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Nov. vol.4 11월의 목차 ⚾️ 왜 위대한 여자 야구 선수는 이제껏 없었는가? (feat. Linda Nochlin) ⚖️ 문제 제기2-2. 끝나지 않는 숙제와 제도의 개입 📚 후루루룩 읽히는 레퍼런스 추천 🗺 첫 번째 프로젝트, 어디쯤? 🎤 인터뷰이를 공개합니다! [3차] 안녕하세요. 프로젝트 연구팀 '턱 괴는 여자들'입니다. 지난 한 달간 부쩍 가을이 된 풍경입니다. 🍂 따뜻한 커피 마시며 책 읽기 좋은 계절이네요. ☕️ 누군가에겐 아아 일수도 있겠죠! 아무쪼록 감기 유의하시며 모두 건강 챙기시길 바랍니다. 저희의 첫 번째 프로젝트 여자야구 이야기를 담은 <외인구단 리부팅>이 펀딩 진행 중에 있습니다. 10월 18일에 오픈되었기 때문에 뉴스레터에서는 처음 이야기 드리는데요. 턱괴녀팀의 연구내용 + 22명의 선수 및 전문가 인터뷰가 실린 단행본입니다. 펀딩 시작 후 약 열흘만에 모금액을 모두 채울 수 있었고 현재 113%, 220명의 후원자들이 계십니다. 여자야구 이야기가 물질적으로 명확하게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되어 기뻐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텀블벅은 11월 17일까지 진행됩니다. 주변에 많은 홍보와 알림 부탁드려요. ⚾️🙌🔥 턱괴녀는 저희와 함께해주시는 모든 분들이 한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크라우드 펀딩 시작과 함께 좀 더 직관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활자보다 생동감 있는 음성과 움직임을 전달하고 싶어 영상을 찍어보기로 했어요. 이 글자들 뒤에, 화면 뒤에 사람 있네! 요런 느낌? 아직은 많이 어색하고 편집도 투박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이럴 것 같습니다. 영상을 통해서는 연구 과정과 에피소드, 연구진의 또 다른 턱 괴는 지점 등을 나눌텐데요. 소소하고 짧지만 좀 더 이어져있다는 느낌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턱괴녀 뉴스레터 구독자분들께 처음으로 알려드리는 소식🚨(Exclusive 💌) '턱 괴는 여자들'의 사업자/출판사 명을 드디어 정했습니다. 바로 '후주'입니다! 후주? 영어인가, 불어인가 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불어 Rouge(붉은색, 혁명파의(?)라는 뜻도 있습니다만, 100% 한국어입니다. 후주(後註)는 책에서 편∙장∙절의 끝이나 권말에 넣는 주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 맞아요, 우리가 항상 논문에 빼곡히 채원넣는 각주와 미주, 그 연장선상의 후주. 저희의 연구가 사회의 사각지대를 밝히는 일인만큼, 그 현상 뒷 편에 서서 글을 새겨 넣어보는 행위를 잘 드러내는 단어라 바로 초이스! 지난 몇 개월간 사업자명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했으나 보자마자 '우리것이야!' 했답니다. '후주'라는 이름을 달고 출판되는 턱 괴는 여자들의 ⟪외인구단 리부팅⟫을 곧 만나보실 수 있답니다. Abbreviation : 턱 괴는 여자들을 ‘턱괴녀’로 표기합니다
정수경 연구자를 MMJ, 송근영 연구자를 K로 표기합니다. ⚾️ 왜 위대한 여자 야구 선수는 이제껏 없었는가? (feat. Linda Nochlin) ✍🏿MMJ 22명의 인터뷰이를 만나면서 그들에게 항상 이런 말을 했었어요. ‘스포츠’는 ‘예술’(그중에서도 미술)과 매우 결이 닮았다고. 어디서 그런 느낌을 받았냐면요, 수없이 많은 셀렉션을 통해야만 제도권에 편승할 수 있는 그 구조가요.
순수하게 땀 흘려 움직이는 게 그리고 경쟁하는 게 좋아서, 그리고 만드는 행위가 좋아서 선수와 작가를 꿈꾸던 아이들은 셀렉션 이면에 존재하는 ‘그 이외의 진로’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까요? 스포츠 산업을 지탱하는 수없이 많은 직업군과 예술 산업을 이루는 수없이 많은 직업군을요. 여자 야구 연구집 ⟪외인구단 리부팅⟫의 인터뷰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셀렉션을 통해 선택된 소수의 실력자만 살아남는 구조, 다시 말하면 ‘선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안전망’이 없는 구조(*1)라는 면에서 체육과 예술은 매우 닮아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모호한 유사성이라고 느꼈던 체육과 미술의 관계를 ‘피라미드형 제도권’ 구조로 대입해보니 명료해지더군요. 우연히 다시 읽은 한 논문을 통해 미술의 주요한 문제점과 그 원인을 체육에도 대입해 보려고 해요. 어쩌면 다소 거칠 수도 있지만, 뉴스레터는 연구를 하며 발견한 단상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통로니까요.
(*1) 실제로 엘리트스포츠의 토대가 되는 훈련은 학교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학교라는 교육의 틀 안에서 오히려 비교육적인 운동부 운영(학습권 박탈, 운동부 폭력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cf. 김경원(2014), 운동선수의 경력개발과 진로전환을 위한 정책 방안 : 독일의 이중 경력 지원제도를 중심으로, 대한운동학회, 운동학 학술지 제16권, 14호, p.102. 파리 1대학 미술사학과 학사 시절, 필독 논문이었던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 1931-2017)의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이제껏 없었는가? (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를 오랜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50년이 지나도 띵작인 이 논문은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인사이트가 상당했습니다. 이 논문이 미술사학과 필독 논문인 이유는 고대 그리스 조각을 양식에 따라 분류한 요한 요아힘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 1717-1768)의 『회화와 조각 예술에서 고대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에 관한 고찰(1755)』과 『고대 미술사(1764)』연구 이후 지속된 미술사의 미시적 연구 방법론을 획기적으로 확장했기 때문입니다. 미술사는 뭔가 고리타분하고 엘리트주의적인 느낌이지만 사실 철학, 수학, 과학, 사학, 기하학 등에 비교하면 태어난 지 300년 조금 넘은 신생 학문이거든요. 빙켈만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져 온 미술사라는 학문의 연구 방법론은 주로 ‘한 명의 아티스트의 생애주기에 따른 작품의 양상변화’와 같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쉽게 말하면 미술사 이외의 학문과는 협업이 없었다는 거죠. 린다 노클린은 학제 간의 단절 내에서 이루어진 미술사학 연구는 ‘전체’를 조명할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또한 미술사학자들이 반복해온 ‘한 명의 작가 신화 만들기 프로젝트’는 여성 미술가의 배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을 지적하고, 다학제간 연구를 통해 미술사 연구 방법론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였죠. 이 덕분에 해당 연구는 파리1대학을 비롯한 많은 학교의 필독 논문이 된 것이고요. 그뿐만 아니라 노클린의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이제껏 없었는가?’ 같은 단순한 물음에 대한 적절한 답변의 과정은 일종의 연쇄 반응을 일으켜, 단일 영역[미술]에서 수용된 가정을 다루는 것을 넘어, 역사와 사회 과학, 더 나아가 심리학과 문학까지 포괄/적용할 수 있습니다. 평화와 평등을 위한 여성 파업, 뉴욕, 1970/08/26
© Eugene Gordon—The New York Historical Society / Getty Images 미국에서 여성운동이 절정에 올랐을 시절인 1971년, 노클린은 『Art News』 메거진에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이제껏 없었는가?>를 게재합니다. 보통 이런 질문을 들으면 우리는 무엇이라 말할까요? “아닙니다!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있었습니다. 누구냐면요…!” 등의 잊힌 여성 미술가를 미술사라는 깊은 지층에서 캐어오거나 혹은 “여성 미술에는 남성 미술과 다른 ‘미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요, 여성 특유의 양식에는 여성이 처한 상황과 경험에서 비롯된 표현상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처럼 시대상을 녹여낸 여성 미술가의 위대함을 주장하겠죠. 그러나 위의 대답들은 “어쨌든, 남성과 여성이 진정으로 동등하다면,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또는 작곡가, 수학자, 철학자, 체육인, 건축가 등)는 이제껏 없었나요?”라는 질문에 답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꽤 흥미로워 연구 주제가 되고 정당하게 평가된 여성 미술가는 있지만, 지오토, 미켈란젤로, 다빈치, 램브란트, 마네, 모네, 피카소, 반 고흐, 마티스, 앤디 워홀, 잭슨 폴록, 뭐 우리나라로 치면 박서보, 이우환 등과 동등할 정도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실제로 없으니까요.
이처럼 노클린은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이제껏 없었는가?”의 질문에 포함된 많은 가정과 대답하는 이들이 범하는 많은 실수(미시적인 연구 방법)를 탐구합니다. 그리고 미술‘사’를 넘어 역사/사회/문화적인 더 넓은 장르에서 ‘예술의 남성 중심적인 서사’를 마련하는데 공헌한 ‘제도’의 문제점을 밝혀냅니다.
👉🏿문제점 1. 예술 아카데미(제도권)에서 여성 교육에 대한 제한
👉🏿문제점 2. 예술사 연구의 기반이 엘리트주의, 개인 미화 및 1인 연구(Monographie, 전 이걸 한 명의 작가 신화 만들기라고 표현해요)에 집중된 점
👉🏿문제점 3. 상당한 사회적 장벽이 여성이 예술을 추구하는 것을 방해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이제껏 없었는지에 대한 답은 개별 천재성의 본성이나 그 본성의 결여가 아니라, 주어진 사회 제도의 본성 및 그 제도가 다양한 계층이나 집단에 무엇을 금지하고 무엇을 장려해야 하는지에 있는 듯”이라고 말하는 노클린은 여성 예술가의 실종, 사라짐의 문제를 넘어서서 오랫동안 유지된 사회적 규범과 여성에 대한 예속에 도전해야 할 것을 주장합니다. 50년 전의 노클린의 논문을 다시 읽으며 새롭게 깨달은 인사이트를 그대로 여자 야구에 대입해보겠습니다. 👩🏫👩🏻💻[노클린의 논문을 가상의 대담 형식으로 재가공하였습니다.] [#1]
야구팬⚾️ : “다른 종목과 달리 여자야구가 프로스포츠로 자리 잡지 못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야구는 여자보다 신체 능력이 좋은 남자에게 어울리는 스포츠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찌감치 여자들을 위해서는 야구를 개량한 소프트볼이 일반화됐지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도 남자는 야구, 여자는 소프트볼로 출전해 왔어요. 게다가 이마저 정식 종목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여자 야구는 아마추어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겠어요?”(*2) 노클린👩🏫: “존 스튜어트 밀(*3)의 말마따나, 우리는 지금 존재하는 것을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우리의 사회적 배치에서는 물론이고 학문적 탐구의 영역에서도 참입니다. 학문적 탐구의 영역에서도 ‘자연적’ 가정은 의문시되어야 하며, 이른바 사실이라고 하는 것들의 근간이 신화적이라는 점 역시 드러나야 합니다. 다양한 학문 영역의 언어와 구조에서 드러나는 전제의 본성이 의식되는 시점에, ‘존재하는바’를 ‘자연적인 것’이라고 무비판적인 태도로 수용하는 것은 지적 측면에서 치명적입니다.” (*2) 장지영, “세상에 말걸기 - 여자야구에 관심을”, 국민일보 [2014/08/13] [#2]
MMJ👩🏫 : 안녕하세요 노클린 선생님, 2021년 대한민국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여성 야구선수는 없습니다. 루스(Babe Ruth)나 디마지오(Joe DiMaggio), 선동렬이나 박찬호, 류현진이나 오승환과 동등한 여성 야구선수는 존재조차 하지 않습니다.
노클린👩🏫 : 그곳도 그렇군요. 여성 예술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미켈란젤로나 램브란트, 들라크루아나 세잔, 피카소나 마티스, 최근의 인물로는 드 쿠닝이나 워홀과 동등한 정도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습니다. 그들과 동등한 미국 흑인 미술가가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예나 지금이나 또 다른 수많은 분야에서 그렇듯 미술에서 역시 백인 중산층으로, 그리고 이왕이면 남성으로 태어날 만큼 운이 좋지 못한 이들이 - 여성도 이에 포함 - 실망하고 답답해하고 낙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운수, 호르몬, 월경 주기, 자궁에 있지 않습니다. 제도와 교육이 문제죠. 여기서 교육이란 유의미한 상징, 기호, 신호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 우리가 발을 디딘 순간부터 우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압도적인 불리를 겪는데도 과학, 정치, 예술 등 백인 남성에게 특권을 주는 영역에서 특출난 성취를 이루어낸 여성과 흑인이 여럿 있다는 점이 오히려 기적입니다.“
MMJ👩🏻💻 : 제도와 교육이 문제라는 맥락에서 동의합니다. 이 세계에 우리가 발을 디딘 순간부터 벌어지는 모든 일이 교육이라면 야구는 남자의 것, 소프트볼은 여자의 것이라는 인식 역시 교육이 되겠군요. 선생님의 견해로 야구의 경우를 살펴보면, 수없이 여성을 배제하는 제도(중학리그, 고교리그, 프로리그)가 제도이자 교육에서의 문제가 되겠군요. 정말로 이렇게 압도적인 불리를 겪는데도 국내 1,000여 명의 여자 야구 선수가 있는 것이 오히려 기적이라고 느껴지네요.
덧붙여서 선생님께서 미술사에 길이 남은 천재 (남성) 예술가들과 동등한 흑인 미술가가 없다고 짚어내신 것과 비교했을 때, 다행스럽게도 동등하고 자연스럽게 마운드를 밟는 흑인 야구선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1947년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최초의 야구선수가 된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 1919-1972)이 겪은 고군분투가 없었다면 그 자연스러움은 어쩌면 더 늦게 등장하지 않았을까요?(*4) 1947년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 활약했던 존 조르겐센, 에드 스탱키, 피 위 리즈, 재키 로빈슨(오른쪽)의 모습. ©연합뉴스 (*4) 재키 로빈슨은 1947년 4월 15일 브루클린 다저스(현 LA다저스)의 선수로 데뷔하였습니다. 당시 27,000명의 야구팬 중 14,000명의 흑인 팬들 앞에 선 첫 번째 흑인 야구선수는 원정 경기를 가도 흑인 전용 숙소를 따로 써야 하는 등 팀 동료뿐만 아니라 백인 야구팬, 심판, 스포츠 기자에게도 지독한 인종차별을 당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현재 여자야구선수들이 겪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생각되네요. 은퇴 후, 야구 감독직에도 흑인 채용을 위한 문이 열려야 한다고 역설하며, 흑인 인권운동에 몰두하였습니다. 1997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오늘날 모든 미국인은 재키 로빈슨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말할 만큼, 로빈슨은 야구를 비롯한 미국 사회 전반의 올바른 인권 의식을 견인하였습니다. [#3]
노클린👩🏫: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이제껏 없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미술은 대단한 재능을 타고난 개인이 선대 미술가의 ‘사회적 힘’의 ‘영향을 받아’ 행하는 자유롭고 자율적인 활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술가의 성장, 그리고 미술 작품 자체의 본성 및 성질이라는 두 측면에서 미술 창작을 둘러싼 총체적 상황은, 첫째로 사회적 조건 속에서 벌어지고, 둘째로 이 사회 구조의 필수 요소이며, 마지막으로 예술학교, 후원 시스템 등 구체적인 사회 제도에 의해 매개되고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MMJ👩🏻💻 : 그럼 ‘왜 여성 야구선수는 이제껏 없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도 찾아볼 수 있겠네요. 야구는 대단한 재능을 타고난 개인이 혼자 행하는 활동이 아닌 만큼, 체계적인 훈련이 수반되어야 가능한 스포츠죠. 야구선수의 성장, 그리고 야구 스포츠라는 자체의 본성 및 성질이라는 두 측면에서 야구를 둘러싼 총체적 상황 역시, 리그 혹은 선수 육성 시스템 등의 구체적인 사회 제도에 의해 매개되고 결정되고 있네요.
노클린👩🏫 : 네. 예술이 천재성을 갖춘 누군가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야구도 피지컬적인 천재성을 갖춘 누군가만 하는 것이 아닐 거예요. 이어서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이제껏 없었는지에 대한 답은 개별 천재성의 본성이나 그 본성의 결여가 아니라, 주어진 사회 제도의 본성 및 그 제도가 다양한 계층이나 집단에 무엇을 금지하고 무엇을 장려하는지에 달려 있으니까요. 단순하지만 핵심적인 쟁점 하나를 말하자면 야망을 품은 여성 미술가에게 누드모델이 허용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5) 조르주 쇠라, 앙리 마티스 등 20세기 초 많은 미술가의 초기 작품으로 누드모델 연구 작품이 남아있는 사실은 재능 있는 초심자를 교육하고 계발하는 일에서 이런 종류의 수업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시사합니다. 일반적으로 예술 학교의 정규 프로그램은 단계적으로 진행되는데, 처음에는 그림과 판화를 모사하는 것에서 시작해, 그다음에는 유명한 조각 작품을 본뜬 주조물을 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살아있는 모델을 눈앞에 두고 그립니다. 이 최종 단계의 훈련을 박탈한다는 것은 일류 미술 작품을 창작할 가능성을 박탈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진정으로 재능있는 여성 미술가가 아닌 이상 이 박탈을 극복할 수는 없어요. 야망을 품은 여성 미술가 대부분은 결국 초상화, 풍속화, 풍경화, 정물화 등 ‘부차적인’ 영역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인체를 해부하기는커녕 나체의 몸을 관찰할 기회마저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5)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 예술가가 되기 위한 유일한 아카데미인 École des Beaux-arts de Paris(에콜 데 보자르)에서는 1897년이 되어서야 여성의 입학이 가능해졌다. 1903년까지 에콜 데 보자르에서 가장 명예로운 장학 제도, 지금으로 치면 파이널 라운드인 Prix de Rome에는 여학생은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도 마찬가지. 1893년까지 런던에 있는 왕립 미술 아카데미의 여학생은 누드모델 수업을 수강할 수 없었다. Léon Matthieu Cochereau(1793-1817), Intérieur de l’atelier de David au collège des Quatre-nations, ©Photo RMN-Gran Palais - G.Blot 👨🏻🎨 레옹 마티외 코슈로의 작품처럼 예술 아카데미에서 살아있는 누드 모델은 남학생들에게만 부여된 특권이었다. MMJ👩🏻💻 : 마지막에 정의해주신 의학도의 예를 딱 여자 야구에 대입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야구를 하는 소녀들에겐 마운드에서 선수로서 훈련받을 기회조차 없으니까요. 선생님 말처럼 여성 야구선수가 이제껏 없었는지에 대한 답은 개별 천재성, 피지컬적인 뛰어남의 결여가 아니라, 주어진 사회 제도의 본성 및 그 제도가 다양한 계층이나 집단에 무엇을 금지하고 무엇을 장려하는지를 살펴보아야겠어요. 미술계에서 ‘누드모델’의 허용의 문제가 위대한 미술가를 위한 훈련에 결정적으로 개입하듯, 여자 야구선수에겐 중고교 여자 야구팀의 창설 여부가 제한과 금지의 성역이지 않을까 싶네요. 여학생만 중학교 3학년까지 리틀 구단에 머무를 수 있다는 점은 결국 ‘부차적’인 해결책이에요. 학원 스포츠인 리틀 야구단에서 여학생은 어쩌면 중학교 3학년까지 꾸준히 다닐 수밖에 없는 (다른 경쟁사로 가지 않는/갈 곳이 없는) 든든한 수강생일 뿐이니까요. 야구하는 여학생에게 리틀 야구단 졸업과 동시에 다른 선택지 없이 사회인 야구단으로 향해야 하는 과정은 턱을 괴어봐야 하는 지점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장려되는 이 제도 자체가 결국 실력을 제대로 쌓을 기회조차 주지 않아 만들어지는 실력 차이(결국 “여자 야구는 재미가 없잖아?”라는 반응)를 만들고 있으니까요. 중학교 여학생 야구팀이 만들어지고 그들이 진학할 수 있는 고등학교 야구팀이 만들어지는 그 제도가 올바른 청사진일 것입니다. Ernest Louis Désiré Le Deley, Postcard : Atelier Humbert, 1903, Photo © Beaux-Arts de Paris, Dist. RMN-Grand Palais / image Beaux-arts de Paris 👩🏻🎨 1903년에야 가능해진 여학도들의 모델 수업. 현재 대한민국 미술대학교 평균 남녀성비를 생각해보면 120년전 이야기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 [결론]
노클린👩🏫: 결국 저는 그 제도의 유무와 위대한 여자 미술가의 관계성을 파악하기 위해, 누드모델을 쓸 수 있는지를 둘러싼 물음 - 타성적으로, 제도적으로 유지된 여성 차별의 한 단면입니다 -을 꽤 상세하게 파고들려고 했어요. 그렇게 하여 미술이라는 분야에서 위대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숙련을 쌓는데 오랫동안 필수적이었던 과정 중 하나가 개인적 수준의 것이 아니라 제도적 수준의 것임을, 그리고 여성 차별 및 그 귀결의 보편성을 논증하고자 했습니다.
MMJ👩🏻💻 : 네, 선생님의 50여 년 전 미국의 상황에서 논증한 미술 내 여성을 위한 제도의 부재가 결국 현재 야구에서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낍니다. 중학교 여자 야구팀, 고등학교 여자 야구팀, 결국 여자 야구 리그의 형성 가능성을 둘러싼 물음 역시나 야구에서 존재하는 타성적, 제도적으로 유지된 여성 차별이겠지요. 이를 통해 미술이라는 분야에서 120여 년 전에 그러하였던 것처럼, 야구 선수로서 어느 정도의 숙련을 쌓는데 필수적이었던 과정 중 하나가 개인의 수준인 것이 아니라 결국 야구 제도적 수준의 것임을 저희 뉴스레터 구독자들과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클린👩🏫: 미술에서 성취를 이루거나 이루지 못하는 것이 개인적 내지 사적 전제 조건이 아니라 제도적 -공적- 전제 조건 때문임을 강조하고 싶어요. 특정한 박탈이나 불이익의 사례를, 구체적으로는 여성 미술학도에게 누드모델이 금지된 사례를 어느 정도 상세하게 검토함으로써, 이른바 천재성이라는 잠재성과 무관하게, 여성으로 하여금 남성과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여 미술적 성취 내지 성공을 이루지 못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제도입니다. 저는 다학제간 리서치를 통해 이러한 사례를 밝혀냈고, 이 연구방법론은 미술이 아닌 학문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합니다.
MMJ👩🏻💻 : 네 맞아요. 또한 선생님께서는 “특권을 가진 이들은 반드시 그 특권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로 얻는 이득이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어떤 종류의 더 우월한 힘에 강제로 복종하게 될 때까지 그 특권을 꽉 붙든다.”라고 하셨지요. 여성 예술가와 같이 여자 야구가 ‘여성 문제’로만 환원될 경우, 문제에 속한 이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시면서요. 그리하여 이 문제를 특정 성의 문제가 아닌 큰 틀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꼭 명심해야할 것 같습니다.
노클린👩🏫 : 야구하는 여자를 위한 마운드는 1971년에도 없었고, 2021년에도 없지만 곧 모두를 위한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그건 용기 있는 누군가들이 만들 것이고요. 1895년엔 없었지만 지금은 예술대학 속 여성들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처럼요. MMJ👩🏻💻 : 120여 년 전 프랑스에서 고등예술교육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여성들이 만들어 놓은 권리를 2021년의 우리가 누리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현재 미술대학의 남녀성비를 보면 고작 한 세기 전의 예술고등교육기관 속 여성 배제는 상상조차 되지 않거든요. 한 세기 전 그녀들은 고등예술고육기관에 촘촘히 설계된 남성을 위한 마운드를 하나씩 하나씩 점유해 나갔겠죠. 처음에는 입학 시험 자격을 따내고, 그다음엔 정물화 수업, 인물화 수업 그리고는 누드모델 수업 마지막으론 예술가로서 가장 명예로운 Prix de Rome 장학시험 참가자격까지 …. 물론 미술계에서 부족한 부분 역시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미술대학 속 여학도가 당연해진 것처럼 마운드를 누비는 여자 야구선수가 당연해질 것임을 확신하게 되네요. 그리고 파리 보자르의 입학 시험 자격처럼 가장 작지만 당연한 것을 여자 야구에선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중학교 여자 야구부처럼요. 중학생 여자 야구선수들이 삼 년간 잘 배우면, 또 진학할 고등학교 여자 야구부가 생겨 나야겠지요. 누구나 각자의 마운드가 있겠죠. 그 곳에 어떻게 개입하고 점유하느냐를 역사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선생님의 혜안과 통찰력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하나의 현상을 제대로 보는 법'을 알려주네요. 고맙습니다. ⚖️ 문제 제기2-2. 끝나지 않는 숙제와 제도의 개입 ✍🏿 K 미미정과 린다 노클린의 대담을 통해 우리는 제도의 알고리즘과 무관한 현상과 현실은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스포츠와 미술의 경우 메인 필드의 제도 의존도가 유난히 높다보니, 그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제도의 헛점이라기보다 생태계의 순리로 잘못 읽히기 쉽다는 점을 꼬집었어요. 전통적으로 모든 분야의 제도권은 남성중심으로 형성되었고 그만큼 '여성 배제' 문제는 그 시발점이 너무 먼 과거잖아요. 우리가 살아온 짧은 시간 안에서는 이 '결과'가 마치 태초부터 존재한 자연의 섭리처럼 여겨지는 것이죠. 야구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한국에 프로 리그가 도입되기도 전인 미국에서부터 줄곧 '남성의 스포츠'였고, 더 오래 전엔 '백인 엘리트 남성의 스포츠'였던 야구이기에, "한국에 여자 야구 선수가 없다?" - "원래 그런거지!"가 그럴듯하게 들려요. 여성 스포츠 전체로 확장해도 똑같습니다. "여자애들은 운동 안 좋아해.", "체육 시간에 뛰어노는 여자애들 봤어?" - "원래 다 그런거지!". 과연 원래 다 그런가요? 여기에 물음을 던지고 여학생의 운동 접근성 향상과 진로 확장을 획기적으로 바꾼 사례가 있습니다. 무려 50년 전의 사건입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린다 노클린의 조언!' 그들은 적어도 거시적인 관점에서 '현상'을 문제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일찍이 가졌던 것 같아요. 그럼 "원래 좀 유난히 그랬던 야구"와 "원래 그런게 어딨어"가 증명된 과정을 함께 볼까요? 1) 야구의 폐쇄적 DNA 야구는 여성이 문을 두드리기 전, 공공연히 남자만의 스포츠였을 때부터 폐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지만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발전한 축구와 야구를 자주 비교해요. 본격적으로 이 차이를 연구했던 미국의 스포츠 경제학 교수 스테판 지만스키와, 경제학 교수 앤드루 짐벌리스트는 오늘날 전세계적인 대중성을 얻은 축구에 비해 야구가 고립된 원인으로 초기부터 내부지향적이고 상업지향적이었던 성격을 꼽습니다.
“야구는 1850년대 중상류층의 레저 스포츠로 등장했고 곧이어 중하위층으로 확산됐다. 초창기 엘리트 야구 클럽들은 회원제로 운영됨으로써 사회적 지위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 선수들을 장악함으로써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이윤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한 매니저들은 1876년 내셔널리그를 창설했다. 매니저들은 회원자격을 엘리트층으로 제한함으로써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스테판 지만스키, 앤드루 짐벌리스트, <왜? 세계는 축구에 열광하고 미국은 야구에 열광하나> 15p. 내셔널리그 소속이었던 Brooklyn Bridegrooms, 1896 ©The Hardball Times 👉 유니폼의 카라와 넥타이가 중상류층의 스포츠였던 초기 야구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미국의 야구는 초기부터 지역연고제와 기업 연계를 통한 독점 이윤 방식을 택했고, 새로운 구단이 리그에 등록할 경우 비싼 입단비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1군 프로 리그 이외의 무대는 살아남지 못했어요. 오늘날 한국 프로 야구의 모습과도 어느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지요. 반면, 영국의 축구(잉글랜드축구협회)는 희망하는 모든 팀을 수용함으로써 아마추어와 엘리트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 짓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10여개의 부(division) 안에서 팀 성적에 따라 승격/강등되는 자유 경쟁체제(승강제)가 갖췄어요. 이 또한, 현재 유럽 축구 리그(*1)의 모습과 연결됩니다. (*1) 유럽의 5대 축구리그인 프리미어리그(영국), 프리메라리가(스페인), 분데스리가(독일), 리그앙(프랑스), 세리에A(이탈리아)는 현재 모두 승강제로 운영 중 이런 야구(폐쇄적)와 축구(개방적)의 차이는 꾸준히 비교되어 왔고, 야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다 개방적인 성격(대중화)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늘 존재했습니다. 폐쇄적 발전을 고수해온 야구가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다는 문제점은 국제 무대에서 더욱 두드러졌어요. 그리고 이는 오래전부터 지적되었습니다. “1908년 런던올림픽에서 영국은 야구 경기를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축구는 그 당시 8개 팀이 토너먼트에 진입함으로써 처음으로 경기가 펼쳐졌다. 야구는 1912년 스톡홀름올림픽에서 경기가 있었다. 스웨덴만이 미국에 대항했는데, 스웨덴은 미국 선수들의 연습 장면을 보고 경쟁 상대가 되지 않음을 선언했다. 이렇게 상대할 팀이 없다는 것은 야구가 올림픽에서 사라지는 것을 의미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도 역시 미국과 상대할 외국의 다른 야구팀은 없었다. […] 그 이후 1992년까지 야구는 올림픽 정식종목이 될 수 없었다.” <왜? 세계는 축구에 열광하고 미국은 야구에 열광하나> 81p. 결국, 남자 리그 안에서도 폐쇄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늘까지 이어진 야구는 2008년을 마지막으로 다시 올림픽이라는 무대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의 IOC는 "아젠다 2020"을 통해 ‘스포츠 성평등’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임을 공식적으로 명시하고 있어요. 이제는 명백히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스포츠만이 국제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야구라는 종목(WBSC, KBSA, KBO(*2))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생존 방향이 ‘세계 무대 재진입'과 '종목의 대중화’라면, IOC 주도의 이 모든 사건(올림픽 재 퇴출)과 공식적 요구(성평등)가 교차한 지금이야말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숙제를 미루다 얼결에 두 배의 과제를 안게 된 보수적 스포츠 야구에게, 여자 야구가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2)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KBSA(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KBO(한국야구위원회) 2) 개입의 필요성
“한 사회의 여건과 가치관을 이해하는 방법은 일하는 방식을 조사하기보다 놀이와, 여가시간의 활용, 레저를 즐기는 방식을 연구하는 것이다.”
바트 지아마티(Bart Giamatti)(*3), <낙원을 위한 여가>
(*3)메이저리그 총재를 역임한 예일대 총장
여러분은 여가시간을 어떻게 활용하시나요? 스포츠를 ‘즐기는’ 편이신가요? 어떤 운동을 ‘하는’ 것이 익숙한가요? 여성분이시라면, 마지막으로 팀 운동에 참여한게 언제인지 기억나시나요? 우리가 어떤 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대부분 청소년기에 결정나는 것 같습니다. 운동도 마찬가지고요. 프로 야구 팬이 아님에도 어느정도 야구 룰을 알고 있다면 그건 초등학교때 친구들이랑 해본 발야구 덕분일거고, 체육 시간 하면 떠오르는 운동에 대해 묻는다면 여자분들 대부분은 아마 피구를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 1학년때 체육 커리큘럼이 수영이었기 때문에 수영장이라는 공간과 수영을 하는 모습이 익숙해요. 올림픽 수영 경기를 더 이입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도 그 때의 제 경험 덕분인 것 같아요. 종종 청소년기의 경험이 인생의 테두리와 가능성을 좌우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인이 되어서 여가시간을 활용하거나 레저를 즐기는 방식이 한정되어 있는 것도, 청소년때 ‘좁게 형성되어버린 익숙함'에서 비롯되지 않을까요? 남녀를 불문하고 교과과정에 없었던 종목은 생활 체육으로 크게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를 반증하고요. 구성원의 여가시간 활용과 레저 향유가 사회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만큼 유의미한 지표라면, 청소년기의 체육 정책이야말로 사회의 성격을 좌우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성의 혼란에 있어서 가장 역겨운 사례는 하비 원터씨가 만들려는 여자 야구 리그입니다. 여기 시카고에서는 가정에서 차출된 젊은 여성들이 하비 야구장에 모여 누가 더 남성스러운지 대결하고 있습니다." ©페니 마샬, <그들만의 리그(1992)> 중 라디오 사회 논평 장면 👉 남성들에게만 허락되었던 레저와 운동하는 여성에게 가해졌던 비판은 1940년대 미국 사회가 공유한 가치관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모든 스포츠는 의심의 여지 없이 남성의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과 이를 계승한 쿠베르탱의 근대 올림픽이 그랬고, 불과 1950년대까지만 해도 운동 하는 여성의 '여성성'이 의심되었으며, 1982년에 출범한 한국 프로 야구에도 여성은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규정이 공공연하게 있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주지요. 이렇게 적고 보니 여성에게 운동이 자연스럽게 허용된 지 불과 반세기 만에 IOC가 "아젠다2020"을 발표했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감격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이렇듯 여성의 스포츠 향유권에 대한 논의는 늦어진 속도를 따라잡으려는 듯 빠르고 활발하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남성에겐 태초부터 자연스러웠던 것을 여성에게도 제공하기 위해서는 '제도'와 ‘투자'가 필요함을 의미해요. 여성 스포츠에 대한 지원을 요구할 때마다 제도를 갖추기 이전에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힘겨루기가 발생하기도 하고, 단기적 수익성이 없다는 것이 반발의 근거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혹자는 "여자들은 원래 운동을 안 좋아해.”라고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익숙함과 가능성의 경계'가 무의식적으로 체득하는 청소년기의 경험으로 만들어지는거라면, ‘여성의 운동 참여율이 남성에 비해 떨어지는 현상'에 적극적으로 물음표를 던지고, 우리가 학생 때 접하는 환경과 연결지어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요? 요지부동의 환경 안에서 일종의 진화가 자연히 이루어지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작정이 아니라면, 의식의 관성에 대항해 변화를 앞당길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은 명백해 보입니다. 3) 1100%, “만들어라, 그러면 참여할 것이다(If you build it, they will come)”
1100%. 1971년에서 2013년 사이 미국 여학생의 고등학교 운동부 참여 증가율입니다. 같은 기간동안 대학교 운동부 참여율도 670% 증가했습니다.(*4) 야구가 엘리트 백인 남성 중심으로 발달했다는 점이 보여주듯이, 미국 역시 70년대 까지만 해도 당연히 모든 스포츠가 남성 중심적인 성격을 보였습니다. 1972년 미국 고등학교 스포츠경기 참여자 수를 보면, 남학생이 367만 명인 반면에 여학생은 겨우 29만 5천 명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주지요.(*5) 당시 운동을 했던 여학생 수는 남학생 수 대비 8%에 그칩니다. 분명히 우리와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환경인데, 어떻게 여성 스포츠 저변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을까요? (*4) 이정규, <학교체육의 양성평등 실현방안에 관한 연구(2015)>, 스포츠엔터테인먼트와 법 제18권 제3호 (*5) 김성진, <여학생 체육활동 참여의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 마련(2014)>, 스포츠와 법 제17권 제4호 1971-2011 미국 대학 운동선수 추이 (왼쪽 여성, 오른쪽 남성, 단위 : 명) ©National Federation of State High School Associations, 2013 👉 2013년 기준 대학 대항 경기에 참여한 여학생 선수는 193,232명으로, 타이틀 나인 제정 이전에 비해 약 670% 증가합니다. 정답은 바로 제도의 개입, 1972년에 등장한 교육개정법 타이틀 나인(Title IX)이 그 전환점이었습니다. 이는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모든 학교 내의 교육프로그램과 활동에 있어서 남녀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모든 교과목을 통틀어 당연히 체육 활동의 성별 격차가 가장 컸기 때문에, 법 제정으로 인한 효과 또한 가장 눈에 띄게 드러났던 것이죠. 체육에 집중해 좀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세부 기준이 있었습니다.
법 제정 당시 미국 대학의 여자 운동선수 비율은 15%에 불과했고, 고등학교에서는 7%에 불과했습니다. 위와 같은 목표를 충족하기에는 기존의 선수풀과 인프라 격차가 큰 상황인데다 역차별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타이틀 나인'은 예상 가능한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데요. 유야무야 하다가는 한 세기가 걸려도 완수하기 힘들 것 같은 변화. 미국의 연방정부는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1979년 연방정부는 3가지 검사(Three-Part Test)라는 보다 명확한 기준을 도입해 법적 구속력을 강화했습니다. 3가지 기준 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만족된다면 '타이틀 나인'을 준수한 것으로 판단했고, 이에 따라 각 학교들은 어떤 항목을 충족시킬 것인지 정하고 명확한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학교 운동부의 타이틀 나인 준수 여부를 더 정확히 판단하고 재정지원 중단 등 강력한 처벌을 적용시켰습니다. 또한, 지역별 법집행 기관은 위의 3가지 기준에 의거해 해당 지역 대학들의 타이틀 나인 위반 여부를 판단합니다.(*6) 법원에서도 '타이틀 나인' 관련 소송 발생 시 3가지 검사의 기준을 법해석의 중요한 근거로 활용했고요. (*6) 이정규, <학교체육의 양성평등 실현방안에 관한 연구(2015)>, 스포츠엔터테인먼트와 법 제18권 제3호 또한, “전미여성법센터(NWLC)”라는 비영리단체가 감시기관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홈페이지에 학생들이 참고할 수 있는 자체 검증 질문지를 마련해놓았고, 학교가 이를 위반할시 학생에게 법적 관련 도움을 주었을뿐만 아니라, 정책이 자리잡기까지 12개 교육구 상대로 행정 소송을 도맡았습니다.
만약 "여학생들이 선천적으로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것이라면, 다르게 말해 "제도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면 법이 바뀐다해도 여학생들의 호응과 참여율은 저조하게 유지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타이틀 나인 제정 이후 40여년이 지난 2013년, 미국 고등학교 스포츠 경기에 참여한 여학생은 322만 명으로, 대폭 증가한 모습을 보여줘요.(*7) (같은 해 남학생 참여수 449만 명) 체육 활동에 참여하는 성별의 비중이 빠르게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미국의 사례를 보며 환경과 인식을 '견인'하는 것이야말로 제도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과연 제도가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요구하며 줄다리기 싸움을 하는 것이 합당한 것일까요?
(*7) 김성진, <여학생 체육활동 참여의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 마련(2014)>, 스포츠와 법 제17권 제4호
전문가들은 미국의 '타이틀 나인'이 스포츠 참여와 관련해 주목할만한 양성평등을 이루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남성 스포츠보다 여성 스포츠가 눈에 띄는 수혜를 입을 수 밖에 없는 법안이었고, 초기엔 역차별 등의 논란이 있었으나 연방정부는 이를 법적 판례에 맡겼습니다. 수많은 소송을 통해 판례가 쌓이면서 현실적인 가이드라인들이 구축되었고요. 이는 스포츠를 철저히 공공재로 바라본 노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나요? 우리는 아직 권리와 공급의 불균형을 조정한다는 본질적인 목적보다 외부적 환경(국제 경기 정식 종목 지정, 국제 대회에서의 성과) 혹은 자극적 우연(세계가 주목하는 스타플레이어 탄생)에서 제도와 지원의 당위성을 찾는듯 합니다. 특히 여성 종목의 경우 앞의 두 가지 조건 없이 주목과 지원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제도의 개입 없이는 앞으로도 ‘최초'와 ‘천재’의 수식어를 단 개인들이 무거운 책임감을 지는 일이 반복되어야 할거예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관련 추천 영상 <평등, 스포츠, 그리고 '타이틀 나인'> by 에린 버주비스, 크리스틴 뉴홀 ©️TED-Ed 👉 깨알 코멘트. 여기서도 남자 '야구'에 대응해 여자 '소프트볼'이 언급되는 아이러니 🧐 📚 여성과 스포츠, 더 알고싶나요? 후루루룩 읽히는 콘텐츠/레퍼런스 추천! ✍🏿 MMJ 👩🏻🎨 여성스포츠 전시에 관한 국내 동향 ⟪여성 - 체육의 새 지평⟫ 턱 괴는 여자들는 여자 야구 연구집을 얘기하면서 왜 책 소개도하고 영화 소개도 합니다. 📚📽🍿
우리는 문화∙예술을 도구로 사회현상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예술에는 회화, 조각, 사진, 뉴미디어 등 미술관이나 비엔날레에서 만날법한 동시대 예술도 있고 영화, 예능, 유튜브 영상 콘텐츠, 웹툰, 게임 등 대중문화도 있지요. 문화∙예술은 뉴스보다는 은유적으로 사회현상을 보여주는 일종의 ‘필터 낀 카메라 어플’이에요. 그 필터 중에는 뽀샤시, 네추럴도 있겠지만 다크, 느와르도 있지요.
특히 전시라는 포맷을 좋아하는 저는 사회적인 주제 혹은 내밀한 주제를 문화예술을 도구로 풀어내는 전시 방법론이 턱 괴는 여자들의 에디팅 방식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거대한 흐름 속 어디에 이 작품/글/인터뷰이를 배치하는 것처럼, 또 작품과 관람객 사이를 매개하는 전시텍스트를 쓰듯,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를 매개하는 디자인을 배치하거나 짧은 글귀를 넣는 것처럼요. 그런나 안타깝게도 전시판에서는 '야구하는 여자' 뿐만 아니라 '스포츠'자체의 관심이 부족했는데요. 오늘은 한국 유일무이한 한국의 여성 스포츠 전시를 소개합니다. (한국은 전시사를 기록하는 플랫폼이 없습니다. 때문에 김달진미술연구소에 수록된 전시 아카이브와 포털사이트 검색 결과를 기준으로 합니다) 2017년 #국립여성사전시관 개관 15주년 및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기념하여 열린 ⟪여성 - 체육의 새 지평을 열다⟫는 단단한 리서치와 23명의 여성 스포츠선수들의 기증품 100여 개를 토대로 합니다. 전시는 여성 체육의 발자취가 담긴 신문 기사와 사진 자료를 도구로 1890년대 근대 여학교에서 도입한 체조 교육부터 시작해, 광복 이후 여성 전문체육인의 등장과 발전, 세계적 여성 스포츠인의 등장을 시간순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현대 스포츠에서 자신의 기량을 증명한 이상화, 지소연, 장미란, 김연아, 김연경 등 23명의 여성 스포츠인들의 유니폼, 운동용품 등의 기증품을 선보입니다.
이 전시는 여성가족부 주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국립여성사전시관의 주관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전시를 개최하며 당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성에게 신체활동은 자신의 몸에 대한 주체성을 확립하고 자존감을 갖는 기본요인”이라고 표명하며, “(본 전시는) 국내 열악한 여성 체육 환경에서도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한계를 극복해 온 여성 체육인들을 격려하며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에 기여하는 한편, 여성 체육사 정립의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는데요. 탄탄한 리서치와 아카이브를 시간순으로 선보이는 전통적인 전시 방법론을 취한 본 전시는 동시대 여성 체육인의 참여를 통해 현재의 시간에 궤를 맞추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더 넓은 장르(문화예술)를 포괄하며 대중적인 관심을 환기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왜냐하면 국가 주도 행사가 열릴 때마다 제도권 문화예술과의 협업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897년에 처음 시작한 ’세계수학자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며 연계되었던 국립현대미술관 ⟪매트릭스 : 수학_순수에의 동경과 심연(2014)⟫전, 서울에서 열리는 ‘UIA 2017 세계건축대회’를 기념하기 위해 서울세계건축대회 조직위원회와 서울시립미술관의 ⟪자율진화도시(2017)⟫전, 88올림픽 30주년 기념 전시였던 (+평창동계올림픽 기념) 서울시립미술관의 ⟪화합과 전진(2018)⟫전 등등. ‘수학’도 ‘건축’도 제도권 국공립기관에서 자신들의 논점을 동시대 예술가들과 협업해 대중에게 선보이는 장을 마련하는데, ‘여성 스포츠’는 제도권의 레이더에 아예 잡히지 않나 봅니다. (심지어 문체부인데 말이에요, 문화+체육+관광) 한 세기를 관통하며 스포츠 장르 내에 꾸준히 ‘여성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유의미한 가치를 지니는 2017년 전시가 여성가족부와 문체부가 주관했다면? 그 결과가 어땠을까요.
다행히도 ⟪여성 - 체육의 새 지평을 열다⟫의 기획자 중 누군가는 ‘기록’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나 봅니다. VR 전시로 업로드되어 현재도 웹상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여성 체육사에 대한 한국의 경향은 이러합니다. 납작하게 취급되어온 운동하는 여성의 서사는 2017년 여가부의 기획으로 한 번 정립이 되었어요. 📮 스포츠, 여성 스포츠, 여자 야구에 관련된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작가/영상 제작자가 있다면 언제든 제보바랍니다. 없으면 만들어야죠🛠 보이지 않으면 보여주면 됩니다🧞♀️team.tuck@daum.net 으로 간략한 포트폴리오 보내주세요. ✍🏿 K 🎬 <마이크를 잡은 소나(2019)> 원제 : SHUT UP SONA, 딥티 굽타 [EIDF 2021 선정작] 턱괴녀 팀은 10월 26일 제18회 EBS 국제다큐영화제에 초청받았습니다. 그 인연으로 만나게 된 영화가 바로 <마이크를 잡은 소나>인데요. 도처에서 다른 방식과 이야기로 결국은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경험은 늘 짜릿합니다. 소나는 스크린 속에 있고, 딥티 굽타 감독은 스크린 너머에 있지만, 추구하는 것이 맞닿아 있을 때 언어와 환경을 초월해 시냅스처럼 연결되고 전기가 통하는 느낌! 아시죠?⚡️ 소나 모하파트라는 인도의 가수이자 연기자, 방송인입니다. 그런데 위의 사진만 봐도 우리가 보아온 인도 여성과는 사뭇 다르지 않나요? 그는 늘 '자유로운' 언행과 옷차림으로 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하고 고소를 당하기도 하고 SNS에서 공격 당하기도 합니다. '자유로운' 여성이 곧 문제가 되는 것이 그가 속한 사회거든요. 공연 전 기자회견에서 옷차림과 화장에 대해 무려 죄의식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남편과 동행하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소나의 반응은? "노래나 잘 들으라고 해요" 생각을 숨김없이 말하고, "이 공연은 내 거예요." 페스티벌엔 안 가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개인적 대응에 그치지 않고, 끊임 없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목소리를 냅니다. "음악 페스티벌에서 여성 헤드라이너를 세울 것", "발리우드에 더 많은 여성 솔로를 기용할 것" 등등. 이는 매우 '보수적인' 인도 사회에 꼭 필요한 '혁명'같아 보이는데요. 하지만 턱을 괴고 잘 생각해보면 소나가 요구한 이러한 기준에서 우리나라의 엔터테인먼트 산업계는 과연 인도보다 '진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앞서 다른 방식과 이야기로 결국은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고 말했던 이유는, 저희는 영화를 보면서 줄곧 '여자야구', 나아가 '운동하는 여성들'을 떠올렸기 때문인데요. 결국은 이 모든 것이 '권리와 자유'로 귀결되기 때문이죠. 소나의 옷차림과 정숙에 대한 단속은 과거 여자야구 선수들이 입었던 치마 유니폼과 그들이 들어야했던 숙녀수업을(오늘날에도 여성 선수들의 유니폼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무대를 향한 갈망은 여성을 위한 마운드(와 수많은 운동장)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목소리를 내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소나에게 남편은 "운동가가 되지 말고 본업에 집중하"라고 말합니다. 이 또한 웃프게도 닮아있네요. 역경과 열악함에 아랑곳 않고 무소의 뿔처럼 가는 사람은 이미 그 자체로 매우 대단하지요. 그런데 불특정 다수의 공격과 분노가 얽혀있는 세상을 상대로 더 짙고 묵직하고 동시에 산뜻한 에너지를 분출하는 '혁명가'는 좀 경이로운 것 같아요. 영어 원제인 "Shut up Sona"가 비겁한 제3자의 발화인 것에 반해 한국어로 번역된 제목 "마이크를 잡은 소나"는 목소리를 잃지 않는 소나의 강함에 보다 집중합니다. 그 유쾌한 기세가 느껴지는 인상 깊었던 그의 문장 몇 개를 남길게요. 소나의 말말말 🗣 "여신을 모시는 나라인데 여자는 신성할 수 없어요. 그게 문제죠." "제 보컬이 다정하지 않은게 문제래요. 아시아는 이렇게 강한 여자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잖아요. 그러면 저는 목소리를 더 세게 내요. 마치 음이 눈 앞에 있는 것처럼요.(웃음)" "이 전투가 기쁨으로 나를 채우네." 🗺 첫 번째 프로젝트, 어디쯤? ✍🏿 K 11월 의 뚜벅뚜벅 🐾
🎤 인터뷰이를 공개합니다! ✍🏿 K 네. 그래서 우리는 다음의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인터뷰이 리스트 3차 공개]
박민서, 야구에서 프로 골프로 전향, 여자 야구를 위해 제도적 개입이 시급함을 보여주는 예
"제가 초등학교 5-6학년 때는 야구, 티볼, 소프트볼 세 종목을 모두 다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셋 다 해본 결과로는 일단 소프트볼, 티볼은 야구만큼 재미있지 않았고, 매력을 많이 느끼지 못했어요. 그리고 원래 처음부터 야구에 매력에 빠졌던 거니까, 끝까지 야구를 계속하고 싶었습니다." 올 해 3월에 진행된 인터뷰 "가장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것인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야구 관련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닌 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었거든요." 10월에 진행된 추가 인터뷰
유부근, '빅라인 스포츠' 대표, 40여 년의 업력, 야구 장비 산업계의 유일한 여성 대표, 현 여자야구연맹 고문
“(여자야구 발전이 지지부진한 원인은) '무관심', 대중의 무관심이죠. 그리고 두 번째는 '운동장'. 세 번째는, 우리 생활체육이 엄청 잘 되어있어요. 눈 먼 돈 많아요. 그런데 이 여자야구는 안 해주잖아요." "(초기) 한 10여 년간을 이광환 감독님하고 스탭들이 정말 열정있게 잘 한거죠. 지금(연맹의 입지)은 정말 죽었다니까요. 그 때는 (KBO 육성위원장인) 이광환 감독님이 딱 팔짱 끼고 있으니까 KBO에서도 무시 못하고, 역시 그런게 있더라고. 동아줄이라는거요. 무시 안 하고."
이성배, MBC 예능 <마녀들>, <마구단1,2> 제작자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무엇이 특별하지?’ ‘왜?’ 그런 생각 자체가 이상한거예요. 지극히 당연한 것을 우리가 너무 특별함 이라는 포인트에 맞추려고 하는 것 자체가 제가 볼때는 '아직도 멀었다’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이슈보다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출시키고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지금 여성 사회인 야구가 없는게 아니에요. 이 팀들이 탄탄해져야 이런 공감대 형성과 확대를 통해서 논의가 시작되거든요. 이제 그런 단계가 필요하다는건데. 아마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여자 리그도 생길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단행본 <외인구단 리부팅>에서 더욱 자세한 인터뷰 내용을 만나보세요! ⚾️🔥 🎊 12월 초-중순 텀블벅 얼리버드 출판, 12월 말 정식 출판 예정 🎊
턱 괴는 여자들 (2020.10~) K 숙명여자대학교와 파리 9대학에서 문화기관에 특화된 경영학 석사과정을 이수했습니다. 문화예술이 시대를 대변하고 다음 세대를 견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으며, 미디어 콘텐츠와 책을 기반으로 비경제적인 시대정신과 논의점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오래 이어온 독서모임, 두 번의 타국 살이 경험 그리고 인생의 동반자인 아토피가 현재의 모습으로 나를 다듬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고 믿습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교차하는 상대성과 묘한 유기성을 다방면으로 경험하면서, 문화예술의 도구로 두 주체를 활용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어른이 된 후 더 빠르게 자라고 있습니다. MMJ 안녕하세요, MMJ로 활동하는 연구자 겸 기획자 정수경입니다. 파리 제1대학 근∙현대미술사 박사과정 겸 미술사 연구소(HiCSA) 연구원으로서, 역사 속으로 진입하기도 하고 현재를 톺아보기도 하고 근거 있는 미래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예술이 일어나는 순간을 탐닉하고, 역사관이 변화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을 즐깁니다. 과거에는 비주류였던 지점들이 현대에 이르러서 뒤틀리거나 격변하거나 격상하는 과정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하며, 반대로 과거에는 주류였지만 어떤 과정을 통해 메인스트림에 설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은 정당한지를 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