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문소식 2026-10
10월 또문소식은 아래 순서로 쓰여졌습니다. 
  • 지금 여기에 : 김신효정, "지구를 불태우는 폭주를 멈춰라" 
  • 함께 나눠요 : 다은, "여성들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백경흔, "⟪국가선택⟫을 읽고 - 정말 '국적'이 개인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 11월 또문독서회 안내
  • 편집자의 글
지금 여기에
김신효정 동인의 글 "지구를 불태우는 폭주를 멈춰라"는 지난 919기후정의행진 참가기입니다. 기후위기시대, 그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는 '폭주' 앞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나를 묻는 글입니다. 

지구를 불태우는 폭주를 멈춰라

김신효정 (또 하나의 문화 동인, 명지대학교 교수)

아이의 손에 건네진 씨앗


지난 9월 19일, 초등학교 1학년 호준이와 함께 기후정의행진에 다녀왔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매년 함께해 온 행사이다. 서울시청으로 가는 길에 호준이에게 지구가 아프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끝내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기후위기와 전쟁의 관계를 알고 답한 것은 아니겠지만, 아이의 말에 잠시 생각이 많아졌다. 전쟁으로 막대한 탄소가 발생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농지가 파괴되며, 씨앗을 심을 땅이 사라지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유엔위성센터(UNOSAT)가 2026년 8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가자지구 농경지 중 접근가능하고 훼손되지 않은 땅은 전체의 3%인 448헥타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농민들이 씨앗을 심고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땅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기후정의행진 본 집회에 앞서 들른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부스에서 호준이는 귀한 선물을 받았다. 잘 익은 토종호박과 여러 가지 토종 씨앗을 선물 받았다. 특히 호준이는 작은 텃밭에 심을 토종 배추 씨앗을 살뜰히 챙겼다. 여성농민들이 오랫동안 손에서 손으로 지켜온 씨앗이 아이의 손으로 건네졌다. 작은 씨앗 한 봉지에는 여러 계절을 살아낸 땅, 작물, 사람들의 시간이 깃들어 있다.


 

성장의 약속 뒤에 가려진 삶


올해 기후정의행진의 구호는 “지구를 불태우는 폭주를 멈춰라”였다. 내가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환경연대는 “경제성장보다 돌봄사회, AI보다 생명”을 외쳤다. 이재명 정부가 AI와 반도체 산업을 국가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내세우는 동안, 첨단산업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 물, 토지 광물은 어디에서 오는가. 케이트 크로퍼드는 책 ⟪AI 지도책⟫(Atlas of AI)에서 인공지능이 결코 비물질적인 기술이 아니며 자연자원, 에너지, 수많은 사람의 노동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첨단기술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좀처럼 보지 않는 것은 기술을 유지하기 위해 채굴되고 오염되는 땅과 물, 그리고 노동하는 사람들의 몸이다.

 

기후위기 시대에도 발전주의는 여전히 국가의 강력한 방향이다.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하고, 더 큰 산업단지를 건설하며, 더 빠른 기술을 개발하면 우리의 삶도 나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동안 무엇이 나아졌고, 무엇이 황폐해졌는가. 농지가 사라지고, 지역의 물과 에너지가 대규모 산업을 위해 동원되는 동안 돌봄과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더 비싸지고 더 어려워졌다. AI 산업에 필요한 전력과 물을 확보하는데 막대한 자본과 정책적 지원이 동원되지만, 지역에서 농사를 지속하고 돌봄을 나누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건들은 가려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국가의 성장 전략 안에서는 여전히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농지를 태양광 발전에 활용하면 일반 농사보다 몇 배의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농촌에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농민의 소득을 높이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농지의 가치를 발전수익으로만 평가한다면, 먹거리를 생산하고 생명을 길러온 농민의 노동과 권리는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농사와 재생에너지가 반드시 대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농업과 에너지전환이 공존하기 위한 조건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가 농사의 가치보다 태양광 발전의 수익성을 먼저 이야기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 우리는 반도체를 삶아 먹고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기후위기 시대, 페미니즘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이러한 현실에서 페미니즘 운동과 이론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그동안 페미니즘은 여성의 노동과 돌봄이 어떻게 보이지 않게 되었는지, 자본주의 경제가 누구의 무급노동과 희생에 기대어 유지되어 왔는지를 질문해 왔다. 에코페미니즘 역시 여성의 몸과 자연을 추출가능한 자원으로 취급해 온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해 왔다. 이제 페미니즘은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산업, 에너지 인프라, 전쟁, 농업, 먹거리, 젠더가 교차하는 문제에 더욱 급진적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기술과 편리한 생활이 어떤 땅과 노동에 의존하는지, 보이지 않는 생명과 삶의 비용은 어디로 떠넘겨지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그날 거리에서 유난히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과연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남기고자 하는가. 나는 기후정의와 생태 전환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약속하고 있는 미래가 무엇인지는 암담하다. 미래세대에게 떠넘기고 있는 이 막대한 생태부채를, 이 빚을 더 늘리지 않고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갚을 것인가.


집으로 돌아와 호준이가 받아 온 작은 씨앗을 만져보았다. 이 작은 토종씨앗을 다음 세대에 건넨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이는 씨앗이 자랄 땅과 물을 지키고, 씨앗을 심고 거두는 일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세대를 거쳐 서로의 삶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가 살아갈 미래를 걱정하면서 미래를 지키기 위한 책임마저 아이들에게 미루어서는 안 된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생태부채를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지구를 불태우는 폭주를 멈추어야 한다.  (2026. 10,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함께 나눠요
  • 다은 동인의 글 "여성들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연극 ⟨고쳐서 나가는 곳⟩의 후기로, 여성주의 서사를 다루는 한국의 여성작가들, 여성연출가들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그리고 논외로, 최근 이런 작품들은 극장을 가득 메운 여성관객이 보여주는 호응과 열기 또한 놓칠 수 없는 요소이자, '여성들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확인하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도 꼽고 싶습니다.
  • 백경흔 동인의 글 "⟪국가선택⟫을 읽고 - 정말 '국적'이 개인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는 또문독서회에서 함께 읽었던 ⟪국가선택⟫을 돌봄연구자로서 다시 읽어주는 글입니다. 특히 '인구전략위원회'라는 명칭변경에 대한 말씀은 30년전 영화 ⟪가타카⟫(1997)가 다시 생각나면서 조금 소름이 돋기도 했습니다.

여성들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 연극 ⟨고쳐서 나가는 곳⟩을 보고

다은(또 하나의 문화 동인)

연극 <고쳐서 나가는 곳>은 ‘깡깡이’라 불렸던 여성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극으로, ‘깡깡이’라는 역사 속 여성 노동을 조망함과 동시에 여성들 사이의 연대를 보여준다. ‘깡깡이’라는 명칭은 배의 녹슨 부분과 페인트, 조개껍데기 등을 망치로 깡깡 두들겨 떼어내는 일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주로 여성이 도맡아왔기에 ‘깡깡이 아지매’라고도 불렸다. 배가 더 잘 항해하기 위해서는 배에 붙은 따개비와 같은 조개류를 떼어내고 녹을 긁어내는 작업이 중요했음에도 여성이 수행한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평가와 임금을 받지 못했던 노동이기도 하다.  


극중 여성들은 여러 이유로 깡깡이가 되었다. 비혼 여성인 길자는 결혼을 통해 고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모님이 되기를 바라면서도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 깡깡이 노동을 한다. 부모님과 형제자매를 여럿 부양해야 하는 부연은 남성 선박 노동자들에 비해서는 턱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여성치고는 돈을 많이 벌 수 있기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깡깡이가 되었다. 최고참인 만선은 깡깡이 내에서는 맏언니이자 반장으로 리더십과 기술을 발휘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남편을 수발해야하는 여성으로 전락하는 것에 간극을 느끼며 깡깡이 노동을 한다. 송엽은 폭력을 일삼는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주체적으로 인생을 일구어 나가기 위해 깡깡이가 되었다. 윤자는 엄마를 따라 깡깡이가 되었지만, 이후 간호조무사가 되어 섬 영도에서 육지로 나아가는 여성으로 깡깡이를 여성 노동 계보 안에 위치시키는 가교 역할을 한다.

 

극은 송엽이 인천에서 남편을 피해 영도로 흘러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했다가, 영도까지 송엽을 찾아온 남편으로부터 다시 벗어나기 위해 영도를 떠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과정에서 송엽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건넨 것은 청락부 깡깡이 여성들이었다. 깡깡이 여성들은 먼 곳을 항해하고 돌아온 배들의 상한 곳만 고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에 스며든 녹과 찌꺼기도 함께 쳐 내 새로이 나아갈 수 있도록 고쳐왔던 것이다. 각기 다른 삶의 무게를 지고 깡깡이가 된 여성들이 함께 일하고, 먹고, 마시며 함께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도 울림과 감동을 준다.

 

깡깡이 여성들을 통해 다시 나아갈 힘을 얻은 송엽은 영도를 떠나며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는데, 뒤를 이어 여러 여성들이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함께 울려 퍼진다. 이러한 무대적 장치는 송엽의 이야기가 극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여성들과 여전히 공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 극을 연출하고 연기한 극단 기지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거나 잊혀진 이들을 무대 위로 불러내어” 연극으로 풀어내는 것을 추구한다고 한다. 극단 기지가 앞으로 새롭게 주목하고 발굴해나갈 누군가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2026. 10,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국가선택⟫을 읽고 - 정말 ‘국적’이 개인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백경흔(이화여대 여성학 강사, 또 하나의 문화 동인)
또문독서회에서 읽은 ⟪국가선택⟫(우원규, 2026)을 돌봄의 관점에서 읽고 짧은 단상을 남긴다. 저자는 생산인구와 이민에 집중했는데, 돌봄을 중심으로 비판하는 것이 반칙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돌봄연구자인 나에게는 돌봄의 부재가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문제는 인구절벽, 답은 이민. 성평등은?⟩

 

저자는 처음부터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출산율을 높이는 해법을 과감히 포기한다. 늘 문제는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이었고, 해법은 또다시 여성의 출산이었다. 여성에서 다시 여성으로 맴도는 저출산의 뫼비우스 띠를 저자는 격파한다. 그런데 그 격파가 과연 새로운 희망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저자가 출산율 증가에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산도 결혼도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는 비관주의도 있다. 그의 비관주의에 공감한다. 각자도생하고, 각자도사하는 사회에서 금수저나 다이아수저 없이 경쟁 레이스로 진입하는 출생을 마냥 축하만 하기 어렵다. 이제 세상은 그렇게 살 만한 곳이 아니다.

 

저자는 출산에 기대하지 않고, 이민으로 시선을 돌린다. 어차피 출산율을 올릴 방법도 없고, 아이가 태어나도 생산인구가 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여기서 ‘생명’과 ‘돌봄’의 문제는 순식간에 ‘생산’과 ‘생산인구’의 문제로 이동한다. 생산인구만 본다면, 이민은 당장 일할 수 있는 생산인구를 유입하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이미 많은 국가들이 ‘이민’에서 해답을 찾고, 특히 ‘숙련 이민 촉진’이 중요한 대안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책은 영국이 세계 상위 50위권 대학 졸업생에게 고잠재력 개인 비자를 주고, 고용주 종속 없이 자유로운 이직과 창업을 가능하게 한다고 밝힌다. 과거의 ‘단순노동력 확보’는 ‘핵심 두뇌 쟁탈전’으로 변모했고, 핵심 두뇌를 가려내기 위해 세분화와 선별이 중요해졌다. 그런데 ‘돌봄은 어떻게 해결하나?’ 생각하는 순간에 ‘일정 범위의 비숙련, 준숙련을 허용하는 방식’이라는 단서를 발견한다. 같은 이민이라도 비숙련, 준숙련 인력은 '선택'의 주체가 아니라 이민이 ‘허용’되는 객체인 셈이다.

 

한편, ⟪국가선택⟫을 읽는 동안 인구전략위원회 개편 소식이 겹쳐 떠올랐다. 책이 이런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지난달 10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인구전략위원회로 확대 개편되며 이름에서 ‘저출산’이 빠졌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이렇게 큰 변화가 조용히 이루어졌다는 데 놀랐다. 이름에서 ‘저출산’이 빠지고 ‘인구전략’이 들어오면 질문이 달라진다. ‘누가 낳고 기르는가, 그 조건은 어떠한가’를 묻던 자리에 ‘필요한 인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들어서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여성의 몸 정치(body politics)가 숫자의 정치로 환원되는 것을 반대해 왔다. 출산이 인구 숫자의 문제로 환원되면 성평등 의제가 증발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아이를 안 낳아서 문제라고 할 때에는 그래도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성불평등’이라고 싸울 수 있었다. 그런데 여자를 고치려 하지 말고, 세계를 고치라고 말하다가 이제는 현재 상태의 세계에서도 충분히 경쟁력 있게 잘 살아갈 수 있는 ‘인구’를 외부에서 들여오겠다고 하면서 고쳐야 할 세계가 논의에서 빠져버렸다.

 

‘국가선택’은 국가도 국민을 선택하고, 개인도 국가를 선택한다고 말한다.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되어 ‘국가’를 선택할 기회를 잡으라는 것이다. 논의는 매끄럽고, 정책 변화와 성공 사례가 근거로 제시된다. 그런데, 의심쩍다. 과연 정말 가능할까?

 

 

⟨국가선택, 잔인한 낙관?⟩

 

국가도 개인도 ‘선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적어도 나에게는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았다. 최근 독서 모임에서 읽은, 어려워서 잘 읽히지 않던 로렌 벌랜트(2024)의 ⟪잔인한 낙관⟫이 갑자기 떠올랐다. 벌랜트가 말하는 잔인한 낙관이란, 더 나은 삶에 대한 약속에 애착을 품지만 바로 그 애착이 오히려 우리의 번영을 가로막는 상태를 말한다. 국가선택이 내미는 약속이 바로 그런 구조는 아닐까.


 

내가 조금만 더 경쟁력이 있으면 ‘국가’와 ‘국적’을 선택할 수 있을 거라는 장밋빛 미래를 그리면서, 우리는 그 약속에 애착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그 바늘구멍을 뚫을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약속에 매달리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놓치게 되는 걸까? 저자의 국가선택 논의가 그럴듯하게 들렸던 이유는 애초에 중요하면서도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될 만한 걸림돌이 논의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출산이 아닌 생산인구에 의도적으로 집중했다. 그런데, 출산만 뛰어넘은 게 아니라 인간이라면 반드시 생존을 위해 필요한 생명과 돌봄을 뛰어넘었다.

 

숙련 인력을 들여온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누군가 낳고, 먹이고, 기르고, 가르친 돌봄의 결과물을 완성된 상태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민은 ‘출산 과정이 생략된’ 인구 확보 방식이고, 그 과정에서 투입된 돌봄은 계산에서 빠진다. 돌봄 비용과 부담은 송출국과 그 가족, 대개는 여성에게 남는다. 국가선택의 매끄러운 논리는 글로벌 돌봄 사슬이 보이지 않게 떠받치고 있다.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화하는 존재는 더더욱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돌봄 없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국적의 선택은 생산성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애초에 돌봄을 하는 사람은 이민을 가도 누군가의 생산성이 유지되기 위한 도구로서만 인정된다.

 

이 구조는 한국에도 낯설지 않다. 한국도 국내 돌봄인력 부족(채민석 외, 2024)으로 ‘허용’된 인력에 기대기 시작하고 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그 예이다. 인간답지 못한 돌봄을 받으며 죽어가는 사람이 있고, 요양병원에서 간병인이 환자의 항문에 위생패드 조각을 넣어 처벌받은 사건도 있었다(손현규, 2024). 생명을 돌보면서 존중이나 인정도 없이 저임금으로 연명하는 돌봄노동자도 있다. 제대로 돌봄받지 못해 방치되는 사람들이 있고, 누군가를 돌보다 경력이 단절되고 비정규직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있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면, 국적은 개인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모두의 무기는 아닐 것이다. 국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약속은 잔인한 낙관이다. 그 약속에 애착이 형성되는 가운데, 경쟁력은커녕 최소한의 돌봄도 받지 못하고 최소한의 존엄도 누리지 못한 채 비존재로 살아가는 누군가가 있다. 한편, 국가를 선택할 만한 경쟁력을 갖추려고 돌봄을 거세한 생산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누군가는, 그 희망에 기대어 버티는 동안에도 자신이 조금씩 소진되고 있음을 감당해야 한다. 그 희망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우리 대부분이 그런 약속에 얼마간 기대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 약속은 삶을 지탱하는 동시에 삶을 마모시킨다. 모두가 답보상태에서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벌랜트의 글이 그렇게 어렵기만 하더니, 막상 국가선택의 논의를 생각하니 이렇게 이해가 될 줄이야.

 

생명을 선택해도, 돌봄을 선택해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가능할까. 이런 소박한 낙관도 쉽게 할 수 없는 비관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미 너무 생산 쪽으로만 기울어버린 시대에 생명과 돌봄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하면, 이것도 잔인한 낙관이 되는 것일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보의 시대, 이런 시대를 우울의 시대라고 부르는 걸까. 그래도 생명과 돌봄이 지속가능한 내일을 가져온다는 믿음을 붙잡는다. 낙관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서도 지켜야 하는 마지노선이니까. (2026. 10월)

 

참고문헌

(2026. 10,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11월 또문독서회
11월의 책은 ⟪감정의 문화정치⟫와 ⟪불쉿잡⟫입니다.

11월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번에 말씀드렸듯이 진행은 온오프 번갈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면참석이 어려우셨던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11월 02일 사라 아메드, 감정의 문화정치(~4장까지) (Zoom연결)
  • 11월 16일 사라 아메드, 감정의 문화정치(5장부터 끝까지) (장소: 또문사무실)
  • 11월 30일 데이빗 그레이버, 불쉿잡 (Zoom연결)

그동안 읽었던 책들이 상당히 무거운 책들이었기 때문에 사실 그 사이 10월에는 쉬어가는 기분으로 소설 한 권을 읽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혜진 작가의 소설 ⟪딸에 대하여⟫였는데, 이미랑 감독의 동명영화로도 제작된 작품입니다. 영화는 여러 OTT서비스를 통해서 찾아보실 수 있어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시작했지만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서 여러분께도 추천드립니다. 등장인물들 중 누구에게 가장 이입하여 읽었는가 하는 얘기만으로도 한참을 수다떨 수 있었던 흥미로운 작품이었어요. 참고로 독서회 회원들은 소설을 먼저 읽는 것을 추천하였다는 것도 알려드려요.

편집자의 글
부엌에 드는 달빛은 신의 표식이다.
당신 자신의 배꼽으로부터 당신을 뽑아내는
검은 흡입관 같은 슬픔, 또 불교도들이

‘무심(無心)’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의 표식이다.
인간의 대화와 나란히 이어지는,
채찍질 같은 막다른 골목들은 신의 표식이다.

신 스스로의 평온함은 신의 표식이다.
감자나 돈의 놀랍도록 차가운 냄새.
침묵의 견고한 조각들.

이 다양한 표식들로부터 당신은
할 일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슬픔은 걷어버려라, 그것은 할 일을 가리고 있는 덮개다.

- 앤 카슨(1950~)
시집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의 두번째 시 '신에 관한 진실' 중 한 편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앤 카슨의 시는 늘 좋은 시를 소개해주시는 나희덕 시인의 칼럼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10111956025
앤 카슨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을 두고 시인이면서 고전학자인 앤 카슨의 글은 소위 'AI글쓰기'의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AI가 모방하기 어려운 글쓰기를 하는 사람으로 많이 회자되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최근 클로드AI를 만든 회사 앤트로픽의 저작권 분쟁, 집단소송을 통해 '프로젝트 파나마'의 전모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AI글쓰기'의 본질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프로젝트 파나마를 대행하는 정체모를 에이전시를 통해 수십만권의 실물책이 팔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실물책 이전에 전자책으로 만들어져 있거나 유무료PDF 사이트 등에서 제공되고 있는 대부분의 책들은 이미 'AI글쓰기'를 위한 학습자료로 가공이 완료되어버린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입니다. 프로젝트 파나마 문서에는 회사가 "세상의 모든 책을 파괴적으로 스캔(destructively scan)"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심각한 저작권 침해의 사안을 넘어 '생명채굴'의 방식으로 '인류문명을 수탈'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아룬다티 로이는 앤트로픽 회사로부터 배상금을 제안하는 통지를 받아들고 “나도 모르게 내 몸의 장기를 적출당한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ChatGPT가 등장했을 때 'AI글쓰기'가 인간의 글쓰기와 경쟁하는가 하는 얘기들이 얼마나 순진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인류문명을 식민지로 만들고 '파괴적으로' 수탈하려는 기획을 아무렇지도 않게 기안하고 실제로 수행하고 있는 이 AI산업에 대해서, 모르는 척 하기에는 너무 앞서가버리고 있지 않나 깊은 우려를 느낍니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 여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발레리 비치 감독의 ⟪보이지 않는 설계자⟫(Ghost in the Machine)를 또문동인들과 꼭 함께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침 PBS에서 유튜브를 통해 무료공개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AI의 기원을 우생학의 기원을 탐색하면서 확인하고 현대에 이르러 디지털 식민주의, 기술적으로 구축된 파시즘으로 연결되는 내용들을 정말 꼼꼼하게 아카이빙해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아래에 영상을 붙여두었으니, 한 자리에서 다 같이 보지는 못하지만, 삼삼오오, 계신 곳에서 함께 영화를 보셔도 좋겠다는 제안을 드려봅니다. 

국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AI윤리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문제제기를 지속적으로 해왔는데 아직까지 큰 반향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지난 주에 씨리얼에서 제작한 유튜브 영상 "AI 만드는 사람들의 위험한 세계관 | 테크 파시즘: 기계신과 제사상, 그리고 제물들"이 업로드 되었는데, 이 영상도 참고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상에 대해서는 씨리얼에서 기고한 연속기사를 통해서도 읽으실 수 있어요.

앤 카슨의 아름다운 시에서 시작해서 대규모 '생명채굴'을 수행중인 테크 파시스트 이야기로 마무리 하려니 마음이 좋지 않지만, 또문 동인들의 지혜로운 생각과 의견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다는 말씀으로 마감합니다.
사과의 말씀
10월 중에 발송되었어야 하는 또문소식을 너무 늦게 보내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11월 소식은 사고 없이 11월 중순께 받아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곧 다시 뵙겠습니다.
또 하나의 문화를 후원하고 계신 동인들
후원회원(가나다순): 곽영선, 권김현영, 김경희, 김미현, 김보화, 김상애, 김성례, 김소영, 김신현경, 김영경, 김영옥, 김영일, 김유익, 김은실, 김정명신, 김정은, 김정희원, 김주희, 김지수, 김진아, 김찬호, 김태형, 김현미, 김혜련, 김효정, 김희옥, 남정호, 두애린, 문수복, 문정주, 박나미, 박은, 박진숙, 박총, 배채은, 백경흔, 변재란, 소영, 손은정, 안혜경, 안희경, 안희옥, 양선미, 양현경, 양현아, 여은영, 연주희, 우은희, 유승희, 이경자, 이선향, 이소희, 이수정, 이숙경, 이은아, 이은주, 이정주, 이지예, 이진아, 이헌미, 이현주, 이혜령, 장필화, 전유나, 정진경, 정혜란, 정혜진, 정희진, 조민아, 조옥라, 조은, 조형, 조한혜정, 지현, 진영옥, 채혜원, 최소연, 최수연, 최은숙, 최은주, 최한솔, 한혜정, 허순희, 현유라, 황은진, 황정하(8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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