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학에 다닐 때 참 행복했어요. 국문학과는 문학 수업이 많았거든요! 아직도 시 창작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읽어준 시들을 잊지 못해요. 참으로 이상하고 신비한 소설들. 시간이 열리는 듯한 희곡의 대사들. 교훈적이지 않아서 더 좋았어요. 문학은 어렵고 복잡하고 가슴 아프며 손쉽게 이해되지 않아서 좋았어요. 뭐랄까요. 삼각김밥 포장지를 뜯듯이 삶과 마음을 간편하게 다루지 않는 게 고마웠어요. 그래서일까요. 슬픈 작품에 마음이 갔어요. 거대한 고통이나 운명적인 사건 앞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인물들이 마음에 걸리곤 했어요.

왜 그런 것이 그토록 아름다워 보였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많이 밑줄을 그어서 부끄럽지만 그래도 그 시절 책에 그었던 밑줄들을 사랑해요. 생각해보면 밑줄을 긋는 건 참 아름다운 행위예요. 나 아닌 존재에게 강렬한 ‘겹침’을 느낄 때 우리는 밑줄을 긋고는 하지요. 네 마음을 이해해. 나도 강아지가 좋아! 당신이 겪는 슬픔을 알 것 같다고. 그러니까 밑줄 긋기는 분명 물리적인 행위이지만 실상은 내면적인 포옹이 아닐까요. 한 인간의 내밀한 이야기 앞에서 펜을 들고 기어이 마음을 포개는 것. 그래서 저는 손 잡는 것만큼이나 밑줄 긋는 것을 좋아해요.

아무튼 또랑또랑한 눈으로 문학 수업을 듣던 시절, 제가 정말 사랑했던 교수님은 강의 중에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여러분, 왜 문학은 고통을 마주하는 걸까요. 왜 문학은 슬픔과 비극적 경험을 제공하는 걸까요. 참 이상하지 않나요. 읽으면 괴롭고 마음이 복잡해지는데 왜 거기서 문학이 발생한다는 느낌이 들까요.” 그러면서 선생님은 『욥기』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욥기는 ‘원인 모를 고통’ 앞에서 ‘한 개인’이 이를 마주하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욥은 누구보다 나약한 동시에 강인한 얼굴을 지니게 됩니다. 인간적이지요. 너무나 인간적이지요. 그러니 어쩌면 『욥기』야말로 성경 안에서 가장 문학적인 대목이 아닐까 싶다는 것.

그땐 선생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요. 요즘은 막연히 알 것도 같아요. 성경의 말씀은 대부분은 선(善)을 향하며, 계몽적이고, 교훈적인 이야기로 채워져 있지요. 그런데 『욥기』는 조금 달라요. 욥은 이유 없는 고통(운명) 앞에서 그 원인을 묻고, 저항하고, 가슴을 치지요. 그렇게 욥은, 끊임없이 자신의 ‘현재’와 ‘삶의 의미’에 관하여 의문을 던져요. 바로 여기서 ‘이곳’의 감각이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욥기』는 천국이나 너머와 같은 ‘저편’이 아니라, ‘지금-이곳’을, ‘우리’를 다룬다는 것.

여러분은 언제 ‘시간’을 느끼시나요. 저는 특히 아플 때 시간을 선명하게 느끼곤 해요. 통감은 ‘몸’과 ‘현재’를 계속 느끼게 하지요. 열과 땀과 추위와 박동과 통증 때문에 피할 수도 없이 ‘지금’을 감각하게 되어요. 동시에 고통 앞에서 내가 참 무력하다는 걸 깨닫게 되어요. 한 번만 심하게 앓아도 알게 되지요. 모든 것을 계획한 대로 살겠다는 게 얼마나 허구적이고 불가능한 일인지를요. 그러니 아플 때는 자기계발서가 무력해져요. 반대로 아플 땐 ‘의미들’이 되살아납니다. 저는 병상에서 귀하고 소중한 것들을 떠올리곤 해요. 이를테면 너무너무 보고 싶은 사람들. 좋아하는 것. 해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그렇게 고통 앞에서 ‘삶의 의미’가 발생하더라고요. 고통 앞에서 ‘사랑’이 만개하더라고요.

오늘 읽을 시는 이런 주제의 빛나는 시예요. 정말이지 진심이 가득한 시예요.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땐 너무 좋은 동시에 마음이 아파서 한참을 쉬면서 읽었죠. 간혹 이런 시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한 행, 한 구절, 한 단어, 쉼표, 음소까지도 진심이 빼곡하게 앉아 있어서 시 앞에서 숨을 얕게 쉬게 되는 시요.

“우리 조금만 쉬었다 가자” 만약 이 말을 했다면 화자의 미래는 달라졌을까요. 시의 제목에‘고속도로’가 있는데, “두고 봐, 할아버지보다 내가 더 먼저 갈 거야”라는 문장이 있다면. 자꾸 숨을 참게 되지요. 바라보게 되지요. 아기 고라니와 화자를 안고 싶지요. 저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끝없이 소실점을 바라보는 한 사람을 상상하게 됩니다.

소실점(消失點)이라는 말은 참 이율배반적이에요. 한자어의 결합 형태를 충실히 따르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하나의 점을 뜻하는데요. 의외로 사전을 보면 뜻이 미묘하게 달라요. ‘눈으로 보았을 때, 평행한 두 선이 멀리 가서 한 점에서 만나는 점.’ 그러니까 상실과 만남이 동시에 이루어져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겹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시는 내가 잃어버린 모든 것과 만나(고 싶은)는 모든 것이 한 점으로 수렴되는 것 같아요.

미래라는 말은 아닐 미(未) 자에 올 래(來) 자가 결합된 말이지요. 그러니까 아직 여기에 도착하지 않은 것. 그것이 바로 미래일 거예요. 이런 맥락에서 화자에게는 “집 나간 엄마랑 고모랑 할머니”도, 삼촌의 죽음도 미래인 것이지요. (시집 해설, 조대한, 미선 언니와 나참조) 우리 모두에게 그런 ‘과거형의 미래’가 있지 않나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정말 무거운 슬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고통들. 그런데 세상은 ‘고속도로’처럼 너무 빠르고 앞만 보고 살도록 만들곤 하지요. 더 가슴 아픈 건 이 시에서 집을 나간 사람은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에요. 그리고 할아버지는 자꾸만 “미안합니다 그만 용서하세요”라고 말하고 있어요. “기억을 지운” 채 용서만을 비는 할아버지. 그에게도 (이미 지나갔지만 도착하지 않은) 미래가 가득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시에서 저는 화자의 행동을 곱씹게 되어요. 화자는 “들이받고 싶은 것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진정한 미래(未來)를 도래시키고 있어요. 이를테면 할아버지에게 절망을 곧장 드러내지 않고, 차에 치인 동물의 사체에 웃옷을 덮어주고, 나와 똑같은 처지의 어린 존재를 보다가 ‘미래’라는 이름을 기어코 붙여주지요. 이 대목에서 저는 강렬한 힘을 느껴요. 이 화자의 내면에 있는 삶을 느껴요. 자신이 겪은 슬픔도 이미 엄청난데, 화자는 계속 사랑을 해내요. 절뚝이며 달려갈 어린 존재를 끝없이 계속 바라봐줘요.

이런 시를 읽고 나면 저는 겸허해져요. 우리를 망가뜨리고 곤죽으로 만들어버려도, 우리는 ‘어떤 미래’를 기어코 발생시켜요. 그래서 자꾸만 밑줄을 긋게 되어요. 삶으로 가득한 시의 힘을 믿게 되어요. 그래서 저는 시인들을 응원하게 되어요. 시인들은 ‘고속’이 자랑인 ‘도로’ 위에서 ‘미래’와 ‘길’을 찾아내려고 하지요. 그나저나 “절뚝이며 멀리 뛰어가기 시작”한 그 ‘미래’라는 아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요. 끝으로 한여진의 ‘시인의 말’을 되풀이합니다. 시집의 맨 앞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 시들을 엮는 동안 여러 번의 겨울이 왔다 갔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자주 졸았는데/ 가끔은 이대로 계속 잠들어도 좋겠다 싶은 밤이 있었다.”

손 모아,

고명재 드림

문학동네시인선 201 한여진 시집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한여진 시인의 첫번째 시집. 시인은 우리에게 흰색을 건넵니다. “고개를 들면 온통 하얀 창밖과/ 하얗게 뒤덮인 사람들이 오고가는 풍경// 모든 것이 끝나도/ 어떤 마음은 계속 깊어진다” 표제작을 포함해 여러 시의 배경이 하얀 눈으로 가득한 겨울날인데다 주요 이미지와 소재에 넉넉한 흰빛이 담겨 있는데요. 눈 덮인 세상과도 같은 고요한 아름다움 속에서 또다른 사유를 가능케 하는 시, 함께 읽어볼까요.
Q. 새하얀 표지와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겨울의 분위기가 인상적이에요. 시인님께 겨울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사실은 추위를 몹시 타는 편입니다. 겨울 출근길에서 저는 언제나 동동거리며 몸을 움츠립니다. 묵직하게 내려앉은 어둠과 추위 속에서 코와 귀는 아리고 어깨는 긴장하여 잔뜩 굽어지고 발목은 걸을 때마다 차가운 칼날이 스치는 듯합니다. 살아 있는 몸은 번거롭습니다. 출근길에 동사하게 된다면 산재일까 아닐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도 잠시 합니다. 아무도 없고 내 발소리만 가득한 골목길, 내가 내뱉는 숨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정확하게 들리고 호흡이 김이 되어 눈앞에 펼쳐질 때, 사실 나는 여러 차례 죽고 여러 차례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이상한 감각이 저를 휘감고 지나갑니다. 그러고 나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펄펄 살아 있구나 깨닫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이런 시를 끌어안고 이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거겠죠. <우시사>에 너무 잘 어울리는 시네요.
  • 시는 이력서에 쓰지 못하는 삶의 순간들을 기록하는 일이라는 진은영 시인의 말이 와닿았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시와 소개글이었어요. 아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깨끗해졌습니다. 감사해요.
  • 사실 문학이란 건 굉장히 추상적이라 알다가도 모를 때가 많은데 이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시를 보여주셔서 더욱 감상하기 좋았습니다. 덕분에 우리가 봄을 기다리며 했던 일들이 저의 영혼에 선명히 기억될 것 같아요
오늘 <우리는 시를 사랑해>는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소중한 피드백은 우시사를 무럭무럭 성장하게 하는 자양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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