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호 - 문득 유명해지고 싶은 9월에 👋

안녕하세요. 독자님 :) 매년 9월 첫 날이면 의례처럼 윤종신의 노래 ‘9월’을 듣습니다. “그을린 여름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것 같은데 9월이 왔어”라는 첫 소절을 들어야 비로소 9월이 시작된 것 같거든요. 독자님께는 한 달을 여는 의례가 있나요? 오늘 보내드리는 9월의 묵상을 실천하며 다가오는 계절을 너무 조급해 하지 않고 잘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랄게요. 😘

박정은의 계절 ㅡ 9월, 내 영혼이 바라는 대로 살아보기

아직은 여름이라고, 혹은 올해는 긴 장마로 여름이 제대로 온 적도 없다고 우기고 싶은 9월입니다. 이제 달랑 네 달 남은 달력을 보면 조급한 마음마저 듭니다. 그래서 이번 9월은 나만의 내적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과 친밀해지는 시간, 또 사회나 문화가 규정하는 내가 아니라 내 마음 속의 나와 좀 더 친밀해지는 시도를 해 보는 한 달이 될 것입니다.


첫째 주: 내적 공간 만들기

이 묵상은 내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 보는 작업입니다. 집안에 넉넉한 자리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상상을 통해 그 곳으로 갈 수 있고, 혹은 집안의 어느 조그만 공간에 금을 긋거나 초를 켜 둠으로써 실재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작업은 나만의 내적인 공간을 만들어 가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앞으로 모든 묵상은 이 내면의 공간에서 진행됩니다. 


🧘‍♀️명상(눈을 감고 상상합니다)

아무 약속도 없는 조용한 날을 상상해 봅니다. 나는 집을 나섰습니다. 상상 속에서 당신의 시간은 아침입니까? 아니면 해가 좋은 정오입니까? 아니면 해가 어둑어둑 지는 저녁입니까? 또 어떤 계절입니까? 잎이 파릇한 봄날입니까? 아니면, 녹음이 우거진 여름, 혹은 가을날입니까? 혹은 눈이 오거나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날입니까? 어떤 향기가 나는지, 나는 어떤 기분인지 살펴봅니다.


한참을 걸어가다, 나는 기차를 탑니다. 편안해 보이는 한 좌석을 골라 앉았습니다. 옆에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까? 아니면 혼자입니까? 이 기차는 천천히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빨리 달리고 있습니까? 차창 밖으로 보이는 장면은 무엇입니까? 창밖으로 어떤 사람이 보입니까? 어떤 느낌이 듭니까? 어떤 향기가 납니까?


이제 기차가 조그만 간이역에 섰습니다. 플랫폼을 지나 역사를 빠져 나갑니다. 저만치 오솔길이 나 있고, 그 길을 따라가니 숲이 나옵니다. 숲길을 걸어 갑니다. 어떤 나무들이 보입니까? 하늘은 보입니까? 바람 소리 혹은 새소리가 들립니까? 이 숲은 지금 어떤 계절입니까? 촉촉하게 비가 내립니까? 그도 아니면 눈이 덮인 숲입니까? 숲을 둘러보고, 나무들을 살펴봅니다. 침묵 속에서 나에게 말을 건네는 나무 혹은 내 눈에 들어오는 나무에게 다가갑니다. 어떤 나무입니까? 커다란 나무입니까 아니면 가늘고 어린 나무입니까? 잎이 무성합니까 아니면 잎이 없는 나무입니까? 어떤 결이 느껴지는지 상상 속에서 만져봅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 기대거나 나무를 힘껏 안아봅니다.


이 나무에게 인사합니다. 나무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봅니다. 그렇게 잠시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나무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숲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오솔길을 따라 갑니다. 그리고 작은 역에서 기차를 타고, 다시 돌아옵니다. 다시 익숙한 동네의 길이 나옵니다. 천천히 집에 들어갑니다.


나무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이어주는 상징으로, 세상의 축(Axis Mundi)이라고 부릅니다. 이 나무와 함께 만들어 가는 내적 공간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제공하고, 나의 내면을 만나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이번 주에는 자주 그 곳에 들러, 나무에게 무슨 말이든지 하고 싶은 말을 해 보세요. 그리고 나무로부터 들은 지혜로운 말을 적어 보십시오.


둘째 주: 내가 살던 동네

이번 주에는 내가 태어나서 살아 온 장소를 여섯 군데 정해 하루씩 생각해 봅니다. 내 안에는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사건들 혹은 주변 환경을 통해 들어 온 많은 의미들이 내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내가 만든 내적 공간에서 그 장소들로 돌아가 봅니다. 그리고 내가 살던 동네, 그리고 그곳에 놓여진 나는 어떠했는지, 자신의 조각들을 찾아 기록해 봅니다.


🧘‍♀️명상(눈을 감고 상상합니다)

그 동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면, 그곳은 어디이며 왜 특별히 기억납니까? 그곳의 풍경은 어떻습니까? 그곳에 살던 나의 모습을 그려 봅니다. 동네 길을 걷고 있는 나를 바라봅니다. 나는 몇 살입니까?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표정입니까? 어떤 날의 나를 기억하십니까?


이때 떠오르는 장면이 있으면 그 장면에 머무릅니다. 그리고 그때 내 삶의 여정에서 나는 누구를 만났고, 나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그 꿈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때 난 무엇을 좋아했는지, 또 누군가를 좋아했었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그때가 내게 어려운 시절이었다면, 그 시절 나는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해 봅니다. 혹시 힘든 기억이 올라오면, 내 상상의 나무에 기대어, 나무에게 이야기해 주면서, 나무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들어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적어 놓은 노트를 읽어보고, 현재의 내가 지난 시간들 속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 메시지를 적어 봅니다.


셋째 주: 나는 누구에게 유명한가?

팔레스타인 출신의 시인, 나오미 쉬하브 나이(Naomi Shihab Nye)의 시 <유명하다Famous>을 소개합니다. 이 시인이 미국 어느 시골 초등학교에 갔는데, 아이들은 그에게 당신은 유명한 사람이냐고 물었고, 그는 아니 나는 너희들에게 유명한 사람이고 싶다고 이야기한 후,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강물은 물고기에게 유명합니다.

...

담장 위에서 잠을 자는 고양이는

새집에서 그를 주시하는 새들에게 유명합니다.

...

장화는 바닥에게만 유명한 구두보다

대지에게 훨씬 더 유명합니다.

구겨진 사진은 가지고 다니는 사람에게 유명합니다. 그리고 그 사진은 사진이 찍힌 사람에게는 전혀 유명하지 않습니다.

나는 웃음 지으며 춤추듯 길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식료품 가게에 줄 선 꾀죄죄한 아이들에게.

웃어주는 사람으로 유명하고 싶습니다.

나는 고패나 단춧구멍이 유명한 것처럼

유명해지고 싶은데,

이것들이 어떤 특별한 위대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코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유명하다고 하면, ‘무엇으로 유명하다(famous for)’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유명하고 싶은 것인지는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무엇으로’보다는 ‘누구에게’ 유명한지가 더 내 삶을 풍요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노숙인들에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는 식당이나 집을 잃은 아이들과 저녁을 함께 먹는 보호소에서 만나는 그 어떤 누군가에게 유명해지는 것이, 그저 난 유명한 사람이라는 막연한 뿌듯함보다는 훨씬 삶의 질을 풍성하게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가슴에 오래 도록 품고 다녀서, 혹은 지갑 속에 너무 오래 가지고 있어서, 여기저기 구겨진 사진은 그 사진을 품고 다니는 사람에게 아주 유명한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매일 들여다보는 어머니의 사진은 저에게 유명하지만, 어머니에겐 아닐 겁니다. 그 사진 속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제가 다니던 중학교를 방문하셨고, 매우 만족해 보입니다. 이 사진 속 어느 젊은날의 어머니는 제게 아주 유명합니다.

 

🧘‍♀️명상(눈을 감고 상상합니다)

이번 주는 나의 내면의 장소로 가서, 매일 이 시를 읽어 봅니다. 그리고 가족, 친구나 지인, 동료나 직장 상사, 선배나 후배, 동호회 사람,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등 나는 누구에게 어떻게 유명해지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고, 노트에 기록합니다.

 

6일 간 기록해보고 일요일에는 다시 한 번 내가 유명해지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단춧구멍처럼 꼭 필요한 때 있어주는 그런 사람일 수 있는지, 그리고 또 내게 그런 사람은 누구였는지, 떠오르는 대로 노트에 정리해 봅니다.

 

그리고 아래를 채워보세요.

 

👠나의 신발은 누구에게 유명합니까?

 ✋나의 손가락은 누구에게 유명합니까?

 🐱나는 동네 고양이들에게 무엇으로 유명합니까?

 💐길가에 피어난 이름없는 들꽃에게 나는 무엇으로 유명합니까? 


그리고 아래의 밑줄을 채워보세요.

 

나는 _____에게 _____으로 유명해지고 싶습니다.

 

넷째 주: 내 영혼이 바라는 대로 살아보기

이번 주간은 내 영혼이 얼마나 익어가고 있는지 성찰해봅니다. 내 영혼이 더 싱싱하고, 더 깊어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덕목을 정해 놓고 바라보도록 합니다. 각자 하루에 한 가지를 정하거나 한 주 동안 한 가지의 습관을 정해서 계속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의식 성찰이라고 부르는 보물 같은 영성 수련 방법입니다. 내 의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관찰하는 이 작업은, 아침에 주제를 마음에 각인하고, 점심 시간에 다시 한 번 주제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저녁에 하루를 관찰합니다. 마치 영화를 보듯이 나의 하루를 바라보아도 좋고, 오늘 하루 내가 실패한 순간을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좋습니다. 이 수련의 중요한 점은, 실패하지 않는 데 있다기 보다는 내가 실패할 때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런 다음 그 실패가 어떤 행동이나 마음으로 이어지는지 보는 일입니다. 실천을 잘 했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자신을 더욱 사랑스럽게 지켜보도록 합니다.

 

이번 주에 매일 이렇게 실천해 보세요. 


❤️️ 월요일: 화내지 않기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내가 화내지 않는 하루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점심 시간에 식사하러 가면서, 혹은 점심을 준비하면서, 아침부터 지금까지의 내 생활을 돌아봅니다. 언제 화를 냈는지, 누구에게 화를 냈는지를 생각합니다. 피곤해서 화가 났는지, 내가 화를 내는 대상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나의 화는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또 그 화는 본질적으로 어디서 오는지도 살펴봅니다. 저녁에는 오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화를 내었고, 그 화는 누구에게서 오는지, 혹은 누구에게로 표현되는지, 또 그 표현이 적절한지, 화를 낸 후 나는 어떤 반응을 하는지 살핍니다. 그리고 오늘 발견한 것, 예를 들어, 나는 집중적으로 한 사람에게 화를 낸다거나, 화를 내는 방법이 적절치 못하다거나, 지나치게 흥분을 한다거나 하는 것들을 적어 봅니다.

 

🧡 화요일: 작은 친절 베풀기

오늘 아침에는 작은 친절을 베풀 기회를 찾겠다고 다짐합니다. 점심 시간에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노력한 것을 점검해 봅니다. 나는 누구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까? 상대방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친절을 베풀 때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또 작은 친절을 베풀지 못했다면 왜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까? 그리고 저녁에는 오늘 하루 내가 베푼 작은 친절과 베풀지 못한 친절들을 생각해 봅니다. 친절을 베풀 때 나는 어떻게 행복했는지, 그리고 놓친 순간들을 성찰하면서, 내가 가진 어떤 특성들을 찾아봅니다. 

 

💛 수요일: 미소 지어주기

오늘은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내가 보낼 수 있는 가장 환한 미소를 지어줍니다. 점심 때가 되면, 눈을 뜨고부터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많이 미소를 지었고, 또 언제 찡그렸는지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내가 실패했거나 성공했는가를 살펴보는 시간이 아니고, 나는 어떤 상황에서 날카로워지는지, 비판적이 되는지, 자신의 특성과 경향을 알아가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저녁에는 오후부터의 나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은 주로 언제입니까? 내가 이 주제를 떠올리며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으려 한 사람은 누구이고, 어떤 상황에서였습니까? 또 미소를 지을 때, 나의 기분이나 느낌은 어떠했습니까? 미소가 익숙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 미소를 지을 때, 그 사람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오늘 하루의 느낌과 나에 대한 발견을 노트에 적어 봅니다.

 

💚 목요일: 솔직하기

아침에 눈을 뜨면서, 오늘은 정직하게 살아 보기로 결심합니다. 습관적으로 우리는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합니다.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 싫어서, 혹은 무심코 상대방이 불편할까 봐 거짓말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하기보다는 간접적으로 진실을 말하거나 대면하지 않음으로써 정직하게 살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아주 작은 일, 예를 들어, 물건을 살 때 거스름돈을 더 받았을 때처럼 치사하리만큼 작은 일에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까? 혹은 정당하지 않은 수입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지지는 않습니까? 이런 저런 나의 경향을 하루 동안 관찰해 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 싶은 사람들은,  열 시, 열두 시, 네 시, 여섯 시, 그리고 잠들기 전 이렇게 네 번 성찰해 봅니다.


하루를 돌아보면서, 나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왜 거짓말을 하는지 정리합니다. 막연하게, 두려워서, 혹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덮어 두는 성향이 있다면, 이런 경향은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 또 나는 이 성향을 어찌 하고 싶은지 적어 봅니다. 물론 어떤 것도 단순히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며, 나의 내면의 지도를 만든다고 생각하면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금요일: 미안하다고 말하기

사과를 잘 하지 못해 계속 무거웠던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과를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연습을 해야 합니다. 크든 작든 “미안해” 하고 말하는 일은 내면이 부드러워지도록 도와줍니다. 또 미안하다는 말을 할 때, 우리는 입장을 바꾸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기계적으로 하는 사과일지라도, 사과를 하려면, 상대방이 입은 손해와 속상함을 헤아려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오늘의 주제를 떠올리며, 사과하는 말을 정해 봅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요. 쏘리. 그리고 출근하는 버스에서, 무언가를 살 때, 또 일을 할 때, 내가 남에게 준 불편에 대해 나는 얼마나 느낄 수 있는지, 그리고 그걸 느낄 때 나는 바로 사과하는지를 살펴봅니다. 점심 시간에 하루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상황에서 혹은 얼마나 자주 미안하다고 하는지, 그때 나의 태도는 진지했는지, 가벼웠는지 돌아봅니다.


그리고 저녁 혹은 밤에 오후 이후의 내 모습을 돌아봅니다.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잘 못 하는 사람이라면, 어디에서 그런 태도가 오는 것인지,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오는지, 나이가 많다는 권위 때문에, 자신의 우월감 때문인지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무언가 깊은 내 영혼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면 이 말을 하는 훈련을 계속 할 수도 있습니다.


💖 토요일: 잘난 체 안 하기

내가 가졌다고 생각했던 삶의 조건들을 더 이상 가지지 못했을 때, 그리고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리는 자랑을 합니다. 정도가 심해지면 허언증으로까지 갑니다. 그런데 이는 외로움을 불러일으키고, 심리적 고립을 더욱 깊어지게 합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인데, 상황이 나를 도와 주지 않은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사실이라도 자기 자랑하는 말은 대개는 듣기 좋지 않습니다.


또 한편, 타인의 자연스러운 이야기에도 짜증이 난다면, 왜 그러는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찰 중 내게 거슬린 사람은 누구였는지, 어떤 말을 할 때 듣기 싫었는지도 살펴보면 도움이 됩니다. 다른 이야기는 다 잘 들어 주다가, 외국에서 보낸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거부감이 올라온다면, 또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갔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듣기 힘들면, 나는 왜 유독 이 부분이 싫은지 살펴봅니다.


점심 때가 되면 오전에 내가 만난 사람과 대화하면서 거슬렸던 부분, 혹은 내가 참지 못하고 자랑한 상황, 나는 왜 자랑을 하고 싶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밤에는 나는 내면의 어떤 경향으로 인해 자랑하거나 남의 자랑에 인색해지는지를 살펴봅니다. 내 안에 깊이 자리한 열등감입니까? 혹은 우월감입니까? 사실 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며, 그런 나의 경향은 내가 누구인지를 잘 가르쳐 줍니다.

 

💜 일요일: 돌아보기

일주일간의 기록을 모두 읽어 보고,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있는 지 살펴보고 기록합니다. 더 깊이 살아보고 싶은 실천 사항은 어떤 것인지, 또 이 실천 사항은 나에게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적어 봅니다.

 임혜진의 계절 ㅡ 경계를 살아온 이들의 글쓰기

경계인의 경험과 소수자성은 글쓰기와 창작에서 정서적으로 가장 파워풀한 소재이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주는 주제입니다. 최근에 그러한 정체성과 운명적으로 씨름한 이야기를 쓴 두 책을 읽었습니다. 먼저 문화인류학 연구자이자 영화감독인 자이니치 3세 김이향의 <다음 리카에게>(민음사)입니다.  우리와 가깝지만 너무 먼 자이니치의 역사는 이제 3대가 성인으로 자라기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어도 여전히 현재형인 사회적 차별, 이중 정체성 사이에서 끝까지 뿌리를 기억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가풍, 거기서 벗어나려 하는 자유로운 신세대이지만 끝내 놓지 못하는 어떤 의문과 호기심은 저자로 하여금 인류학을 공부하게 하고 한국에 와서 영화를 찍게 이끕니다. 

다른 하나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문학과지성사)입니다. 이 책은 자신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가지고 사회학자로서 꽤 성공한 저자가, 사실 성소수자 정체성보다 더 근원적인 자신의 주제였지만 학자로서의 경력에서 계속 외면해 왔던 사회정치적 계급 문제를 학문적으로 다시 해석해보고, 화해할 수 없었던 가족과 과거에 대해 고백적으로 써내려간 책입니다. 솔직하고, 차분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가슴이 저릿해지는 슬픔이 행간에는 있습니다. 

부끄러워서, 아파서,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 운명에 이끌리듯 끝까지 밀어붙여 쓰게 되는 것, 그런 글쓰기가 지닌 날카로운 힘과 감동이 있습니다. 여름과 가을 사이, 치열하게 경계를 살아온 이 저자들을 만나보시면 어떨까요.
오수경의 계절 ㅡ 어떻게 해야 했을까?

〈호프〉가 가니〈오딧세이〉가 와서 두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감상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한 요즘이지만,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어떻게 해야 했을까?〉였습니다. 영화감독 후지노 토모야키가 조현병을 안고 살다 세상을 떠난 누나의 삶을 20년간 기록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의학박사인 부모는 그녀의 병을 인정하고 치료하는 대신 현관문을 잠그는 쪽을 택합니다. 20년 만에 그녀는 마침내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상태가 호전되지만, 그때는 이미 중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병세가 겨우 나아지는가 싶더니 이번엔 암이 그녀를 찾아옵니다. 결국 치매를 앓던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환갑을 겨우 넘긴 그녀도 뒤이어 떠납니다. 그 긴 세월의 조각들을 모아 보여주던 영화는  감독과 아버지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끝납니다. 딸의 인생을 가둔 부모를 비난하지 않은 채, “어떻게 해야 했을까?”라는 질문만을 관객에게 남겨둔 채로.


그러게요. 그런 상황과 마주했다면, 저라고 무엇을 다르게 할 수 있었을까요. 시대적 한계와 지켜야 할 삶과 명예가 겹겹이 쌓인 선택을 보고 있자니, 저 역시 그들의 부모를 섣불리 비난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다만 딸의 관 앞에서 그 인생을 “충만한 삶”이라 평가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의학자로서의 명예가 딸의 일생보다 앞선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흔들림 없는 확신이 무서운 것을 넘어 징그럽게 여겨졌습니다. 그 선택이 결국 누구를, 무엇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는지… 자꾸 곱씹게 되는 영화입니다.

지난 11호에 보내주신 소중한 답장을 소개합니다.
  • 수녀님 글을 읽으니 그저 덥다고 느껴졌던 8월의 다른 모습을 생각하게 되네요. 며칠전부터 하늘이 좀 높아진 것 같고 바람이 서늘해져서 살만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8월! 때마다 다정하게 말건네주는 오브를 만드느라 애쓰시는 편집팀들께 감사합니다! 7월호에 수녀님이 추천하신 여성고딕소설 읽기가 한국 젊은 작가들의 소설읽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9월을 준비해봅니다. ⇒ 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너무 뿌듯하네요. 정성껏 보시고 반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의 답장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요. 뜻밖의 선물처럼 여기며 소중하게 읽겠습니다. 📮 다음 《오브》는 9월 9일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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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 : 출판사 옐로브릭
  • 에디터 : 오수경·임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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