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은 곧 누군가의 시작이겠죠
구현모      "이번주 로또 1등은 제 겁니다"
안녕하세요, 에디터 구현모입니다.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많은 곳에서 벌써 올 한 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예측하는 글들이 많이 옵니다. 오늘은 올해 서비스를 종료하거나 법인을 청산한 두 미디어 기업에 대해 저만의 정리를 하고자 합니다. 단순한 사용자이기도 했으며, 팬이기도 했고, 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퍼블리와 얼룩소 이야기입니다.
1. 퍼블리 : 콘텐츠와 펀딩 그리고 고급 큐레이션
2. 얼룩소 : 공론과 커뮤니티의 만남
3. 멈춤에서 배울 수 있는 것

퍼블리 : 콘텐츠와 펀딩 그리고 고급 큐레이션

네, 저는 퍼블리의 팬이었습니다. 지난 2015년 퍼블리는 한국에서 유료 콘텐츠 시장을 개척하고자 설립됐습니다. 실제로 박소령과 김안나 두 공동 창업자가 지식 콘텐츠에 관심이 많은 헤비 사용자였으며 당시 콘텐츠와 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실제 퍼블리 초창기 콘텐츠는 대중들이 흔히 접할 수 없는 장르였습니다.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모노클 미디어 서밋》,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도쿄의 디테일》, 《음악 산업, 판이 달라진다 - 음악만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등은 콘텐츠 고관여자들에게 꽤 센세이션했고 종이책으로 출간되어 중쇄를 찍은 경우도 있습니다. 누적 투자액이 200억에 달했습니다.

© Publy

제가 퍼블리의 팬이었던 이유는 퍼블리가 당시 발행하던 뉴스레터 《What We're Reading》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퍼블리 직원들이 매주 번갈아 가며 작성하던 뉴스레터였는데요, 뉴스레터 자체에 담긴 인사이트도 좋았으며 그 뉴스레터에서 골라준 아티클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뉴스레터의 붐이 오기도 전에 시작되었고, 특이하게도 구성원들의 시각을 담은 뉴스레터였으니 꽤 생경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보다 똑똑한 분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괜히 읽기만 하면 나도 똑똑해질 것 같고, 평소라면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야기를 담으니 더 이상 매력적일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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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퍼블리는 '부띠끄'와 같았습니다. 소수 저자들을 모셔 와 해당 저자들이 플랫폼에 크라우드펀딩을 여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펀딩이 완료되어야만 글의 작성이 시작되고, 완성되는 방식이었습니다. 당시 퍼블리의 내부 구성원도 적고, 개별 프로젝트의 중요성이 높다 보니 하나의 프로젝트로 여러 상품을 만들고자 했던 듯합니다. 그래서 단순 펀딩 이외에도 저자와의 만남 등을 섞은 다양한 펀딩 옵션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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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저 역시 운 좋게 퍼블리와 협업하고 펀딩에도 성공했습니다. 저자의 성격에 따라 오프라인 모임의 성격도 바뀌었는데요, 저 같은 경우 당시 트렌드를 알고 싶어하는 분들과 카페에서 만나고 맥주를 마시는 등의 모임을 했습니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과정은 깔끔했습니다. 정말 독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집요하게 탐구하셨으며 동시에 저자들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지도 함께 고민해 주셨습니다. 제가 모든 퍼블리 구성원을 만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제가 만난 모든 분은 열정적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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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보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와 비슷합니다. 와디즈는 '메이커'라는 이름으로 손에 잡히는 상품 브랜드를 위주로 펀딩을 진행해 왔습니다. 비건 뷰티, 못난이 과일, 신기한 IT 상품 등 일반 시장에서 관심받지 못하는 상품 위주로 펀딩을 진행하고, 성공시켰습니다. 

와디즈의 퍼블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와디즈와 달리 지식 콘텐츠의 시장은 확실히 작았던 것 같습니다. 지식 콘텐츠에 대한 지불의사 역시 손에 잡히는 재화 (와디즈) 와 달리 낮았던 듯합니다. 결국 시장도 작고, 지불의사도 낮으니까 다른 시장으로 확장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개별 프로젝트의 크라우드펀딩이 아닌 월 구독 모델로 변신하며 시장 확대를 노린 듯합니다. 한 달 특정 금액만 내면 모든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월 구독 모델로 그동안 퍼블리를 고민하던 사용자까지 끌어모으려고 했던 거죠. 

구독제 서비스의 경우, 매일 다양한 콘텐츠를 제시하고 매월 더 많은 콘텐츠를 수급해야 하는 동시에 블록버스터급의 흥행을 만든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뭐가 잘될지 모르니 우선 콘텐츠가 많아야 하죠. 그래서 정말 많은 콘텐츠를 수급했습니다. 이후 퍼블리는 커뮤니티 서비스인 '커리어리'와 강의 서비스인 '퍼블리 온에어' 등도 런칭했습니다.

얼룩소 : 공론과 커뮤니티의 만남

얼룩소는 비교적 후발주자입니다. 2021년에 '프로젝트 얼룩소'라는 이름으로 진행됐고 이후 이재웅 전 쏘카 대표의 투자를 받으며 콘텐츠 고관여자들에게 꽤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콘텐츠를 올리고 '좋아요'를 받으면 돈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뉴스거리였으니까요. 당시 대표는 정혜승 전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이었습니다.

© Alookso

퍼블리는 크라우드펀딩으로 출발했고, 얼룩소는 공론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참여형 플랫폼 및 커뮤니티를 표방하면서, 정말 다양한 사회적 의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곳으로 진화하고자 했습니다. 아고라보다는 차갑고, 레딧보다는 진중하고, 트위터 및 페이스북 그리고 텔레그램보다는 정돈된 곳을 지향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커뮤니티와 플랫폼은 결국 초기에 누가 글을 쓰는지와 유저들이 무엇을 위해 그곳에 가는지가 성격을 정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돌 관련 뉴스는 더쿠를 보고, 축구 관련 뉴스는 에펨코리아를 본다든지, 게임 관련 뉴스는 루리웹 등을 보며 덕질은 아카라이브로 가는 등이 그 예시입니다. 

하나하나 살벌한 주제들 © Alookso

얼룩소는 그 시드를 사회에 대한 논쟁적인 이슈로 선정했습니다. 유저들은 각 토픽에 맞게 글을 쓸 수 있는데, 건강, 젠더, 기후 및 환경, 한국 정치, 미·중일 / 남북 관계 등 정말 뜨거운 토픽들이 많습니다. 초기 콘텐츠 품질 확보를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CP(Content Provider)를 데리고 왔는데, 운 좋게도 저희 어거스트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얼룩소는 퍼블리에 비해 역사가 짧고, 상대적으로 외부에 공개된 바도 없으며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잘은 모르겠으나 여러 구조조정을 거치고 수익모델 창출에 실패하면서 3년 만에 파산에 이르렀습니다. 

© Alookso

멈춤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이렇게나 치열합니다 © 캡쳐
한국어 콘텐츠의 시장은 큽니다. 이제 우리는 영어 '아파트'가 '아파트먼트'를 대체하는 것을 넘어 그 자체가 표준어가 된 날을 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국어 지식 활자 콘텐츠의 시장은 작습니다. 한국의 도서 시장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으며, 지식 콘텐츠를 제작하는 많은 회사도 B2C가 아닌 B2B로 생존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은 HRD(인적 자원 개발) 차원으로 매년 교육 콘텐츠를 구매하고, 교육 서비스를 운영합니다. 휴넷이 그 대표주자입니다.

비단 휴넷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식 콘텐츠 사업자들이 B2B를 통해 매출을 만들고 있습니다. 즉, 대기업의 HR 투자 비용이 곧 매출이 되는 경우가 다수란 뜻이며 개인 소비자는 지불의사가 낮거나 없다는 함의가 있습니다. 퍼블리에 계셨던 김민우 님의 에 가장 크게 공감했습니다. 개인 소비자에게서 돈을 받기 어렵다면, 결국 B2B로 가야만 했는데 이 역시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퍼블리의 매각과 얼룩소의 파산 이후 많은 분이 각자의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나름 내적 타당성이 있는 이야기도 있고, 세상이 좁은데 굳이 그렇게 표현해야만 할까 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인간은 타인의 성공과 실패는 최대한 단순화하여 분석하고 싶고, 자신의 성공과 실패는 복합적(환경과 함께)으로 이해하려는 본능이 있으니까요. 내가 본 단면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거부하기 마련입니다. 제가 쓰는 이 글도 어떤 단면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 UNSPLASH

그렇다면 우리는 퍼블리와 얼룩소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어떠한 강력한 구심점이 없으면 커뮤니티를 만들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바일 인덱스에 거론되는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는 각자의 구심점이 있습니다. FM, 롤, 축구, 야구, 아이돌, 농구, 덕질 등의 구심점이죠. 해당 구심점은 꽤 긍정적인 동력으로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털어놓게 만듭니다. 하지만 사회 이슈, 정치, 경제, 젠더 등은 말하기 껄끄럽습니다. 그 자체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구심점이 있어야 커뮤니티가 생기는구나, 싶습니다. 여전히 한국의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가 정치 게시판을 분리하거나, 혹은 금지하기도 합니다. 

읽을 만한 책, 사랑받을 만한 책은 따로 있을까? © Unsplash

퍼블리의 지식 콘텐츠는 다양한 유튜버의 콘텐츠와 강의 플랫폼을 통한 유료 강의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물론 유튜브 콘텐츠들이 그만큼의 품질을 보장하는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인플루언서가 되는 이 시기에 퍼블리의 콘텐츠 비즈니스는 어찌 보면 해자가 너무 낮았을 겁니다. 진입 장벽이 너무 낮기 때문에, 모두가 치고 들어올 수 있고 힘들게 모은 사용자는 너무나 쉽게 빠져나갔을 겁니다. 

심지어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가 열리니 더 많은 사람들이 플랫폼 레버리지 효과를 기대해서 그곳에 자신의 콘텐츠를 스스로 올리고 있죠. 이 지점에서 해자가 높은 지식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고 비즈니스화하는지, 그 비즈니스가 과연 수십 명의 직원 규모를 채울 수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띠끄처럼 고품질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고 큐레이션 하되 더 작은 규모로 하면 지속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바둑 선수 이세돌의 승리는 인류의 승리가 아니며, 개인의 승리라는 밈이 있습니다. 그 밈을 써보면, 퍼블리와 얼룩소의 멈춤도 지식 콘텐츠나 공론장 자체의 실패가 아니라 그 둘의 멈춤일 뿐입니다. 실제로 두 회사 출신 구성원들은 현재 다른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고, 해당 콘텐츠 및 서비스에서 영감받아 자신의 생산성을 높인 경우도 많으니까요. 어떤 회사의 실패와 멈춤은 사회적으로는 자산이 되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자양분이 되거나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실패에 너무 냉혹하게 판단하거나 후견 지명을 내뿜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어요. 타인의 실패나 곡절에 더 관대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편집/윤문 | 오리진

전세사기 10조 원 시대, 피해 3만명. 이대로는 안된다

에디터 <구현모>의 코멘트

미래를 좀먹는 범죄자들이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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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나나 • 오리진 • 하은• 움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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