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정치인의 대중교통 이용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제 '대중교통 퀴즈' 코미디는 끝인가요?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런던 지하철에서 '항전' 의지를 보이는 국민과 대화하는 모습의 영화 장면. ['다키스트 아워' 캡처] 
 “이게 지하철이구먼.” 지팡이를 든 윈스턴 처칠이 혼잣말을 하며 멈춰 선 열차에 올라탑니다. 그를 알아본 승객들이 ‘이게 뭔 일?’이라는 표정을 짓습니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 후반부 장면입니다. 배경은 1940년 5월. 프랑스ㆍ벨기에까지 진격한 나치가 영국에 ‘평화 협정’을 제안한 직후입니다. 굴욕적 협정 체결이냐, 항전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영국 총리 처칠이 갑자기 지하철에 등장합니다. 그때만 해도 영국 지하철은 하류층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승객들에게 이름과 직업을 물어보며 인사하던 처칠은 벽돌공이라고 밝힌 시민에게 “조금 있으면 일이 아주 많아질 걸세”라고 농담을 던집니다. 그러고는 “내가 요즘 고민이 많다”고 고백합니다. 처칠은 나치와 협정을 맺는 것에 대해 시민들에게 묻습니다. 한 여성 승객이 “파시스트에게 절대로(never) 굴복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어 다른 승객들이 “절대로!”를 잇따라 외치자 처칠이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습니다. 의사당 근처인 웨스트민스터 역에서 내린 처칠은 그 뒤 나치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대국민 연설을 합니다. 처칠이 지하철에서 국민의 항전 의지를 확인했다는 게 영화의 설정입니다. 처칠이 실제로 그때 지하철에 탔다는 증언이나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그 웨스트민스터 지하철역은 영국 정치인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입니다. 그 앞에 의사당이 있고, 바로 옆에는 하원의원들의 사무실이 있는 의원회관이 있습니다. 의원회관에는 의원용 주차장이 없습니다. 그러니 다들 택시, 버스, 지하철, 자전거를 타고 갑니다. 기차로 통근하는 의원도 있는데요, 영국 의회는 의원들에게 기차 일반석 비용을 대줍니다. 일등석에 타면 차액이 아니라 전액을 자비 부담해야 합니다. 운전기사를 둔 하원의원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영국만 그런 게 아니라 북유럽 국가에서 정치인이 전철이나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뉴스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정치인이 운전기사가 모는 고급 차량 뒷자리에 타고 다닌다면 그게 오히려 화제가 될 겁니다.  

 고관대작이 좀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한국에서는 선거에 나온 후보나 인사청문회장의 공직 후보자가 ‘교통 상식 고문’을 당합니다. 거기에서 체면을 구긴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2008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 토론회에서 정몽준 후보는 서울 시내버스 기본요금을 묻는 말에 “한 70원 하나?”라고 답했습니다. 정답은 1000원이었습니다. 2012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김태호 후보는 사회자가 버스 요금을 묻자 “패스패스”를 외쳤습니다. 지난 2월 변창흠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택시 기본요금이 얼마냐는 질문에 “보통 1200원 정도”라고 대답해 빈축을 샀습니다. 정답은 3800원입니다. 

 지난해 1월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총선 선거운동을 위해 전통시장에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탔습니다. 그런데 교통카드를 엉뚱한 곳에 갖다 대는 바람에 개찰구에서 가로막혔습니다. 이 전 총리는 주변 사람 도움을 받아 역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랬던 그는 지난달에 "출근 시간에 여기에 와서 ‘지옥철’을 타 보고 GTX '김부선'(김포-부천선) 문제를 생각해 보라"는 경기도 김포시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지하철을 탔습니다. 승객이 보는 앞에서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김포시 교통난 해결을 주문하며 지하철과의 악연을 다소 털어냈습니다. 이 전 총리와 더불어 김포시 주민들의 '김부선' 문제 해결 위한 탑승 요청을 받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름이 고약합니다. 

 당 대표 출근 첫날에 지하철과 공유 자전거 '따릉이'로 국회로 출근해 더욱 주목받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연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버스 문 닫기 전에 타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어제 윤 전 총장 대변인이 “택시 타고 바로 갈 수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정치판 문화에서 대중교통이 보편화하나 봅니다. 선거 때면 국민의 공복(公僕) 또는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이 ‘교통 퀴즈 고문’에 당혹해 하는 블랙코미디는 이제 사라질까요? 최소한 검정 세단 도열 풍경과 '3보 이상 승차' 습관은 줄어들 것 같습니다. 여의도에 등장한 '메기' 한 마리가 열 일을 합니다.

 요즘 언론의 '블루칩'은 단연 이준석 대표입니다. 어제 당 최고위원회에서는 '파격'을 주문했습니다. 그의 행보를 살핀 기사를 보시죠.
더 모닝's Pick
1. 정상회담 불발로 깊어진 한일 갈등
 G7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일본이 독도 방어훈련을 트집잡아 무산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일본 측은 애초에 회담이 계획되지도 않았는데 한국 정부가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양국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진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국 외교부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정상회담 교섭 과정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적 관례에서 벗어난 일입니다. 😳 
2. 종부세에 청년 셰어하우스도 위기
 문재인 정부가 대안적 주거 모델로 장려한 주택협동조합 주거 공간과 셰어하우스가 존폐 갈림길에 놓였습니다. 정부 정책 변경으로 임대사업 법인도 종부세 부과 대상이 됐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살피지 않고 허겁지겁 만든 부동산 대책이 빚은 후유증의 하나입니다. 이대로 가면 민간 임대주택 시장이 고사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부실 대책으로 인한 문제가 하나둘이 아닌데 정부는 손을 놓고 있습니다.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것 같습니다. 😠
3. 건보공단 이사장, 파업 맞불 단식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단식을 선언했습니다. 외주업체 직원인 이 공단 고객센터 상담원들은 직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공단 직원들은 외주업체 파견 직원 직고용은 경쟁을 거쳐 공단에 들어 온 자신들에게 역차별을 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김 이사장은 파업 중단과 양 측 대화를 촉구하는 뜻에서 단식을 한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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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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