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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ODA, 중단이 아닌 개선으로 가야 하는 이유

분노가 정책을 움직일 때 생기는 위협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해외 취업 사기 범죄 문제가 연일 심각하게 보도되고 있어요. 언론은 “4,353억 원을 지원받은 캄보디아가 배신했다”, “캄보디아에 돈주고 뺨 맞을 필요는 없다”는 식의 제목을 반복했고, 분노는 곧 정치권의 행보로 이어졌죠. 대통령과 정부는 “신속하게 현지 당국과 협력해 범인을 체포하겠다”고 밝혔지만 동시에 “캄보디아 ODA 전면 중단”이라는 강수도 언급했어요. 언론은 ‘배은망덕’이라는 표현으로 수원국을 비난하고, 온라인에는 캄보디아와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표현이 넘쳐나고 있고요.

하지만 국제개발협력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어요. 지난 19일 저녁, 공적인사적모임이 긴급히 개최한 온라인 토론회에는 줌과 유튜브로 100여 명의 국제개발협력 종사자들이 참여해 “범죄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위로와 국민의 분노를 이해함과 동시에 캄보디아 ODA 중단은 해답이 아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어요. 곽재성 교수(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와 오성근 활동가(월드비전 캄보디아 PMC FM) 패널로 나선 이날 토론회는 감정이 아닌 원칙에 기반한 ODA의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죠. 곽 교수는 토론회에서 “정치적 오리엔테이션과 감정적 대응이 ODA를 무기화하는 상황”을 우려했고, 오성근 활동가는 “중단이 낳을 진짜 피해자는 현지 주민”이라고 강조했어요.

캄보디아 사건의 여파는 정치권의 거센 반응으로 번졌어요. “지원해도 배신하는 나라에 왜 세금을 쓰느냐”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일부 언론은 국제개발협력을 ‘퍼주기’라고 비하했죠. 국회에서는 ODA 증가액과 납치·감금 피해를 한 장표에 넣어 “원조가 범죄를 부추겼다”고 뉘앙스로 여론몰이를 했어요. 곽재성 교수는 이런 흐름을 “정치적 오리엔테이션”이라고 짚으며 다음과 같이 비판했어요. “캄보디아 사태는 국제 범죄 조직, 한국인 가해자, 한국인 피해자 간의 문제예요. 현지 정부의 대응이 미진하다 해서 이를 ODA 중단 근거로 삼는 것은 과도해요.” 그는 “ODA를 제재 수단으로 쓰려면 상대국이 우리 국익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쳤다는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어요.

또 다른 문제는 실효성의 부재예요. 한국 ODA의 상당 부분은 한국 기업이나 NGO가 운영하는 프로젝트 형태예요. 사업비를 줄인다고 해서 캄보디아 정부가 직접적 타격을 받는 것은 제한적이고 오히려 사업에 참여한 주민과 취약계층이 가장 먼저 피해를 입어요. 곽 교수는 “한국 사람들이 와서 돈 쓰고 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원조 중단이 권력자에게 압박이 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어요. ‘제재의 쾌감’은 일시적이지만 안전망이 끊긴 삶은 오래 지속되죠. 

중단이 낳을 진짜 피해자는 누구인가

현장에서 일하는 국제개발협력 종사자들은 ODA 중단이 가져올 파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오성근 활동가는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캄보디아는 생각보다 시민사회 역동성이 있는 나라입니다. 현지 NGO와 시민사회단체(CSO)가 많이 발전했고, 청년들이 돈을 모아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거나,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는 등 풀뿌리 조직이 활발합니다.”

오성근 활동가는 SNS를 통해 본 현지의 반응도 전했어요. “한국 언론의 자극적 제목 때문에 캄보디아가 범죄의 소굴처럼 비춰지는 걸 보고 현지 주민들은 억울하고 배신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하지만 청년들은 ‘크메르 왕국의 후예’라는 자부심으로 ‘우리 스스로 해결해보자’는 댓글을 달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성근 활동가는 또 이렇게 경고했어요. “범죄가 밉다고 시민을 버릴 수는 없죠. ODA를 줄인다고 문제가 해결될까요? 범죄 조직은 필리핀이나 태국으로 이동할 뿐이고, 우리는 그때마다 ODA를 중단할 것인가요.” 또한 태국과의 국경 분쟁으로 수십만 명의 이주노동자가 귀환해 일자리를 잃은 현실을 예로 들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ODA 중단은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직격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어요.

권위주의·범죄·치안 맥락에서의 ODA 역할

이번 사태는 권위주의 국가에서 ODA의 역할을 다시 묻는 계기가 되었어요. 곽재성 교수는 “민주적 거버넌스를 가진 나라라면 ODA가 필요 없겠죠. 수원국 대부분은 약한 거버넌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권위주의냐, 인권 침해가 심하냐의 정도 차이일 뿐, 정상 국가 범주에서 벗어나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그래서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어요. 권위주의 국가일수록 국가와 시민 사이의 사회적 안전망이 약하고, 취약계층이 국가폭력이나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요. 이런 환경에서 국제원조는 정치적 흥정의 수단이 아닌 시민 보호 장치 역할을 해야 해요.

캄보디아의 치안 문제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어요. 납치·감금 사기의 배후에는 국경을 넘나드는 중국계 범죄조직이 있고, 그 피해는 한국인뿐 아니라 캄보디아인, 베트남과 태국 청년들에게도 돌아가고 있어요. 오성근 활동가는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치안 강화는 필요하지만, 이는 현지 경찰 역량 강화 프로젝트와 병행해 지역사회가 안전망을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말했어요. 곽재성 교수는 파리협정 6.2조에 따른 탄소 감축분 이전 사업을 예로 들며 ODA의 새로운 가능성을 설명했어요. “올 6월 한국과 캄보디아가 오토바이 전동화 사업을 통해 탄소를 줄이고 그 실적을 한국으로 이전하는 구조의 첫 협약(ITMO)을 체결했습니다. ODA와 기업 투자가 결합된 상생 모델이지요.” 그는 “이런 협력의 문이 닫히지 않도록 정무적 판단 대신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어요.

변화의 가능성도 짚어봐야 해요. 캄보디아는 훈센 총리가 30년 넘게 통치해온 권위주의 국가지만, 동시에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에요. 곽재성 교수는 “킬링필드가 끝났을 때 전국에 의사가 4명 남았던 나라입니다. 폴포트 정권이 엘리트를 모두 제거했기 때문이죠. 그로부터 50년도 안 된 지금, 이 나라는 여전히 ‘국가를 만들어가는 중’입니다.”라고 설명했어요. 곽 교수는 “지금 세대가 바뀌고 있다. 훈센 시대에 만들어진 기형적 구조에서, 아들 세대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국가를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보입니다”라고 덧붙였어요. 이런 변화의 싹을 키우는 것이 ODA의 역할이죠.

한국 ODA가 당장 바꿔야 할 세 가지 – 투명성·보호·거버넌스

이번 사태는 한국 ODA의 구조적 문제도 드러냈어요. 첫째, 투명성이에요. 최근 캄보디아 ODA 예산이 급증한 배경에는 윤석열 정부가 부정부패 의혹이 있는 급조한 차관 사업 확대가 있었어요. 반면 현지 인도적 지원과 거버넌스 강화 사업은 상대적으로 적었죠. 사업 선정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국회가 모니터링 할 수 있도록 예산과 사업 정보를 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해요. 또한 곽재성 교수는 미국 원조기관 MCC의 스코어보드를 사례로 들며, 글로벌 사우스의 인권·민주주의 지표에 기반한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자고 제안했어요.

둘째, 수원국 시민 보호라는 명확한 목표 설정이 필요해요. 곽 교수는 “플랫폼형 사업, 제도 개혁 사업에만 치우치지 말고 현지 주민이 체감하는 보호와 복지를 우선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어요. 폭력·범죄·재난 위험이 높은 지역에서는 치안과 법치 강화와 함께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사업을 늘려야 해요. 오성근 활동가는 “실무급 공무원과 지방 정부, 차세대 인재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어요. 중앙 정부 중심의 지원이 부패를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방정부와 풀뿌리 조직을 파트너로 삼는 것이 중요해요.

셋째, 거버넌스 개혁이에요. 한국 ODA는 정부가 거의 모든 권한을 쥐는 구조예요. 민간기업과 NGO의 전문성을 활용해 유연하고 실험적인 모델을 만들고, 현지 파트너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해요. 오성근 활동가는 “한국 정부와 현지 중앙 정부 간의 설계 구조에서 지방정부와 시민사회가 실질적 주체로 참여할 수 있게 설계를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어요.

시민사회의 공백과 역할 재정립

이처럼 ODA를 재설계하기 위해서는 정부뿐 아니라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의 역할도 중요해요. 최근 한국 ODA 생태계에서 시민사회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어요. 시민사회 지원 비율은 OECD 최저 수준인 2%이고, 내년에는 더 삭감될 예정이라는 우려도 있어요. 오성근 활동가는 “시민사회의 공백은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통로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우려했어요. 현장에 밀착한 단체들이 줄어들면 거버넌스 감시와 정책 옹호 활동이 위축되고, ‘중단’ 같은 극단적 선택이 더 쉽고 빠르게 제안될 수 있어요.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도 이번 기회에 자성해야 해요. 원조의 국익적 가치를 강조를 강조하여 정부와의 협력에 치중하다 보면 ‘국제 연대’라는 본래의 가치를 잊어버리기 쉽죠. 국제개발협력 실무자들은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기반으로 언론과 정치권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대중과 소통하며 “왜 ODA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해요.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시민사회가 주도적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시민과 밀접하게 소통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합니다.

ODA는 세계 시민의 일상을 지키는 약속

이번 사태는 분노와 비난을 넘어, 한국 ODA의 방향과 원칙을 성찰하게 했어요. 오성근 활동가는 “범죄가 밉다고 시민을 버릴 수는 없어요”라고 했고, 곽재성 교수는 “원조를 줄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단언했어요. 분노가 정치를 움직일 수는 있지만, 사람들의 삶과 사회적 연대는 감정적 판단에 맡길 수 없어요. 

국제개발협력은 ‘국제 연대의 약속’이자 세계 시민의 일상을 지키는 공공재예요. 국가의 책임, 시민사회의 연대, 전문가의 품격이 다시 한번 모여야 할 때에요. 감정보다 원칙을, 중단보다 재설계를, 일시적 제재보다 지속 가능한 협력을 선택해야 해요. 이번 긴급 토론회가 원칙을 말하고 실천하는 첫걸음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해외 취업 사기 범죄로 인해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의 안녕과 회복을 기원합니다. 

최근 국제개발협력 종사자 100여 명의 참여로

'캄보디아 ODA 중단에 대한 긴급 토론회'를 진행했어요

한국의 ODA가 중단 되면

사업에 참여한 주민과 취약계층이 가장 먼저 피해를 입게 돼요

#3.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 ODA의 구조적 문제를 다시 살펴봐야 해요

투명성, 수원국 시민 보호, 거버넌스 개혁 등이 있어요

반년이 지나는 내내 이슈가 끊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은 조금 익숙해졌다. 하지만 8시간의 시차는 여전히 숫자가 아니었다. 서울 본부와의 회의는 대부분 내 시간으로 새벽이나 밤이었다. 낮에 현장 활동을 마치고 밤 10시에 노트북 앞에 앉으면, 서울은 오후 2시. 환한 형광등 아래의 본부 회의실이 화면에 보였다. 내 뒤로는 어둠. 불안정한 인터넷. 끊기면 다시 연결하고, 또 끊기고. "현장 상황이 어떤가요?" 라는 질문에 답하려고 하면 연결이 끊겼다. 30분을 기다려 다시 연결되면, 회의는 이미 다른 안건으로 넘어가 있었다. '내가 뭘 말하려고 했더라?'  12,000 km의 거리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만이 아니었다. 서울의 오후와 킨샤사의 밤은, 같은 프로젝트를 전혀 다른 온도로 경험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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