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위작 작가의 유사점 : 한때 AI를 닮았던 인간에 대하여

AI와 위작 작가의 유사점 : 한때 AI를 닮았던 인간에 대하여

“EARTH has its boundaries, but human stupidity is limitless”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74), 2023.2.15,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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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위작, 셰익스피어, 켄 페레니, AI, 고집

1.머리말
2.‘인생 치트키’를 쓴 위작 작가
3.‘AI같은’ 작업 방식
4.20세기에 태어난 19세기 화가 : ‘인간적인’ 고집
5.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저번 회차에선 챗GPT를 다루었습니다. 챗GPT와 관련된 여러 글들 사이를 해찰하던 차에 그 중 왠지 모르게 유독 제 뇌리에 콕 박혔던 단어가 있었습니다. ‘모작(模作·pastiche)’이라는 단어였는데요. ‘AI는 모작에 아주 특화되어있다’는 것이었죠.1)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수많은 작품을 학습해서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는 모작의 과정은 확실히 AI에겐 거뜬할만합니다. 실제로 AI는 베토벤의 작품을 몽땅 ‘학습’해서 미완성 곡의 나머지를 만들어내기도 했고요. ‘모네풍 시바 강아지 그림’을 순식간에 그려내는 것 역시 저같은 ‘그림 바보’에게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미켈란젤로, 이중섭 등 대가들의 그림을 뚝딱 그려내던 희대의 위작 작가2)들도 이젠 ‘훌륭한 모사가’ AI 앞에서 주눅이 들게 분명합니다.

<fig.1> “앤디 워홀 스타일로 그린 말을 타고 있는 우주인An astronaut riding a horse in the style of Andy Warhol”(DALL-E 2) / "모네풍 시바견shiba inu painting in the style of Monet"(DALL-E) 왼쪽 그림은 DALL-E 2 초기화면의 몇가지 키워드들을 조합하자 나온 그림이고요. 오른쪽 그림은 제가 보고 싶은 그림을 상상하며 키워드를 넣어보았습니다. Open AI

그런데 AI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사람 위작 작가’들은 어딘가 어설픈 데가 있었습니다. 역시 사람이라 어쩔 수 없는 걸까요? 인간은 완전한 모작만 하며 사는 것이 가능할까요? AI 시대, 인간과 기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최근 미술품 위작에 대한 책들을 읽으며, 어쩌면 AI에 대한 책을 읽는 것보다도 위작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찰해보면 더 재미난 영감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레터에선 <위작X미술시장>(켄 페레니)과 <밴버드의 어리석음>(폴 콜린스)를 지팡이 삼아 ‘완벽하지 못했던 위작 작가’에 대해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2023.1.6, Transcript: Ezra Klein Interviews Gary Marcus(링크) 중 “GPT-3는 모작Pastiche의 왕입니다[...]그것은 일종의 '복붙'을 미화해 부르는 말이죠.” 다만 여기서 'Pastiche'라는 단어가 쓰인 맥락엔 '단순모방 짜깁기'의 뉘앙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사전)

2)‘모작’과 ‘위작’의 차이: 모작과 위작 둘다 다른 작품을 베낀다는 점에선 동일한 행위지만, 모작의 경우 원전이 되는 작품을 밝히는 반면 위작은 원전을 밝히지 않고 이득을 위해 감추거나 꾸미는 행동을 일컫는다고 합니다.(링크) 즉 오늘 레터에서 개인적 이득을 위해 고의로 출전을 왜곡한 경우 '위작'이라고 적습니다.

【2.‘인생 치트키’를 쓴 위작 작가】

만약 희대의 범죄자가 자신이 어떻게 범죄에 몸담게 되었고, 어떤 수법으로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자서전을 쓴다면 꽤 놀랄만한 일일 것입니다.

켄 페레니(1949~)는 18~19세기 네덜란드, 미국, 영국 화가의 그림들을 복제해 큰 돈을 번 미국의 유명 위작 작가입니다. 그가 34년간 그려서 경매 등을 통해 판 위작 미술품은 수천건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요. 위작 사실이 드러난 일부 작품들을 제외하곤 여전히 ‘진품’으로 유명 갤러리의 벽에 걸려있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라고 하죠.

그는 1990년대 후반 FBI의 추적을 받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인해 현재까지도 당당히 개인 홈페이지(링크·홈페이지의 문패엔 “천재 위작 작가Master Art Forger”라고 적혀있습니다. 잔뜩 뽐내는 것 같은 느낌이네요)도 운영하며 “꾸준히 전문 위조꾼으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신 지금은 자신이 그린 것이 모방 작품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적정 가격대를 매겨 판다는 점이 이전과의 차이랄까요.

<fig.2> 켄 페레니가 VICE의 2019년 숏다큐멘터리에서 자신의 위작 인생과 최근의 위작 시장 트렌드(!)에 대해 말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는 현재는 '손을 씻고'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사이트에서 적당한 값에 모작 그림을 팔고 있죠.(왼쪽·영상) 19세기 노르웨이 화가의 위작 그림을 포장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1989년의 켄 페레니 / VICE 공식 유튜브 갈무리·Pegasus Books

책 <위작X미술시장>은 켄 페레니가 직접 쓴 자서전입니다. 통상 ‘성공한’ 위작 작가들은 아예 수면 위로 올라올 일이 없기 때문에 이들이 직접 쓴 자서전은 찾기 어려운데요. 대부분의 위작 관련 서적은 미술사학자나 위작감정 전문가가 쓰는 경우가 많고요.

그런만큼 위작 작가가 직접 쓴, 보기 드문 이 책은 날것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 있는 점이 흥미진진합니다.

켄 페레니는 미국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알파벳을 떼지 못할 정도의 낙제생이었습니다. 기술학교로 진학했지만 역시 변변찮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집 근처의 ‘캐슬’에서 화려한 미술, 사교계 사람들을 만나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이 만남은 페레니에게 스스로의 ‘위작 작가로서의 능력’과 ‘분수에 넘치는 화려한 삶’에 눈을 뜨게 해준 계기가 되었죠.

“캐슬(*톰, 토니 등을 만난 집)과의 우연한 인연은 내 인생 최고의 선물과도 같았다. 그곳은 우주 에너지가 모이는 중심지였다[...]이 때 내 운명은 이미 정해졌고 절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나는 무일푼 빈털터리였다. 벤틀리 수리에 필요한 새전압조정기는 커녕 캘러한스에서 핫도그와 감자튀김을 사먹을 돈조차 없었다. 순식간에 내 주머니에 빳빳한 새 지폐 800달러가 있고, 겨드랑이에 진짜 골동품 그림과 액자를 끼고 있다니!”

-켄 페레니, <위작X미술시장>(이하 동일)

페레니의 위조 실력은 그의 가난하고 변변찮은 삶의 ‘치트키’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페레니는 화가로서의 실력은 변변찮았지만, 모방 실력은 엄청나게 뛰어났습니다. 그와 일행은 뉴욕에서 욕조도 없는 허름한 집에 살다가 두드려 맞고, 마약 클리닉이 들어오면서 거리에 무일푼으로 쫓겨날 뻔하는 등 가난한 삶을 이어갔는데요. 이때 유일한 구원이 된 건 위작을 팔아 돈을 버는 것 뿐이었습니다.

<fig.3> 1960년대 창간돼 미국, 영국에서 논란을 불러온 자유분방하고 실험적인 잡지 <OZ>(1973.2)에 위작이 아닌 ‘자신의 작품’을 게재했던 켄 페레니 (왼쪽·링크) 그가 그린 위조그림 'After Martin Johnson Heade - Passion Flowers with Hummingbirds' 켄 페레니 공식홈페이지

‘무명화가 켄 페레니의 그림’을 사주는 사람은 없지만, ‘19세기 네덜란드 거장의 그림’은 거액으로 팔 수 있었습니다. 초반엔 화가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낮엔 “네덜란드 그림”을 그려 돈을 벌고, 밤엔 “자기만의 현대 미술 회화”를 그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사치에 익숙해져갔고 위작에 훨씬 더 집중하게 됐죠.

이후 그는 수십년 간 “네덜란드 그림” 외에도 ‘돈이 될 만한’ 미국, 영국 화가들의 그림을 위조해 큰 돈을 벌어들이게 됩니다.

【3.‘AI같은’ 작업 방식】

<위작X미술시장>에는 페레니의 기구한 삶 외에도 구체적으로 그가 관심을 가졌던 작가·화풍의 구체적인 학습 방법, 위조 기술 등도 꽤나 상세하게 묘사되는데요.

이 책에서 위작의 과정에 대한 기술적인 설명을 읽던 중, 제가 특별히 흥미를 느낀 부분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기본적으로 위작 작가가 ‘일하는 방식’이 ‘AI의 방식’과 굉장히 유사하다는 점(‘학습 데이터 투입→결과 산출’)
2) 당대 상당수 ‘원작 화가’의 작업 방식 역시 비슷했다는 점

우선 첫 번째로, 켄 페레니가 기계처럼 그림을 학습한다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떤 작가나 화풍을 복제하기로 결정하면, 페레니는 매번 온갖 도록, 학술서 등을 모조리 사들여서 철저하게 모든 작품을 분석하고 패턴을 면밀히 학습, 구조화하는 과정을 진행합니다. 마치 AI가 어떤 화가의 그림체, 어떤 시대의 화풍을 통째로 ‘흡수’하듯이요.

아래는 페레니가 ‘19세기 미국 화풍’과 칼더의 작품을 복제하기로 결심한 날의 일입니다.

“바로 그날 19세기 미국 회화의 역사에 관한 나의 입문이 시작되었다[...]그날 하루가 다 지나가기 전에 나는 존F피토, 라파엘 필, 존F프랜시스, 레비 웰스 프렌티스[...]화가들의 이름에 익숙해졌다[...]그림 규격을 재고 붓질 기법과 물감의 두께, 피막 등에 대해서도 메모했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요소인 아카데미 보드지에만 특별히 나타나는 긴 크랙에 대해서도 적었다.”

“10분 후 우리는 리졸리서점에서 칼더에 관한 책을 전부 샀다. 곧바로 지노스의 테이블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책을 보며 연구했다. “작품 구성은 무척 쉬워. 종이에 구불구불한 선하고 점, 동그라미만 잔뜩 있는 거니까. 칼더가 사용하는 워터마크가 들어간 제대로 된 종이를 구하는 게 묘책이지.””

그가 작품들에 맞닥뜨릴 때마다 이런 건조한 ‘학습’은 반복됩니다.

이 책에는 수많은 화가, 그림들이 나오지만 신기할만큼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감상이나 묘사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보통 어떤 화가의 작품을 눈에 담는다면 가장 먼저 ‘와 정말 멋진 하늘이구나’ ‘보라빛 수국이 참 예쁘네’ 같은 생각이 떠오를텐데 말이죠.3)

이 때문에 저는 이 책에서 계속 어떤 화풍,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최소한의 상상을 위해 인터넷을 켜두고 이미지 구글링을 하며 읽어야 했습니다.

확실히 위작 작가의 입장에선 사실 어떤 그림이 ‘아주 따뜻한 오렌지색이다’ ‘오싹오싹한 광경이다’ 등 같은 따위보단 캔버스에 크랙(균열)이 어떻게 가있고, 서명의 끄트머리가 어떻게 꺾여있는지가 더 중대한 문제이긴 할 것입니다.

이런 페레니의 작업 방식은 그림에 대한 감상이나 이해 없이도, 단순히 그 그림의 특성과 스타일들을 방대하게 학습해내는 AI의 학습방식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fig.4> “구불구불한 섬과 점, 동그라미만 잔뜩”있는 알렉산더 칼더(1898~1976)의 그림 '무제'(왼쪽) 배가 있는 풍경을 그렸던 버터스워스(1817~1894)의 그림 'San Salvadore' / Operagallery, The Mariners' Museum.

두 번째로 제가 주목한 부분은 - 애초에 원작 작가가 생전에 그렸던 방식이 어느정도는 켄 페레니의 방식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4)

즉, 원작자부터가 몇개 패턴을 정해두고 당대의 유행과 수요에 맞춰 ‘공장식’으로 그림을 생산해낸 경우도 있다는 것이죠.

특히 페레니가 대표적으로 복제해온 미국 화가 버터스워스(James Edward Buttersworth·1817~1894)의 ‘패턴’을 분석하는 장면은 인상적입니다. 처음엔 버터스워스의 그럴듯한 복제를 위해 패턴을 분석하다가, 이윽고 버터스워스에 ‘빙의’하듯 새로운 그림을 창조하게되는 과정입니다.

버터스워스의 작품을 연구해보니 매우 분명한 패턴이 눈에 띄었다[…]다시말하면 버터스워스는 한 무리의 일정한 배와 배경을 요리조리 바꿔서 계속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가 이들 조합으로 많은 복제본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내가 버터스워스처럼 생각할 수만 있다면, 나는 요트와 배경을 충분히 가지고 새로운 작품을 무한정 만들어낼 것이다[…]버터스워스가 했던 것처럼 한 그림 속 요트를 다른 그림 속 배경에 그려넣으면 역사적으로 정확히 “버터스워스 작품”인 새로운 그림을 창조하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AI가 몇 가지 요소를 집어넣고 적당히 조합해 그림을 그려내는 과정과 너무 유사해보여서요.

버터스워스가 활동하던 19세기엔 상류층들 사이에 요트 스포츠가 굉장히 유행이었고, 요트가 그려진 그럴듯한 풍경화를 누구나 응접실에 걸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그저 집주인으로서는 자신의 고상한 요트 취미를 손님들에게 뽐낼 수 있는 용도면 그만이었죠. 소비자들은 딱히 독창적이고 기묘한 요트 그림을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림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넘쳐났고, ‘요트 그림’을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그려내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버터스워스 등 풍경, 정물화가들은 이런저런 친숙한 요소들을 조합해 ‘적당히 그럴듯한 요트 그림’을 양산해냈다고 하죠.

페레니는 마치 우리를 향해 이렇게 묻는 것 같습니다.

‘‘버터스워스 그림’은 무한정 존재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원본 작가도 생전에 자신 그림의 복제본을 양산해냈는데, 거기에 내가 덧붙여 비슷한 그림을 몇개 더 그린다고 해서 문제 될 게 있습니까?’

이 외에도 페레니가 역대급 가격으로 팔아낸 미국 화가 마틴 존슨 히드의 새 그림(“Fat boy”) 역시 마찬가집니다.

기분좋은 벌새와 난초 그림들을 전문적으로 그린 미국 화가 마틴 존슨 히드의 그림 전체에서 가장 분명한 패턴이 나타났다. 그는 다양한 그림에 똑같은 새와 똑같은 난초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똑같이 그렸다[...]그림들마다 그렇게 꼭 똑같이 난초와 벌새가 복제된 것으로 보아, 나는 히드가 반드시 한 묶음의 본보기stencil를 가지고 있으면서 각각의 그림에 이들을 그대로 베꼈을 거라고 결론 내렸다.

이런 반복되는 대목을 읽다보면, 인간이 직접 그린 모든 ‘예술’은 하나같이 개성과 영혼을 담고 있다는 기존의 통념(?)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는데요.

숫제 페레니는 단순히 한 작가가 그릴법한 새로운 창작물을 그리는 것을 넘어서, 아예 전체 화풍을 놓고 이리저리 자신이 배치해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기도 합니다.

“18세기 존 우튼과 제임스 세이무어같은 화가들을 시작으로[…]영국의 수렵화 화가들은 유명 경주마들의 초상화를 소장하고 싶어하는 그 지역 상류층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그들 자신의 그림을 똑같거나 거의 똑같이 복제했다[…]많은 영국의 수렵화화가들도 단순히 색깔을 바꾸거나 장면을 다르게 해서 그림마다 똑같은 말이나 말과 기수를 복제했다[…]이런 주제들의 어느 한 그림은 다른 그림들의 “원작”일 수 있다. 먼저 믹스앤매치 구성기법으로 열두점의 그림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그 모음은 “사토리우스 화풍”의 여우사냥 그림, “19세기 화파”의 황소와 돼지 초상화…”

어찌보면 이는 ‘위작’이라기보다도 ‘타임래그(시차)’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18세기 영국의 수렵화 화가들이 하던 일을 20세기에 했을 뿐입니다.(그는 실제 스스로 그렇게 믿었습니다) 당대의 화가들이 적당히 팔릴만한 요소들을 집어넣어 ‘뒤섞어’ 창조를 했듯 20세기의 페레니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죠.5)

이런 포인트들에 주목하며 이 책을 읽다보니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연이어 뭉게뭉게 피어올랐습니다.

과연 원본과 위작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지, AI가 ‘그린’ 그림이라고 해서 모두 영혼이 없다며 배척할 수 있을지 - 그렇다면 인간이 그린 그림은 모두 영혼이 있다고 볼 수 있을지, 위작을 불가능하게 하는 원본만의 특성이란 무엇일지...

물론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이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흥미를 느낀 부분은 아래에서 이어집니다.

3)물론 아무리 비슷한 컨셉을 돌려가면서 그렸다고 해도, 그 스타일 자체를 창조해낸 사람과 이를 단순히 위작한 것을 동일하게 놓긴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서술은 페레니 입장에서 관찰, 이야기되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긴 해야합니다. 그가 애초에 이처럼 패턴 경향을 강하게 보이는 화가들을 위주로 복제를 하기도 했고요.

4)이 두꺼운 400여페이지의 자서전 중 그가 그림을 보고 인간적으로 동요한 경우는 딱 한번 등장합니다. 책 후반부 19세기 인디언 족장 오시올라의 초상화를 보았을 때였는데요. 어떤 그림을 보았을 때 전체적인 느낌과 감상이 등장한 것도 이 대목이 유일했습니다.(“공정한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배한 적 없는 전사 오시올라가 화려한 옷차림으로 당당하게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그저 돈 버는 데 이용할 만한 또 다른 기회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위대한 자유 투사에게 보내는 경의로서 전성기의 그를 다시 그리고 싶었다.”-p.361)

5)이 대목에서 오늘날 K-pop '산업'이 돌아가는 방식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팔릴만한 요소를 조합해 음악과 안무, 개성 등을 종합하는 방식이요. 하지만 그 안에서도 혁신을 시도하는 다양한 움직임들이 존재합니다.(링크)

【4.20세기에 태어난 19세기 화가 : ‘인간적인’ 고집】

켄 페레니는 이처럼 대단한 실력을 지닌 위작 작가입니다만, 어느 순간 그는 마음에 작은 욕심이 꿈틀대는 것을 느낍니다.

단순한 복제만으로는 “마음에 난 구멍”을 메울 수 없었던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복제하던 화가의 작품을 자기 나름대로 ‘진화’시키기로 마음먹죠.

이 기간에 나는 마틴 존슨 히드의 수법과 스타일을 완전히 통달해서, 내가 믿기에 히드가 <브라질의 보배>를 그린 후에 얼마 있다가 히드 스스로 그러했을 거라는 쪽으로 <브라질의 보배>를 “진화”시키기 시작했다. 히드 그림의 오리지널 컬렉션에 변화와 개선 혁신을 더했다. 그가 만약 내가 진화시킨 작품들을 본다면, 그의 예술세계의 발전을 이끌어낸 거에 대해 나에게 감사할 거라 확신했다.

사망한 대가의 작품을 자기 멋대로 발전시킨다는 말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만, 그는 이 책의 출간 이후에도 다양한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끝없이 기존의 화가들의 작품을 ‘개선’시키고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또한 그는 나아가 작품 뿐 아니라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19세기의 화가” 한 명을 통째로 날조하는 것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매일같이 남의 그림을 베끼는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게 된 것입니다.

그 아이디어가 처음 떠오른 것은 18세기 최고의 장식화가인 지오반니 파니니와 휴버트 로버트의 그림들을 위조할 때였다[…]석조물에 대해 생각하고 감상하는 법을 배우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두운 배경에 밝게 트롱프뢰유 스타일로 고대 로마 상원 의원의 대리석 흉상을 그리면 어떨까?

어차피 자기 나름대로 창작을 할 거라면 그냥 시대에 맞는 현대 미술을 그리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만, 평생 페레니가 만들고 접해온 작품들이 18~19세기의 작품이니만큼 ‘자기만의 창작’을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19세기의 작품인 쪽이 그에게 있어서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20세기에 태어난 19세기 화가의 작품이라니 조금 기이하긴 하지만요.

요는 인간은 AI와 달리 같은 일을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자기만의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기묘한 고집이 생겨나기 마련이라는 것이죠.

현재에도 ‘때로 창조적인, 모작 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켄 페레니는 죽은 대가들의 ‘진화된’ 작품들, 혹은 19세기 미국풍의 수많은 작품들을 ‘자신의 붓’으로 창작해내고 있습니다. ‘한창 때’에 비해 돈은 덜 벌겠지만요.

<fig.6> 켄 페레니가 그린 'After Giovani Panini' (왼쪽) 18~19세기 셰익스피어의 위작 작가로 악명(?)을 떨쳤던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William Henry Ireland의 초상화.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밴버드의 어리석음>에 등장하는 셰익스피어 위조꾼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1775~1835)’도 비슷한 궤적을 밟았습니다. ‘셰익스피어 따라쟁이’를 넘어서려 했던 둔재, 윌리엄의 이야기는 그 기이한 ‘어리석음’으로 제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윌리엄 역시 어릴적 켄 페레니와 비슷하게 신통찮은 ‘바보’였는데요. 위조에만큼은 특출난 재능이 있었습니다.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는 수집가인 아버지의 관심을 끌고 인정을 받기 위해, 어느날 셰익스피어 필적의 간단한 문서를 위조해 아버지에게 보여줍니다.

아버지가 뛸듯이 기뻐하자 그때부터 신이 난 윌리엄은 단순히 셰익스피어의 필체를 베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셰익스피어의 편지’ ‘셰익스피어의 신앙고백’ 등의 글을 스스로 꾸며 써내기 시작하죠. 심지어 영국의 전기 작가인 제임스 보즈웰은 이 문서들을 보고 “오늘 이것을 보았으니 이제 죽더라도 여한이 없다”며 극찬했다고 하네요.

문제는 윌리엄도 ‘그 이상’에 대한 욕심을 무럭무럭 키워갔다는 점입니다. 그는 더 나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윌리엄은 어느날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 우연히 벽에 걸린 보르티게른Vortigern왕의 초상화 그림을 바라봅니다. 무자비하기로 소문난 5세기 왕이었는데요. 그는 보르티게른 왕을 소재로 셰익스피어 풍의 새로운 희곡을 써내겠다는 야심을 품죠.

“윌리엄은 이것이라면 셰익스피어 희곡의 주제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버지 책장에서 라파엘 홀린셰드의 <연대기>(1577)를 꺼내들었다. 셰익스피어도 역사극을 쓸 때 이 책을 참고했다. 홀린셰드는 보르티게른 왕을 추악한 인물로 묘사했다[...]홀린셰드의 글을 읽고 난 뒤 윌리엄은 당당하게 아버지에게 셰익스피어가 쓴 새로운 희곡 한 편을 통째로 발견했다고 알렸다.”

-폴 콜린스, <밴버드의 어리석음>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당대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창작할 때 참고했던 16세기 역사 자료들을 읽고 셰익스피어가 관심을 가질만한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희곡을, 셰익스피어의 스타일로 썼다면 그 작품은 어디까지 개인의 온전한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윌리엄이 야심차게 쓴 ‘셰익스피어 희곡’ <보르티게른>은 심지어 당시 연극 무대에까지 오르는데요. 당연히(?) 연극은 엉망진창이었고, 이윽고 위작 작가로서의 정체가 탄로나고 맙니다.

만약 윌리엄이 ‘분수’를 지켜서 그냥 셰익스피어의 계약서 서명이나 위조했다면 들통날 일도 없이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윌리엄은 셰익스피어를 ‘진화’시키고 싶어했고, 그러다 사달이 났습니다.

이후 윌리엄은 결혼해서 그럭저럭 조용히 자기 이름으로 시시한 시, 소설을 쓰며 소박하게 살아가는데요. 저자는 윌리엄이 <보르티게른> 이후 또 다른 ‘셰익스피어 희곡’ <헨리 2세>를 썼고, 거기서 자기 나름의 문학적 발전을 이루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이른바 ‘윌리엄 세계관’의 발전이었죠.

작가는 윌리엄이 쓴 ‘두 번째 셰익스피어 희곡’인 <헨리 2세>에 대해 아래와 같이 평가합니다.

“그의 가장 뛰어난 작품은 후속작인 <헨리 2세>였다. <보르티게른>을 쓰며 솜씨를 갈고 닦은 윌리엄은 1795년 말에 아직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로 두 번째 역사극과 씨름한 끝에 두 달 만에 <헨리 2세>를 완성했다[...]<헨리 2세>는 <보르티게른>이 갖추지 못한 모든 것을 갖추었다. 구불구불 퍼져가는 서브플롯들, 인물의 발전, 서스펜스, 극적 반전, 유머 감각까지”

물론 이전 위작에 비해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한때 바보 소리를 듣던 사람의 글을 세계적인 대문호인 셰익스피어의 문장에 댈 것은 못되겠죠.

그럼에도 저는 페레니와 윌리엄, 두 위작 작가의 삶을 다룬 책들을 읽으며 - 자신의 분수나 능력에 관계 없이, 베끼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덧 ‘자기만의 고집’을 갖게 되는 반복적인 서사에 주목했습니다.

페레니도 윌리엄도 처음엔 단순히 기계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했던 일이지만, 훌륭한 작품들과 접하고 그것을 똑같이 베끼는 과정에서 페레니와 윌리엄은 자기만의 욕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 내가 사랑하는 작품을 내가 더 좋아하는 방향으로, 더 낫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요.

그리고 문득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주제넘는 고집’이야말로 인간이 갖는 특징이지 않을까 하고요.

만약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충분히 주제를 알고 겸손했다면, 태어나보니 훌륭한 고전들이 수두룩 빽빽한 가운데 - 더 나은, 새로운 예술을 만들려고 감히 시도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테니까요.

물론 (‘천재 위작 작가’가 ‘삼류 작가’가 되었듯) 그 고집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극히 일부 중에서도 일부겠지만요.

【5.맺음말】

저는 오늘 <밴버드의 어리석음>에서 소개된 여러 인물들 중 셰익스피어 위조 작가 윌리엄의 사례에만 집중했는데요. 사실 이 책은 역사에 흔적만 남은 13명의 참신한 바보(?)들의 이야기입니다. 대부분 처음들어보는 이름들이라 저자가 대체 이런 괴짜들을 어떻게 찾아낸 건가 궁금했는데, 책 날개에 짧게 실린 비하인드 스토리가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저자인 폴 콜린스는 대학원생 시절 지도교수로부터 <애틀랜틱 먼슬리>와 <하퍼스 매거진> 등 19세기부터 발행된 잡지의 전권의 목차를 복사하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엄청난 노가다인데요. 콜린스는 단순 노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잡지들에서 흥미로운 괴짜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런 재미난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요는 사람이란 기계적인 반복을 계속 하더라도 결국 어떻게 해서든 딴짓을 하고마는 존재이고, 그 딴짓에서 자기만의 새로운 고집이 생겨나고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복을 거듭하다보니 어느 순간 자기만의 작품, 진화된 버전을 만들고 싶어졌던 페레니와 윌리엄처럼요.

그런 ‘고집스런 헛발질’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때, 인간이 AI를 넘어서는 위작 작가가 되긴 어렵지 않을까요?

✏️

“<보르티게른>은 제가 썼어요. 누군가를 흉내냈다면 셰익스피어를 흉내냈을 뿐, 그 가운데 단 한 장도 누군가 살아있는 사람의 글을 베끼지 않았습니다. 그 글에 어떤 영혼이나 심상이 담겨 있다면 그건 오롯이 제 것입니다.”

-폴 콜린스, <밴버드의 어리석음> 중 윌리엄이 아버지 새뮤얼에게 보내는 편지 발췌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켄 페레니, 이동천 옮김, 『위작X미술시장』, 라의눈, 2018.

-예전 NFT 회차에서 위작 작가 볼프강 벨트라키의 이야기를 다뤘었는데요. 당시 관련 서적들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조금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다큐멘터리 <벨트라키>(2014·링크)는 벨트라키가 주인공인 영화였는데,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으로 위작을 그려왔는지 그의 생각, 감정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켄 페레니의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메워줄 수 있을만한 책이었습니다. 한물 간 위작 작가의 뽐내는 자서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생성형 AI와 위작 기술 간의 상관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읽으니 흥미로운 독서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그가 100% 자진해서 '지난날의 과오를 참회'하고 정도를 걷게 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는 충분히 꼬리가 길어진 상황이었고, FBI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위작' 대신 정정당당한 모작을 하게 된 측면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FBI의 추적 이전에도 점차 자신만의 '진화'된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은 이 책에서 간간이 드러납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 라틴어 'CAVEAT EMPTOR'로, 구매자 책임 원칙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즉 위작에 속아 샀다면 산 사람의 책임이라는 것이죠. 값비싼 위작을 사놓고서도 '속은 게 쪽팔려서' 오히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쉬쉬하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이 때문에 여전히 갤러리엔 수많은 위작이 진품처럼 걸려있습니다.

폴 콜린스, 홍한별 옮김, 『밴버드의 어리석음』, 양철북, 2009.

-이 책엔 13명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오늘 레터에서 다룬 윌리엄은 그 중 한명입니다. 각자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어리석기 때문에, 어디서 본 적 없는 이야깃거리를 읽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포모사라는 한 가상의 국가(언어, 문화, 습속 등)를 창조해버린 대범한 사기꾼 조지 살마나자르와 언어 대신 12음계로 소통하는 '음악 언어'("장교들은 발명가의 끈기에 감탄했다. 하지만 실험 결과 보고서는 텔레포니가 ‘거의 쓸모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수드르는 실망하지 않고 음악 언어를 계속 가다듬고 또 새로 발명했다.")를 만들어낸 프랑수아 수드르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얼핏 예전에 다루었던 책 <이그노벨상 이야기>(링크)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엘렌 모렐-앵다르, 이효숙 옮김, 『표절에 관하여』, 봄날의책, 2017.

-대체로 제목 때문에 표절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집어들게 되는 책일텐데요. 반드시 그 이상의 영감을 줄 수 있는 종류의 책입니다. 예술 작품 표절과 저작권의 역사를 읽다보면, 먼저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부터 시작해 저작권은 어디까지 인정되어야 하는가? 어디까지가 정당한 오마주, 패러디이며 어디부터가 표절인가?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이 책의 한 챕터 제목은 '문학은 표절이다'인데요. 제 마음에 남은 한 인용구를 옮겨봅니다. 과연 AI가 만들어내는 것은 '흉내' '잡탕'일까요 '훔치는' 것일까요?

“미숙한 시인은 흉내를 내고,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 못난 시인은 빌려가서는 망쳐놓고, 좋은 시인은 그것을 뭔가 더 나은 것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적어도 뭔가 다른 것으로 만든다. 좋은 시인은 장물들을 용접해서 원래의 문맥과는 완전히 다른, 독특한 느낌의 온전한 전체를 조성하지만 못난 시인은 응집력이라고는 없는 잡탕으로 전락시킨다.-T.S.앨리엇”

【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기계적 반복’이야말로 ‘차이’를 만든다

독서시간: 약 20분 / 글자수: 약 1만2000자

🖍글 속 한 문장

“앤디 워홀의 작업은 얼핏 같음의 반복적 생산으로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색상이 다르거나 마치 인쇄가 잘못된 것처럼 모두 제각기 실루엣 선이 조금씩 번지거나 초점이 맞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겉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모두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이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바탕으로 포드주의, 4차산업혁명 등을 살펴본 숙명여대 박영욱 교수의 글입니다.

그에 따르면 <차이와 반복>의 핵심 아이디어는 - 우리가 흔히 반복을 '기계적 반복'이라며 무시하지만, 반복이야말로 차이를 만들어내는 핵심 기제라는 것입니다. 반복적으로 대가들의 작품을 접하고 베껴온 페레니, 윌리엄이 결국 자신만의 ‘차이’를 찾아가게 된 것을 보며 이 책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얼핏 어려워보이는 칼럼이지만 일상적인 언어로 쓰여져있기 때문에 읽어보시면 오늘날 이슈가 되고 있는 AI 기계 반복 학습 등에 대해 각자의 영감을 얻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I가 ‘완성’한 베토벤의 ‘미완성’ 교향곡

독서시간: 약 4분 / 글자수: 약 2000자

🖍글 속 한 문장

“전문가들은 이어 전체 작품에 관한 베토벤의 노트와 완성된 곡을 인공지능에 학습시켜 베토벤의 작곡 패턴을 습득하도록 했다. 예컨대 인공지능은 그 유명한 운명 교향곡의 ‘기본 4음표’를 모티브로 5번 교향곡을 어떻게 전개해 완성했는지 학습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베토벤의 작품들을 학습해 미완성 교향곡의 나머지 부분을 완성, 연주한 프로젝트에 대한 기사입니다. 그가 만약 살아있었다면 '썼을 법한, 그럴듯한' 음계의 모음입니다.

오늘 살펴본 페레니와 윌리엄 모두 만약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살아있었다면 '그릴 법한', 셰익스피어가 살아서 문득 벽난로 위 보르티게른의 초상화를 봤다면 '썼을 법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분명 사람들은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한 행동을 하며 삽니다만, 과연 평균적으로 예상가능한 글과 그림, 음악만을 만든 사람들이 오늘날 거장으로 불리게 됐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실제 삶의 엄청난 깨달음, 계기로 인해 전반기 후반기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진 작가들도 많고요.

‘디지털 풍화된 짤방’과 챗GPT의 말들

영문 / The Newyorker

🖍글 속 한 문장

👤김스피의 블라블라

SF작가 테드 창이 챗GPT와 관련, 지난 9일 <뉴요커>에 기고해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는 글("ChatGPT is a blurry JPEG of the web")입니다.

제록스의 흐릿한 손실 이미지 파일에 대한 일화로 글을 시작해, ‘무손실 압축’이야말로 지식/정보 보존의 핵심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어떤 텍스트를 이해해서 정리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무손실(에 가까운) 압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챗GPT 등 언어모델은 필연적으로 효율성 등의 문제로 원정보에 대한 ‘손실 압축’을 진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접한 챗GPT 관련 글들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은 글이었습니다.

(섬네일은 '디지털 풍화'를 만들어주는 깃허브 사이트에 시바견짤을 넣어본 것입니다)

핫한 전시회가 통째로 위작이었다?

독서시간: 약 4분 / 글자수: 약 1800자

🖍글 속 한 문장

“바스키아의 진품들이 보통 수백억원에 팔리는 걸 감안하면 한 번이라도 위작 판매가 성공한다면 위작 판매범에게는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부를 가져다줄 수 있다. 이렇게 예술품 위조의 배후에는 부를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탐욕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감상하고 있는 이 바스키아 그림도 혹시 위작은 아닐까.”

👤김스피의 블라블라

지난해 6월, 미국 올랜도 미술관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28세에 요절한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 전시가 진행 중이었는데, 모두 위작인 것으로 판명돼 FBI가 작품을 모두 압수하고 전시회는 강제로 종료되었죠.

VICE에서 2019년에 제작한 켄 페레니와 관련된 숏다큐(링크)를 보면, 가장 위작하기 좋은 화가는 '아직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스타 신인'이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 '갑자기 다락방에서 발견되지 않은 작품들이 무더기'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테니까요. 페레니는 이때 최근 유행하는 젊은 아프리카 화가들을 예로 들었는데요. 장 미셸 바스키아야말로 딱 그런 경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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