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흠터레터 2호와 함께 돌아온 만쥬입니다.
올해의 설 연휴는 넉넉하게 5일이 주어졌는데요, 휴일 동안 여러분은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셨나요? 저는 몇 개월 전에 사두기만 하고 전혀 건드리지 않았던 미니어처 하우스를 완성했답니다. 손가락 지문보다 작은 조각들이 모여 조금씩 실체를 찾아갈수록 성취감에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흠터레터의 원고를 모을 때도 비슷한 마음이에요. 각자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모여서 하나의 완성된 뉴스레터가 되는 것을 보면 기쁘고 벅찬 마음이 들어요. 물론 저희의 이야기가 의미가 있는 것은 읽어주시는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이겠죠. 오늘도 죠리퐁, 사빠, 만쥬, 만세의 이야기를 읽어주시는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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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흠터레터는?
죠리퐁의 출근송 / DAY6 - 완전 멋지잖아
전사빠의 바다 건너 최애 / 오페라의 유령
박만쥬의 자랑합니다, 제가 한 건 아니지만. / 아스트로 문빈
윤만세의 완전진짜너무진심 / 비와 당신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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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삼세번이라고 하죠. 새해 결심도 삼세번입니다. 신정, 구정, 정월대보름. 마지막 카드인 삼일절은 양심상 빼도록 할게요. 이 세 번의 기회마다 저는 새사람이 되고자 도전합니다. 올해도 새로 운동을 끊었고 도서관에선 책을 10권쯤 빌렸습니다. 그리고 내일의 할 일은 연체 직전의 도서들을 고대로 반납하기에요. 이 편지를 쓰는 지금은 구정이 지나고 작심삼일마저 1번 리셋된 시기입니다. 이 편지를 읽으실 땐 정월대보름이 사나흘 남았겠네요. 일자는 다르지만, 우리에겐 아직 기회가 있단 뜻입니다. 새 사람으로 구제될 마지막 동아줄이요.
새해 결심은 마음의 차력쇼입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반박은 거절합니다. 어렸을 적 TV에선 몇 겹의 송판을 격파하거나 입에 줄을 물고 차를 끄는 차력쇼를 심심치 않게 틀어줬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힘들어 보였지만 누구도 자신이 실패할 거라고 의심하는 눈빛이 아녔어요. 차력의 사전 뜻은 ‘어딘가에서 힘을 빌려온다’라고 해요. 어딘가에서? 벌써 눈치를 채셨겠죠. 마음의 차력쇼를 위해선 BGM이 필요합니다. 기왓장은 못 깨도 굳어버린 나쁜 습관 몇 개 정도는 깨뜨릴, 에너지를 빌려주는 곡이요.
데이식스의 <완전 멋지잖아>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자아도취 송입니다. 3분 내내 자신이 멋있다고 뻔뻔하게 자부하는 노래에요.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땐 거울 앞에서 히죽대는 (가상의) 남자 혈육의 등짝이라도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정신 차려 이것아. 그런데 계속 듣다 보니 제가 그 거울 앞에서 '얌마 느낌 좋다 임마'하고 있는 거예요. 고용 관계 속 을의 역할을 수행하러 출근하지만 짧은 길 동안에는 ‘세상이 내 발아래’인 거죠. 이 노래에 빙의해 완벽한 사람이 된 것처럼 굴다 보면 나쁜 습관 따윈 스며들지도 못할 것 같아요.
마음속 시비꾼이 익숙한 시비를 겁니다. ‘정말 네가 멋있다고 생각해? 진심으로?’ 그러면 노래 가사를 빌려 이렇게 답할래요. ‘착각에 빠졌다 하지 마 나에게는 내 모습이 다 정답이야’. 확신의 눈빛이 가득 찼던 차력사나 <완전 멋지잖아>의 자신의 멋있다고 믿던 주인공처럼 ‘어찌 됐든 자기 자신을 믿는 것’, 제 새해 결심 중 가장 간절한 소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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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이입할 것인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면 즉각적으로 감정 이입이 일어납니다. 대게 그 대상은 주인공이죠. 하지만 가끔씩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감정 이입되기도 해요.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은 뮤지컬이라 하면 제 마음속에 떠오르는 첫 번째 뮤지컬입니다. 크리스틴은 오페라 극장의 무용수였지만 오페라의 유령으로 불리는 미스터리한 존재 팬텀에게 음악 수업을 받고 있었어요. 크리스틴을 ‘프리마돈나’로 만들기 위해 팬텀이 꾸미는 무시무시한 일들···
고등학생 때부터 CD를 사서 수없이 들었어요. 언젠가 실제로 볼 수 있길 기도하며. 시간이 흘러 그날이 왔습니다. 오리지널 팀의 내한 공연이요. 저의 최애 캐릭터는 팬텀이었어요. 묘한 점은 크리스틴이 팬텀과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라울을 어장관리하는 것처럼 느꼈다는 거예요. 실제 공연을 보기 전까진 그런 생각이 든 적은 없었거든요. 팬텀이 한없이 가엾게만 느껴졌어요. 그의 외로움과 소외감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죠.
그러나 많은 시간 뒤에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라이브 공연>이 개봉했을 때 극장을 나오는 저의 마음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크리스틴에게 공감하는, 나아가 더 이상 두 사람 사이에서 혼란을 주는 듯한 부정적 인상도 사라졌어요. 마치 누군가에 대한 오랜 오해에서 벗어난 것처럼요. 아버지의 무덤에서 그리움을 토해내는 크리스틴의 손을 잡아주고 싶어요. 사랑하는 이를 잃고 그녀가 팬텀에게 휘둘린 상황도 이해가 갔고요.
20대 초반, <예의 없는 것들> 같은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보던 시절이 있었어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언제나 마음이 갔죠. 그들의 외로움에 공명하는 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팬텀, 그는 가엾지만 그 소외감을 굉장히 끔찍한 방식으로 표현했죠. 분노란 처참한 독약입니다. 물론 팬텀이 워낙 마성의 매력을 가졌기에 매력이 개연성이 되어 버리는 상황이 벌어질 여지가 많지만요. 끔찍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에요.
제가 지금 느끼는 이런 시각을 갖게 해 준 25주년 공연이 그래서 아주 특별합니다. 모든 감정이 뛰어난 연기자들 덕에 정확히 표현됐다고 느꼈어요. 물론 역대 팬텀이나 크리스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보컬이라는 점도 있고요. 극장에서조차 관객 모두가 박수를 쳤을 정도였어요. ‘라민 카림루’와 ‘시에라 보게스’의 연기는 황홀함 그 자체입니다. 이 황홀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제라드 버틀러’가 팬텀으로 연기한 영화 버전도 있습니다. 이건 팬텀과 크리스틴 사이의 성적 긴장감이 좀 더 팽창되도록 의도되었다 느껴져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으니 이것도 함께 감상해 보면 같은 작품이라도 다르게 다가올 거예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건 이겁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이입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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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에서는 제가 문빈(aka 도어빈, 문짝문씨)에게 빠지게 된 직캠을 자랑합니다.
아이돌 음악은 노동요로 최적이기에 여러 그룹의 노래를 꾸준히 들어오고 있습니다. 특히나 유튜브에서 ‘청량 아이돌’ 키워드로 검색해서 자주 듣는데요, 청량 키워드의 노래가 효과를 발휘할 때는 특히 집안일을 할 때입니다. 청소나 빨래개기를 할 때 틀어놓으면 조금이나마 하기 싫은 마음을 가라앉혀 주거든요. 그렇게 아이돌 노래를 즐겨듣던 3년 전 어느 날 아스트로의 <baby>라는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됐습니다. 간주부터 경쾌하고 가벼운 리듬감에 저절로 어깨를 흔들게 되는 노래였죠. 그러다 문빈의 첫 소절이 나오는 순간, 이 노래에 벌써 빠져버렸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잡동사니를 정리하던 저는 다 집어던지고 책상 앞에 앉아 <baby>의 무대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레 차은우에게 먼저 눈이 갔습니다. ‘최최차차(최애는 최애고 차은우는 차은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더라고요. 하지만 어느새 저는 아스트로의 다른 노래들을 모두 찾아보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 춤을 굉장히 힘 있게 추는 멤버인 문빈에게 꽂혀버리고 말았습니다. 문빈은 아이돌 중 운동을 굉장히 열심히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근육이 붙을수록 안무 동작이 묵직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기 시작할 즈음엔 마른 편이었는데 어느새 더욱 운동을 열심히 하게 된 문빈은 이제 꽤 듬직한 어깨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그게 너무 좋아요. 말이 나온 김에 최근 빈이의 어깨를 자랑할 수 있는 영상도 함께 첨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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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도 기운이 없을 때는 자주 빈이의 안무 영상을 찾아봅니다.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빈이의 모습을 보고 나면 ‘나도 열심히 해야지’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제가 추가해드린 링크가 아니더라도 꼭 한번 빈이의 무대 영상을 봐주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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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변하는 거라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강경하게 입장을 표명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랑이야, 아니야?’, ‘영원해, 안 해?’ 따위의 흑백논리로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고등학생 시절. ‘영원할 거 아니면 사랑이라고 말하지도 말라’며, 사랑이란 영원하지 않을 순간의 착각이라고 치부했죠.
이 극단적인 질풍노도의 고등학생을 한방에 나가떨어지게 만든 음악이 있습니다. 저는 이 노래를 고3 때 미술학원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입시 학원이었지만 듣고 싶은 음악을 크게 틀어놓거나 라디오를 들어도 괜찮은 자유로운 분위기였거든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이 곡이 나왔습니다. 연필을 잡은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귀를 기울였어요. 곡의 반 이상이 흘러갔을 무렵일까요. 갑자기 강렬한 사운드가 멈추더니 영롱한 키보드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저는 연필을 든 손을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어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손뿐만이 아니에요. 미술학원의 공기도, 시간도, 제 심장도··· 그 순간 모두 멈추고 말았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이건 진짜 사랑이다. 진짜 사랑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질겁을 하고 그 말을 입에 담는 것도 모두 거짓부렁이라고 확신했던 비뚤어진 마음이 어쩌면 그렇게 한순간에 녹아내릴 수 있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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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159번 버스를 타고 그녀는 떠나갑니다. 한 소년은 그 버스 뒤에서 울고 있습니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그 소년이 그때 만든 곡입니다.
- 김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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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
제가 들은 건 부활 8집에 수록된 버전이었고, 15년 만에 재결합한 이승철 씨의 목소리였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김태원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첫사랑을 하면서 너무 슬퍼서 이 곡을 썼대요. 고2의 애절한 마음이 꼬일 대로 꼬인 고3의 마음속 무언가를 건드렸던 걸까요.
당시에는 부활이라는 밴드를 몰랐고 김태원이라는 기타리스트도 몰랐지만, 저는 그 길로 이 음반을 사 와서 미술학원에서 주구장창 틀었습니다. 돌아보니 1세대 아이돌의 엄청난 팬이던 제가 밴드 음악에 눈을 뜨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앨범 진짜 모든 곡이 다 좋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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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저는 계속 라디오를 들었고, 사랑을 믿지 않던 저에게도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제 바람과는 달리 그 사랑이 영원하지는 않았어요. 누가 잘못하지 않아도 관계가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알긴 알겠는데,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더군요. 나를 좋아하던 사람이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도무지 믿을 수 없었어요.
이런 마음을 꾹 눌러놓은 채로 멀뚱히 지내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자정 무렵이었고, 창문에는 잔잔한 빗방울이 맺혀 반짝이고 있었죠. 음악이 끝나자 DJ가 클로징 멘트를 했어요.
“오늘이 끝나기 전, 남은 3분 동안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만 다시 들려드릴게요. 행복한 밤 되세요. 편안한 꿈 꾸시고요. 아침에 일어나면 좋은 일만 있을 거예요.”
그러더니 정말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이 구간만 다시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라디오에서 이런 식으로 음악 일부만을 반복해서 틀어준 건 (제 경험으로는) 처음이었고, 아마 앞으로도 이런 일은 없겠죠. 그 마지막 3분 동안 저는 울고 있었지만, 그 밤 제가 느낀 감정은 슬픔보다는 고마움에 가까웠습니다.
인생의 어떤 시기는 음악으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세포 어딘가 자리 잡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음악은 나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 같아요. 미래의 어느 날 우연히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그때는 오늘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앨범을 오랜만에 꺼내 들으며 고3 때의 나와, 첫사랑과 이별했을 때의 나와, 음악도시를 들으며 위로받았던 나를 추억하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를 말이에요.
여러분에게도 그런 음악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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