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아들, 강릉의 외손. 그래서 어쩌라는거죠?

🌿이번 주 폴라리스에 담긴 질문들

- 지역 갈등 구도는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어 왔을까?

- 지역주의 정치 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오프닝

"안동, 경북 출신임을 잊지 않고 경북이 제게 유전자로 DNA로 남겨준 기개를 잃지 않고 원칙과 정도를 철저히 지켜가면서 오로지 국민들을 위해서 성실하게 일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 이재명. 고향인 안동을 찾은 유세 자리에서

“강릉의 외손이 여러분을 뵈러 강릉에 왔습니다. 강릉의 외손이 무도하고 무능한 정권을 반드시 교체해내겠습니다”

- 윤석열, 강릉의 유세 자리에서

📜구태의 갈등

최악은 경선 후보들이 관뚜껑을 열고 부활시킨 지역주의 망령이다. 이재명의 ‘백제 발언’을 이낙연 측이 ‘호남불가론’으로 규정하고 대응에 나서면서 악마적인 지역주의가 민주당 경선의 복판으로 진입했다. 백제, 호남불가론, 영남후보론 등 자극적인 언어를 통해 소환된 지역주의 그림자가 너무 퇴행적이다. 지난 지방선거와 총선을 거치면서 전국정당 입지를 굳힘에 따라 민주당에서 사라졌던 지역주의다. 지역주의와 평생을 싸운 김대중, 노무현을 배출한 민주당에서 다시 영남후보론, 호남불가론이 운위된다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지역주의를 정치적 자원으로 이용해 선거에서 이득을 보려는 전략 자체가 패악적이다.

- 양권모, <경향신문>, [양권모 칼럼] 지역주의 관뚜껑을 덮어라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요. 광주에 가서는 전두환의 비를 밟으며 상대의 발언을 공격한 이재명 후보가 대구·경북을 돌며 전두환의 경제 성과를 옹호한 일,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란 말에 일대 지역의 지지율이 오른 일, 강원의 외손이니 충청의 아들이니 끌어쓰던 양당 거대후보의 말들. 이 모든 것이 최근 한 달 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소개드린 글처럼 7월 말, 8월 초에 한 차례 이재명 당시 예비후보의 발언이 지역주의를 끄집어낸다는 비판이 쏟아졌는데, 넉달 반이 지나는 동안 아직도 ‘지역 민심’을 잡기 위해 낡은 지역 정서를 붙잡고 있습니다. 사라져야 할 이념이 아직도 정치판에 소환되는 모습입니다.

에디터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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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들어진 상처

87년 대선에서 김대중·김영삼 후보가 분열해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치러졌어야 할 선거가 ‘지역대결구도’로 변했고, 노태우 진영 등 대선후보들이 지역주의 전략을 공공연하게 펼치면서 지역주의가 전면화되어 대구 출신인 노태우를 지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세력이 바로 ‘보수정당’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대구가 보수화되어 보수정당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남이가”라는 지역주의에 의해 지역정당을 지지하게 됐는데, 그 정당이 마침 보수정당이었던 것이다.

- 손호철, <한국일보>, 대구가 ‘보수의 메카’가 된 건, 지역주의 정치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건 없습니다. 지역주의 정치는 지역 시민들 사이의 관계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정치권에서 선거 전략으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입니다. 다른 지역을 다른 진영으로 만들어 배척하게 하고, 같은 지역임을 이용해 표를 얻어보려 한 정치적 계산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단순히 득표수 몇백, 의석수 몇 개 차이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지역간의 갈등은 여전히 한국의 여러 갈등 중 하나로 남아있고, 어느 시점 이전에는 가장 강한 갈등축으로 취급됐습니다. 계급 갈등과 같은 다른 갈등의 사회화는 지역주의에 밀려 차단됐습니다. 압축해 말하면 옛날 정치인들이 표를 위해 국민을 지역에 따라 ‘갈라친’ 셈입니다.

에디터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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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이 지역감정 부추긴다

대선후보가 지역 유세마다 구태의연한 지연강조 발언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비판 없이 그대로 옮기는 언론보도 역시 큰 문제입니다. 방문 지역과 인연을 강조하는 후보 발언을 비판 없이 전하는 신문기사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

후보들의 '구시대적인 지역주의' 선거유세를 비판하기에 앞서 언론부터 '지연강조 보도'에서 벗어나 '정책검증 보도'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오마이뉴스>. "충청의 아들" "강릉의 외손" 지역주의 조장 보도 위험하다

"방송은 선거와 관련하여 계층, 종교, 지역에 따른 지지 또는 반대를 조장하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 된다." 선거방송 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제15조(계층. 종교. 지역에 따른 보도)에 명시된 내용입니다. 그러나 오늘 레터의 오프닝에 실린 이재명과 윤석열의 발언(경북·안동 출신, 강릉의 외손)은 신문 지면과 방송에 그대로 실렸네요.

언론인들은 대선후보의 지역주의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지역주의에서 벗어나 미래를 토론하는 정치가 필요하단 보도를 쏟아내는 중이죠. 이젠 언론이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에 더해, 지역주의에 기초한 발언을 외면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공론장에서 지역주의가 모습을 감추지 않을까요.

에디터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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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적 대안: 지역구 선거제도 바꿔보기

지역구 선거는 후보들이 지역구에서 당선되기 위해 지지를 확대하는 데 필요한 수단과 방법을 최대한 동원하도록 만든다. 이 때 동원되는 것이 바로 연줄과 돈, 그리고 지역개발공약이다. (...) 지역개발 공약을 보면, 국가적 수준의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할 국회의원이 마치 지역이익을 위해 활동해야 하는 것처럼 비춰지게 한다. (...)

이처럼 지역구 선거제도는 그동안 국회의원 후보들이 지지확대를 위해 연줄과 돈을 동원하고 또 지역민원이나 지역이익에 매달리도록 함으로써, 선거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심각하게 훼손해왔다.

- 정태석, <프레시안>, 지역구 선거, 이대로 유지해야 할까?

소개해드린 기사의 필자는 지역구 기반 소선거구제(한 지역구에서 한 명의 대표자 선출)로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가 지역주의를 부추긴다고 말합니다. 당선되고자 지역개발 공약을 남발하고, 이것이 지역이기주의로 이어져 지역갈등을 낳는다는 설명.

필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권역별 비례대표제입니다. 현재의 지역구보다 더 넓은 권역을 설정하고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자는 제안인데, 이렇게 되면

지역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각 정당이 광역·국가 수준의 정책 경쟁에 집중할 수 있고,
비례대표제를 통해 사표의 발생을 막아 유권자의 표가 가진 등가성·비례성을 높일 수 있으며,
한 권역에서 다양한 정당 후보를 당선시키며 정치적 지역주의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

지역구 선거가 없어지면 인구가 적은 지역의 발언권이 줄 수 있단 우려도 나옵니다. 이를 고려해 국가적으로 소지역을 배려하는 노력을 병행한다면,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에 나설 수 있지 않을까요?

에디터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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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과 분산이 지역주의 정치의 해독제인 이유

정치인 노무현에게 필생의 과제는 ‘정치 생태계’의 복원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보면, 광주항쟁을 정치적 원체험으로 삼는 대부분의 민주화 세대와 달리 그의 정치적 출발점은 1990년 3당 합당인 것처럼 보인다. 자서전에서 노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을 두고 “호남이 정치적으로 고립되었고 영남은 보수 정치 세력의 손아귀에 완전히 들어가고 말았다. 지역 구도가 돌이킬 수 없이 고착화되었다. 이때부터 20년 동안 나는 쉼 없이 싸웠다”라고 적었다. 정치인 노무현의 눈에 비친 한국 정치 20년의 모습은 균형이 깨져버린 ‘불량 생태계’였다. 지역주의 극복, 전국 정당 건설, 영남 개혁 세력 복원과 같은 그의 정치적 표어들은 이런 인식에 뿌리를 두었다.

-천관율, <시사in>, '노무현의 '균형'vs이명박의 '선택과 집중'

앞서 영호남의 갈등은 선거 승리라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갈등이란 진단을 소개했죠. 그 인위적인 갈등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중앙으로 초집화된 정치 구조 때문이란 박상훈 박사의 분석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즉, ‘국가 권력과의 거리에 의해 과도하게 좌우되는 분배 구조’ 등이 ‘한국의 지역주의와 지역 구도’가 지속되어 온 배경이란 설명. 개발 독재 시대의 산업화 당시 호남의 엘리트들은 정치권력에서 배제되고, 그 결과 호남은 산업화의 수혜를 누리지 못했다는 예가 떠오르네요.

그렇다면 결국 지역주의의 해소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지나치게 중앙 집중화된 한국 사회의 자원을 분산함으로써 가능한 일일 터.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의제이기도 했습니다. ‘균형은 진보적인 개념이다’라는 노 전 대통령의 철학을 천관율 기자의 글을 통해 만나 보시죠.

에디터 안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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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요약

1. 철 지난 지역주의가 여전히 정치판에서 기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2. 지역주의는 꼭 논의돼야 할 다른 주제들이 외면받게 만들고,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등 우리 사회의 공익을 해칩니다.

3. 정치권과 언론의 자정·선거제도 개편·지역균형 추진 등으로 지역주의를 해소할 때입니다.

✉에디터 레터

매주 폴라리스의 발행은 월요일 저녁 주제를 정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 순간 가장 큰 고민이라면 지금 무엇을 다루는 것이 적절할지 따져보는 것입니다. 아이디어를 낼 때도 그래서 지금 하필 이 주제를 다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하곤 합니다.

이번 주는 유독 그 고민이 심했습니다. 지역주의는 낡은 이념입니다. 텃밭이니 전통적인 강세 지역이니 하는 말들이 아직까지 쏟아져 나오지만, 어느 지역은 어느 정당에 많이 투표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선 후보들이 정책적 비전보다도 자신의 출신지를 따지면서 지역 표심을 챙기려는 것도 비합리적이고 공허한 수사로 보였습니다. 레터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시작했습니다. 의미 없는 지역주의가 왜 아직도 살아있고, 유의미한 선거전략으로 활용되는가? 그 출발과 지속의 경로를 따지고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고민들을 되짚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끝내 지역주의의 의미를 찾아내는 데도, 후보들의 발언과 행보를 이해할 일종의 근거를 마련하는 데도 실패했습니다. 잘못된 걸 알면서도 표를 위해 구시대의 상처에 기생하는 것인지, 애초에 잘못된 것조차 모르는 것인지. 어쩌면 여의도와 종로 일대에서는 이것이 당연한 정치문법이고, 제가 괜한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닌지.

이번 주의 폴라리스가 찝찝한 결말만을 남기지만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표가 되기 때문에 유효한 전략이라면, 표가 되지 않는 순간 전략의 의미를 잃을 터. 철저한 외면이나 지속적인 문제제기야말로 유권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대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그들은 선거 패배가 가장 두려울 것이니까요.

2021.12.20

에디터 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