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될 ‘여유’가 없다 [3월의김스피]

인스피아 2024년 3월 마지막주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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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는 사람 : 김스피

받는 사람 : 연구자님

아마추어 될 ‘여유’가 없다

[3월의 김스피]

많은 사람들이 24일 국내 최대 ‘봄꽃 축제’가 열리는 진해에서 봄기운을 즐기고 있습니다.

다만 벚꽃 개화율은 15％라고 하고요. 작년엔 따뜻해서, 올해는 추워서 문제라고 합니다(링크) ⓒ연합뉴스

>3월 레터의 비하인드 : 아마추어 될 ‘여유’가 없다

>3월의 해찰 피드 : #노동의 가치 #인구위기+시선들

>지난 편지 해찰 : #‘가짜 휴식’을 생각하다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어느덧 완연한 봄입니다.

하지만 지난주엔 날씨의 변덕이 극심해 심지어 하루는 뚱뚱한 패딩을 입고 그 다음날은 얇은 코트를 입었습니다. 슬픈 건, 두 날 전부 날씨 예측에 실패해 하루는 콧물을 흘리고 하루는 땀을 흘리며 다녔다는 것입니다.

변덕스러운 날의 진짜 문제는 단지 변동성이 크다는 것뿐 아니라 적당한 범위 내의 삶, 예측이 불가능해진다는 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비교적 둔한 사람은 그럭저럭 이런 날씨 변화를 견딜 수 있겠지만, 지난 레터에서도 언급했듯 취약한 사람이나 동식물들은 작은 기온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마음은 무거워집니다.

이번달인 3월 첫째주 편지에서는 ‘가짜 노동’(💌우리는 왜 ‘가짜 노동’을 하고 있는가?), 셋째주 편지에선 ‘환경 문제와 체감’ (💌‘환경 문제’가 와닿지 않는 진짜 이유 : 모르는 것을 슬퍼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다루어 보았습니다.

두 주제 모두 제가 꽤 오래 전부터 고민을 해왔던 이야깃거리들이었는데요. 관련해서도 또 다른 측면으로 이런 이야깃거리들을 다루어볼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매번 레터가 또 다른 레터로 이어지며 확장되는 재미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레터를 오랫동안 읽어오신 연구자님들의 경우엔, 이처럼 레터끼리 서로 연결되는 부분을 느낀 적도 있으실텐데요. 아마도 우리 주변의 문제들이 단지 어떤 ‘특정 분야’에만 갇힌 문제가 아니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있으며, 하나의 글에서 ‘뚝딱’ 설명할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겠죠.

오늘 편지에서는 ‘여유’와 아마추어라는 단어를 엮어 간단히 해찰해볼까 합니다.

이번 3월에 다루었던, 얼핏 거리가 멀어보이는 두 주제(가짜 노동, 환경)가 여유라는 단어 아래 묶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최근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3월 레터의 비하인드 : 아마추어 될 ‘여유’가 없다

‘여유’란 단어를 곰곰 떠올려봅니다.

그 자체로도 좋은 느낌이 드는 단어입니다만, 생각보다 이 단어는 많은 것을 안에 품고 있다는 생각이 근래 들었습니다.

2024년부터 인스피아 연재 주기를 소폭 조정하게 되었는데요. 상대적으로 여유가 좀 생겨서인지 레터를 보내고 난 뒤, ‘지난 주제’와 관련 된 책이나 영상 등을 더 찾아 보고, 읽고 머무르는 경향이 생긴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레터를 보내자마자, 곧장 다른 주제를 찾아 나서야 했거든요)

예를 들면, 지난주 레터를 보낸 이후엔 우연히 도서관에 가서 잡지 과월호 코너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과학 잡지 Epi가 지난해 ‘새들의 도시’(링크)라는 주제를 다루었던 것을 알게 되고 깜짝 놀라고 아쉬워했습니다.

미리 알았다면 지난 회차에 이 흥미로운 글들을 함께 다루었을텐데요!

하지만 못 다룬 것을 아쉬워하는 것보다는, 이제라도 알았으니 읽어보자라고 즐거운 마음가짐을 갖고 책을 펼쳐보는 편이 이득입니다.

이 잡지에 실려있는, 도시의 새에 대한 재미난 글들에 따르면 - 도시에도 여전히 많은 새들이 사람들과 함께 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데요. 유리벽, 도시 소음, 광(光)공해 등으로 인해 도시에 사는 새들은 큰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도시에서 새와 공존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아주 작은 실천이라도 하는 것을 통해 상황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1)

조금은 희망을 담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여러편의 글들 가운데서도 저는 영국인 교수(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이자 본격적인 탐조가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그랜트 피셔의 글에, 왠지 모르게 눈길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는 어떤 도시에 갈 때마다 그 도시의 새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잔뜩 품을만큼 대단한 탐조 마니아라고 하는데요. 그가 한국에 와서 줄곧 거주해온 도시 대전에도 아주 다양한 새들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 잡지에는 그가 대전 곳곳에서 직접 촬영한 쇠백로, 멧비둘기, 검은등뻐꾸기, 파랑새 등의 사진이 실려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 와서 탐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의아해합니다.

“해외로 이사할 때 가장 신나는 일 중 하나는 낯선 자연을 만나는 것, 그중에서도 새로운 새들을 만나는 것이다 […] 대전에 와보니 한국에서 탐조는 매우 특이한 활동인 것 같았다. 나와 같은 관심사가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기에 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여가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돌아다녔다 [...]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나와 가족들은 새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와 형은 평생 새를 관찰했다 […] 새를 본다는 것은 우리 가족에게 언제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랜트 피셔, 「이 도시엔 언제나 새들이 있다」, 《Epi》, 2023 vol.25.

저는 이 대목에서 마음이 착잡해져, 괜시리 책을 펴두고 멍하게 있었는데요.

물론 어느정도 국가별 문화의 차이도 있겠지만, 저는 어쩌면 ‘여유’의 문제가 작용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떤 분야에서든 아마추어가 될 수 있을만한 여유 - ‘경제적 자유’ 등의 문제 외에는 열정을 품을 만한 사회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요.

문득 하늘을 바라보려고 해도 삶의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매일같이 늦을까봐, 무언가 더 생산적인 것을 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사람에겐 새도 하늘도 보이지 않습니다. (왼쪽) 2022년 대전 한밭수목원에서 번식에 성공한 쇠솔딱새들의 모습(링크) /Unsplash, 대전환경운동연합

문득, ‘여유’와 ‘노동’이라는 단어를 나란히 두고 생각해봅니다.

‘가짜 노동’에 대해 다루었던 첫째주 레터(💌)의 핵심 질문을 한 마디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텐데요.

“우리는 과연 ‘어떤 노동’으로 우리의 삶을 채우고 있는가?(그 경험이 좋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일이 우리의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만큼, 우리는 ‘어떤 일’로 삶을 채우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일에서 보람을 찾고 싶어하고 또한 일은 협력, 자기 실현의 주요한 통로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여유’에 대한 이야기 역시 해야 합니다.

‘일’이 우리 삶에서 중요한 요소인 것은 맞지만, ‘삶이 곧 일’이 되고만 사람들의 세상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해도 주 70~80시간을 쭉 일하면서 버틸 수 없습니다. 이건 도의나 자아실현을 떠나 물리적인 문젭니다. 특히 OECD 국가 가운데 노동시간 최상위권을 매년 다투고 있는 한국은 실은 무슨 일인가를 묻기보다는 수고를 좀 줄여야 한다는 말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링크).

지난 레터에서 다루었던 책 <노동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라르스 스벤젠 역시 결론부에서 일과 여가(여유)의 균형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고요.

“나는 우리가 일에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에 헌신하는 태도가 노동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을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근원의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

-라르스 스벤젠, <노동이란 무엇인가>

여유는 단순히 스마트폰을 하며 뒹굴거리는 것, 더 많이 늘어져 있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물론 그것도 여유 시간을 보내는 한 방법입니다만).

여유는 곧 우리가 그만큼 더 치열하고 재미나게, 무언가 ‘쓸모없는 것’에 집중해볼 수 있는 기회 이기도 합니다.

아마추어 취미 활동, 집밥 만들어 먹기, 친구를 초대하기, 나비랑 놀기, 벽돌책 뽀개기(?), 돌봄, 공동체의 삶, 봉사 등, 우리의 삶을 즐겁고 풍요롭게 하지만 딱히 돈도 안되고 별 쓸모도 없는 일들이요.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링크)을 쓴 독일 저널리스트 테레사 뷔커는 - 시간을 빼앗겼기 때문에 우리는 돌봄 시간, 지역 공동체에 헌신할 여유, 제대로 된 취미 생활을 할 권리 등을 모두 빼앗겼는데요. 우리가 빼앗긴 것 중엔 ‘정치’도 있으며, 이를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책에서 강조합니다. 새벽에 출근길에 올라 저녁 9~10시 넘어 집에 도착하는 고단한 이들에게 있어선, 정치 역시 일종의 사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동네에서 유심히 새를 관찰하고, 도시 안에서도 ‘움벨트(Umwelt·자연과 나의 연결 감각)’를 느끼는 일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랜트 피셔의 글을 아래에 조금 더 인용해봅니다.

“도시에서 새를 만나는 것은 “시민과학” 이상의 일이고 과학철학적 문제에 관한 통찰을 넘어서는 일이다 [...] 이것은 확장된 순간처럼 느껴지는 그 무엇에 조율된 상태이다. 감각들은 어떤 활동의 가장 미세한 단서라도, 즉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각적, 청각적 신호의 미묘한 차이도 포착될 준비가 되어있다. 이렇게 감각이 준비되어 있을 때 하는 경험의 즉각성은 일상이나 일터에서 경험하는 것과는 다르며, 본능이나 감각에 맡겨진 경험에 가깝다 […] 우리는 도시 안에서도 이런 확장된 순간에 몰입할 수가 있다.”

여유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면, 한국에 정치에 건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 그리고 열정 넘치는 아마추어 탐조가, 자연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은 것도 당연한 일일 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은 결국 제가 앉은 자리에서의 고민에 빠져듭니다.

실은, 아무리 제가 “쓸데없는 책들 사이를 다니며 맘껏 해찰해봅시다!”라고 외쳐봤자, 5시간 자고 일하고, 생계를 위하여 n잡을 해야 하는 사람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그렇게 살더라도 언제 발 밑이 무너져내릴지 몰라 두려운) 사람들만 잔뜩 모인 사회에선 그야말로 벽에 소리치는 꼴이 될 것입니다.

저 역시 과거 ‘주어진 일’만으로도 심하게 지치고 바빴을 무렵엔 해찰의 ‘히읗’자도 머리에 떠올리지 못했고요.

“좋은 노동을 보장하라”는 외침만큼이나, “좋은 여가를 가질 권리를 보장하라”는 구호가 얼마나 중요할지에 대해 새삼 떠올려보게 됩니다.

여가는 우리가 무언가를 찬찬히 응시하고, 사랑하는 것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해찰합시다”라고 권유하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시간 장치를 해두어 점차 내려앉게 되는 천장과 바닥 사이에 갇힌 듯한 마음으로 초조하고 예민해지곤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틈새에서도 어떻게든 연구자님들과 다양한 것들을 해찰거리를 발굴하고, 재밌어 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앞으로도 즐겁게 궁리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그런 시도가 결국은, “좋은 여가를 가질 권리를 보장하라!”는 외침과 그리 멀진 않을지도요.

✏️

“꾀꼬리가 동남아시아의 겨울 보금자리로 떠나는 것은 내게 여름의 끝을 의미한다. 하지만 어느 계절이든 이 도시에서는 언제나 재미있는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다.”

-그랜트 피셔, 「이 도시엔 언제나 새들이 있다」

1)오늘 편지에선 잡지의 모든 내용을 다루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간단히 본문에 적었는데요. 혹시 흥미가 생긴 분들을 위해 잡지에 실린 이야기들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도시화 진전과 조류 종 다양성에 대한 흥미로운 시각(이명복: 도시화가 진전될수록 전체 조류 풍부도는 늘어나지만, 다양성은 줄어든다고 합니다. 특정 곤충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새 등은 사라지고 도시에 잘 적응하는 종만 남는 것이죠), 빌딩 반사유리 등으로부터 새들이 입는 피해와 해결책(김영준), 새끼에게 영양 적은 먹이를 줄 수밖에 없는 잡식성 까치의 이야기(이상임), 대전에 유독 많은 백로들과 주민의 공생에 관한 아이디어(성한아) 등입니다. 여유가 되신다면, 직접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3월의 해찰 피드 : #노동의 가치 #인구위기+시선들

3월 한 달간 SNS에서 특별히 이슈가 되었던 기사, 이슈가 된 사건 등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좋은 칼럼 등을 소개합니다.

#노동의 가치

우리는 일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또 기대할까요?

일은 우리에게 노동에 대한 적당한 대가를 제공함으로서 우리가 밥을 먹고, 살 집을 구하는 등의 필수적인 활동 외에도 가끔은 여유를 부릴 수 있도록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적당한 대가’입니다. 과연 필수적인 생존 활동(의식주) 조차도 충당할 수 없을만한 적은 대가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노동소득에 기대를 걸 수 있을까요? 이때 ‘일확천금’으로 사람들이 눈을 돌리는 것을 흰 눈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요?

한편, 우리는 일에서 삶의 보람과 소속감을 얻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연말 서울시는 예산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를 없앴고, 400여명의 노동자들은 기존 일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링크)

참고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란 2020년 서울시가 최중증·탈시설 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시작해 전국으로 확대된 사업인데요. 이 사업으로 중증장애인들은 ‘장애인 권익옹호’,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문화예술’ 등의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고요. 통상 보조적인 일자리가 아니라 본인이 주도하는 다양한 활동으로 많은 이들은 삶의 보람을 얻었지만,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연금 말고 코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독서 시간: 약 3분 / 글자수 : 약 1600자

👤글 속 한문장

“얼마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압구정 현대 바로 사러 갑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개당 5600만원에 산 비트코인 가격이 1억원을 돌파하면서 20억원이던 평가액이 35억원으로 불어난 내용이었다[...]비트코인 열풍은 기성세대가 이미 과실을 모조리 따먹어버린 제도권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는 청년들이 새로운 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라도 한 번쯤 성공해보리라는 절실함이 투영된 것이다[...] (선거철이 되자) 비트코인 현물 ETF 발행을 포함한 디지털자산 제도화 (청년) 공약도 나왔다 [...] 비트코인 제도화 여부는 금융 시스템과 자산시장의 관점에서 논의될 사안이지 청년 대책으로 툭 던져놓을 문제가 아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치솟으며 다시 코인 열풍이 불고 있는데요. 선거철이 되자 정치권에서는 ‘청년 공약’이라며 비트코인 현물 ETF 발행 등의 공약을 내놓고 있습니다.(링크)

하지만 과연 이런 공약은 청년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정책이 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오늘날 정치권은 청년을 한 명의 시민으로 바라보는 것조차 실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섬네일 사진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세 명의 여사원이 이더리움으로 ‘대박’을 터트린 이야기를 다룬 장류진의 소설 <달까지 가자>의 표지입니다.

“그들이 끊은 건 돈 아닌 삶이다”

독서 시간: 약 10분 / 글자수 : 약 5300자

👤글 속 한문장

““강의가 끝난 후, 한 학생이 편지를 갖고 왔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초등학교 5학년생이었는데, 강의를 듣고 감동했다며 내 얼굴을 그린 종이쪽지를 갖고 왔다. 제법 닮게 잘 그렸더라. 코팅해서 간직하고 있다.” 장애경씨(56)는 지난 3년여간 장애인식 개선 강사로 일했다[...]“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곳에만 일자리가 있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가치를 증진하는 것 역시 일자리로 볼 수 있다는 인식을 한다면 장애인이 수행할 수 있는 일자리도 훨씬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지난해 연말 서울시는 관련 예산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장애인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없앴습니다. 기존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없앤 자리에는 '장애 유형 특화 일자리'가 생겼는데요.

하지만 이에 대해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본질적인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링크) 노들장애인야학의 '노들노래공장'은, 복직을 위해 직접 만든 노래들을 담은 노래집을 판매하고 있다고 하고요.(링크)

또한 사안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추가로 더 읽어보면 좋을 글들을 첨부합니다. (링크1 링크2 링크3 링크4-1.&링크4-2.)(어쩌다보니 링크가 많아졌네요;; 한참 고민했는데 다 좋은 글들이라 빼기가 어려워서요 ㅠㅠ 특히 링크4는 '가짜노동' 회차와 연결지어 한발 더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구 위기+시선들

3월 8일은 ‘여성의 날’이었습니다. 매년 여성의 날 즈음 OECD 국가들의 성별 격차를 조사하는 이코노미스트 유리천장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29개국 가운데 29위였는데요. 꼴찌라는 것보다도 한층 놀라운 것은 ‘12년 연속 꼴찌’라는 것입니다.(링크) 그간 문제 상황을 바꾸려는 (실질적인) 시도가 전혀 없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플랫은 2024 여성의 날 특별 기획(<우선, 나로 살기로 했다>)에서 여성이 임신 출산과 동시에 ‘2등 인력’이 될 수밖에 없는 현재의 불균형한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저출산 정책에 수십조를 투입했다고 하지만, 대부분이 출산에 대한 현금성 지원으로 국한되어 직장과 가정 내에서 평등한 삶을 원하는 당사자들의 현실과는 유리된 정책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인구 위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깊이 바라보아, 큰 호응을 얻었던 <다시 쓰는 인구론>(2019) 기획을 소개합니다.

또한 인구 위기, 인구 소멸을 전제부터 뒤집어 새롭게 바라보는 칼럼과 책의 서평도 소개합니다.

과거 한번 레터에서 인구 주제를 다루기도 했었는데 여전히 어떤 이야기에도 완벽하게 설득이 되지 못해서 어리둥절한 상태입니다만, (해결을 목표로 하든 그렇지 않든) 이 시대를 설명하는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 vs 가정’인데 아이를 낳겠는가?”

독서 시간: 약 9분 / 글자수 : 약 4300자

👤글 속 한문장

““일과 가정 중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버려야 하는 성차별적 구조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했다. 여성의 생애 과업이 일 중심으로 바뀌었는데도 제도는 이들의 삶과 동떨어져 현실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근본 원인을 뜯어고치지 않고 단순히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으면 지원한다’는 식의 대책만 이어지니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돌봄을 떠맡은 여성들은 ‘비장애 남성’을 표준으로 전력질주해야 하는 조직에서 ‘2등 인력’이 된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플랫의 2024년 여성의 날 기획 기사입니다. 대부분의 제도가 출산에 대한 대가성 지원이기에, 직종이나 고용 형태에 따라 법으로 보장된 출산휴가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현실 그리고 여성들이 임신출산육아로 인해 직장을 사실상 포기해야되는 ‘선택’에 직면하게 되는 현실을 짚고 있습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은 남녀 임금 격차를 만드는 핵심 요인은 ‘탐욕스러운 일자리’라고 주장했는데요. 보통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동시에 높은 보상이 주어지는 ‘탐욕스러운 일자리’는 남성들이 중심이 되어, 가사, 돌봄노동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낮은 임금에 머무르게 된다는 지적입니다.(링크)

“저출산은 ‘무슨, 누구의 문제’인가?”

독서 시간: 약 14분 / 글자수 : 약 7200자

👤글 속 한문장

“해답은 사회의 총체적인 변화다. 일의 의미도, 교육도, 일터도 달라져야 한다 [...]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 학창 시절 내내 스펙을 쌓고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지만 막상 직장에 들어가면 뭘 위해 일해야 하는지 의미를 찾지 못한다. 교육은 안정적인 직업을 얻는 순간 멈추고, 일터는 이제까지의 방식만 고수할 뿐 새로운 문화와 흐름을 거부한다. 배워야 할 것은 ‘일(직업)’이 아니라 ‘나’ 그리고 ‘관계’다 [...] 우리는 모두 일할 수 있도록 사람을 키우고 있는가.“

👤김스피의 블라블라

독특한 관점에서 두루 다룬 경향신문 <다시쓰는 인구론> 기획입니다. 그 중에서도 3월 레터에서 다루기도 했고, 위에서도 ‘노동’을 다루기도 한 만큼 노동 문제를 다룬 챕터를 대표로 꼽아보았습니다.

과거에 저도 레터에서 한번 인구 관련 회차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드는 생각은 - 과연 저출산 문제를 점으로 볼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위의 기사에서도 읽을 수 있듯, 결국 갓난아기는 밥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 학생이 되고 구직자, 노동자가 됩니다. 그들이 또 결혼을 하고요. 그렇다고 할 때 아이를 안낳기로 하는 결정이 교육, 입시, 취업, 성차별, 양극화, 노동 문제와 동떨어진 것이라고 볼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죠. 결국은 우리 사회의 문제입니다.

전체 기획 시리즈 목차는 여기서 보실 수 있고요(시리즈). ‘1이 무너진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당시 기획 취재기는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신문과방송).

‘관계 포기 시대’로 인구문제 읽기

독서 시간: 약 5분 / 글자수 : 약 2400자

👤글 속 한문장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저출생 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전제돼 있다. 아이를 낳고 싶은 개인이 많지만 열악한 사회경제적 조건이 그들의 바람을 차단하고 있으며, 그런 조건을 개선할 국가 정책이 시행되면 출산율이 올라가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일반적 경향 한 가지는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가족을 이루어 함께 사는 것의 중요성이 점차 약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가족의 위기’ 같은 상투적 표현으로 설명되는 현상이 아니다. 가족이라는 사적 공간 내에서의 인간 관계, 친구나 동료 사이에 형성되는 친밀성의 관계, 타인과의 계약 관계, 공적 공간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관계, 시민과 시민 사이의 정치적 관계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관계 맺음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정치철학자 박이대승의 칼럼입니다. 그는 통상 정부, 언론 등이 인구 문제에 접근하는 기본 전제부터 반박하고 들어갑니다. 과연 돈만 있으면 자연히 많은 사람들은 결혼을 많이 하고 아이를 많이 기르고 싶어질까요?

위의 <다시 쓰는 인구론> 기획이 교육, 노동 등 사회 환경의 문제들을 짚었다면(그러므로 여전히 그 '전제' 자체는 크게 흩지 않았다면), 박이대승은 아예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는 마음 자체에 물음표를 던져야한다고 지적하는 것이죠. 오늘날 한국인들은 거의 모든 측면에서 관계 맺음의 피로도를 호소하고 있는데, 그럴수록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건강한 가족 관계가 중요하지만 - 한국 사회는 가부장제가 아닌 가정의 모습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한편 현실은 계속 변화하여 2022년엔 비친족가구원이 최초로 1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링크)

‘인구 감소’는 전지구적 상황이다

독서 시간: 약 5분 / 글자수 : 약 2500자

👤글 속 한문장

“향후 5~10년 이내에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확실시되는 나라로는 타이, 대만, 이탈리아, 레바논, 쿠바 등이 있고, 독일 역시 이민자들이 없다면 인구가 감소할 위기에 처해 있다[...]한국의 저출생 문제가 워낙 심각해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보지 못했을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인구 감소 문제를 ‘지구적’ 차원에서 감각할 수 있다. 인구 감소가 국내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의 변화임을 인식하고, 인류사적 차원에서 현시대가 어느 지점에 있을지 조망해볼 수 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인구 감소를 다룬 <축소되는 세계>(앨런 말라흐) 서평입니다. 우리는 통상 한국의 저출생 추세가 워낙 도드라지다보니 이를 우리나라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경향도 있는데, 저자는 이같은 인구감소가 이미 전지구적 현상이라고 짚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아직 읽어보진 못했는데(이 서평을 읽고 관심이 생겨 바구니에 담아두었습니다!), 서평에서 또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러한 '인구 감소'로 인한 사회, 경제적 변화가 도시, 사람간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이었습니다. 통상 '인구 감소'라는 단어와 '불평등'이 함께 다루어지는 경우는 본적이 없어 신선했는데요. 기존의 경제 모델은 '성장'을 통해 분배를 하자는 공식에 의해 돌아갔지만 이젠 더이상 '성장'이 불가능해지면서 전체 파이가 줄면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세계 각지에서 파시즘 정권이 들어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문제 상황'을 해결해서(=즉 인구를 늘려서) 무한한 성장을 추구하자/옛날로 돌아가자 - 를 전제로 두기보다는, 성장의 개념 자체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지난 편지 해찰 : ‘가짜 휴식’을 생각하다

[휴일에 뭐 할지 모르는 사람들] (2023.3.1 발행·링크는 하단 사진)

작년 이맘때 쯤 삼일절 휴일을 맞아 보내드렸던 편지입니다.

당시 연구자님들로부터 공감한다는 답장이 많이 왔었는데요.

저 역시 쓰면서 굉장히 재밌었고, 스스로도 몰랐던 부분,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레터였고요.

당시 레터의 핵심 메시지는 ‘우리가 휴일을 제대로 보내기 위해서는, 단지 탕진잼만 추구하기보다는 예술 등 몰랐던 분야에 흠뻑 빠져보는 것이 좋다!’라는 거였는데요.

저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오늘 에세이에서 짧게 다루었듯 - 실은 지나치게 노동 강도가 강한 상황에서는 어디까지 ‘흠뻑 빠져보셔요!’ ‘해찰을 잔뜩 해보셔요!’라고 권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해찰을 해보세요!’라는 것이 강요나 겁 잔뜩 주기가 아닌 - 초대, 함께 놀기 위한 권유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해찰에 처음 맛들이긴 어렵지만, 익숙해지다보면 꽤 즐겁고 재밌거든요. 제대로 즐겁게 노는 데도 약간의 연습과 반복이 필요하듯, 약간의 주의 기울이기와 연습만 있다면 해찰도 꽤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쉽게 얻어지는 즐거움’보다도 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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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는 “당신은 왜 주말이 되면 미술관이나 영화관을 찾나요? 그런 노력이나 열정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나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나는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들뢰즈는 자신이 압도당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 즐기는 것을 배우고 강제로 사고하는 것을 체험함으로써 인간은 그 대상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고쿠분 고이치로,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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