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흥미로운 이미지 하나를 찾았습니다.

  ’89년 냉전 종식 이후 첫 거대 전쟁이라 할 수 있죠. ’91년 걸프전*이 끝나고 쿠웨이트 정부는,  

• 이라크로부터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 국가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마음으로  
•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전 세계 유력 신문에 전면 광고를 실었는데요. 
• 놀랍게도 일본의 이름이 빠져 있습니다. 

*Persian Gulf War: ’90.08.02.~’91.02.28. 

전면 광고에 일본의 이름이 빠져 있는 게 왜 놀랍냐구요?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2010)에 따르면 

  이때 일본이 분담한 금액이 130억 달러(약 17조 원)였는데요. 

 

  즉, 일본은 걸프전 승리에 꽤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감사의 마음을 담은 전면 광고에 이름조차 실리지 못했습니다. 이만이 아닙니다. 

  걸프전 종료 10일 뒤, 워싱턴포스트와 ABC뉴스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선미 국민의 30%가 걸프전으로 인해 일본에 대한 존경심을 잃었다고 답했습니다. 일본은 자기중심적 중상주의 국가라는 건데요. 이때문에 일본 정치 지도부는 크나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렇게나 많은 돈을 기여하고도 국제사회로부터 홀대 받은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전투에 임할 수 있는 군대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때는 바야흐로 1951년 9월 8일, 미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샌프란시스코 전쟁기념 오페라하우스에 51개국 정상들이 모여듭니다.

태평양전쟁(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의 책임을 묻고 전후 처리를 위함인데요.

  같은 날 일본은 미국과 미일안전보장조약도 체결합니다. 골자는 이렇습니다. 

  당시 일본은 패전으로 인해 군대가 해체되고 연합군의 관리를 받고 있었습니다.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던 연합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군대보유와 무력 사용 등을 금지하는 <평화헌법>(1946.11.03.)을 제정합니다. 

  하나의 국가가 자국 안보를 스스로 지킬 수 없다는 건 꽤 굴욕적인 처사입니다. 게다가 국내문제에 개입할 권한마저 준다는 건 양자가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는 걸 뜻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 내용은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결국 1960년에 조약을 개정하며 삭제했습니다. 

• “군대에 쓸 돈을 아껴 경제부흥에 힘쓰겠다.” 

• 1988년엔 전 세계 부의 16%를 차지했고, 
• 1989년 기준, 시가총액 10대 기업 중 7곳이 일본 국적이었습니다. 

🕊평화국가에의 자부심은 없지만 전쟁국가에의 부끄러움도 없다 

22년 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시작된 걸프전은 비록 세계대전은 아니지만 중동에서 벌어진 소규모 전쟁으로만 볼 수도 없습니다. 지난 비밀작전에서 설명했듯이 

• 80년대 소련-아프간 전쟁은 체제 경쟁을 벌이던 미국과 소련 간의 대리전에 가까웠지만,  
• 90년대 걸프전은 탈냉전을 끝낸 양국이 관계를 개선하는 시험대로서 그 성격이 완전히 바뀝니다.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미국이 지난 날 그러했던 것처럼 무자헤딘이나 알 카에다 등과 비슷한 무장단체를 후방에서 지원하는 정도로 그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직접 작전을 개시했죠. 그럼에도 <평화헌법>을 이유로 파병을 거절했습니다. 파병안에 찬성하는 국민여론도 20%에 불과했으며 무엇보다 자위대는 군사작전을 펼칠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대신 130억 달러(2019년 기준 248.5억 달러/약32.5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원했지만, 결과는 ‘트라우마’라고 거론될 정도로 일본의 위신만 떨어 뜨렸습니다. 그제서야 탈냉전이라는 체제 전환이 온 몸으로 실감된 겁니다.

  일본만큼이나 체제 전환의 위기를 겪던 조선(북한)은 ’89년 대포동미사일을 시작으로 핵개발에도 착수합니다. 중국은 천안문 사태를 겪었음에도 개혁・개방 경제정책을 멈추지 않을 거라 선언합니다. 지난 날 적성국이었던 두 국가가 안보와 경제 모두를 동시에 위협합니다. 

  경제로 얘기하면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일본은 80년대에 주식과 부동산으로 정점을 찍었던 버블 경제가 붕괴하고, 인구고령화・금융시장 부실화・좀비기업 범람・디플레이션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하며 장기불황의 늪으로 빠져들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90년대 일본의 연간 실질 경제성장률이 1%에 그쳤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뒤숭숭한 일들이 연이어 나타납니다. ’95년 1월엔 고베에서 한신대지진이 발발하고, 3월엔 그 유명한 옴진리교 테러 사건이 일어납니다. 후자가 특히 충격적이었던 건 도심 한 가운데서 테러가 벌어졌다는 점도 있지만 가해자들이 (편견일 지라도) 사회 하층민이 아니라 중산층・엘리트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를 영화로 만들기도 했었죠. 

  한편,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에서는 일본제국 식민지 통치를 사과하라는 요구가 다시금 높아집니다.

  한국만 하더라도 

• 1965년에 체결한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은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한 것일 뿐,
•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정부와 군대 등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배상을 받지 못했다는 입장입니다. 

  영토 분쟁도 재점화됩니다. 러시아(구 소련)와는 쿠릴 열도, 한국과는 독도, 중국과는 센카쿠 열도인 데요. 당시 일본의 기본 방침은 분쟁의 억제였으며, 전략이 변화한 건 2000년대 중반부터지만 여러모로 일본으로선 위기에 위기가 가중되며 1등 국가로서의 자랑스러움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칩니다. 

이런 과정에서 일본 사회는 자연스럽게 다음의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 “평화국가에의 자부심은 없지만 전쟁국가에의 부끄러움도 없다.” 

  <평화헌법>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으로부터 시작된 요시다 독트린은 일본이 번영을 누리게끔 만든 유산이었지만 걸프전을 거치며 마주한 국제사회에서는 덫이 되어 버렸다는 인식입니다. 즉, 

  사실 90년대는 일본에게 여러모로 혼돈의 시기입니다. (아래에 자료가 정리되어 있지만) 90년대 만큼 과거사에 사과를 많이 한 적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수면 아래에선 언제까지 전쟁국가라는 과거사에 얽매여 사과를 계속해야 하는지 의문도 싹 틉니다. 

*’06.09.26.~’07.09.26., ’12.12.25.~’20.09.16.

아베 신조의 집안은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 가문 중 하나입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가문 세습 정치와 자민당 내 계파 정치가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죠.

  그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와 할아버지 아베 간도 정치인이었으며 외가는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총리를 두 명이나 배출했습니다. 그런데 독특한 건 두 명의 총리 성향이 극과 극이었습니다. 

①아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64.11.09.~’72.07.07.

*1945년 이후 두 번째 장수 총리 

즉, 아베 신조의 친가든 외가든 대부분의 가족은 요시다 독트린을 충실히 계승하는 보수본류지만,

아베 신조의 비전은 단순하지만 명확합니다. 

  아베 신조는 <보수혁명 선언>(’96), <이 나라를 지키는 결의>(’04), <새로운 나라로>(’13) 등의 저서를 통해 이러한 주장을 더욱 공공연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펼칩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요시다 독트린이 일본의 유산이지만 동시에 덫으로 작용하면서 아베 신조의 메세지는 일본사회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킵니다. 

역사에 만약이 없다지만, 종종 2011년 일본 대지진을 떠올립니다. 

  2000년대 일본 정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아베 신조를 필두로 보수방류의 시대라 칭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중국과도 과거사와 영토 분쟁 등으로 인해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였는데요. 

  그러나 2009년 9월, 집권정당이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교체됩니다. 당시 자민당은 작은정부를 지향했기 때문에 큰정부로서 복지정책을 앞세웠던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 정부는 한일 양국 관계도 꽤나 원만하고 우호적이었습니다. 아래에서처럼 탈냉전 시대에 한일 간에는 다섯 개의 상징적인 선언 및 담화가 있는데요. 이중 하나가 당시 민주당 정부로부터 나왔습니다.  

•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자민당/보수본류-지공회)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사과 

②1995년, 무라야마 담화 

•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일본사회당)가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과 식민지 지배 사죄 

•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자민당/보수본류 직계-경세회)가 채택한 합의문 

④2005년, 고이즈미 담화 

• 무라야마 담화 10주년을 맞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자민당/보수방류-청화회) 계승 의지 재천명 

⑤2010년, 간 담화 

• 간 나오토 당시 총리(민주당)가 한일병합의 강제성과 식민지 지배의 폭력성에 대한 인정과 사죄 

문제는,

결국 2012년 12월, 자민당이 다시금 총선에서 승리하고 총리에 오른 아베 신조는 2020년 9월까지 역임합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럼에도 만약, 민주당이 실각하지 않고 계속해서 집권정당으로 남아 있었다면 2010년대의 한일 양국은 어떤 관계로 흘러갔을까요? 

  물론 국가 간 관계가 특정 정부의 성격만으로 좌우되는 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일본사회가 느끼는 위기의식은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을 거치며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안보전략을 대대적으로 전환함에 따라 

  등의 결과로 <평화헌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줄어들기란 꽤나 요원해 보입니다. 

지난 비밀작전에서 아베의 인기를 해석하는 세 가지 키워드로

  이라고 안내드렸습니다. 특히 일본은 탈냉전이라는 체제 전환을 그 어느 국가보다 크고 심각하게 인식했다고 평가했는데요. 오늘 그 궁금증이 풀리셨길 바라며, 어쨌든 우리가 알고 싶은 건 넥스트입니다. 

  아베 신조는 건강상의 문제로 20202년에 총리직에서 물러났지만 스가 요시히데와 기시다 후미오라는 두 명의 총리를 거치면서도 막후 실력자로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는데요. 알다시피 지난 7월 8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지원 유세하던 중 피습을 받고 유명을 달리합니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 이후로 일본 정치권과 사회의 지각 변동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 결과 역시 무난하게 자민당이 승리했습니다. 

  다만 기시다 후미오는 아베 신조의 지원에 힘입어 총리직에 올랐지만, 

• 아베 신조와 달리 보수본류를 추구하는 굉지회라는 계파 소속으로 
• 보수본류 중에서도 중도온건파로 분류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그럼 우리는 국내외 최신 아티클을 요약・정리하는 토요일의 Surfing Summary 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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