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악교육복지센터 신선웅 센터장 기고
   
   
🤙 오늘의 키워드 
#청소년/청년 #비영리/활동가
👀 에디터 노트
영화 《굿 윌 헌팅》에는 오래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지만 세상을 향해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근 청년 윌 앞에서, 수많은 전문가들이 속수무책으로 물러납니다. 그런데 심리치료사 숀은 다릅니다. 숀 역시 살아오면서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온 사람이고, 그렇기에 이 청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떠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때로 어떤 처방보다도 강력한 힘을 가진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증명합니다.

이번 호는 저희가 기획한 '청년 시리즈' 3부작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편에서 무기력한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번에는 위기 청소년이 어떻게 위기 청년이 되는지, 그 과정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2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청소년을 만나온 한 활동가의 기록은 읽는 내내 묵직하게 무언가를 건드립니다.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겠다는 오래된 결심. 이번 이야기를 천천히 함께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관악교육복지센터는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교육복지 전문기관이다. 경제적, 문화적, 그 밖의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학교와 지역사회를 잇는 일을 한다. 2026년 현재 관내 40개 유·초·중·고를 지원하며, 종사자 1명이 10개 학교, 100명 내외의 학생을 담당한다. 작년 한 해에만 900명 이상의 어린이·청소년과 만났다. 이 글은 그가 현장에서 20여 년 동안 청소년을 만나 오면서 배운 것들의 기록이다.



꽃마리와 괭이밥, 두 청년


병무청 신체검사 현장, 탈의실에서 청년들이 분주하다. 안내받은 대로 저마다 분주하게 움직인다. 유독 한 사람만 우두커니 구석에 서 있다. 청년 꽃마리(가명)다. 사물함 앞에 선 다음부터는 어떤 움직임도 없어 눈에 띌 수밖에. 재차 안내해 보지만 꽃마리는 아무 말이 없다. 혹시 동행자가 있는지 물었을 때, ‘끄덕’ 처음으로 반응했다.

“꽃마리 님과 같이 오신 선생님이실까요? 들어오셔서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입영판정검사를 받는 당사자만 들어갈 수 있는 곳에 예외의 상황이 일어났다. 활동가 나비는 꽃마리 곁에 가서 말을 건넸고, 꽃마리는 비로소 의사표현을 할 수 있었다. 다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안내를 받고 꽃마리는 나비와 함께 그곳을 나왔다.

단 몇 줄의 묘사만 보아도 꽃마리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청년이라는 걸 알아챌 것이다. 꽃마리는 우리가 미성년 나이에 만난 은둔·고립 청소년이었다. 등교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사람을 마주하기 어려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고, 교실에 들어서지도 않았다. 우리가 처음 꽃마리를 만났을 때, 그의 세상은 방 한 칸이 전부였다. 처음 마주 앉기까지 두 달여의 시간이 걸렸다. 같이 학교를 가 보자고 약속했지만, 기다리고 결국 만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린 날이 허다했다. 애쓴 나날이 무색하게 꽃마리는 자퇴를 선택했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흘렀다. 통지서를 받고 병무청에 반드시 가야 하지만 혼자서는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나비와 동행했다. 우리 기관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지원하는 곳이지만, 청년이 된 꽃마리의 손은 아직 놓지 못했다.
[ 꽃마리와 괭이밥을 형상화한 이미지 | AI생성 ]
인적 없는 고요한 집, 화장실에서 물소리만 쉼 없이 들린다. 약속 시간이 다가와도, 그 시간이 훌쩍 지나도 샤워를 마치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다. 청년 괭이밥(가명)이다. 충분히 씻은 것 같아도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 계속 씻을 수밖에 없다. 두 시간, 비누 두 개가 다 녹아 없어지도록 씻고 또 씻었다. 이토록 어렵게 샤워를 마친 후에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설 수 있다. 외출해서도 수시로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는다.
 
“약을 먹으면서 씻는 시간이 좀 줄어들었어요.”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고 약물 복용을 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하지만 마음 어딘가에서 스며 올라오는 우울, 무기력, 강박은 괭이밥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씻는 시간이 줄면서 제법 가라앉았던 피부는 다시 붉게 올라온다.

괭이밥 역시 우리가 미성년 나이에 만난 청소년이었다. 등교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친구도 사귀지 않고 늘 기운이 없었다. 청결에 대한 강박 때문에 등교 준비 시간이 오래 걸렸고, 누군가가 친절하게 혹은 호의적으로 대하면 의심하게 되었다. 간혹 어떤 친구가 다가오면 자신에게 잘해줄 이유가 없는데, 뭔가 이용하려고 잘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가 나비는 청소년 괭이밥을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한 브랜드의 떡볶이만 4년째 먹고 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단 한 종류,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괭이밥은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다. 대입을 희망했지만 기초학습이 되어 있지 않아 그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우리는 청년이 된 괭이밥 역시 아직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학교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


꽃마리와 괭이밥처럼 청년이 되어가는 어린이·청소년을 만나는 우리는 ‘교육복지’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지역교육복지센터 소속이다. 빈부격차가 교육격차로 이어지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복지’가 등장했다. 누구나 공정하고 균등한 교육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사업이다.
[ 관악복지교육센터의 운영 구조 | ⓒ신선웅 ]
관악교육복지센터는 2026년 올해, 관내 40개 유·초·중·고를 지원한다. 종사자 1명이 10개 학교씩 담당하고, 100명 내외의 학생을 다 담당한다. 우리 센터가 작년 1년 동안 만난 어린이·청소년의 수만 해도 900명 이상이다. 만남의 빈도, 깊이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로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은 수치이다.

어린이, 청소년, 보호자, 교사 등 누구 하나 괜찮다고 할 수 없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이 제정되었다. 복합적 위기 상황에 놓인 학생에 대해 학교 전체 구성원이 협력하고, 지역기관이 지원하여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춤통합지원을 실시하라는 제도이다. 교육복지 역시 학생맞춤통합지원 덕분에 그 역할과 기능이 강화되었다. 이제는 경제취약계층을 넘어, 이주배경 학생, 복합위기를 겪는 일반가정 학생, 느린학습자, 특수교육 대상 학생 등 모두에게 맞춤지원을 실시해야 한다.
[ 복합위기를 겪고 있는 학생은 다양한 기관의 협력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신선웅 ]

위기의 시대, 심화되는 위기


해가 갈수록 어린이·청소년의 상황이 어려워진다. 요즘은 하루 2~3건씩 고위기 상황을 마주한다.

지금 어린이·청소년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고스란히 겪고 지금에 이른 세대이다. 5~6년 전, 그 시기에 발달되어야 할 부분에 적절하게 자극받지 못하고, 교육 기회를 잃은 채 시간이 흘렀다. 타인과 관계 맺는 방법을 모르고, 누군가와 어울려 살지 못했으며, 마스크를 쓴 채 오랜 기간 지내면서 언어 발달도 지연된 이들이 많다. 가구별 소득 격차는 심화되었고, 극빈한 상황에서 살아내는 삶은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기 힘든 정도이다.

이러한 시대에 어린이·청소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지금 겪는 어려움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낸다면 어떤 날들을 예상할 수 있을까. 위기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성장해서 위기의 청년이 된다.


두 가지 배움


20여 년, 청소년을 만나 오면서 수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중 가장 큰 배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모든 어려움은 단절에서 시작된다. 어떤 위기 상황에 놓인 사람도 ‘관계의 단절’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부모, 가족, 교사, 이웃이 그 역할을 전혀 해내지 못해 부재한 상황과 다름없어졌다. 마을을 이루어 살았던 시대는 사라져 버렸고, 이웃의 존재는 있으나 서로 알지 못하며, 개인정보보호가 중요해지면서 점차 모두가 개인 안에 갇힌 시대를 살고 있다. 덕분에 지금 어린이·청소년은 몹시 외롭다. 마음을 나눌 누군가가 없다.
 
둘째, 해결의 실마리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서 시작된다. 위기의 어린이·청소년을 만날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놀라운 상황이 있다. 무엇이 힘든지, 왜 그런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묻는 사람이 없다. 마치 기괴한 괴물을 마주친 것처럼 놀라고 혼란스러워하는 어른들뿐이다.
 
우리 센터에서 놓치지 않으려는 핵심 가치가 있다. 그들에게 묻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때를 기다리고, 그들의 걸음에 함께하자. ‘단절’에서 시작된 어려움은 ‘연결’로 풀어야 한다. 잔인하게 끊어진 관계들을 하나씩 잇고 맺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해야 한다. 밝고 맑고 행복해야 하는 어린이·청소년들이 한없이 외롭고 슬프다. 이들이 이 세상을 다시 살아갈만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서로 연결되어서 서로돌봄이 실천되어야 한다.
[ 관악교육복지센터에서 제안하는 핵심 가치 | ⓒ관악교육복지센터 ]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저마다 삶의 현장에서 살아간다. 내 삶을 가꾸기에도 버겁다. 그러나 사회적 어려움을 외면할 수는 없다. 지금의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꽃마리, 괭이밥과 같은 청년들은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다.


3년 전부터 우리 센터에서는 교육복지에서의 현금성 지원을 실천하고 있다. 단순하게 극빈한 이들에게 돈을 주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함은 결코 아니다. 경제취약가정에 지급되는 기초생활수급비 등은 가정 중심으로 지원된다. 이로 인해 어린이·청소년의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견된다. 교통비가 없어 한 시간 가량 걸리는 학교를 걸어 다니고, 학교에서 먹는 급식으로 하루 끼니를 채운다. 청소년에게 지원되는 급식카드는 편의점이나 지정된 음식점에서 식사거리를 살 수 있는데, 그걸로 가족 구성원 모두가 끼니를 해결하는 가정도 상당수 보았다.


센터는 극빈한 상황의 청소년에게 한 달에 5만 원에서 10만 원의 성장지원금을 지급한다. 대부분 한 번도 용돈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이들이다. 지원이 시작된 청소년들과 가장 먼저 하는 활동은 청소년 이름의 통장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매월 받게 되는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계획하고 실행하며 함께 점검한다.


현금성 지원을 받는 것으로만 끝내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자립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장치를 둔다. 필요한 금융교육을 실시하고, 1대 1 맞춤형 진로·진학컨설팅을 실시한다. 경제적 관념을 세우고, 앞으로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밑그림을 그린다. 이를 통해 청소년은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선택하는 삶을 연습할 기회를 부여받는다.


이 지원사업의 이름은 ‘경청프로젝트’다. 청소년에게 경제적 권리를 주고 청소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는 의미이다.

[ 청소년에게 경제적 권리를 주고 이야기를 듣는 ‘경청프로젝트’ | ⓒ관악교육복지센터 ]
센터의 법인은 30년 이상 청소년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 활동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시간 안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위기를 극복함으로써 이후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낼 수 있도록 하자는 결의이다.

우리는 사회에 말한다. 서로돌봄이 사라진 시대에, 연대를 외친다. 청소년의 곁을 지키는 방법 중 우리는 현장에 몸담고 함께한다. 다른 삶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함께 재원을 마련해 주기를 청한다. 어린이·청소년을 지원하는 사람들의 처우개선은 이 현장의 전문성과 지속성과 직결된다. 그래서 사회적 관심을 요청하고, 조금씩이나마 함께해 주기를 바라며 초대의 자리들을 마련하는 일을 계속하는 중이다.

글 | 신선웅

관악교육복지센터 센터장
어린이·청소년의 삶과 배움의 환경을 연결해오고 있습니다.
청소년의 돌봄과 관계 등 지역사회 안에서 교육복지 실천과 연대의 중요성을 이야기 합니다.
waha12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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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에만 머물던 정치가 일상으로 내려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해와 동의는 다르다’는 말이 특히 인상 깊네요. 이런 대화 공간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 이해와 동의는 다르다.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자주 놓치고 있는 중요한 얘기였는데, 계속 떠올리며 살아가려고요💫

✏️ 오늘 유난무브먼트의 인터뷰를 읽고 활동가로서는 유난과 공론장 사업을 기획해봐야 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유난의 뉴스레터만 받아보고 있었는데 우선 찾아가봐야 겠네요. 일단 유난이 되게 궁금해졌어요.
💬 저도 오프라인 공론장이 과연 활성화될 수 있을까? 라는 궁금함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요. 양소희 대표님 말처럼 우리가 되게 얘기하고 싶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공론장 사업을 기획하신다니, 지난 레터가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by. 에디터 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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