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것(큼)과 얻은 것(작음)과 발버둥(힘듦)
움큼 "이직=연봉상승, 꿈☆은 이루어진다...?"

안녕하세요. 에디터 움큼입니다.


올 5월 첫 레터 '기자 때려친 썰 푼다'로 인사드리고 벌써 세 달이 지났네요. 이번 레터부터는 정규 에디터로 합류합니다!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립니다.


정규 에디터로 보내드리는 첫 레터 주제는 무척이나 고민됐는데요. 처음 드린 레터가 '기자를 그만둔 이야기'였으니, 이번에는 이직하고 1년 간 경험한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합니다. 행복할 것만 같았던 새 직장에 가고 보니 생각보다 전 직장에 두고 온 게 많았다, 스트레스도 꽤 받았다, 같은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이번 레터의 시작은 이직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1. 친한 친구의 죽음 다음으로 힘든 일
2. 새 직장에서 일하기 :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3. 불안이 만든 야근, 하지만, 동료평가
😥 친한 친구의 죽음 다음으로 힘든 일  
© Unsplash

스트레스, 익숙하시죠? 월요일 아침이면 드는 부담감, 팀장의 잔소리에 치솟는 혈압 같은 것들과 함께 오는 바로 그 감정이요. 이런 스트레스를 종류에 따라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일종의 척도를 만든 것이 '홈즈-라헤 스트레스 지수'입니다.

의외(?)로 결혼은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일 6위에 올랐습니다.
제작한지 60년이 지난 만큼 조금은 구식일지도 모릅니다. © pinterest
이 지수는 1967년 미국의 심리학자 토머스 홈즈와 리처드 라헤 박사가 공동으로 만든 것인데요, 이직(Change to different line of work)은 친한 친구의 죽음(Death of close friend)만큼이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이직하고 받은 연수원 강의에서였습니다. 정신과 의사분의 강연이었는데, '이직은 매우 스트레스 받는 과정이니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땐 몰랐죠, 이직 생활이 그토록 고될 줄은.

연수가 끝나고 출근 첫 날, 오전에는 회사 소개를 받고 오후에 함께 일할 임원, 팀장, 팀원 분들께 인사드렸습니다. 채용 과정에서 약간의 절차적인 문제가 있어서, 원래 가기로 한 팀이 아닌 다른 팀에서 반년을 일하게 됐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습니다.

그때 당시의 저는 '나는 이직 제안을 받을 정도로 유능했고 대인관계도 좋다'는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두달은 넘게 걸린 채용 과정에서 채용 부서에서 해당 부서와 충분히 얘기를 한 상태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새 직장에 출근했는데 "야 왜 와"라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 것 같으세요? 제 경우에는 "네? 엄, 그게..." 였습니다. © SBS
그런데 이게 웬 걸, 반년 동안 함께 일할 팀장님께 인사를 드렸지만 받는둥 마는둥 대화가 3분이 채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이 팀장님은 자기와 오래 일할 것도 아니고 자기가 뽑지도 않은 사람을 왜 떠안아야 하냐며 어어엄청 싫어하셨다고 하더라구요. 회사일이 미리 협의했다고 다 잘되는 건 아니라는 걸 9년차에 새삼 다시 체감했습니다.

이후 다행히 반년이 아니라 한 달 만에 원래 제가 일하기로 한 팀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었죠. '그 이후로 움큼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되면 좋았겠지만 역시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 새 직장에서 일하기 :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여러분은 이직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연봉? 워라밸? 떠올리시는 게 아마 다 맞을 겁니다. 저부터도 운좋게도 이직하면서 연봉과 워라밸은 이전에 비해 개선됐구요. 이전 언론사에 비해 기업 복지가 훨씬 만족스럽기도 했습니다. 퇴근하고 나서 저녁과 주말에도 지켜봐야 했던 회사 카톡방도 이젠 알림이 뜨지 않아서 마음이 편안했구요. 감사하게도 이런 장점들은 이직 초기부터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죠.

일...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 KBS

저는 기자일을 하다 PR 담당자가 됐고, 신문사에 다니다 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요, 최근 들어 생각해보니 이직(신문사 → 기업) 뿐 아니라 전직(기자 → PR담당자)도 동시에 벌였더라구요. 이 과정에서 겪은 변화도 굉장히 컸습니다.


새 회사로 옮기고 일을 하려고 하니 제가 아는 건 사실상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회사 포털 어디에 들어가야 차량 배차를 받을 수 있는지, 법인카드는 어디까지 써도 되고 이용 내역 결재는 어떻게 올리면 되는지 전혀 몰랐죠.


이런 소소한 지식은 당장 급한 게 아니니 천천히 배워도 되지만, 이 과정에서 새삼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전 직장은 8년 가까이 일했다보니 수백명의 선후배와 스태프 지인이 있었고 필요한 때면 그분들께 편하게 연락드릴 수 있었거든요.


새 회사에서는 업무로 연락할 일이 있어서 연락처를 뒤져봐야 제겐 익명인,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 뜰 뿐이었습니다. 물론 필요한 일이 있어서 연락드리면 대부분의 경우 잘 도와주셔서 일을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제가 이방인이 됐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까뮈 형님은 21세기 이직자의 외로움을 생각하고 책을 쓰신 게 아닐까요 (절대 아님) © 민음사

상대적으로 업무 관련성이 떨어지는 건 그렇다치고, 문제는 당장의 업무였습니다.


나름 기자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PPT나 보고서 작성도 나쁘지 않게 해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정말 제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새 회사에서는 보고서 어투부터 양식, PPT 디자인, 메일쓰는 방식까지 어느 하나 제가 사용해온 것과 비슷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제 상사가 더 윗 상사에게 보고하기 위해 필요한 보고서를 제가 대신 작성하는데, 전 직장에서는 불릿포인트 방식으로 핵심을 요약해서 드리면 본인이 이걸 알아서 말로 보고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저는 요점을 작성해서 구두로 상사에 보고드리면 됐고, 상사는 본인의 이해를 바탕으로 그 윗 상사에게 보고하는 형식이었죠.


새 직장에서 모시게 된 상사는 딱딱한 문어체 보고서를 좋아하지 않았고, 줄줄 풀어쓴 보고서를 선호했습니다. 보고서만 읽고도 뭔지 알 수 있어야 한다고요. 어투도 필요한 내용은 복문이 되더라도 몽땅 몰아넣는 문장을 선호하구요.


자잘하게는 줄간격과 폰트, 글씨 크기나 배치를 수정하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갈아넣었는지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한동안은 제가 이직해온 회사가 '이상하게 일을 한다'거나 '불필요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눈이 한 개인 사이클롭스가 사는 동네에 이사왔더니 내가 돌연변이 취급을 받는다, 는 식으로 말이죠.

움큼의 업무 능력도 이직과 동시에 사라졌습니다. © 블리치
물론 시간이 지나고 일을 같이 하다 보니 이런 오해는 풀렸지만 어느 하나 편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 없어서, 맞춰가는 데 스트레스를 받던 시간이었습니다. 온전히 이방인으로 새 회사에 떨어지고 나니 새로운 커리어를 개발하겠다고 당당하게 나서던 제 모습은 사라지고 바람빠진 풍선처럼 왜소해진 제 모습이 보이더라구요.

특히 체감한 건, 내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많이 줄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전 직장 동기들과 사이가 좋았고 술도 자주 마시며 속내를 털어놓고 지냈는데요, 새 직장에서는 이런 '동기'가 없다는 것도 꽤 힘들었습니다.

물론 전 직장 동기들과 여전히 친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하소연 할 수 있지만, 새 직장에서는 그런 '자연스럽게 형성된 정말 친밀한 사이'라는 게 없더라구요. 전 직장에서는 수많은 기사를 쓰기위해, 수많은 술잔을 비우기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낸 선후배와 동기들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전 직장의 선후배와 동기들을 잃은 건 아니지만, 업무능력으로서 그들과의 유대감과 네트워크는 잃은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심리적 압박이 들면 저는 다 합니다. 음주(많이), 운동(조금), 폭식(가끔), 게임(열심히), 없다(포기)까지요. © 디지틀조선일보
이런 과정을 정리하면 저는 10년차에 가까운 연차로 입사했으면서 당장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곳도 마땅치 않은 기분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레벨은 100인데 스탯은 초기화 됐고 끼고 있던 템은 다 털렸는데 그게 내 선택인...?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 불안이 만든 야근, 하지만, 동료평가

새로운 동료들을 보면서도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 직장에서 기자로 살면서는 제 동료를 보며 '이 사람은 나를 좋은 사람으로 평가할까?'하는 의구심이 든 적은 없었는데 말이죠.


내가 A라는 자료를 수요일까지 만들겠다고 해놓고 완성 못했는데 날 어떻게 생각할까? 앞에서는 나에게 잘 만들었다고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하지만 뒤로는 한심하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같은 생각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제가 만든 성과에 자신이 없다보니, 퇴근 후에도 일 생각이 나고, 집에서 노트북을 열고 새벽까지 회삿일을 붙들고 있는 날도 많았습니다.

한 달 동안 같은 PPT 파일 붙들고 주 2회 새벽 2시, 주1회 새벽 1시 야근을 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팀장님 내가 야근한 거 모르겠지? 좀 억울하네' ©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던 5월, 상반기 동료 평가가 있었습니다. 제가 평소 일을 자주 같이하는 동료들을 제가 평가하고, 그들도 저를 평가하는 방식이었는데 괜히 또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나와 점심을 같이 먹고 수다 떨던 사람들이 장점은 짜게 주고 단점은 왕창 쏟아내면 어떡하나. 익명 평가가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다행히도,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동료 평가에는 뜻밖의 따뜻한 말이 가득했습니다. 제가 야근하는 걸 지켜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적응을 위한 제 노력을 높이 평가한 코멘트가 적혀있었습니다.


적응을 위해 적극적인 태도가 좋다, 업무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 같은 말들. 그 코멘트들 덕분에 불안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의 불안이(Anxiety)가 영화 후반부 의자에 앉아있는 장면. 자세히 보면 오른쪽 차 상자에 'Anxietea'라고 쓰여있는 것 알고 계셨나요? © 디즈니
동료평가를 보고나서 든 생각은, 마치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의 불안이처럼, 상황이 더 나빠지는 걸 막기 위해 불안해하고 열심히 대응한 면도 있었던 것 같다, 였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날 미워하지 않아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하기도 했구요.

지난 1년은 불안과 불안에 대처하기 위한 이방인의 발버둥이었다고 스스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점수로 평가하자면 동료 평가 덕에 불안을 덜어낸 덕에 80점을 주고 싶네요.

언젠가 이직하실지도 모르는 독자님들께서는 이직하고도 너무 외로워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새 직장에서 만날 동료분들이 독자님의 생각보다도 더 독자님을 응원하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저는 비록 미처 알지 못했지만요!
편집/윤문 | 구현모

Q1. 어거스트를 구독해야 하는 이유, 어거스트의 매력은?

한결 같지 않으면서 한결 같은 매력이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가장 잘 느끼고 계실 것 같은데요, 어거스트는 저까지 7명의 에디터가 레터를 발행하고 있어요. 정해진 주제나 형식이 엄격하지 않은 편이고, 각자 최선을 다해 발굴한 이야기를 자신의 스타일을 살려 전달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결 같지 않은' 면이 있구요.


동시에 그 한결 같지 않음 속에서 비슷하게 공유하고 있는 관점이나 무형의 틀을 통해 나타나는 한결같은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양도 다르고 맛도 서로 다르지만 한 봉지에 들어있는 7개의 젤리 같다고 할까요. 객원 에디터님들까지 고려하면 훨신 더 맛이 다양하구요! 
질릴 틈이 없이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Q2. 에디터 <움큼>의 TMI

엄...아내가 아이유를 싫어하게 만들었습니다(?)

사귀던 초반 제주도로 여행을 갔는데요, 렌터카에서 아이유 노래가 나오자 너무 신난 나머지 앨범별로 수록곡 뭐가 좋느니 이 곡은 이런 포인트가 있느니 하는 얘기를 눈치 없이 20분 넘게 떠들어버렸습니다. 아내는 아마 '그게 뭔데 씹덕아'하는 느낌이었을 것 같고...이날 삐진 아내 달래는 데에만 30분 넘게 쓴 것 같습니다.

아내는 지금도 아이유를 잘 안 듣습니다...

당시 여자친구, 지금의 아내에게 체셔 앨범에 얽힌 이야기와 수록곡에 대한 칭찬을 늘어놨는데, 아내는 아마 '그게 뭔데 이 씹덕아' 하지 않았을까요 © EDAM 엔터테인먼트

Q3. 앞으로 써보고 싶은 주제

처음 드린 레터부터 '전직 기자'의 글을 표방하며 시작했는데, 첫 레터 이후에는 언론판에 관한 이야기는 잘 다루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어디부터 다뤄야 독자분들께서 공감하실 수 있을지 아직은 감이 잘 오지 않아서요.

제가 드릴 수 있는 이야기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다만 그 방향과 결을 어떻게 다듬을지, 어떤 말로 표현할지 고민 중입니다.

퇴사를 했다, 스물아홉에

에디터 <움큼>의 코멘트


오늘 드린 제 레터는 재밌게 읽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품어보는 생각이지만, 동시에 이런, 저런 여건을 생각하면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더라구요.


기자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 퇴사도 생각할 정도로 회의감으로 가득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내가 쓰는 기사가 세상에 무슨 의미, 가치가 있을까. 지금은 이 일이 그렇게 즐겁지 않은데 나는 나중에 무엇을 하며 살까' 하고 폭음과 숙취를 오가던 쯤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다 이 브런치 글을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나는 나무가 아닌데 자꾸 옥상에서 잠을 잤다"는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더군요. 글의 말미에 다다르자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누군가는 내 직업을 너무너무 갖고 싶어하는구나.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저도 기자가 되기 전에는 기자가 너무너무 되고 싶었거든요.


이 글을 처음 읽은 계절이 생각나진 않지만, 읽고 나서 8월에 쓰여진 저 글처럼 조금은 활기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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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나나 • 오리진 • 하은 • 움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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