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의 여름밤 #무스탕 랄리의 여름 #기쿠지로의 여름
다정한 구독자 님께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요즘 날씨가 참 변덕스럽네요. 비가 주룩주룩 와서 이제 여름은 다 끝났나 했는데, 해가 내리쬐니 등이 땀으로 축축합니다. 주말에는 태풍 예보가 있고요. 부디 아무 피해 없이 무사히 지나가면 좋겠습니다. 

지난여름을 생각하며 영화 세 편을 골랐습니다. 우리들의 여름과 닮아서, 또 닮지 않아서 아련하고 애달픈 이야기입니다.
남매의 여름밤 (2019) 
영화 포스터를 살펴볼까요? 연식이 있어 보이는 2층 양옥집. 낮동안 달구어진 집을 식히기 위해서인지 아래 위층 창문과 대문까지 활짝 열려있습니다. 식구들은 1층 거실에 모여 저녁을 먹고 있네요. 아무래도 옥상의 열기가 그대로 전해오는 2층보다는 1층이 조금이나마 더 선선하겠지요. 저 멀리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리고 형광등 불빛 아래로 날벌레가 날아들 것 같은 밤입니다.

뒷모습만 보이는 두 아이는 옥주(최정운)와 동주(박승준) 남매입니다. 여름 방학을 할아버지 댁에서 보내는 중이에요. 아빠의 사업이 어려워져 잠시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고모도 함께 살게 되었어요. 오랜만에 할아버지의 집이 북적입니다. 무슨 사정인지 캐물을 법도 한데 할아버지는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태연히 여름을 납니다. 모처럼 평화로운 여름인가요.

영화를 보면서 제 조부모의 옛집을 떠올렸습니다. 자개장롱, 오래된 그릇들,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했던 다락방, 요를 깔고 모기장을 치고 잠들던 밤... 윤단비 감독은 기억 저편에 묻혀 있던 장면을 섬세하게 길어 올려 눈앞에 펼쳐둡니다. 옥주와 동주의 모습에서 저의 어린 날을 엿보기도 하고요, 말로 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 것만 같아서 함께 웃고 울었습니다.

감독 : 윤단비
러닝타임 : 1시간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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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랄리의 여름 (2015)
학기가 끝나고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날. 랄리는 선생님과 헤어지는 게 아쉬워 엉엉 웁니다. 선생님이 이스탄불에 가고 나서도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기로 거듭 약속하네요. 돌아서니 네 명의 언니들이 랄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막내 랄리를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던 걸 보면 어쩌면 언니들도 도시로 떠난 선생님과 어렵게 헤어졌던 기억을 하나씩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우울한 랄리를 달래주기 위함인지, 방학이 시작하는 날이어서인지, 아니면 그저 날씨가 좋아서였는지 언니는 통학 버스를 타지 말고 걸어서 집에 가자고 합니다. 그렇게 다섯 자매는 곧장 집으로 가는 대신 바닷가에서 남자애들과 어울려 떠들썩하게 물놀이도 하고 남의 집 정원에 들어가 사과도 몰래 따 먹으며 한참을 놀았어요. 깔깔거리며 즐거운 마음 가득 집에 돌아왔는데 할머니가 굳은 얼굴로 자매들을 추궁합니다. 첫째인 소냐 언니부터 할머니 방으로 붙잡혀 들어갔는데,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 거죠?

순결과 결혼만이 최고의 가치인 작은 시골 마을에서 누구보다 밝게 빛나던 소녀들은 소리 없이 시들어 갑니다. 영화 제목 "무스탕"은 작은 야생마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해요. 언니들이 하나 둘 집을 떠날 때마다 입술을 앙다물었던 랄리의 얼굴이 야생마와 닮았습니다.

감독 : 데니스 감제 에르귀벤
러닝타임 : 1시간 37분
Stream on Watcha, Netflix, Tving & Wave
기쿠지로의 여름 (1999)
아이들은 걷는 법이 없습니다. 달리죠. 다다다. 얼른 놀고 싶은 마음에 귀여운 두 다리를 바삐 놀립니다.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도 이런 아이의 발놀림을 포착하며 시작합니다. 한 소년이 천사의 날개가 달린 가방을 메고 힘껏 달려오네요. 저 아이의 이름이 기쿠지로인 걸까요?

소년(세키구치 유스케)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여름 방학이지만 친구들은 다들 어디 갔는지 혼자서 심심하기만 해요. 그래, 돈 벌러 멀리 갔다는 엄마를 찾아가야겠다. 소년은 마음먹습니다. 그런데 무작정 길을 떠난 소년에게 수상한 동행이 생깁니다. 전직 야쿠자, 현직 동네 백수인 이 남자(기타노 다케시)는 마누라의 등쌀에 밀려 소년의 여정에 함께하게 됩니다. 여행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아 보입니다. 소년의 바람대로 엄마를 무사히 만날 수 있을까요?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Summer』은 이 영화의 OST인데 삽입곡으로 자주 쓰여 멜로디가 친숙할 것 같습니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아련한 정서의 팔 할이 히사이시 조의 음악 덕분인 것 같아요. 라디오에서 우연히 『Summer』가 나올 때마다 어른 같은 아이와 아이 같은 어른이 함께 보낸 한 여름을 떠올립니다.

감독 : 기타노 다케시
러닝타임 : 2시간 1분
네이버 시리즈온
덧붙이는 이야기 
여름 안에서
- 성률 만화

수채화는 여름과 참 잘 어울리는 재료인 것 같아요. 가볍고 맑고 투명한 특성이 빛으로 가득한 여름날을 그리는데 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률 작가는 수채로 소년과 소녀의 여름 날을 그렸습니다. 사라진 고양이를 찾아 동네를 탐사하는 소년, 멀리 떠난 친구를 찾아 바다로 가는 소녀. 이렇게 단편 두 개가 사이좋게 실려 있어요. 글자는 많지 않지만 그림을 하나씩 꼼꼼히 보다 보면 한 권을 다 읽는데 제법 시간이 걸립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짙은 녹음으로, 두 번째 이야기는 깊은 바다의 푸름으로 넘실댑니다. 

두 우정 이야기를 읽고 보면서 지난여름을 고이 접어봅니다. 이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때이니까요.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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