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서 아빠 혁진님이 평화방송 라디오 ‘행복을 여는 아침'에 출연했어요. 혁진님의 육아 이야기와 썬데이 파더스 클럽의 비하인드까지. 지금 바로 확인해보세요. 

Fathers’ Note

시월의 두번째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어제는 날씨가 무척이나 좋았는데 오늘에 이어 내일까지도 비가 올 것 같다고 하네요. 이번 레터는 아들 셋 아빠 정우 님이 보냅니다. 밤 늦은 시간 아이들을 태우고 진주로 향하는 길. 정우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고속도로 위. 비행기 일반석보다 크게 넓다고 할 수 없는 작은 차로 진주를 향해 가고 있다. 양재IC를 지나자 서서히 교통 체증이 풀린다. 시내 출퇴근만 꾸준히 했던 차 계기판은 8.9km/l의 연비를 표시한다. 서울에서 진주까지의 거리는 330km 남짓. 쉬지 않고 달리면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경부고속도로 초입은 늘 막히는 길이기에 퇴근 시간을 피하면서도 진주에 도착하는 시간이 너무 늦지 않게 저녁 여덟 시쯤 출발했다. 오늘따라 네비게이션에 남은 거리가 더디게 줄어들었다. 

불과 반나절 전, 동남아 순회 출장을 마치고 (그래 봐야 호치민과 싱가포르였지만) 아침 비행기로 들어왔던 터였다. 비행기 옆자리에는 내 덩치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앉았다. 그 덕에 나는 몸을 한껏 찌그러뜨리고 구긴 채로 오느라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이놈의 역병은 끝난 것인지 안끝난건지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되냐며 구시렁거리면서 마스크를 고쳐 쓰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Q코드를 미리 작성했지만 미리 작성한 사람들이 서는 줄이나 작성하지 않은 사람들이 서는 줄은 비슷한 속도로 줄어들었다. 검역을 통과하고 입국장을 나왔다. 출장비를 청구할 수 있을 때나 타보는 서울행 택시에 올랐다. 기사는 무엇 때문인지 약간 들떠있었다.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지만, 건성으로 ‘예, 예’하며 몇번 대답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청주IC를 지나자 어스름한 저녁이 되었다. 도로 위 자동차도 수가 현저히 줄어들어 대전에 다다르니 자동차들이 쏟아내던 불빛도 아득해진다. 계기판에 보이는 연비는 11.2km/l. 시내운전을 할 때는 볼 수 없던 연비다. 연료 부족 경고등에 불이 들어왔다. 금산 인삼랜드휴게소에 들러 리터당 1,628원 하는 주유소에서 5만 원 어치의 휘발유를 주유한다. 연비는 초기화되었고 주행가능거리는 380km가 되었다. 신이 나게 화석연료를 태우며 가는 차임에도 고작 배터리로 가는 전기차 정도의 주행가능거리라니!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차에 시동을 켠다. 도착지까지 남은 시간은 한 시간 삼십분. 오래 전 ‘차에 가득 주유한 날이면 왠지 부자가 된 것 같다’고 말했던 엄마의 모습이 기억났다. 그때의 엄마처럼 나도 기름탱크를 가득 채운 채 마치 부자가 된 것만 같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택시에서 내려 딱 일주일 만에 집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학교와 어린이집에 등교/등원하기 위해 막 집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아이들도 오랜만에 본 아빠가 반가웠는지 요새는 좀처럼 해주지 않던 포옹을 다 해준다. 잠깐 북적이던 집은 아이들이 나가자 금방 조용해졌다. 앓는 소리를 내며 거실 소파에 몸을 던졌다. 거실 한 편에 서있는 목이 부러진 선풍기와 충전 기능이 고장난 무선청소기가 눈에 들어온다. 출장의 업무 성과보다 아이들의 가전제품 파괴 결과가 훨씬 가시적이고 계량 가능하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났다. 고작 일주일이 이렇게 길었나. 시리얼을 한 그릇 먹고 샤워를 하고 잠이 들었다. 

뒷좌석에서 시끌벅적 떠들 던 아이들은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 잠이 들었다. 그 와중에 차 바닥에잠이 든 막내가 눈에 들어왔다. 큰아이를 조수석으로 부르고 막내를 바닥에서 일으켜 자리에 앉혔다. 운전을 하면서도 룸미러로 아이들의 얼굴을 훔쳐본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얼굴이 아기 때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진주로 향하는 차. 이 차는 그 동안 몇 번이나 진주로 향했을까? 말 한마디 못하던 젖먹이들을 카시트에 태워 진주로 떠나곤 했다. 그래야 모두가 살 수 있었다. 아내에게는 육체적, 정신적 휴식이 필요했고 나 역시 도피와 구원이 절실했다. 너와 내가 살기 위해 떠날 수밖에 없던 길. 밤에 운전을 하노라면 주변을 스쳐가는 모든 차가 사연이 있어 보였다. SBS 파워FM 정지영의 스위트뮤직박스. CBS FM 이정식의 0시의 재즈. MBC FM4U 신해철의 고스트 네이션과 고스트 스테이션. 요새도 사람들이 밤 시간에 즐겨 듣는 라디오 방송들이 있겠지? 좁게 열어둔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왼팔은 시리지만 옆자리에 앉은 큰아이가 가끔 내뱉는 콧바람과 한숨에 오른팔이 따뜻해진다. 

오랜만에 창고에서 유선청소기를 꺼내 돌렸다. 큰아이 하교 시간을 맞추기 위해 짬을 내어 PCR 검사를 받으러 나갔다. 스마트폰 화면을 가득 채운 뉴스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기사가 있다. 내일부터는 입국하는 사람들은 백신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PCR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단다. 안 그래도 며칠 전, 여행업 관련 협회들이 정부를 상대로 ‘입국 후 PCR검사 의무를 없애달라’는 공문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하루 차이로 안 받아도 될 검사를 받게 되는구나 싶었다. 설령 미리 알았더라도 하루 늦게 입국할 수는 없었겠지만. 비행기 표와 여권을 보여주고 코를 내주었다.

네비게이션 화면에 뜬 남은 거리가 세 자리에서 두 자리로 줄었다. 애플 뮤직 chill mix 플레이리스트는 소니 롤린스로 시작해 캐논볼 애덜리, 델로니어스 몽크, 피위 러셀을 들려주다가 웬일인지 스텔라 장, 검정치마, 이고도로 넘어갔다. 그러고는 다시 빌 에반스, 마일즈 데이비스로 돌아왔다. (들었다 놨다 애플뮤직 알고리즘 칭찬해) 이 노래들을 싸구려 기본 내장 스피커로도 들을만한데 좋은 스피커로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질문을 떠올릴 때쯤 진주에 도착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 아이들의 할아버지가 지하주차장에 내려와 기다리고 계셨다. 아이들은 깨우지도 않았건만 제각각 일어나 터벅터벅 할아버지, 할머니의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다가 깼다고 우는 아이도 없었고 안아달라고 칭얼대는 아이도 없었다. 애초에 집에서 잠옷차림으로 나온 아이들은 곧장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 금세 다시 잠이 들었다. 

진주에 도착한 다음 날, 문자 메시지로 코로나 검사 결과가 도착했다. 음성. 어제 받은 PCR 검사가 왠지 내 인생의 마지막 PCR 검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뒤늦은 아쉬움이 들었다.

Fathers’ Update

지난 레터(34화 아빠, 근데 엄마는 어디가?)에 보내주신 답장들을 소개할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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