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녀는 30년 동안 과테말라에서 조용히 지내다 지금 전세계의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는가? 왜 컬렉팅을 하는가?
“제 인생에서 내렸던 결정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죠.
왜 하필 나는 작품 구매할 사람도 없는 이런 곳에 와서 내 인생을 쏟아부었나?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삶을 받아 들임과
함께 찾아온 창의성 -
비비안 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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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나이시로스에 자연이 전시공간으로 변신하여 놓여진 비비안 서터의 작품. 뒷편에는 화산분출구가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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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불가능한 변수에
대처하는 예술가
비비안 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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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COLLECT의 미션은 왜 컬렉팅을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미술작품을 컬렉팅 한다는 것은 결국 작가의 철학과 삶의 태도를 우리의 삶에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미술작품을 소장하는 순간 나의 일상 생활공간에 그 작가의 생각과 에너지가 함께 공존하게 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Y COLLECT는 우리가 예술작가의 근본적인 신념, 삶의 태도를 이해한다면 그 작품을 소장한다는 것이 우리 스스로의 삶을 더욱 풍성하고 영감을 갖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Y COLLECT가 첫 번째로 소개할 작가는 올해 73살인 아르헨티나계 스위스 여성 화가인 비비안 수터 Vivian Suter 입니다.
비비안 수터는 현재 미국과 유럽시장에서 가장 핫한 작가로 자리 잡았으며 이미 영국의 Tate 박물관, 미국의 MOMA (Museum of Modern Art), 그리고 스위스의Kunstmuseum Luzern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광주 비엔날레서도 그녀의 작품을 국내에 선보이기도 하였고요.
비비안 수터는 유리나 모서리 처리가 되어 있는 프레임 없이 대형 캔버스 천 자체에 작품을 만듭니다.
2019년, 제가 No.9 Cork Street의 런던 오프닝에서 비비안 수터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동은 마치 세상 밖과 단절된 신비로운 동화 세상으로 들어간 듯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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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마드리드에서 열린 비비안 수터의 개인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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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No.9 Cork Street 런던 오프닝에서 열린 비비안 수터의 전시회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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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No.9 Cork Street 런던 오프닝에서 열린 비비안 수터의 전시회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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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마드리드에서 전시한 비비안 수터의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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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마드리드에서 전시한 비비안 수터의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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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수터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기존의 보아왔던 많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 형태와 느낌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어떤 체계적이거나 특정한 형식주의적인 것들을 모두 제거 한 뒤, 자연스러움 그 자체만을 남겨 놓고 있기 때문이죠.
그녀의 작품들은 모두 캔버스의 천들이 프레이밍이 되어 있지 않으며 작품 표면에는 빗물 자국, 나뭇가지, 심지어는 가끔 야생동물이 쉬를 하고 간 자국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캔버스 위에 생생한 컬러로 표현된 그녀의 에너지와 생동감은 오히려 이러한 틀의 탈피 속에서 폭팔 하고 있죠.
왜 비비안 수터는 컬렉팅 할 가치가 있을까요?
전 세계의 미술 박물관과 갤러리가 그녀의 작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그녀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재탄생된 그녀의 창의성 때문입니다.
조금 더 설명해 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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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수터를
컬렉팅 할 가치 -
삶을 받아들일때
찾아온 창의성
2005년, 과테말라에는 약 1,5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허리케인이 발생했습니다.
그때, 허리케인은 비비안 수터의 작품 스튜디오도 휩쓸고 지나갔죠.
당시 그녀는 이미 스위스를 떠나 과테말라로 어머니와 아들과 함께 이주한 상태였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여전히 그녀에게 생생하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미술 시장 (그녀의 작품을 판매할 곳)조차도 없었던 과테말라로 날아와서 20년 넘게 그렸던 그녀의 작품들.
이제 모두 진흙과 잔해 속에 휩싸여 버린 광경을 보면서 그녀는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제 인생에서 내렸던 결정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죠.
왜 하필 나는 작품 구매할 사람도 없는 이런 곳에 와서 내 인생을 쏟아부었나?
이제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필사적으로 진흙과 돌무더기에 파묻혀 있던 작품들을 다시 끄집어내 캔버스 위의 얼룩들을 지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곧, 자연에 대항해서 하는 싸움은 무용지물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런 일들은 과테말라의 시골에서 사는 동안 만연하게 일어나는 삶 일부임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과테말라의 이 무성한 자연환경들을 그녀의 예술 작업에 적극 동참시키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죠.
“삶의 비극과 좌절을 오히려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였을 때, 세상은 저에게 다가왔고 저의 예술세계는 한층 더 깊어졌어요.”
그때부터 더 이상 그녀는 자신의 작품들을 자연물로부터 악착같이 보호하려 하는 헛된 수고를 중단했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정원에 작품들을 그대로 두고 자연이 행하는 자연스러운 행동과 흔적을 남기도록 하였습니다.
빗물 자국이 생겼고, 낙엽이 그대로 눌어붙어 있게 되었으며, 어떨 때는 야생동물들이 심지어 오줌을 싸고 가기도 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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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수터는 한때 커피재배 농장이었던 부지를 사들여 정원이자 작업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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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아래 말리고 있는 캐버스: 비비안 수터에게 바람, 진흙, 비와 같은 자연의 원소는 캔버스에 사용된 물감 만큼이나 중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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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수터에게 작품들은 서로 대화를 하면서 하나의 새로운 생명체로 탄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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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에서 완성된 긍정적인 자유로움
"이제 저는 미리 작업을 해두고 땅에다 캔버스를 아예 묻어 버립니다.
어떨 때는 비가 오기를 기다려서 작품을 일부러 비를 맞게 해서 젖게 하죠.
그리고 가끔은 손으로 진흙을 만지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는 캔버스를 나무 아래에 말립니다.
그때 저의 캔버스의 작품 하나하나가 바람을 따라 움직이거나 서로 마찰이 닿는 광경을 보면서 이건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숨 쉬는 생명체라고 느꼈어요.
한 작품이 다른 작품과 서로 나란히 나무 아래에서 마치 대화를 하는 것 같죠."
이러한 그녀의 새로운 시도가 오히려 오늘날 그녀가 세계적인 미술 박물관과 갤러리들에 인정받기 시작된 전환점이 되었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더이상 캔버스를 프레이밍 하지 않은 채로 놔둔다고 합니다.
허리케인이 휩쓸고 간 후 그녀의 작업방식은 습도, 빛, 동식물과 같은 외부 요인마저 그녀의 그림에 조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하기 위해서이죠.
그리고 캔버스도 어떨 때는 프레이밍을 하지 않은 채 두면서 그녀는 작가로서 통제하려고 했던 예전 방식의 틀을 깨려고 시도합니다.
“이제 이런 방식들이 모두 저의 작업의 일부가 되었어요, 일종의 해방감 같다고 해야 할까요?
저희 어머니께서도 저의 작품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 긍정적인 자유롭로움 이라고요.
그런 것 같아요, 비극에서 변화된 긍정적인 자유로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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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수터와 그녀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와일드. 엘리자베스 와일드 역시 화가로 활동하였으며 비비안 수터와 같이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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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명해지니 싫었지만
아무도 안 찾아주자 다시 절망스러웠습니다
73세의 나이로 굵직굵직한 작품 전시를 전 세계에서 쉬지 않고 하고 있는 그녀의 현재와 전시 활동이 거의 없었던 그녀의 수많은 지난날을 이력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 역시 다른 여성 작가들이 밟아온 똑같은 길을 걷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죠.
예술가들, 특히 여성 작가들은 여전히 인생의 노년에 접어들어서야 겨우 예술계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는 그 길고도 힘든 여정 말입니다.
그렇지만 비비안 수터의 스토리는 조금 달랐습니다.
"20대부터 따라온 성공에 지쳤죠. 작품을 만드는 작업은 좋았어요.
그렇지만 성공을 위해서 끊임없이 해야 하는 네트워킹, 예술계의 규칙들 같은 것들에 싫증이 났습니다."
1970년대부터, 당시 20대였던 그녀는 이미 스위스 미술계에서 떠오르는 샛별이 되었습니다.
22살에 그녀의 첫 개인전을 바젤의 Stamp Gallery, 이탈리아의 미술 박물관 Kunstsammulung Thun, 그리고 예술과 과학을 함께 연구하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 Istituto Svizzero 에서 여러 차례 가졌었죠.
1978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공공예술 기관 중 하나인 쿤스트할레 바젤 (바젤 현대 미술관)에서 여섯 명의 아티스트와 함께 그녀는 작품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2011년, 그때 했던 전시를 다시 재현해 달라는 쿤스트할레 바젤의 요청으로 그녀의 작품은 다시금 유럽과 미국의 미술계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일찌감치 모두가 부러워하는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어린 나이에 얻었지만, 거기에 따른 예술계 안의 정치, 구속과 규칙들에 순응하기에 그녀의 내면에는 순수한 예술성이 더 많이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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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에 있는 비비안 수터의 집안 내부 모습. 과테말라의 비비드한 컬러들을 사용하여 인테리어를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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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비비안 수터의 작품. 오른쪽: 커피농장으로 사용되었던 비비안의 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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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 속 커피 농장을
사들인 예술가
"과테말라를 일부러 오려고 한 것은 아니었어요, 우연히 발견하게 된 거죠."
비비안 수터는 그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스위스를 떠나 미국과 멕시코를 거쳐, 과테말라의 한 커피 농장 부지를 구입해 거기에 정착하였습니다.
2019년, 뉴욕 타임즈에는 그녀의 이런 삶을 재조명 하면서 기사의 제목을 이렇게 썼습니다:
미술계를 떠나
진짜로 미술을 하러 간 예술가 -
30년 동안 과테말라에서 조용히
작업에만 열중하던 작가가 이제는
글로벌 미술계 시선을 강탈하다
“처음에는 스위스를 떠나 LA에 갔는데 저에게는 안 맞는 곳이었어요. 그리고 다시 멕시코를 갔죠.
사람들에게 과테말라로 갈 것이라고 하니 순진한 스위스에서 온 백패커 여자가 뭘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다들 말렸죠.
아직 거기에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면서요.”
하지만 비비안 수터에게 멕시코 사람들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은 그냥 모호한 표현에 불구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과테말라의 이곳저곳을 여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의 자연, 그리고 이곳의 사람들과 사랑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저는 작업을 할 때 페인팅의 색상을 제가 무엇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느끼는지에 따라 결정하죠."
그녀의 작품들을 보면 강렬하고 주로 비비드한 색상들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 역시 그녀의 라틴 아메리칸 헤리티지와 연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바젤에서 작업 할 때부터 저는 굉장히 밝은 색상을 사용했었는데 당시 스위스사람들에게는 그게 굉장히 이상하다고 느껴진 것 같습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아르헨티나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과테말라는 한마디로 저의 어릴적 또다른 고향인 아르헨티나와 조금 더 가깝다고 느꼈어요."
그럼에도 비비안 수터 역시 한 인간으로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렇게 주위의 관심이 싫어서 도망쳐 왔는데, 나중에는 오랫동안 그 어느 누구의 관심도 못 받게 되자 절망스러웠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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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수터의 야외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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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베를린 Brücke-Museum 에서 열린 비비안 수터의 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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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Kunstmuseum Luzern에서 열린 비비안 수터의 전시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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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Kunstmuseum Luzern에서 열린 비비안 수터의 전시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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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받아들임과 함께 찾아온 창의성 비비안 수터
작품을 컬렉팅 한다는 것은 그 작가의 철학과 삶의 태도 일부를 우리의 삶에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나의 생활공간에 그 작가의 철학과 삶의 순간이 이제 함께 공존하게 되는 거죠.
사람들은 누구나 살면서 예측불허한 폭풍우를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그랬으니까요.
우리는 누구나 인간입니다.
비비안 수터는 20대 초부터 한몸에 받게 된 예술계의 명성이 싫어 스위스에서 과테말라로 도망쳤죠.
그러나 그 후 아주 오랫동안 그 아무도 그녀를 찾아 주지 않자 좌절했다고 고백했으니까요.
그리고 과테말라에서 무명으로 20여 년 동안 묵묵히 작품을 그려왔던 그녀의 모든 작품 마저 태풍이 휩쓸고 난 후, 그녀는 오히려 이 삶의 모든 시련과 고통을 삶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삶에 대한 받아들임의 태도와 과테말라의 무성한 아열대 자연은 이제 함께 어우러져 그녀의 작품의 원동력이 되어 그녀가 다시 전 세계의 최정상의 예술가로 떠오르게 하였고요.
예측불허라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오히려 거기서 우리가 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과 창의성이 탄생한다는 것,
73세의 예술가 비비안 수터가 전하는 메시지가 당신의 삶 속에서 영감이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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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서터의 집에서 마주 보이는 두개의 화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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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수터의 작품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
YCOLLECT의 컬렉팅 팁
🙋♀️비비안 수터의 작품은 대부분 대형 작품들입니다, 보통 길이는 200~240cm, 폭은 170~180cm 가 많고 그것보다 살짝 더 작은 작품들도 있습니다 (120호나 150호 정도의 캔버스 사이즈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작품이 워낙 크다 보니 큰 작품을 선호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해 드립니다.
넓은 벽에 작품을 설치해도 도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고, 한옥에도 의외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것 같습니다.
비비안 수터의 경우 특히 작품의 캔버스가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과는 달리 유리 또는 직각으로 프레이밍이 안 되어 있습니다.
오로지 천 그 자체로 제작이 되어 있다는 점이 굉장히 특별합니다.
그렇기에 집에 설치해 놓으시면 단순히 또 다른 프레이밍 된 작품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조각품으로도 재해석될 수 있다는 장점이 굉장히 유닉하다고 생각됩니다.
작품의 웅장한 사이즈에 자연의 살아 있는 에너지를 contemporary 추상화로 표현해낸 비비안 수터의 작품은 가까이서 보든, 멀리서 보든 자유와 비관을 긍정성으로 재탄생 되는 에너지가 분출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여러분의 집에서도 이러한 비관을 긍정으로 변화시키는 수용성과 창의성의 힘이 발산되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비비안 수터의 작품은
현재 전시중!
🇨🇭스위스 - Kunstmuseum Basel (https://youtu.be/6qDjUCP2cA4)
🇮🇹이탈리아 - Galleria d'Arte Moderna e Contemporanea di Bergamo
🇨🇳중국 - Aranya Art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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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Y COLLECT 스토리, 어떠셨나요?
이 스토리가 좋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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