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하나 켜두고, 혼자 1분을 말해요.

자막도 없고, 화려한 효과도 없어요. 그냥 제 얼굴 하나예요.

그런데 그런 릴스 하나가 100만을 넘어요.

글과 이미지로만 만든 게시물 하나는, 조회수 15만을 넘고요.

사람들이 자주 물어요. 어떻게 찍으세요, 편집은 어떻게 하세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찍고 편집하는 건 그렇게 오래 안 걸려요.

편집은 80% 정도 다른 분께 맡기고 있고요.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요.

정작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따로 있어요.


대본이에요.

저는 일주일에 이틀은 아예 대본만 쓰는 날로 비워둬요.

그날은 약속도 안 잡고, 밖에도 잘 안 나가요.

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를 부여잡고 있어요.

썼다 지우고, 다시 썼다 또 지우고.

1분짜리 영상이면 글로는 600자도 안 되는데,

그 짧은 걸 붙잡고 하루를 다 보내는 날도 있어요.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


그게 본질이라서 그래요.

찍는 것도, 편집도, 다른 사람 손을 빌릴 수 있어요.

그런데 대본만은 못 맡겨요. 못 맡기는 게 아니라, 맡길 수가 없어요.

그건 제 이야기거든요.

제 생각이고, 제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에요.

그건 세상에 저 하나밖에 못 써요.

남이 대신 써준 글에는 제가 없어요.

사람들이 반응하는 건 화려한 화면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진짜 제 이야기였어요. 결국 끝까지 남는 건 그거였어요.


혜린이를 봐도 그래요.

지금 혜린이는 소설을 쓰고, 책 리뷰를 하고, 이것저것 참 많은 걸 해요.

그런데 그 많은 게 사실은 다 한 군데에서 나왔어요.

어릴 때, 꾸역꾸역 무식하게 책만 읽던 시절이요.

남들이 학원을 두세 개씩 다닐 때, 우리는 그냥 책을 읽었어요.

재미있어서만 읽은 것도 아니에요. 그냥 매일, 읽고 또 읽었어요.

솔직히 그때는 저도 이게 맞나 싶을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그 시간이 통째로 쌓여서 지금의 혜린이가 됐어요.

신기한 건, 혜린이도 그렇게 말해요.

자기를 만든 건 그때 책 읽은 시간이었다고요.


요즘 저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절실하게 느껴요.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이 제일 힘들어지겠구나.

정보는 넘쳐나고, 다들 이게 답이라며 손짓해요. 어제 맞다던 게 오늘 틀리기도 하고요.

이런 세상에서 자기 기준이 없으면, 그때그때 휩쓸릴 수밖에 없어요.

남들이 좋다는 길로 우르르 몰려갔다가, 아니라는 말 한마디에 또 우르르 빠져나오고.

그렇게 평생 남의 속도에 맞춰 뛰어다니는 거예요.

정작 자기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는 모른 채로요.


솔직히,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면 걱정이 많이 됩니다.


또 뻔한 소리 한 번만 더 할게요.

생각을 키우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결국 독서예요.

책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 평생 걸려 깨달은 걸 한 권으로 통째로 건네받는 일이거든요.

수십 년을 산 사람의 생각을, 며칠 만에 내 안으로 들이는 거예요.

그렇게 들어온 생각들이 내 안에서 부딪히고 섞이면서, 비로소 내 생각이라는 게 만들어져요.

자기 기준이라는 건 그렇게 생겨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요.


다음 주에 혜린이랑 둘이 제주도에 가요.

가서 뭘 하느냐, 거창한 건 없어요.

같이 읽을 책으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두 권 주문해뒀어요.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그 지옥 같은 곳에서도 인간은 결국 무엇으로 사는가를 적어 내려간 책이에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고통도 견뎌낸다는, 그런 이야기예요.

바다 보이는 데 앉아서, 같이 한 문장씩 읽을 거예요.

그러다 멈춰서, 너는 이 문장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고, 혜린이 생각을 듣고, 제 생각을 말하고. 또 읽고, 또 이야기하고.

그렇게 서로의 생각을 한 뼘씩 키우는 게, 우리가 여행 가서 하는 일이에요.

어디 멋진 데 가서 사진 찍는 것보다, 저는 이 시간이 훨씬 좋아요.


압니다. 이런 이야기, 사람들은 잘 안 믿어요.

지금 이걸 안 시키면 뒤처지지 않을까. 학원 안 보내도 정말 괜찮을까.

그 불안, 저도 모르지 않아요. 저도 수없이 흔들렸으니까요.

그런데 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까, 빨리 가려고 했던 건 대부분 흩어졌어요.

정작 남은 건, 느리고 미련하게 꾸역꾸역 쌓은 것들이었어요.


사실, 제가 그 산증인이에요.

저는 부모님이 일찍 이혼하셨어요.

제대로 된 가정교육이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어요.

누가 옆에서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 알려준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스무 살이 되어 저를 돌아봤을 때, 정말 엉망이더라고요.

뭐 하나 단단한 게 없었어요. 부끄러워서, 한동안은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제 이십 대는 통째로, 저를 다시 세우는 데 썼어요.

뭐가 맞는 삶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도 안 알려줬으니까요.

혼자 부딪히고, 넘어지고, 책을 붙잡고, 그렇게 꾸역꾸역 제 가치관을 세웠어요.

그 누구도 대신 세워줄 수 없었어요. 제 인생의 기준은, 저만이 세울 수 있었거든요.

제가 대본을 남한테 못 맡기는 것처럼요.

혜린이 책 읽는 시간을 누가 대신 못 읽어주는 것처럼요.


본질은 원래 그래요. 느리고, 외롭고, 남이 대신 해줄 수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 못 믿고 지나쳐요.

더 빠르고 쉬워 보이는 길로 가버려요.

그런데 그렇게 꾸역꾸역 보낸 시간으로, 저는 지금 아이를 키우고, 이렇게 제 목소리를 내며 살고 있어요.

끝까지 저를 받쳐준 건, 결국 그 미련한 시간이었어요.


여러분의 아이에게는, 무엇이 본질인가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쿨한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