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령인구 급감이 야기한 재정악화와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급속한 위축, 그리고 이러저러한 대학 관련 정책들이 교수님들로 하여금 연구와 교육에만 집중하시지 못하게 한 2024년이었습니다. 터무니없는 비상계엄이 발동돼 온 나라를 혼란의 도가니에 집어넣더니, 설상가상으로 온 국민의 가슴을 저미는 항공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다사다난한 한 해 동안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모든 분들께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2025년부터는 정의가 구현되고 나라의 기강이 세워져서, 교수님들께서 조금이나마 위안 받으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1. 대학의 인문사회 분야를 중흥시킬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도서 『선진 대한민국, 인문사회에서 길을 찾다』를 PDF 파일로 보내드렸고, 자연과학•공학•농수해양학 분야의 교수 25,119명을 대상으로는 32,628개 과제의 연구비를 제공하고 있지만, 인문학•사회과학•문화예술학 분야의 교수 30,718명을 대상으로는 겨우 5,886개 과제의 연구비만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보고 드렸었습니다. 최근 한국연구재단이 발행한 『2024년도 전국대학 대학연구활동실태조사 분석보고서』에 의하면, 인문학 분야 전임교원의 수가 2020년 9,051명에서 2023년에는 8,125명으로 대폭 감소하였으며, 전체 교수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12.1%에서 11.2%로 줄었다고 합니다. 사회과학 분야는 전임교원의 수가 17,169명에서 16,298명으로 880명 가까이 줄었고, 비율 역시 22.9%에서 22.55%로 줄었습니다. 예술체육학 분야도 전임교원의 수가 5,918명에서 5,600명으로 줄었으며, 비율 역시 7.9%에서 7.7%로 줄었습니다. 인문사회 분야의 신진학자들이 너무 큰 고통을 겪고 있으며, 학문후속세대의 길을 택하는 젊은이들이 고갈되고 있습니다.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려면 우리 분야의 학술연구와 교육 그리고 신진학자와 학문후속세대의 성장을 뒷받침할 전문법령을 제정해야 합니다. 과학기술 분야는 「과학기술기본법」을 비롯해 25개에 달하는 전문법령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법령들이 국가연구개발 예산 30조 원 가운데 29조 원이 과학기술 분야에 투입되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왔습니다. 십 여 년의 노력 끝에 2023년에 「인문사회학술기본법안」이 마침내 발의되었습니다만,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 국회의 회기가 종료되었기 때문에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인문사회학술기본법」의 재발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2025에는 「인문사회학술기본법」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인사총의 활동을 채찍질해주시고 입법을 추진하는 활동과 절차에도 적극 동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역시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중흥과 안정적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입니다. 대학의 인문사회 분야가 학생 수에 매이지 않고 적정한 규모의 연구와 교육 역량을 유지해가려면 고등교육에 대해 항상적이고 적정한 규모의 재정지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의 제정이 그 첩경이 될 것입니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은 2004년에 처음 발의되었고, 그 후 십여 차례의 개정발의만 반복되었습니다. 2023년 1월부터 시행된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이 2025년 12월 31일자로 그 효력이 다하기 때문에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의 제정을 서둘러야 합니다. 문이과 구분 없이 힘을 합해야 할 것입니다만, 우리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가 더욱 많은 관심과 노력을 쏟아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2. 정의를 구현하고 나라의 기강을 세우는 데 학계가 더욱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작가 한강이 노벨상 시상식에서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했고,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다.”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번의 비상계엄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용기 있고 각성된 시민들을 보았으며,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국민은 바뀌었지만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저해해 온 기득권 세력은 바뀌지 않았으며, 군대는 바뀌었지만 정치군인은 바뀌지 않았다는 어두운 면도 보았습니다.
베나 비단 한 두 필은 평범한 사람도 놓치지 않지만, 뜨겁게 달궈진 황금 수천 양(兩)은 도척(盜跖)같은 도둑도 집어 들지 못한다. 응당한 처벌이 없으면 베 한 두 필도 놓치려 하지 않지만, 손에 화상을 입어야만 한다면 수천 양이나 되는 황금일지라도 탐내지 못하는 것이다. (『한비자韓非子•오두五蠹』)
해방 직후 시기에는 경찰의 80%이상이 일제(日帝)의 ‘순사’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일제에 부역했던 그들에게 민중에 대한 폭력을 행사할 자리가 계속 주어지지 않았다면 수만 명으로 추정되는 제주도민들이 학살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1980년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한 정치군인들을 올바로 응징했었다면 이번의 12.3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살인을 저지른 자들에 대한 응당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고, 이번의 위헌적 사태를 획책했던 세력들이 ‘또 한 번의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요행을 바라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번에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을 관철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하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제도를 정립(正立)하려면 먼저 가치관과 이념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전도된 가치가 횡행하고 있으며, 2,500년 전에 군주제(君主制)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만든 ‘우화적(寓話的) 사태’가 지금 우리 눈앞에서 엄연한 현실로 전개되고 있는 중입니다.
검은 것을 많이 보기 전에는 검은 것을 검다고 했었는데, 검은 것을 많이 보게 된 후에는 검은 것을 보고도 희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흑백의 차이를 모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쓴 것을 많이 먹어보기 전에는 쓰다고 했었는데, 쓴 것을 많이 먹게 된 뒤에는 달다고 한다. 이 사람이 단맛과 쓴맛의 차이를 모르게 되었기 때문일 것임이 분명하다. 못된 짓을 조금 저지르면 그것이 잘못임을 알아서 비난하다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처럼 큰 잘못을 저지르면,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추종하고 찬양하며 의롭다고 한다. 이것은 의(義)와 불의(不義)를 구분할 줄 아는 행위라고 할 수 없다. 이런 걸 보면, ‘왕(王)’이라는 자들은 ‘의’와 ‘불의’의 구분을 어지럽히는 존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묵자墨子•비공非攻』)
생명과 재산을 지켜달라고 군대를 조직하고 무기를 쥐어줬는데, 그 총부리를 자국민에게 돌리도록 만든 통수권자와 지휘관이 있다면, 그들을 엄벌하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주의 파괴를 주도했거나 동조했던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무리는 자신들이 저지른 폭거를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호도하고 있으며, 국민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작당해서 거짓말을 반복하다 보면 믿는 사람이 생겨난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의 수법을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학자들이 나서서 궤변과 요설을 정리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그들의 준동이 멈출 것입니다만, 이제부터는 정의를 참답게 구현하고 나라의 기강을 올곧게 세울 이념과 제도의 수립에 학계가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3. 대학이 전인적 인재를 배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합니다.
이번 내란사태의 피의자는 그가 대통령 후보이던 시절 경북 소재의 모 대학에서 “인문학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면서 병행해도 되는 거다.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대학 4년과 대학원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라는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점디젊은 학생에 의해 “인문학을 통해 이루어진 치유는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보다 덜 분열되며 더 따뜻한 사회로 남고자 하는 힘의 원동력이었다.”고 비판당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교육부는 스스로 경제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그가 이번 사태의 피의자가 된 이유를 알려주는 명료한 단초들입니다.
최소한의 도덕적 소양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법을 다루거나 권력을 점하게 되었을 때의 참담한 결과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대학이 전인적(全人的) 지성인을 양성할 시스템 구축을 서둘러야 합니다. 인류가 축적해 온 문화의 정수를 두루 공부시킴으로써 넉넉한 인문사회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배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명문대학’ ‘수석’ 등등의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이번의 사태를 일으킨 것을 보면, ‘도구적 지식’을 과도하게 중시하고 ‘능력주의’에 함몰된 우리의 의식구조가 결정적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도 AI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고, AI가 초래할 수 있는 위협은 ‘개발’과 ‘적용’의 영역에서 공히 발생할 수 있으니, 과학도들에게도 높은 인문사회적 소양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학은 ‘전인적 지성인’의 양성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한국사회의 대전환과 대개혁을 추진해야 할 시기이며, 지금 성찰하고 변화시켜야 할 분야는 인문사회 학계가 자임해야 할 영역입니다. ‘학술’은 ‘연구’와 ‘실천을 통한 변화’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대학의 인문사회 분야에서 연구와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학자가 10만 명이 넘습니다. 10만 연구자들이 힘을 모은다면 우라가 추구하는 가치를 대학 안팎에서 구현할 수 있을 것이며, 안정된 연구환경과 정당한 경제적 보상 위에서 연구와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구의 자유’도 크게 확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사총도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2025년에도 모든 분들께 건강과 보람이 함께하기를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1월 1일 위행복 삼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