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을 하며 나이를 먹는다는 건 생각보다 소소하고, 의외로 괜찮은 변화들도 함께 가져왔다. 얼마 전, 난임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방송을 봤다. 시험관 시술 19년 만에 아이를 갖게 된 부부의 이야기였다. ‘와, 19년이라니.’ 나라면 엄두도 못 냈을 세월. 그래서인지 방송 초반의 장면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신혼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한 장. 두 사람은 사진을 찍으며 “아기를 안고 여기 다시 오자”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 사진을 정성스럽게 닦으면서 뒤이은 아내의 말.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줄 몰랐어. 아기가 계속 안 생기니까 이 사진을 쳐다보기가 싫었거든요.”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될 거라는 걸 상상도 못 하고 장밋빛 미래만 꿈꿔왔던 내 젊은 날이, 어느 순간 철없게 느껴지고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사진 속 젊은 두 사람과 화면 속 지금의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19년의 시간의 무게를 실감했다. (물론 이 두 분은 매우 동안이시다.)
난임 판정을 받은 지 어느덧 5년이 넘어가고 있다. 30대 초반이었던 나는 어느덧 마흔에 더 가까워져 가고 있다. 나이가 먹을수록 임신에 불리하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과학적인 팩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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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한 번에 이식하며 넣을 수 있는 배아 수가 늘어났다. 만 35세를 기점으로 달라진 이식 가능 배아 수를 안내 받으며 기분이 묘했다. 좋은 건가? 나쁜 건가? 분명 나이가 들어 착상 확률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선택지가 하나 더 생겼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적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이가 이 순간에는 살짝 내 편처럼 느껴졌다. 인생이 꼭 일방적으로 불리해지진 않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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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뜨거운 커피와 뜨거운 차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한때 나는 ‘얼죽아’였다. 아이스 음료를 쭉쭉 들이켜고 남은 얼음까지 털어 먹어야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시험관을 하며 “몸을 따뜻하게 하라”는 말을 수없이 듣다 보니, 어느 날은 자연스럽게 뜨거운 커피를 주문하고 있었다. 심지어 한여름에도 뜨거운 차를 마신다. 카페에서 아이스잔 대신 머그잔이 내 앞에 놓일 때면 괜히 어른이 된 기분이 든다. 처음엔 억지 같았는데, 지금은 뜨아의 맛을 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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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귀가 시간이 빨라졌다. 예전의 나는 모임이 있으면 끝까지 있어야 했다. 먼저 일어나면 괜히 진 것 같았고, 빠지면 억울했다. 다음 날 피곤해도 일단 가는 게 승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난 먼저 갈게!” 하고 먼저 일어난다. 집에 와서 이불을 덮고 누우며 생각한다. 잘했다, 나 자신. 예전엔 빠지면 손해 본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잘 쉬면 이긴 기분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체력이 줄어드는 대신, 나를 덜 소모하는 법을 배우는 일 같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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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실패에 조금 둔해졌다. 여전히 속상하다. 피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도 여전하다. 하지만 예전처럼 바닥까지 무너지진 않는다. 한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잔다. 다음 날이 온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역시 하나의 과정이겠지. 이번 차수의 실패가 내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는 걸, 몇 번 겪고 나서야 알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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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을 하며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지 임신에 불리한 것만 늘어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5년 전의 나는 5년 뒤의 나를 상상하지 못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조금 덜 조급하고 조금 더 단단하다. 이제는 나이를 세기보다 내가 버텨온 시간을 떠올린다. 불리한 숫자 대신 단단해진 마음을 남겨두는 쪽이 생각보다 훨씬 괜찮다.
어쩌면 19년이라는 시간도 그렇게, 매일을 버티며 쌓여갔을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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