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19시 30분 8번 출구 #03 서랍레터는 이주이와 이소이가 만드는 뉴스레터입니다. 살면서 신경 쓰지 않았던 서랍장을 설렘과 두려움으로 열어봅니다. 매일 밤 꿈속의 나와 무의식이 만든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기록하지 않아 기억에 없던 '오늘'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둘째 주, 넷째 주 목요일 늦은 11시에 보내드립니다. 19시 30분의 8번 출구 앞은 소이와 주이가 소원하고 고대하는 일상이 시작되는 시공간입니다. 주이는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회사에서는 떠올리지 않았던 여러 생각을 합니다. 집에 도착하려면 세 번의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릴 때 내가 요즘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비로소 하게 됩니다. 마음속에 일종의 에세이를 그리는 일입니다. 소이는 주변을 볼 겨를 없이 빠르게 작업실로 갑니다. 마치 계절을 밀어내는 것처럼요. 노트북을 켜고 호흡을 고르면 백지 앞의 저녁이 시작됩니다. 어떤 날은 하기 싫은 일을 맡은 사람의 꾸역꾸역일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가장 좋아하는 알사탕을 물고 있는 기분으로 문장과 이미지를 즐겁게 떠올리기도 합니다. 〈19시 30분의 8번 출구〉에는 세 번의 초록 불을 기다릴 때, 작업실에 앉아 호흡을 고르며 하는 생각들을 담았습니다. 기대하지 않는 마음으로 그냥 하는 것 이주이 우루드바 다누라사나(나는 엑소시스트 자세라고 부른다)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요가를 한 지 약 1년 만의 일이다. 몇 달 전에는 2초도 못 버텼는데, 이제 5초 이상 버틸 수 있게 되었다. 팔도 제법 펴진다. 부러워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를 따라다니는 건지, 아니면 내가 찾아다니는 건지 모를 정도로 부러워할 대상은 내 옆에 언제나 있었다. 정말이지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부러워하지 않는 법을 익히지 못해서 티 안 내는 척만 늘었다. 창피하지만 그랬다. 그러는 동안 남과 나를 비교하느라 바빠서 내가 되고 싶은 모습들을 놓쳐버리는 데 익숙해졌다. 내 손을 떠나 흘러가는 것들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아 했다. 그다음에는 남의 손에 들려 있는 ‘그것’들을 보곤 다시 부러워했다. 놓친 후에 흘려보낸 게 아니라 덮어두고 있었을 뿐이었던 거다. 자꾸만 어긋났다. 악순환이었다. 처음 요가를 등록하러 가는 길은 비 오는 여름밤이었다. 당시 무직이었던 나는 장마철 비가 내리는 빈도만큼이나 한가롭고 심심했다. “이제 코로나도 좀 괜찮아졌나 봐”라는 누군가의 말에 뭔가 새로운 운동을 등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제법 큰 요가원이 있었고, 때마침 내 손에는 내 몫의 재난지원금도 쥐어져 있었다. 아쉬탕가 수업은 말 그대로 패닉이었다. 몇 번을 해도 그랬다. 나만 못 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낯설다고 해도 너무 헤매는 것 같았다. 잘하는 사람들 틈에 껴서 혼자서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처음 해보는 거니까 못 하는 게 당연해’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그런 나로서는 속수무책으로 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사바아사나 시간이 되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지금 하는 건, 그냥 하는 거예요. 그냥 반복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마음으로 그냥 하는 거예요.” 두 눈을 감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생각했다. 그냥 하는 거.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반복하는 거. 그동안 그런 일이 나한테 한 번이라도 있었나. * 몇십 번을 반복했을 때의 일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우르드바 다누라사나 자세를 취하며 처음으로 바닥에서 머리가 떨어졌다. 요가원의 벽을 거꾸로 보면서 나는 그제야 최초로 부러워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언젠가부터 나만 보느라 다른 사람의 몸을 보지 않고 있었다. 남보다 나를 먼저 향하고 있었다. 눈이 아닌 다른 곳으로 느끼면서, 차곡차곡 쌓아 가는 마음으로. 처음이었다. “너는 그래도 운동을 꽤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것 같아”라는 주변인들의 말에, 나는 언제나 웃으며 “살려고 하는 거야”라고 대답한다. 내 대답을 들은 상대는 조금 웃다가 “그래, 진짜 체력 관리해야 하기는 해”라고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체력을 기르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나의 ‘살기 위해서’에는 또 다른 뜻이 있는 것 같다고. 나를 괴롭히는 잡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남을 보면서 그 눈 뒤로 나를 스스로 찌르지 않기 위해서. 의미를 담지 않고 그냥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오늘은 아르다 밧다 파드모따나아사나를 하다가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요가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들을 옮겨적었다. * 첫 사용에 대단한 걸 얻을 순 없습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실망하지 않습니다. 의미를 담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 처음이 아니고 몇 번 반복한 상태라면, 그때부터 해야 할 일은 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나를 해치지 않도록 사용하는 데 집중합니다. * 모두가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이렇게 각자 해야 할 일은 다릅니다. 기억하세요.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각자 해야 할 일은 다릅니다. 각자가 다릅니다. * 그저 계속 반복할 뿐입니다. 언젠가는 되겠지요. 그 언제가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되겠지요. 오늘이 아닐 뿐입니다. * 꼭 뭔가를 해냈을 때만 칭찬하지 않습니다. 그저 오늘도 시도한 나를 격려하고 지지해줍니다. * 우리는 여기 같이 있지만, 오늘 처음인 사람도 있고 이걸 백 번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 좀 다를 수도 있겠지요. 괜찮습니다. * 괜찮아요. 오늘 안 되면 다음에 하면 됩니다. 괜찮아요. '그냥 한다'는 말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파도 이소이 “부산에 여행가는 건 아무래도 너무 어색한 일이다.” 비행기 안이었다.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보다 더 자주 어색하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모두 부산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나왔다. 당시에는 우리가 남포동이나 서면 혹은 광안리가 아니라 합정, 사당, 강남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되리라는 걸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더욱이 서핑에 빠져 부산에 서핑 여행을 가게 될 거라는 상상 또한 할 수 없었다. 예상한 대로 되는 것을 인생이라 부르지 않지만,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내 삶으로 들어오는 건 즐거우면서도 두렵다. 본가에는 내가 가는 걸 알리지 않았고, 다대포 해수욕장 근처에 숙소까지 잡았다. 정말 고향으로 가는 여행이었다. 택시를 타고 서핑샵으로 가는 길 끝에 산 아래로 늘어선 대학 건물이 있었다. 내가 다녔던 대학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 서핑에 빠졌다면 내 삶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토록 가까이 있을 때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다가 근처에 바다도 없는 도시에 살면서 서핑에 빠지다니. 우스웠다. 나는 어떤 크고 작은 선택으로 여기까지 흘러왔을까. 나는 바다 위에서 인생의 결이 바뀌고 있는 걸 모른 채 내렸었던 선택들을 떠올렸다. 그런 선택의 순간을 하나씩 파도에 대입해봤다. 저 파도는 단순히 며칠 더 빨리 입대할 수 있어서 선택한 해군. 저 파도는 소설보다 짧으니까 선택했던 시. 저 파도는 제비뽑기하듯이 선택한 전공……. 그동안 내가 잡아탈 수 있었던, 또는 잡아타야 했던 파도가 내 허리를 스쳐 지나갔다. 서핑은 그간 해왔던 어떤 스포츠보다 능동적이어야 했다. 어떤 파도라도 같은 파도는 없고, ‘좋은’ 파도라는 건 내가 있는 위치나 실력에 따라 상대적이었다. 여러 가능성을 지닌 파도 중에 내가 탈 수 있는 파도를 골라야 했다. 골랐다고 해도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실제로 팔을 휘저어 파도가 나를 넘어가기 전에 파도에 올라타야 했다. ‘시작하면 잘 하나 시작하는 데까지 오래 걸림’ 나의 학생기록부에는 매년 이런 평가들이 적혀 있었다. 나는 삶에 뛰어드는 타입이 아니다. 예상하고 관찰하는 편이었다. 최근에도 주가가 오를 것 같은 기업에 곧바로 투자하는 게 아니라(얼마간의 투자할 돈을 마련한 뒤에도) 그 기업의 주가가 실제로 오르는지 지켜보기만 했다. 우리 사회가 어떤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갖다 대야 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같은 생각을 오래 생각하기만 하고 실제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걸 하는 것도 아니다. 거의 출마 결심하는 것처럼 혼자 심각하긴 하지만…….) 서핑할 때도 나에게 좋은 파도라 판단해도 뛰어들지 않고 흘려보내는 파도가 많았다. 반면 친구들은 자신의 파도를 고르고 잡아타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나는 섣부르게 삶을 대입하는 걸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작 여섯 번째 서핑이라서가 아니라 나는 뭐든 너무 빨리 대입한 후 삶을 다 알아차렸다는 태도를 취하니까. 그건 꼴 보기 싫으니까. 그리고 나는 지금 바깥에서 파도를 지켜보는 게 아니라 파도 속에 있으니까. 파도는 삶의 은유가 아니라 실제 나를 덮쳐왔다. 당연히 곧바로 잘되진 않았다. 생각을 그만해야 한다는 생각을 반복했고, 나는 여전히 수많은 파도를 흘려보냈다. 시시하지만, “뭐가 문제인지 알지만 잘 안 되네?”라고 말하면서 끝낼 수밖에 없겠지. 영화처럼 ‘3년 후’ ‘5년 후’ 같은 자막으로 대체한 후 완전히 변해 있는 모습으로 짠! 나타나서는 “그날 이후 생각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든가. “삶은 이렇고. 삶은 저런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또 얼마나 우스울까. 어쨌든 이런 이야기에도 매듭이 필요하다면 이제 부산에 가는 걸 여행이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나는 내 피부에 맞닿은 삶인데도 몇 발자국 떨어져서 관찰하려 한다는 것. 파도는 이런 나를 손쉬운 먹잇감으로 알고 자주 삼켰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