼탄아트마인’입니다. 1964년부터 2001년까지 운영된 삼척탄좌의 폐광 시설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되살린 곳입니다. 지하 600m까지 광부들을 실어 나르던 거대한 권양기(엘리베이터) 타워는 여전히 웅장한 모습으로 남아, 지역의 산업 유산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샤워실 갤러리에는 당시 광원들의 폐를 촬영한 엑스레이 필름이 전시되어 있어, 진폐증이라는 직업병의 공포 속에서도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했던 아버지 세대의 헌신을 생생하게 느끼게 합니다. 또한, 1974년 침수 사고로 희생된 광원들을 기리는 추모 공간과, 지하 600m 막장으로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던 중앙압축기실을 원시미술박물관으로 변모시킨 공간 등은 노동의 신성함과 생명의 소중함을 동시에 일깨워 줍니다.


영국의 〈북방의 천사〉와 한국의 <삼탄아트마인>은 모두 '검은 황금'을 캐던 치열한 노동의 현장이 멈춘 후, 그 상실의 자리에 예술을 심어 지역 사회와 노동자의 역사를 위로한다는 점에서 깊은 공통점을 지닙니다. 이들은 과거를 지우는 개발이 아니라, 기억을 보존하고 승화시키는 재생을 통해 우리에게 직업과 노동, 그리고 인간 존엄의 가치를 되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