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열린 국제포럼
VOL. 008  |  2023. 12. 20.

스피커스를 읽는 구독자분들에게 '우리 동네'는 어디까지를 의미하나요? 집 주변에서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 정도일까요? 그렇다면, 하루 중 이 ‘우리 동네’에서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되시나요? 아마도 이른 아침과 저녁, 등하교나 출퇴근 시간에 잠깐 머무는 것이 전부라고 답하실 분들이 많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의도치 않게 집과 동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은 동네 생활을 좀 더 능동적으로 경험할 기회를 제공했죠. 소통과 관계 방식, 이동과 교류의 범위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고 자유로운 일상이 돌아오면서, 우리의 하루는 다시 동네 밖으로 확장됐어요. 하지만 동네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아요. '우리 동네'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 활동은 계속되고 있고, 지역 주민들의 참여 욕구도 높은 편입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삶, '포스트 코로나'는 이전과 분명 다릅니다. '별일' 많은 동네를 만드는 별의별 상상력이 동네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거든요!

 

그 중 하나가 바로 '동네국제포럼'입니다. '동네'와 '국제포럼', 두 단어의 조합이 다소 낯설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제포럼은 화려한 샹들리에가 매달린 거대한 회의장에서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 모여 중대한 글로벌 이슈를 논의하는 것인데 말이죠. 우리가 매일 다니는 작은 골목길이나 지역 커뮤니티 센터에서 국제포럼이 열린다니요! 어딘가 낯설면서도 흥미롭지 않나요? 동네라는 친숙한 공간에서 열린 '동네국제포럼'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스피커스가 살펴봤습니다.😊

12월 9일 서울 서대문구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 공동체공간 숨'에서 열린 '동네국제포럼'.
기후위기와 주민자치
올해로 7회째를 맞이한 동네국제포럼은 코로나19 이후 잠시 중단되었다가 올해 오프라인 행사로 재개됐습니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기후위기와 주민자치’였어요.

기업과 정부, 시민사회 곳곳에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이야기하지만, 한편에선 이미 늦었다는 탄식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기후위기 대응이 이미 늦었다는 왜곡된 인식은 때론 개인의 노력을 무력하게 만들고, 기후위기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를 가져오기도 해요.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단단한 실천이 중요하죠! 작은 규모일 수 있지만, 공동체와 지역사회의 기후위기 실천과 노력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동네국제포럼인만큼 전 세계 여러 '동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스피커스가 핵심만 모아 전달드리겠습니다.😊

주민이 만든 친환경도시, 보봉마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위치한 보봉(Vauban)마을은 주민들의 생태마을 조성에 대한 열정에서 시작됐어요. 1994년, 주민과 시민단체가 보봉포럼(Vauban Forum)을 결성해 마을의 계획과 건설에 적극 참여했는데요. 보봉포럼은 차 없는 생활과 에너지를 적게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보봉마을은 대중교통 중심으로 설계되었고, 모든 건물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방식으로 지어졌죠.

보봉마을은 일반 마을과 다르게 자동차 통행이 제한됩니다. 마을 안에서 차량 운행이 불가능하죠.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있는 공용 주차장을 이용해야 합니다. 집에 차고가 없으니 집 앞에 차를 주차할 수도 없습니다. 너무 불편할 것 같다고요? 보봉마을은 트램과 자전거를 적극 활용하고 있어요. 트램은 마을 곳곳을 잇는 주된 교통수단으로, 대부분의 목적지는 15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자전거와 트램이 다니는 보봉마을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보행자 친화적인 공간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보봉마을의 주택들은 매우 높은 에너지 효율을 자랑합니다. 대부분의 집은 우수한 단열과 채광을 제공하는 단열재와 2중 또는 3중 유리창을 사용하고 있어요. 물론 초기 건축 비용이 많이 듭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에너지 비용이 절감되니 이득입니다. 보봉마을의 주민들은 재활용과 재사용, 음식물 쓰레기의 퇴비화, 녹지 관리 등에 여념이 없어요. 보봉포럼의 선출대표인 안드레아스 델레스케는 "보봉포럼은 주민자치 조직으로 마을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공식 권한은 없다"고 말해요. 하지만 프라이부르크시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적극적으로 협의과정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품은 생태마을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겠죠.
독일 보봉마을(Vauban). 플리커.
기후위기를 고려한 일본의 새로운 지역만들기 실천
일본은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연평균 기온 상승, 온열질환자 증가, 해초 손실, 규슈 지역의 심각한 호우 피해(2017년) 등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해 2020년 10월, 스가 전 총리는 '2050 탄소중립'을 공식적으로 선언했어요. 선언 이후, 여러 지자체와 기업들이 탄소 중립을 목표로 설정하고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으로 행사에 참석한 ‘공익재단법인 지구환경전략 연구기관(IGES) 기타큐슈 어반 센터’의 아카기 준코 리서치 매니저는 "일본 정부는 2021년 6월 '지역 탈탄소 로드맵' 수립하고, 5년 이내에 최소 100개의 탈탄소 선행지역을 만들겠다"는 발표를 했다고 말합니다. 이 계획에 따라 지금까지 74개의 제안이 채택됐는데요. 그 중 하나가 후쿠오카현의 인구 3만3000명의 소도시 우키하시의 '탈탄소형 농촌 재생 모델'입니다. 이는 태양광 발전, 축전지, 고효율 급탕 시설의 도입과 함께 지역 에너지 회사를 통한 에너지 자급자족 방식으로 '오가닉 빌리지'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지역 자원을 활용해 농업×관광×생물다양성 보전을 추진하는 한편,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이 있어요.

대도시에서도 탄소 중립을 향한 노력이 한창입니다. 인구 277만명의 오사카시는 '사람 중심의 탄소 중립 거리' 조성을 목표로 미도스지(御堂筋) 지역의 변화를 추진 중입니다. 오사카시는 전국에서 재생에너지 전력을 조달하는 한편, 바이오가스 및 바이오매스 발전을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해요. 이러한 탈탄소 전략은 재난 발생 시 회복력 향상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요. 일본의 여러 지자체와 기업들은 탄소 중립 도시가 되기 위한 새로운 지역재생 전략을 적극적으로 수립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지자체의 탄소중립 전략 수립은 어느 정도쯤 와 있을까요?
마을에서 지구를 지키는 공동체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은 마을공동체, 주민자치, 성평등한 일상을 지향하며 2019년 3월 설립된 협동조합입니다. 함께 먹고, 살고, 노는 마을생활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고 해요.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은 조합원과 후원회원, 주민이 함께 생활의 다양한 의제를 풀기 위해 여러 분과를 두고 있는데요, 그중 하나가 환경분과입니다. 환경분과는 일상에서 버려지는 유리병, 종이백, 에코백, 우유팩 등을 수거해 순환하는 '골목형 자원순환 거점', 생활용품을 포장없이 필요한 만큼 구입할 수 있는 '무포장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요. 여기에 의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마을옷장', '도시공동체 텃밭 프로젝트' 등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활동이 우리 마을의 환경문제는 우리 주민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습니다. 환경분과에서는 작년부터 마을환경강사 양성과정을 통해 18명의 강사를 양성했어요. 환경보드게임, 마을환경자원탐방, 자원순환교육 등 지난 1년간 280시간, 2599명이 교육을 받는 어마어마한 실적을 냈다고 하는데요, 그러한 노력 덕분인지 12월 1일, 서울시 사회환경교육기관 1호로 지정되는 성과를 냈습니다.

마을에서의 활동은 최근 서대문구, 서울시의 제도 개선으로 확장됐어요. 지난 10월 열린 '서울시 종이팩 자원순환체계 구축을 위한 토론회'는 2022년 5월에 시작한 서대문구 종이팩 정책 제안 기획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장주영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 이사는 "일상생활에서 환경문제를 찾아보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환경감수성을 갖게 되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경험이 쌓여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도시의 기후변화 대응, B-T-S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개별 국가인 방글라데시, 그리스, 크로아티아만큼 많다고 합니다. 이러한 대도시들은 전 세계 에너지 생산량의 약 80%를 소비하며, 이와 비슷한 비율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고 해요. 경제활동이 주로 도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도시는 기후변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죠.

 

번역협동조합의 조합원인 한상민 한림대 글로벌협력대학원 객원교수는 도시와 마을의 기후변화 대응을 ‘비티에스(BTS)’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BTS는 케이(K)팝 그룹은 아니고요, 건물(Buildings), 교통(Transport),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의미합니다. 건물과 교통에서의 온실가스 배출이 어마어마하거든요. 그래서 노후 주택을 친환경주택으로 개선해 건물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전기차와 재생가능에너지를 연료로 사용하는 자동차의 사용을 증가시키고, 대중교통과 같은 공정한 운송수단을 제공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액션플랜입니다. 이러한 조치들이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 기여하니까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활동은 쾌적하고 지속가능한 생활공간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결국, 기후친화적인 도시와 마을은 그 자체로 살기 좋은 동네가 아닐까요?🤔
지난 2016년 열린 제2회 동네국제포럼은 박노자 교수가 연사로 참여했다. 번역협동조합.

다수의 국제포럼이 훌륭한 연사를 모셔 오지만, 청중과의 소통 시간은 종종 부족합니다. 주로 주중에 행사가 열리다 보니 동네사람들이 참여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번역협동조합은 터를 두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행사를 기획해 주말(!)에 동네국제포럼을 엽니다. 통번역은 문제없으니 국제포럼도 가뿐합니다.


2015년에 처음 시작된 동네국제포럼은 번역협동조합의 기획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번역협동조합은 혼자 일하는 통번역 프리랜서들이 함께 설립한 협동조합인데요, 동네국제포럼은 번역협동조합이 직접 기획하고 활동한 첫 사례입니다. 포럼 비용은 번역협동조합과 함께하는 단체들이 공동으로 부담하고 있어요. 처음에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왜 비용을 들여 행사를 진행해야 하는지 의문이 제기됐다고 해요. 조합 내부에서 동네국제포럼 추진단을 꾸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었고, 그렇게 행사가 지금까지 열리고 있어요.


지난 동네국제포럼에는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마거릿멘델 캐나다 콩코디아대 교수는 물론 프랑스 바뇨시(Bagneux)의 광역단체 의원, 베네수엘라 광역범위 주민평의회 대표 등 다양한 연사들이 참여했습니다. 동네 주민들과 함께 공동체의 가치와 의미를 논의하며 이를 우리 동네와 사회, 그리고 세계로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를 모색했죠. 교류와 대화를 통해 동네국제포럼은 우리 동네의 소중한 경험과 지식을 글로벌 커뮤니티와 공유하며, 이를 통해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를 촉진하기를 꿈꿉니다.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꿈은 이루어지겠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연대를 통해 지역을,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가늠하게 됐으니까요. 

📝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지난 한 해 동안 스피커스 구독자 여러분은 동네와 어떤 연결고리를 만들어 오셨나요? 번역협동조합이 조합원, 동네 주민들과 함께 직접 기획부터 진행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꾸리는 '동네국제포럼'을 보니 우리 동네의 다양한 이슈를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논의하고 참여할 이웃들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참, 기후위기와 관련한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기후위기 싱크탱크들이 제안하는 '2024 기후위기 정책 아젠다'가 궁금하신 분들은 내년 1월 23일을 기억해주세요!(앗..평일 낮 시간에 열리는 행사입니다😭 참석이 어려운 분들께 양해를 구합니다)


스피커스는 다음주부터 한달 간 재정비의 시간을 갖습니다. 1월 중순, 더 새롭고 알찬 스피커스로 돌아오겠습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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