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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35. 역량의 개념과 도출 방법론
by jason KIM

HRer라면 “역량”이라는 표현을 자주 듣고 쓸 것입니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매일 십여 회는 읽고 듣고 쓰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는 역량을 상당히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합니다. ‘능력’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정도로 쓰고 있지 않나 싶네요. 그러나 역량은 학문적 배경과 꽤 오랜 역사를 가진 개념입니다. 오늘은 이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뭐든지 이론을 알고 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있으니까요. 게다가 작년 이맘때 보낸 뉴스레터가 핵심성과지표(KPI)에 관한 것이었으므로(https://stib.ee/92z4), 균형을 잡기 위해 이번 글의 주제로 정해 보았습니다.😀

역량의 학문적 배경


역량이라는 개념을 처음 개발한 사람은 1970년대 하버드대 교수였던 심리학자 David McClelland입니다. 당시 그는 미국 국무부로부터 어떤 연구 용역을 하나 받게 됩니다. 그때는 냉전 시대였고, 미국과 소련은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제3세계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는 것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도 최고의 엘리트, 주로 아이비리그 출신을 대거 외교관으로 선발하여 제3세계에 배치합니다. 그런데, 60% 정도의 외교관은 각 국가에서 퇴출당하고, 30% 정도는 그저 그런 평범한 관계를 맺습니다. 오직 10%만이 해당 국가로부터 적극적 지지를 받고 강한 협력을 끌어냅니다. 美 국무부는 이에 의문을 품게 됩니다. 모두 IQ와 학점이 높은 최고 명문대 출신인데, 도대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그래서 McClelland 박사에게 연구를 의뢰합니다. 무엇을 보고 외교관을 선발해야 고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 달라고…


이 연구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역량(competency)’입니다. 당시 인력 선발의 기준이었던 IQ가 실제 성과와 상관관계가 거의 없음을 밝혀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당시에는 꽤 충격적인 결과였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를 뒤집는 학문적 연구물도 있습니다. 비슷한 지능을 가진 집단(예: 회사)에서는 IQ가 성과와 큰 상관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집단에서는 IQ가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럴 것 같습니다…) 따라서, IQ가 아닌 다른 기준이 필요한데, 그때 새로운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역량입니다. McClelland는 직접 관찰을 통해 고성과를 내는 외교관들의 공통적인 행동 패턴과 내적 특성을 찾아내는, 전통적인 역량 도출 방법론을 개발했습니다.


이때 McClelland가 주장한 역량의 기본전제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고성과자와 보통성과자는 구분된다. 둘째, 고성과자는 일을 잘하는 무엇인가 다른 이유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역량으로 본다. 셋째, 역량은 성과를 예측하는 데 가장 유용한 기준이다. 넷째, 역량을 알려면 고성과자를 직접 관찰해야 한다.

어디까지 역량으로 볼 수 있나?

"역량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십중팔구 자동반사적으로 “지식(K), 기술(S), 태도(A)”라는 답이 떠오를 겁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정말 이것으로 충분한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열정도 역량인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하시겠어요? 지금부터는 역량의 범위에 관해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Spencer & Spencer는 역량을 5개로 구분했습니다. 지식(knowledge), 기술(skill), 자아개념(self-concept), 특질(traits), 동기(motives)입니다. 여기까지 들으시면 바로 역량의 '빙산 모형(iceberg model)'이 떠오르시죠? 네, 맞습니다. 이게 바로 그 빙산 모형(iceberg model)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지식과 기술은 수면 위에 잘 보이는 것입니다. 반면, 자아개념, 특질, 동기는 수면 아래 있어서 눈으로 관찰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역량은 이 5개 중에 어디까지일까요?


사실, 위 문단 첫 번째 문장 속에 답이 있습니다. “Spencer & Spencer는 역량을 5개로 구분했습니다”라는 문장대로 이 5개 전부가 역량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중 수면 아래에 있는 것이 더 진정한 역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식과 기술은 쉽게 가르칠 수 있는데 비해, 수면 아래 있는 것들은 가르칠 수 없을뿐더러 노력한다고 해도 잘 바뀌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특질이나 동기 같은 것은 타고났거나 아주 어린 시절에 형성되는 것이기에,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장기간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것들을 더 근본적인 역량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관찰 가능한 행동’ 또는 ‘지식 및 기술’만이 아니라, 더 넓은 범위의 심리학적 측면들을 포함하여 역량을 설명하는 학자는 많습니다. Boyatzis, Dubois, Klemp 등도 동일한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스펙(spec.) 위주의 채용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눈에 쉽게 보이는 영역인 스펙만으로 사람을 선발하고,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심리를 등한시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성과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일하면서 고민했던 몇 가지 질문을 퀴즈처럼 내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친절함이나 체력은 역량일까요?”입니다. 네, 역량이 맞습니다. 친절함이나 체력이 표현만 세련되지 못할 뿐이지, 어떤 직종/직무에서는 핵심 역량입니다. 예를 들어, 호텔리어를 선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hospitality’입니다. 남을 돕고자 하는 이타성을 의미하죠. 이것의 유무가 좋은 호텔리어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나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체력이 중요한 직무가 있습니다. 경찰관이나 소방관 같은 직업이 그렇죠. 그래서 선발 시험에 체력 검정이 있는 것이죠. 두 번째 질문은, “자신감도 역량일까요?”입니다. 네, 자신감도 역량입니다. 실제로 Boyatzis는 리더십 역량군에 자신감(self-confidence)을 포함시켰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심리적 요소도 중요한 역량입니다. 자신감은 좋은 리더가 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니 역량에 포함됩니다. 물론, 이 자신감을 어떻게 측정하고 검증할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만… 세 번째 질문은, “호기심도 역량일까요?”입니다. 이는 직무에 따라 다르지만, 성과에 영향을 준다면 중요한 역량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컨설턴트의 중요한 역량 중 하나가 호기심이라 믿습니다. 이 호기심이 새로운 것을 학습하거나 정보를 찾고 파악하는 데 중요한 시발점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무 오지라퍼(?)만 아니면,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선호합니다.


어떤 것이 역량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저는 이런 기준을 씁니다. 이론적 근거가 있는 것도 있고, 제 경험으로 만들어 쓰는 것도 있으니 참고만 하십시오.


  1. 논리적으로 성과 창출과 연관이 있는가? 상식적으로도 이 역량이 높으면 그 일에서 성과가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가?
  2. 확인과 측정이 불가능하거나 지나치게 어렵지 않은가?
  3. 지나치게 지엽적이거나 지식/기술의 유무만을 강조하지 않는가? (예: ‘OO를 아는 지식’, 'OO 장비를 다루는 기술')
  4. 개념상 여러 역량이 뭉쳐 있을 만큼 포괄적이고 광범위하지 않은가? (예: ‘문제해결력’: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러 역량이 복합적으로 발휘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문제해결력은 ‘역량’과 유사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큰 개념입니다. 문제해결력을 좀 더 잘게 쪼개서 정확하게 정의해야 합니다.)
  5. 역량의 수준이나 발전 단계를 나눌 수 없을 만큼 단순하지 않은가?
  6. 고성과자의 특성이더라도 간헐적으로 나타나거나 드물게 발휘되진 않은가?
역량체계를 설계하는 법: 프레임워크 및 도출 방법론

일반적으로 역량체계는 위와 같이 구성합니다. [공통역량], [리더십역량], [직무역량]으로... 회사마다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콘셉트는 거의 다 비슷합니다. 그리고, [직무역량]을 다시 <직무행동역량>, <직무기술역량>으로 나누는 회사도 있습니다. 이를 도식화하면 위와 같습니다. 


[공통역량]은 우리 회사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갖춰야 하는 역량입니다. 보통 핵심가치로부터 도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통역량과 핵심가치가 따로 노는 것도 이상하니 당연한 일입니다. [리더십역량]은 조직 내 리더, 또는 리더 후보자에게 요구하는 역량입니다. 리더상(像)으로부터 도출합니다. 명시적인 리더상이 없더라도, 리더십역량을 도출하고 행동지표를 정하는 것 자체가 리더상을 그리는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직무별로 필요한 역량을 따로 정하여 [직무역량]을 도출합니다. 이 직무역량 중 <직무행동역량>은 사고법(思考法), 기질적 특성, 일반적인 행동 패턴 같은 비교적 일반적(generic)인 것입니다. ‘개념적 사고’, ‘관계 형성 능력’, ‘정보 탐색력’ 같은 것이 예입니다. 다시, 직무역량 중 <직무기술역량>은 정말 그 직무를 하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specific) 지식 및 기술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HR의 직무기술역량이라면 ‘노동법에 관한 기초 지식’, ‘Excel 활용 능력’, ‘교육과정 개발 능력’이 예가 될 것 같습니다. (NCS가 주로 이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너무 이런 것만 있어서 약간 거부감이 들 정도로…)


이 프레임워크는 “꼭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마다 인사 철학이나 상황에 따라 선택하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리더십역량을 따로 두지 않고, 공통역량의 상위 수준을 리더십역량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직무역량을 굳이 직무행동역량과 직무기술역량으로 나누지 않아도 됩니다. 직무기술역량은 도출하기도 어렵고, 도출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것을 관리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그 회사의 비즈니스에 영향이 큰 핵심 직무만 직무기술역량을 정리해둬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역량체계를 개발하는 방법론의 큰 두 갈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역량체계를 개발하려면 크게 세 가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①역량 항목, ②역량별 정의, 그리고 ③역량 수준별 행동 지표가 그것입니다. ①과 ②는 그럭저럭 빨리 정할 수 있는데, ③이 가장 힘들고 공이 많이 듭니다.


역량이라는 개념을 처음 만든 McClelland는 역량을 도출할 때 반드시 고성과자에 대한 관찰과 인터뷰를 하라고 했는데, 이렇게 정석대로 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죠. 그래서 컨설팅 회사의 검증된 역량 모델과 행동 지표를 구매해서 커스터마이즈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저는 이 방법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아주 정석대로 작업하더라도 사내에 전문가가 없으면 결과물의 품질이 낮을 수 있는데 (방법론이 품질을 100% 결정하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기존의 결과물을 활용하면 단시간에 꽤 괜찮은 역량체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사서 그대로 쓰는 것은 좋지 않고 우리 회사에 맞게 잘 조정하는 작업은 꼭 필요하겠죠? 하다못해 표현이나 단어라도 우리 회사의 것으로 바꾸셔야 합니다.

글을 맺으며...

저는 한때 역량에 관해 회의적이었습니다. 아무 데나 역량을 갖다 쓰는 것도 별로였고, 뭐든지 역량 기반으로 한다고 광고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단적인 예가 ‘역량 기반 교육체계(CBC: Competency-based Curriculum)’였습니다. 기존 교육체계 및 교육과정과 내용적으로는 다를 것도 별로 없는데, 굳이 역량을 정해서 그 역량마다 교육과정을 매칭하는 것이 번거롭고 무의미해 보였습니다. (물론, 제가 제대로 된 CBC를 직접 경험하지 못해서 이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인사 운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역량체계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채용, 인사평가, 진단, 교육 등에 광범위한 근거로 쓸 수 있어서 편리하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다만, 역량에 대한 기초 지식이나 깊이 있는 고민 없이 한두 명이 대강 뚝딱 만들어서 그럴듯한 좋은 말만 늘어놓는 역량체계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HR 컨설턴트 중에도 이 역량체계를 도출하는 프로젝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이유가 예쁘고 멋진 말을 지어내서 말장난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역량체계를 설계하는 프로젝트를 하면, 국어국문학 전공자나 광고 카피라이터가 더 잘하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마저 있습니다. 


제가 앞서 많은 뉴스레터에서 주장한 것과 동일한 맥락으로, 역량도 일정 수준 이상의 공을 들여서 잘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역량체계여야 HR의 여러 영역에 연계한 인프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직급체계와 마찬가지로, 역량체계도 수면 아래 잔잔하게 흐르는 물처럼 인프라로 작용하는 면이 크기 때문입니다. 대충 뚝딱뚝딱 만들면 오래 쓰지도 못하고 금방 바꿔야 하고, 이것이 반복되다 보면 금세 말장난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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